1. 합법인데 금지된
2020년 2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 법정. 재판장이 주문을 읽었다. "피고인 이재웅, 피고인 박재욱, 모두 무죄." 방청석 한쪽에서 타다 직원들이 눈물을 흘렸다. 반대편에서는 택시 기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재판부는 11인승 카니발에 기사를 포함해 운행하는 타다의 사업 모델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 제18조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했다. 합법이었다.
16일 뒤인 3월 6일 밤 11시 50분, 국회 본회의장. 의원 185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 — 언론이 "타다 금지법"이라 부른 법안 — 이 표결에 부쳐졌다. 찬성 168명, 반대 8명, 기권 6명. 렌터카에 기사를 포함하려면 대여 시간 6시간 이상이거나 공항·항만 출발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타다 베이직의 영업 방식은 사실상 전면 금지됐다.
법원은 합법이라 했다. 국회는 합법인 서비스를 불법으로 만드는 법을 만들었다. 그 사이 16일.
타다는 2018년 10월 출시 후 1년 반 만에 가입자 170만 명, 운행 차량 1,500대를 확보한 서비스였다. 깨끗한 차, 친절한 기사, 묻지 않는 목적지. 택시를 잡기 어려운 심야 시간에도 앱 하나로 차가 왔다.
소비자들은 환호했고 택시업계는 분노했다. 2019년 한 해 동안 택시기사 네 명이 타다 반대 시위 중 분신했다. 70대 개인택시 기사 안모 씨가 서울 시청 광장 인근에서 몸에 불을 붙였다. 기득권의 저항은 격렬했고, 정치는 그 저항의 편에 섰다.
박재욱 VCNC 대표는 기소 당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타다를 시작하면서 포지티브 규제 체계에 기반해 법령에 쓰여 있는 그대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국토부 관계자들도 만났고, 법무법인으로부터 법률 검토도 받았습니다." 법대로 했는데 법이 바뀌었다.
3년 뒤인 2023년 6월, 대법원은 이재웅과 박재욱에게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이재웅은 소셜미디어에 썼다. "4년간 긴 시간 동안의 싸움 끝에 혁신은 무죄임을 최종적으로 확인받았지만, 그 사이 혁신이 두려운 기득권 편에 선 정치인들은 법을 바꿔 혁신을 주저앉혔다."
2020년 4월, 박재욱 대표는 타다 베이직 서비스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2022년 심야 택시 대란이 벌어졌을 때, 한 언론은 "타다가 있었다면"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타다는 이미 없었다. 서비스가 사라진 자리에는 택시 호출 앱이 들어섰고, 심야 할증은 더 높아졌다.
6장에서 싱가포르 MAS가 핀테크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21일 내 승인을 보장하는 것을 보았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합법인 서비스가 법 개정으로 죽었다. 타다의 죽음은 한국 규제 경직성의 가장 극적인 상징이다. 그러나 상징에 불과하다면 이 장을 쓸 이유가 없다. 타다는 패턴의 시작점이다.
2. 대기실에서 보낸 3년 반
AI 기본법의 여정이 그 패턴을 확인한다.
2021년 7월, 제21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AI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됐다. 아시아태평양 최초의 포괄적 AI 기본법을 만들 수 있는 자리였다.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난 2024년 12월 26일 밤, 국회 본회의장에서 재석 264명 중 찬성 260명의 압도적 표차로 법안이 통과됐다. 반대 1명, 기권 3명. 사실상 만장일치였다. 결과만 보면 합의의 승리다. 과정을 보면 지연의 교과서다.
그 3년 반 동안 무엇이 일어났는가. 21대 국회에서 수십 개의 AI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법에 따라 임기 만료 시 미처리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 2024년 4월 총선과 함께 관련 법안이 전량 폐기됐다.
