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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 — 사이의 전략

13장: K의 힘, 재벌의 그림자


1. 치아 여덟 개의 무게

2024년 12월 26일, 넷플릭스는 전 세계 190개국에 오징어 게임 시즌2를 동시 공개했다. 공개 4일 만에 6,800만 뷰. 넷플릭스 TV 시리즈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였다. 이전 기록 보유자였던 웬즈데이의 5,010만 뷰를 하루 만에 밀어냈다.

11일이 지나자 숫자는 1억 2,620만 뷰에 도달했다. 93개국에서 동시 1위. 2024년 하반기 넷플릭스 전체 시리즈 시청 시간 1위 — 6억 1,990만 시간.

황동혁 감독은 이 순간을 13년 동안 기다렸다.

2008년, 그는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가족의 보험을 팔고 돈을 빌렸다. 머릿속에는 어린 시절 골목놀이를 목숨 걸고 하는 성인들의 이야기가 맴돌았다.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와 방송사를 찾아다녔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너무 잔인하다." "비현실적이다." 거절은 반복됐고, 시나리오는 서랍 속에 묻혔다. 2019년,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투자를 본격화하면서 그 서랍이 다시 열렸다. 촬영이 시작됐다. 황동혁은 촬영 기간 동안 스트레스로 치아 여덟 개를 잃었다.

2021년 9월 17일 전 세계 동시 공개. 시즌1의 결과는 전설이 됐다. 제작비 2,140만 달러(약 280억 원) — 회당 238만 달러(약 31억 원)에 불과했다. 넷플릭스가 추산한 콘텐츠 가치 9억 달러(약 1조 2,000억 원) 이상. 비용 대비 42배. 누적 시청자 3억 3,000만 명, 시청 시간 28억 시간 이상.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된 시리즈.

그러나 황동혁은 시즌1의 성공에서 별도의 추가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시즌2 제작에 동의한 것은 "성공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한 협상 카드"였다고. 시즌2의 제작비는 약 1,000억 원(약 6,860만 달러)으로 뛰었다. 시즌1의 세 배가 넘는 금액이다. 그 차이가 황동혁의 협상력 — 그리고 K-컬처의 시장 가치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를 숫자로 보여준다.

1년 전인 2020년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최초의 비영어권 작품상을 받았다. 제작비 155억 원(약 1,300만 달러), 전 세계 흥행 2억 6,300만 달러(약 3,420억 원). 봉준호는 수상 소감에서 말했다.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 그 1인치를 넘은 뒤 넷플릭스가 25억 달러(약 3조 2,500억 원)를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결정했다. 기생충이 토양을 만들었고, 오징어 게임이 그 토양에서 자랐다.

13년의 거절, 치아 여덟 개의 대가, 그리고 인류 역대 1위. 이 궤적에는 K-컬처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와, 그 구조가 품고 있는 모순이 동시에 담겨 있다. 극도의 집중, 극도의 훈련, 극도의 인내. 그리고 그 끝에서 가치를 수취하는 사람과 수취하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격차.


2. 공장이 만든 소프트 파워

K-컬처는 공장에서 나온다. 낭만적 표현이 아니다. 산업적 사실이다.

서울 강남구, SM엔터테인먼트 지하 연습실. 열여섯 살 연습생의 하루는 댄스 8시간, 보컬 2시간, 외국어 수업 1시간, 체력 훈련 1시간으로 채워진다. 12시간 이상의 일과가 끝나면 기숙사로 돌아가 일지를 쓴다. 데뷔할 수 있을지, 탈락할지 모른 채.

평균 훈련 기간 3~5년. 대형 기획사는 5~8년도 드물지 않다. 기획사가 연습생 1인당 부담하는 월평균 비용은 약 160만 원. JYP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개발 비용은 2023년 8억 5,000만 원에서 2024년 11억 2,000만 원으로 30퍼센트 늘었다.

이 시스템의 탈락률은 잔인하다. 2023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연간 자진 퇴소율은 34.4퍼센트. 전체 연습생 중 실제 데뷔에 도달하는 비율은 10~20퍼센트다. 2020년 1,895명이던 연습생 수는 2022년 1,170명으로 38.3퍼센트 감소했다. Z세대의 가치관 변화, 정신건강 문제 부각,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이 공급 자체를 줄이고 있다.