22대 국회가 열리자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다시 발의했다. 하나의 주제에 20여 개의 법안이 각자 다른 이름으로 등록됐다. 발의 건수로 의정 성과를 평가하는 문화가 병합을 가로막았다. 각 의원이 자신의 법안이 기반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통합 협의가 지연됐다. 한 소위 위원이 말했다. "법안이 너무 많아서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할지 정리하는 것만 해도 수주가 걸렸습니다."
그 3년 반 동안 세계는 멈추지 않았다. 중국은 생성형 AI 잠정 조치를 4개월 만에 공포하고 시행했다 — 2023년 4월 초안 공개에서 8월 15일 시행까지. EU는 27개 회원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AI Act를 3년 만에 완성했다. 한국은 단일국가, 단일의회 구조에서 3년 반을 소요했다. 27개국 합의체보다 느린 단일국가.
1장에서 한자동맹이 200개 도시의 만장일치 거버넌스로 결정을 내리던 구조를 보았다. 그 만장일치가 거버넌스를 마비시킨 과정이 한국 국회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내용의 타협도 문제였다. 수십 개 법안이 병합되는 과정에서 핵심 조항들이 희석됐다. EU AI Act가 명시한 "금지된 AI 관행" 카테고리는 한국법에 없다. 실시간 생체인식이나 감정 인식 시스템에 대한 엄격한 제한도 없다. 고영향 AI 정의는 10개 영역으로 좁혀졌고, 과태료 부과는 계도기간으로 유예됐다.
한 법학자의 평가가 3년 반의 결과를 요약한다. "안전 및 시민권 보호가 미흡하다는 시각과 규제 최소화가 필요하다는 산업계 시각이 3.5년 동안 충돌한 결과, 법은 두 편 모두를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2026년 1월 22일 시행과 동시에 정부는 "세계 최초 AI 규제 전면 시행국"을 선언했다. 그 "전면 시행"의 실질적 규제 시작은 2027년 이후다. 타이틀은 빠르고 실질은 느리다.
그 법안이 통과된 12월 26일이라는 날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과 23일 전인 12월 3일 밤, 같은 국회 본회의장에 계엄군이 진입했다.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AI 기본법이 통과됐다. 같은 날 가상자산 과세를 2027년으로 유예하는 소득세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됐다. 혼돈 속의 입법. 그 사이 챗GPT가 출시되고, 수백 개의 국내 AI 서비스가 규제 없이 시장에 풀렸다. 법이 늦어도 현실은 기다리지 않는다.
AI 기본법만이 아니다. 원격의료는 20년째 벽에 부딪혀 있다. 2002년 의사 간 원격 협진이 법제화된 이후, 환자와 의사 간 직접 원격진료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 다섯 정부를 거치면서 한 번도 전면 허용되지 않았다.
2006년 시범사업이 의료계 반대로 무산됐다. 2010년 18대 국회에 제출된 의료법 개정안은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단 한 차례도 상정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14년 19대 국회에서 재발의됐으나 역시 상임위 상정 없이 자동 폐기. 한국은 2025년 기준 OECD 국가 중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유일한 나라다.
코로나19 기간 3년 동안 수천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고, 대규모 안전 사고는 보고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검증 안 됐다"는 논리가 확대를 막는다. 대한의사협회 설문에서 원격의료 반대 응답자의 61.5퍼센트는 "허용 시 총파업 등 전면 투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익집단이 정치를 통해 시장을 막는 구조 — 타다에서 본 바로 그 패턴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1위 닥터나우의 운명이 이를 증명한다. 코로나 특례 아래 가입자 300만 명을 확보한 이 기업은, 2023년 6월 정부가 시범사업으로 전환하며 대상을 축소하자 직원 80명 중 40명을 해고해야 했다.
닥터나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산업 스타트업의 혁신적 시도가 충분한 검토와 소통 없이 일률적으로 제한되면 결국 피해는 의료를 이용하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반년 뒤 정부는 야간·휴일 초진도 허용하도록 규제를 다시 완화했다.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여는 문. 그 사이 인력은 이미 반으로 줄어 있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에서도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 2019년부터 약 500건이 지정됐지만, 특례 기간이 끝난 후 정식 규제 개정이 완료된 비율은 10~17퍼센트에 불과하다. 샌드박스의 중소 핀테크 기업 비중은 2019년 62퍼센트에서 2025년 5퍼센트로 급락했다. 샌드박스는 혁신의 영구적 허용이 아니라 한시적 예외일 뿐이며, 그마저도 대기업 중심으로 변질됐다.
반도체 특별법(K-Chips Act)은 또 다른 변주다. 2024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엔지니어들이 HBM 개발 경쟁에서 엔비디아의 요구 사항을 맞추기 위해 밤샘 작업을 이어가던 시기에, 반도체 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1년 넘게 여야 교착에 걸려 있었다. 11장에서 한국의 칩과 배터리가 불가결성의 두 날개라고 했다. 그 날개를 만드는 엔지니어들의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하는 조항 하나를 통과시키지 못한 것이다.
2025년 12월, 국회는 그 조항을 삭제한 채 법을 통과시켰다. 서울경제는 제목으로 표현했다 — "앙꼬 빠진 반도체 특별법." 산자위원장은 합의 배경을 설명하며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완화 등 근로시간 유연화 특례가 이번 제정법률안에 반영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더 이상 반도체산업에 대한 지원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절박함이 있었지만, 핵심은 빠졌다.
법안에는 부대의견으로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연구개발 인력의 근로시간 특례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소관 상임위에서 대안에 대해 계속 논의한다"는 문구가 달렸다. 해결이 아닌 연기. 같은 기간 TSMC는 미국 CHIPS Act 보조금 527억 달러를 확보하고 애리조나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5장에서 본 사이버 안보 거버넌스의 3원 분절도 같은 구조적 문제의 변주다. KISA, 국정원, 사이버사령부가 각자의 소관 영역을 지키는 구조에서 통합 대응 체계는 입법 조율보다 먼저 오지 않는다 — AI 기본법과 반도체 특별법이 겪은 것과 같은 이해관계 분산의 논리가 안보 영역에서도 작동한다.
패턴이 보인다. 법이 필요한 곳에서 법이 늦고, 법이 통과되면 핵심이 빠져 있고, 때로는 법이 통과된 후에도 시행되지 않는다.
가상자산 과세가 그 극단이다. 2020년 국회를 통과한 과세 법안은 세 차례 유예됐다 — 2021년에 2023년으로, 2022년 대선 직전에 2025년으로, 2024년 말 탄핵 정국 속에서 2027년으로. 법 통과에서 시행까지 최소 7년. 유예의 타이밍은 선거 주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1,000만 명 이상의 가상자산 투자자 — 전체 인구의 약 20퍼센트 — 라는 정치적 블록이 규제 시행을 막는다. 전문가들은 "2027년 시행도 불투명하다"고 전망한다. 과세 인프라 미비, 투자자 반발, 거래소 데이터 제출 체계 부재가 이유다. 규제 시행이 표를 잃을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어느 정당도 강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입법 지연이 아니다. 의도적 비시행이다.
한국 규제 시스템에서 하나의 구조적 발견이 드러난다. 국가 안보 또는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영역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입법 속도가 빠르다 — 반도체 특별법으로 반도체 세액공제를 25퍼센트까지 확대한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분산된 영역 — AI 규제, 플랫폼 노동, 가상자산 과세 — 에서는 극도로 느리다.
한국 정치 시스템은 "명백한 패자"와 "명백한 승자"가 있는 규제보다, "모호한 이익 배분" 구조를 가진 규제에서 훨씬 비효율적이다. 관료 시스템의 인센티브 구조가 이를 악화시킨다. 규제를 풀어서 혁신이 성장해도 담당자가 공을 인정받는 구조가 아니다. 반면 규제 완화 후 사고가 나면 담당 관료가 책임을 진다. 이 비대칭이 "허용 기본, 예외적 규제"가 아닌 "규제 기본, 예외적 허용"의 관행을 유지하게 만든다.