이 공장의 산출물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2023년 4월 15일, 캘리포니아주 인디오, 코첼라 밸리. 블랙핑크가 메인 스테이지에 올랐다. 코첼라 24년 역사상 최초의 한국 아티스트 헤드라이너, 최초의 아시안 헤드라이너, 최초의 여성 그룹 헤드라이너. 2019년 서브 스테이지에서 공연한 지 4년 만이었다. 서브에서 헤드라이너로의 이동. 그것은 K-팝이 세계 대중음악의 마이너에서 메인스트림으로 건너간 가시적 증거였다.

숫자가 이 이동을 확인해준다. 2023년 한국 문화콘텐츠 수출액 약 131억 달러(약 17조 5,000억 원). 2015년 50억 달러(약 6조 5,000억 원)에서 8년 만에 2.6배. 게임이 82억 달러(약 10조 7,000억 원)로 최대 단일 범주이고, 방송과 드라마가 15억 달러(약 2조 원), 음악이 9억 달러(약 1조 2,000억 원), 웹툰이 8억 달러(약 1조 400억 원)다. 대부분이 K-팝만 주목하지만, 콘텐츠 수출의 실제 최대 범주는 게임이다. 크래프톤은 2024년 매출 2조 1,000억 원의 95퍼센트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 사실상 글로벌 기업이다. 넥슨은 한국 게임사 최초로 연매출 4조 원을 돌파했다.

빅4 엔터 기획사의 합산 매출은 4조 원(약 30억 달러)에 달했다. 하이브 단독으로 2조 2,000억 원 — K-팝 기획사 최초의 2조 원 돌파였다. 그러나 그 하이브도 취약점을 드러냈다. BTS 전 멤버가 군에 입대하자 2024년 영업이익이 38퍼센트 감소했다. K-팝 산업의 구조적 리스크 — 특정 아이콘에 대한 과도한 의존 — 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순간이었다.

넷플릭스는 2023~2025년 한국 콘텐츠에 25억 달러(약 3조 3,0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1 이후 한국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창출한 글로벌 구독료 수익은 34억 달러(약 4조 4,000억 원). 비영어권 콘텐츠 시청 시간에서 한국은 8.71퍼센트로 1위다.

웹툰도 국경을 지웠다. 뉴질랜드 작가 레이첼 스마이스가 네이버웹툰 캔버스 플랫폼에 올린 '로어 올림푸스'는 2022년 미국 3대 만화상 — 아이스너, 하비, 링고 — 을 동시 석권했다. 누적 조회수 18억 회.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이 확정됐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 플랫폼 위에서 뉴질랜드 작가가 그린 그리스 신화다. 네이버웹툰은 2024년 글로벌 MAU 1억 7,000만 명, 북미 웹툰 시장 점유율 70.5퍼센트. K-웹툰은 콘텐츠 수출이 아니라 플랫폼 수출이다.

이 콘텐츠 수출은 소비재를 끌고 간다. 2024년, 미국 텍사스주 월마트에서 농심 신라면이 아시안 식품 코너에서 일반 식품 코너로 자리를 옮겼다. 전국 4,692개 월마트 전점 입점. 미국 라면 시장 점유율 25.4퍼센트로 2위. 같은 해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북미 냉동 만두 시장 1위를 굳혔다 — 2위 브랜드와 세 배 이상의 격차. 해외 식품 매출 5조 5,800억 원이 처음으로 국내 매출을 넘어섰다. 학술 연구가 입증한 "문화 상품 수출 1퍼센트 증가 시 소비재 수출 0.136퍼센트 증가" 효과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3장에서 싱가포르가 인적 자본의 재생산을 불가결성의 네 번째 조건으로 만든 것을 보았다. K-컬처의 트레이니 시스템은 인적 자본 재생산의 극단적 형태다. 연습생 1,170명이라는 파이프라인에서 34.4퍼센트가 매년 탈락하고, 살아남은 10~20퍼센트가 세계를 대상으로 경쟁한다. 이 구조가 오징어 게임과 블랙핑크와 네이버웹툰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소프트 파워에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 숏폼 드라마 시장은 2024년 504억 위안을 돌파했다. K-드라마 국제 팬의 약 30퍼센트가 C-드라마도 정기 시청한다. 한국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중국어 드라마가 3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11장에서 삼성 파운드리 수율 문제를 보았다. 파운드리가 TSMC에 대체 가능했던 것처럼, K-컬처도 C-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체 가능하다. 반도체는 대체에 수십 년과 수천억 달러가 필요하다. 드라마는 시즌 하나면 충분하다.