3. 줄어드는 나라
제도가 느린 사이, 사람이 줄고 있다. 제도가 느린 나라에서 인구는 더 빠르게 줄어든다 — 원격의료에 20년, AI 기본법에 3년 반을 소요하는 나라가 육아와 주거와 일자리의 구조를 바꾸는 속도 역시 같은 논리로 느리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 — 세계 최저다. 단순히 낮은 수준이 아니다. OECD 38개국 중 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 1.2, 이탈리아 1.2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이다. 2023년 4분기에는 사상 첫 0.65를 기록했다.
1960년 6.1에서 시작한 이 숫자는 64년 만에 88퍼센트 하락했다. PMC 의학저널에 실린 2025년 연구는 이 현상의 "규모와 속도"가 인류 역사에서 전례가 없다고 명시했다.
아이러니한 역사가 있다. 1960년대 한국 정부는 인구가 너무 많다고 걱정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슬로건으로 산아제한을 독려했다. 그 정책은 대성공을 거뒀다. 너무나 대성공이어서, 이제 그 반대 방향으로 국가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2006년부터 2024년까지 저출산 대응에 약 378조 원을 투입했다. 18년간 매일 570억 원을 쓴 셈이다. 그 결과는 역대 세계 최저 출산율이다.
왜 실패했는가. 예산의 62퍼센트는 군무원 인건비, 관광 활성화, 대학 육성 같은 간접 사업에 편성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가족여가 프로그램 개발" 사업이 저출산 예산으로 잡혀 있었다. 교육부의 프라임(PRIME) 사업 예산도 저출산 예산에 포함됐다. 실제 저출산 직결 예산은 38퍼센트에 불과했다 — 가족지원예산은 GDP 대비 1.56퍼센트로 OECD 평균 2.29퍼센트에 크게 못 미쳤고, OECD 38개국 중 33위였다.
돈이 적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방향이 틀렸다. 정부는 출산율 하락의 원인을 "비용 문제"로 진단하고 현금을 뿌렸다. 실제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 서울 아파트 가격 연소득 대비 25~30배, 학생 75.5퍼센트가 참여하는 사교육비 연 23.4조 원, OECD 최대의 성별 임금격차, 여성 가사노동 54분 대 남성 17분의 극단적 불균형. 돈으로 이 구조를 바꿀 수 없다.
한 MZ세대 청년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내 아이가 노동시장 상층부에 들어가지 못하면 저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세상을 내 아이에게 물려줄 수 없다." 비출산은 이기심이 아니다. 계산이다.
결혼 건수는 1996년 43만 4,900건에서 2022년 19만 1,700건으로 55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한국의 혼외 출산 비율은 약 3퍼센트에 불과해 미국 40퍼센트, 스웨덴 55퍼센트와 대조적이다. 출산이 결혼에 종속되어 있는 구조에서, 결혼이 줄면 출산이 준다. 베이비 보너스 프로그램 연구에 따르면, 지급액의 74퍼센트 이상이 이미 아이를 낳을 계획이었던 부부에게 돌아갔다 — 돈이 결정을 바꾼 것이 아니라 기존 결정에 보상을 준 것이다.
인구 감소는 추상적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군부대가 해체되는 현실이다.
한국 군 병력은 2019년 56만 명에서 2025년 45만 명으로 6년 만에 11만 명 줄었다. 육군 병사만 같은 기간 30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10만 명 이상 감소했다. 2006년 59개였던 사단급 이상 부대 중 17개가 해체됐다.
2024년 2월, 경기 파주의 1사단과 고양의 9사단, 양주의 25사단에서 신병교육대가 문을 닫았다. 마지막 입영일은 1사단 2023년 12월 26일, 9사단 12월 18일, 25사단 12월 19일이었다. 28사단은 2025년 12월 사단 전체가 해체될 예정이다.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간 DMZ를 지킨 부대들이 저출산이라는 적 앞에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국방부가 연간 병력 유지를 위해 필요로 하는 징집 인원은 약 20만 명이다. 현역 판정 기준을 완화해 현역 판정률을 69.8퍼센트에서 86.7퍼센트로 올렸지만 병력 감소를 막지 못했다. 2039년경에는 징집 가능 인원이 18만 명으로 줄어든다. 현재 규모의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 수학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시점이다 — 바로 북한이 드론, AI, 핵 능력을 강화하는 시점에.
10장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보았다. 일본의 인구 절벽은 한국보다 앞서 시작됐지만,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빠르게 같은 위기에 도달하고 있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이 1.0 아래로 내려간 적은 없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저 출산율의 나라다.
소멸하는 마을이 있다. 경북 의성군의 소멸위험지수는 0.093 —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 45퍼센트, 전국 1위. 인구 5만 명 선이 붕괴됐다. 신평면 전체 인구는 814명이다.
1992년부터 학교가 폐교되기 시작해 남은 초등학교 33개 중 전교생 10명 미만이 여섯 곳이다. 의성군은 2024년 6,800만 원 예산을 들여 산부인과 야간 연장 진료 체계를 시범 운영했다 — 매주 화·목요일 오후 6시에서 8시. 이것이 지역이 낼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었다.
전남에서는 전체 22개 시군 중 90.9퍼센트인 20개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소멸고위험 시군은 10년 전 1곳에서 13곳으로 급증했다. 군부대가 떠난 접경지역에서는 군인 가족이 빠져나가면서 양구군, 인제군이 새롭게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다. 인구 감소가 군 축소를 낳고, 군 축소가 다시 인구 감소를 가속하는 연쇄다.
전국 250개 시군구 중 분만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지역이 77곳 — 전체의 30.8퍼센트다. 단 한 곳만 남은 지역이 60곳이다. 절반 이상의 지역이 분만 위기지역이다. 2013년 전국 706곳이었던 분만 가능 의료기관은 2024년 425곳으로 11년간 40퍼센트 감소했다. 수도권 산부인과는 11퍼센트 늘었지만 비수도권은 급감했다. 의성군의 임산부는 안동이나 대구까지 원정 출산을 가야 한다. 태어남조차 어려운 사회가 됐다.
그 빈자리를 외국인 노동자가 메우고 있다. 2024년 기준 E-9 비자 외국인 근로자는 30만 명을 돌파했다. 코로나 이전 연간 5만 6,000명 수준이던 E-9 입국자는 2023년 16만 명으로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배추밭에서 일하는 인력 전원이 태국인이고, 해조류 망을 수리하는 인력 전원이 필리핀인인 풍경이 일상이 됐다. 한 농민은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배추 농사 못 짓죠."
한국의 외국인 거주자 비율은 약 5.3퍼센트(2024년)다. 3장에서 리콴유가 설계한 싱가포르의 외국인 비율 30퍼센트와 비교하면, 한국은 이주 노동에 의존하면서도 이민 시스템을 정비하지 못한 나라다.