한한령이 이 취약성을 증명했다.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은 한류를 인질로 삼았다. 경제 손실 22조 원(153억 달러). 중국 관광객 48.3퍼센트 감소. 사실상 9~10년간의 봉쇄. 소프트 파워가 레버리지가 아니라 인질이 된 전형적 사례다.

일본의 쿨 재팬 전략이 반면교사다. 경제산업성이 2010년대 추진한 이 국가 프로젝트는 5년 내 100억 엔(약 8,890만 달러)의 세전 손실을 냈다. 정부가 콘텐츠를 직접 기획하고 관료가 방향을 정했다. 성공적인 문화 현상은 아래에서 자생적으로 올라온다는 사실을 일본은 간과했다. 한국은 아직 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있다 — 정부는 인프라를 깔고, 창작은 민간에 맡기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K-컬처가 외교 도구로 직접 동원되는 순간, 일본과 같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K-컬처는 대만의 실리콘 방패가 아니다. 4장에서 TSMC의 실리콘 실드를 보았다 — 대체 불가능성이 만든 지정학적 억지력. K-컬처는 그런 방패가 되지 못한다. 친밀감과 호감을 만드는 "명성 자산"이지, 위기 상황에서 외부 압력을 억지하는 하드 레버리지가 아니다.


3. 사과하는 재벌

2024년 10월 8일, 삼성전자 DS부문장 전영현 부회장이 이례적인 사과 메시지를 발송했다. 임직원, 투자자, 고객에게 보낸 공식 메시지였다.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고객과 투자자, 그리고 임직원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한국 최대 기업의 반도체 수장이 공개적으로 실적 부진을 사과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재벌 문화의 핵심은 무결성의 신화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그 신화의 균열이다. 삼성전자 한 기업이 2024년 한국 전체 수출의 약 21퍼센트를 담당한다. 삼성의 성패는 곧 한국 경제의 성패다. 그 기업의 반도체 수장이 사과한다는 것의 무게는, 단순한 실적 부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과의 배경에는 HBM 경쟁에서의 탈락이 있었다. 삼성전자 HBM3E는 2024년 내내 엔비디아 품질 인증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전력 수용 문제였다. 같은 시기 SK하이닉스는 HBM3E를 엔비디아 H100과 H200에 독점 공급하고 있었다. 2024년 6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공개석상에서 "삼성의 테스트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월에도 여전히 공급 승인은 나지 않았다.

파운드리 상황은 더 심각했다. 2022년 세계 최초로 3나노 GAA 공정 양산을 선언했지만, 수율 50퍼센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TSMC의 3나노 수율은 같은 시기 90퍼센트를 넘어섰다. 격차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 신뢰의 붕괴였다.

구글은 Tensor 칩 5세대부터 TSMC로 이동했다. 퀄컴은 차세대 플래그십 칩을 TSMC 3나노 공정에 독점 발주했다. 삼성전자 갤럭시 S25는 자사 엑시노스 대신 TSMC에서 만든 퀄컴 칩을 탑재하게 됐다. 자사 스마트폰에 자사 칩을 넣지 못하는 상황. 파운드리 사업부는 2024년 연간 4~5조 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됐다. 생산라인의 50퍼센트 이상이 중단됐다.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은 2024년 12월 한 포럼에서 직격탄을 날렸다. "삼성과 인텔이 파운드리에서 실패한 근본 이유는 이해충돌 구조다. 자신의 제품을 만드는 동시에 경쟁자의 제품도 만들어야 한다." 4장에서 모리스 창이 56세에 TSMC를 세운 것을 보았다. 그가 설계한 퓨어플레이 파운드리 —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 구조 — 가 삼성이 넘지 못하는 벽이다.

전영현의 사과 이후 삼성은 메모리와 파운드리의 제조 조직을 다시 분리했다. 3년 전 통합했던 조직을 되돌린 것이다. 통합이 실패했음을 인정한 셈이었다. DS부문 내 AI센터가 신설됐고, 경영 임원 중심에서 기술 임원 중심으로 인사 기준이 재설정됐다. 파운드리 사업부장도 교체됐다.

조용한 구조조정도 시작됐다. 2024년 가을, DS부문은 고연차 직원 대상 희망퇴직 방안을 검토했다. 공식 입장은 "사실무근"이었지만, 업계는 알고 있었다. 삼성전자 내 40대 이상 직원 수가 20대 이하를 추월한 상태였다. 퇴직금 외 4개월치 급여 약 4억 원 조건이 거론됐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조직은 1990년대에 입사한 공정 전문가들의 경험만으로는 구성할 수 없었다. 채용 공고의 우대 역량은 AI와 머신러닝,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으로 바뀌고 있었다. 반도체 제국의 인력 구조가 안쪽에서부터 조용히 재편되고 있었다.

같은 재벌 구조에서 SK하이닉스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2024년,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에게 "조금만 더 HBM을 달라"고 매달리는 구도가 형성됐다. 업계는 이를 "슈퍼 을"이라 불렀다. 부품 납품업체로 늘 '을'의 위치에 있던 SK하이닉스가, AI 붐의 가장 좁은 병목에서 협상 우위를 가진 것이다. 11장에서 본 SK하이닉스의 압도적 HBM 지배력 — 그 시장 지위가 숫자로 증명된 해였다. 2024년 매출 66.19조 원, 영업이익 23.47조 원 — 모두 창사 이래 최고 기록이다. 전년 대비 매출 성장 102퍼센트. 7장에서 ASML이 EUV 노광장비에서 세계 독점적 위치를 만든 것을 보았다. "단 하나의 기업이 국가의 불가결성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SK하이닉스는 HBM으로 가장 근접한 답을 제시했다.

차이는 집중의 방향이었다. SK하이닉스는 2020~2022년 HBM 기술에 선제 투자했다. 삼성이 HBM, 파운드리, AI 가속기, 온디바이스 AI를 동시에 추구하는 동안, SK하이닉스는 HBM이라는 한 점에 자원을 집중했다. 재벌식 '빅 베팅'이 한쪽에서는 맞아떨어졌고, 다른 쪽에서는 빗나갔다. 구조가 같아도 결과는 갈린다. 집중의 방향이 운명을 나눈다.

현대차그룹은 또 다른 방향을 택했다. 엔비디아와 5만 GPU 규모의 AI 팩토리를 공동 구축하고, 보스턴다이나믹스를 통해 로보틱스 AI를 내재화했다. 2026~2030년 국내 투자 125.2조 원 중 70퍼센트 이상을 AI, 로봇, 자율주행에 배정했다. 9장에서 UAE가 무바달라와 ADIA로 미래 기술 지분을 선취하는 것을 보았다. 삼성의 450조 원 투자 계획과 현대차의 125.2조 원 배정은 재벌이 사실상 준국부펀드 역할을 하는 한국 특유의 구조를 보여준다 — 국가가 자본을 직접 운용하는 대신, 재벌이 그 역할을 대행한다. 같은 재벌이라도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AI 시대의 위치가 달라진다.


4. 떠나는 자들, 남는 자들

한국의 AI 인재가 떠나고 있다.

2024년 기준, 한국 AI 전문가 순유출은 인구 1만 명당 마이너스 0.36명. OECD 38개국 중 35위다. 룩셈부르크가 플러스 8.92명, 독일이 플러스 2.13명, 미국이 플러스 1.07명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AI 인재의 순수출국이다. AI 학부 졸업생의 38.6퍼센트가 해외 대학원으로 진학한다. 미국 내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은 2010년 9,000명에서 2021년 18,000명으로 11년 만에 두 배가 됐다.