K-STAR 비자, 탑-티어 비자 같은 고숙련 인재 유치 프로그램이 2025년부터 시작됐다. 탑-티어 비자는 AI, 로봇, 양자기술, 우주항공 등 8개 첨단 산업 분야를 대상으로 하며, 글로벌 100대 대학 석·박사 학위와 글로벌 기업 경력을 요구한다. 첫 달 수용 인원은 20명이었다. 2030년까지 350명으로 확대 계획이다. 싱가포르의 ONE Pass와 비교하면 규모도, 속도도 다른 세계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직시해야 한다. 출산율 0.72의 나라에서 인구는 법으로 고칠 수 없다. 378조 원이 증명했다. 그러나 인재 파이프라인은 국경을 열어 보전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것을 "이민 정책"이라 부르기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민 확대에 대한 국민 여론은 찬성 30퍼센트, 반대 55퍼센트. 단일 민족 서사가 여전히 강하다. 그래서 한국의 이민 확대는 — 일본이 그랬듯 — "이민"이라는 단어 없이 진행돼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선례가 있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이민국가를 표방한 적이 없다. 그러나 2019년 특정기능 비자를 도입한 이후 외국인 노동자가 급증해 2024년 처음으로 200만 명을 넘겼다. "이민"이라는 정치적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사실상의 이민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독일은 더 직접적이었다. 2023년 "찬센카르테(Chancenkarte)" — 기회카드 — 를 도입해 학력, 경력, 어학 능력을 점수화하고, 일정 점수 이상이면 구직 비자를 발급했다. 캐나다의 익스프레스 엔트리(Express Entry) 시스템은 이미 20년 넘게 작동하며, 매년 수십만 명의 영주권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단편적 비자 프로그램이 아니라 체계적 인재 유입 경로다. 첫 번째 경로는 고숙련 트랙이다. 반도체, AI, 바이오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연간 3,000~5,000명 규모의 신속 비자. 현재 탑-티어 비자의 350명 계획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한 곳의 외국인 채용 수요에도 못 미친다. 두 번째는 중숙련 트랙이다. E-9 비자의 단기 순환 구조를 벗어나, 제조·돌봄·서비스 분야에서 3~5년 체류 후 숙련도 검증을 거쳐 영주권으로 이어지는 경로다. 배추밭의 태국인 노동자가 10년 뒤에도 "임시"인 현재 구조는 노동력 유입과 사회 통합 양쪽 모두에서 실패하고 있다. 세 번째는 지역정착 트랙이다. 의성군 같은 소멸위험지역에 유학생과 기능인력의 정주를 유도하는 비자. 한국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은 연 20만 명을 넘었지만, 졸업 후 한국에 정착하는 비율은 30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70퍼센트는 교육만 받고 떠난다.
3장에서 리콴유가 싱가포르를 다인종 사회로 설계한 것을 보았다. 싱가포르도 처음부터 이민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인종 폭동을 겪은 후 HDB 혼합 할당제 — 공공주택 단지마다 인종 비율을 강제하는 제도 — 로 공존의 인프라를 먼저 깔았다. 한국이 싱가포르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외국인 비율이 5.3퍼센트에서 8퍼센트, 10퍼센트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사회 통합의 제도적 기반을 미리 설계하지 않으면 유럽의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인구는 법으로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줄어드는 인구 위에서 불가결 노드를 유지하려면, 파이프라인은 국경 밖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4. 5년마다 리셋되는 나라
제도가 느린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구조를 보면 답이 보인다.
한국 헌법 제70조는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규정한다. 민주화 이후 장기집권 재현을 막기 위해 설계된 조항이다. 그러나 이 구조는 외교와 산업 전략에 5년 주기의 단절을 만들어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분석은 직설적이다 — "단임 5년의 헌법적 제약은 한국 대통령 임기에 뚜렷한 단계를 만들어내며, 3년차 이후부터는 후계자 선출에 집중하게 되면서 정책 수행에 현저한 차질이 생긴다. 단임으로 제한되어 있음에도 한국 지도자들은 취임 직후부터 레임덕 위험에 처한다."
단임제만이 원인은 아니다. 국회의 상임위원회 구조는 부처 이기주의와 맞물려 부처 간 칸막이를 심화시키고, 공무원 순환보직제는 정책 전문성의 축적을 막는다. 이 모든 요소가 정책 지속성을 깎는다. 그러나 5년이라는 시한이 가장 가시적인 천장이다 — 장기 전략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다음 정부에 미루는 관성이 여기서 나온다.
외교 노선을 보면 이 단절이 선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택했다 — 미국 중심의 질서를 지지하면서 중국과의 협력도 유지하는 노선이었다. 사드 3불 정책을 밝히고, 쿼드(Quad) 참여를 유보했다.
윤석열 정부는 180도 전환해 "가치 외교"를 표방했다.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선언, CHIP4 참여 공식화, 한일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 전환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라는 대가를 수반했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20퍼센트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진영 선택의 경제적 비용은 현실적 압박이었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는 다시 "실용 외교"로 방향을 돌려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복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세 정부, 세 노선, 8년. 각 정부가 전임 정부의 외교 유산을 부정하거나 해체하는 방식으로 출발한다. 이것은 정책 조정이 아니다. 정치적 차별화의 산물이다.
포린 어페어스는 이 현상의 뿌리를 짚는다 — "권력이 대통령직에 고도로 집중되어 있고, 깊어지는 양극화가 그 권력을 둘러싼 더 치열한 싸움을 낳고 있다. 디지털 양극화가 공론장을 파편화시켜 초당적 합의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분석이 핵심을 찌른다 —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념적 진자 운동을 멈추고,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작동하는 국가 전략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외교 파트너들은 한국을 예측 가능한 행위자로 인식하기 어렵다. 5년마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 사이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면, 어느 파트너도 장기 약정에 확신을 갖기 어렵다. "사이"에 서려면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신뢰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구조는 한쪽을 얻으면 반드시 다른 쪽을 잃는 구조다.
2024년 12월 3일은 이 구조적 취약성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6시간 만에 국회가 해제를 결의했다. 한국일보는 "70년 공든 외교 탑이 6시간에 무너졌다"고 표현했다.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 방한이 중단됐고, 스웨덴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 방한이 취소됐으며, 미국·일본 국방장관급 일정이 무산됐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탄핵을 인용하면서 결정문에 이렇게 명시했다 — "국가긴급권의 남용은 대외신인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정치적 불확실성의 확대로 인한 외교적·경제적 불이익을 초래했다."
이 탄핵 정국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정확히 겹쳤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주체가 부재했고, 캠프 데이비드 정신의 유지 여부가 불투명해졌으며, 북한 핵 위협에 대한 확장억제 협의가 차질을 빚었다. 스팀슨센터의 분석은 이렇다 — "리더십 공백은 중국의 인도태평양 군사적 주장과 북한 미사일 위협이 한국의 안보 협력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만드는 시점에 발생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같은 시기 "한국의 권력 진공 속에서 외교 정책 불확실성이 팽배하다"고 진단했다.
2장에서 핀란드의 NATO 가입을 보았다. 75년간 유지된 군사적 중립을 버리고 NATO에 가입하는 역사적 대전환을 핀란드 의회는 188 대 8로 승인했다. 전체의 95퍼센트 이상이 찬성한 초당적 합의였다. 핀란드에서 외교 노선은 정치적 정체성의 일부가 아니다. 국가 생존의 문제 앞에서 역사적으로 싸워온 진영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
그보다 앞선 냉전 시기에도 핀란드는 케코넨 대통령의 "적극적 중립" 독트린 아래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양쪽과 무역하며 독립을 유지했다. 1975년 헬싱키 최종의정서를 주최하며 동서 긴장 완화에 기여한 것은 그 일관성의 산물이었다.
한국에서 대북 정책, 한미동맹의 범위, 대중 관계의 무게중심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정치적 정체성 그 자체다. "사이"에 서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 사이클을 초월한 컨센서스가 필요하다.
3장에서 싱가포르의 인민행동당이 정치적 연속성으로 전략의 일관성을 보장하는 것을 보았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택했고, 그 선택은 옳다. 그러나 민주주의 안에서도 전략적 컨센서스는 가능하다. 핀란드가 그것을 증명했다. 한국은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
5. 두 개의 시계
이 장에서 두 가지 위기를 보았다. 제도가 느린 위기와 사람이 줄어드는 위기. 이 둘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악화시킨다.
인구가 줄면 노동력이 줄고, 노동력이 줄면 성장이 둔화하며, 성장이 둔화하면 분배 갈등이 격화한다. 분배 갈등이 격화하면 정치적 합의는 더 어려워지고, 합의가 어려워지면 제도 개혁은 더 느려진다. 느린 제도는 AI 전환을 지연시키고, AI 전환이 지연되면 인구 감소의 충격을 흡수할 수 없다. 악순환이다.
핵심 공식을 적용하면, 한국은 공식의 세 번째 단계에 서 있다. 11장에서 기술 혁신과 자본 집중을 보았다 — HBM, 배터리, 재벌의 수백조 원 투자. 이제 세 번째 단계 — 사회적 불안 — 의 징후가 선명하다. 규제는 혁신을 가두고, 인구는 줄고, 군대는 축소되고, 마을은 소멸하며, 5년마다 국가 전략이 리셋된다. 자본 집중에서 사회 불안으로의 전환이 진행 중이다. 공식의 네 번째 단계 — 제도 재설계 — 는 아직 오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다. 인구 감소의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다. 통계청 중위 추계에 따르면 2050년 한국 인구는 3,600만에서 4,000만 명으로 줄어든다. 65세 이상이 전체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 노인부양비는 2025년 29.3에서 2050년 77.3으로 2.6배 이상 증가한다. 205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의존인구 97.5명을 부양하는 구조가 된다 — 사실상 일하는 사람 한 명이 일하지 않는 사람 한 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돌봄 인력이 사라진 자리를 AI 로봇이 메우기 시작했다. 독거노인 1,230명에게 보급된 AI 반려로봇 효돌이는 우울감과 고립감 감소 효과를 입증했다. 투입 예산 대비 3.7배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보여줬다. 로봇이 손자 역할을 대신하는 사회. 번영의 역설이다.
AI 전환의 시계는 이제 막 빨라지기 시작했다. AI가 생산성을 충분히 높인다면 총 GDP는 줄어들어도 1인당 GDP는 성장할 수 있다. 인구가 적으면 정책 실험이 더 빠르고 사회 변화가 더 유연할 수도 있다. 인구 950만의 이스라엘이 세계 첨단기술 생태계의 핵심 허브가 된 것이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미 반도체 설계에서 세계 1위, 5G 보급률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나라다. AI 전환의 물적 토대는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려면 제도가 따라와야 한다. AI 기본법에 3년 반, 원격의료에 20년, 반도체 특별법에서 핵심 조항 삭제, 합법인 서비스를 16일 만에 불법으로 만드는 국회 — 이 속도로는 AI 전환의 시계가 인구 감소의 시계를 앞지를 수 없다.
기술 경쟁에서 속도는 생존의 문제다. 국회법상 임기 만료 시 미처리 법안이 자동 폐기되는 메커니즘은 반도체, AI, 에너지 관련 법안들이 4년 주기로 원점 회귀한다는 뜻이다. 기술 산업의 투자 사이클과 입법 사이클이 구조적으로 어긋나 있다.
한국이 이 전환을 충분히 빠르게 이루어낸다면 인구 감소는 관리 가능한 도전이 된다. 전환이 지지부진한 동안 인구가 급감한다면, 그것은 실제로 치명적 위기가 된다.
두 개의 시계가 경주하고 있다. 제도 속도와 인구 속도의 이중 위기. 이 경주에서 어느 쪽이 이기느냐가 한국의 21세기를 결정한다. 칩과 배터리가 한국의 방패라면 — 그리고 11장에서 그것을 확인했다면 — 그 방패를 들고 있는 팔이 줄어들고 있고, 방패를 더 크게 만들 규칙을 바꾸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4권에서 제도의 속도가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고 했다. 한국에서 그 명제는 이중으로 작동한다. 제도가 느리면 기술 전환이 늦고, 기술 전환이 늦으면 인구 감소의 충격을 막을 수 없다. 제도 속도는 한국에게 생존의 문제다.
12장 끝 — 리서치 소스: R-11, R-09, GA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