돈도 이유의 일부다. AI 임금 프리미엄 — AI 비전공 대비 초과 임금 — 이 한국은 6퍼센트다. 미국 25퍼센트, 캐나다 18퍼센트, 영국과 프랑스 15퍼센트. 서울의 AI 분야 교수 연봉은 약 1억 원. 해외 오퍼는 3억 5,000만 원 이상이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2025년 AI 최상위 연구자에게 최대 1억 달러(약 1,370억 원)의 계약 보너스를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연봉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다.

한국 AI 연구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반복하는 키워드는 세 가지다. 연구의 자유 — "국내에서는 논문 하나 내려면 팀장 허락이 필요하다." 위계 문화 — "연공서열 구조에서 아이디어는 나이 순으로 채택된다." 인프라 — "A100 클러스터가 필요한 실험에 예산 신청부터 반년이 걸린다."

유능할수록 떠난다. 2040년까지 한국 연구인력은 20퍼센트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이것이 한국 AI 인재 유출의 구조다.

떠나지 않은 자들은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네이버는 2023년 8월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했다. 2,040억 파라미터. ChatGPT(GPT-3)의 1,750억 파라미터를 넘는 규모였다. 한국어 데이터 학습량은 ChatGPT 대비 6,500배. 5년간 AI 기술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에서 서버 60만 대 이상이 돌아간다.

기술은 만들었다. 그러나 시장이 따라오지 않았다. 세계에서 한국어를 가장 잘 하는 AI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ChatGPT를 쓰고 있었다. 업계의 평가는 냉정했다 — "기술은 있는데 킬러 앱이 없다." 한국어 특화라는 강점은 곧 한국어권 외에서는 경쟁력이 약하다는 약점의 뒷면이다.

네이버는 "소버린 AI" 전략으로 전환했다. "한국의 언어, 문화, 법, 제도를 이해하는 AI는 외국 기업이 만들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다."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과 현지어 특화 AI 모델 협력을 추진하며, 소버린 AI 개념 자체를 수출 상품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한국어에 최적화된 AI가 한국어권 바깥에서는 약하다는 한계를, 역으로 "각 나라가 자국어 AI를 가져야 한다"는 명분으로 뒤집으려는 전략이다.

AI 스타트업들의 생존 방식은 또 달랐다. 2024년 6월, 한국 최대 생성형 AI 스타트업으로 불리던 뤼튼이 대규모 권고사직을 단행했다. 금요일 오전, 대상자들만 사무실에 출근하게 해 당일 통보. 같은 해 업스테이지는 아마존의 전략적 투자 7,400만 달러(약 960억 원)를 유치하며 다른 방향에서 생존을 모색했다. 한쪽은 인원을 줄였고, 한쪽은 글로벌 파트너를 잡았다. 업스테이지 김성훈 대표의 전략은 명확했다. "네이버, 카카오와 정면으로 싸우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보지 않는 세그먼트를 먼저 장악하고, 거기서 글로벌로 나간다."

재벌이 아직 안 왔거나, 올 생각이 없는 영역. 그 틈새가 한국 AI 스타트업의 생존 공간이다. 2024년 한국 벤처투자 총액은 11조 9,000억 원. AI 분야 투자는 전년 대비 75.1퍼센트 급증했다. 리벨리온은 AI 반도체(NPU)에 집중해 2억 5,300만 달러(약 3,290억 원) 시리즈 C를 유치했다 — 한국 AI 하드웨어 분야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글로벌 민간 AI 투자에서 한국의 순위는 9위(13.9억 달러, 약 1조 8,000억 원)에 머문다. 규모의 격차가 벌어져 있다.

12장에서 AI기본법이 3.5년간 지체된 것을 보았다. 규제의 경직이 AI 전환을 늦추는 동안, 스타트업은 재벌의 그림자와 규제의 공백 사이에서 길을 찾아야 했다.

한국의 유니콘은 13개다. 인구 5,200만 명, GDP가 이스라엘의 약 7배. 이스라엘의 유니콘은 23개다. 인구 940만 명. 이스라엘의 8200부대는 매년 약 1,000명의 청년에게 사이버전과 AI 훈련을 시키고, 그 출신자들이 이스라엘 사이버보안 기업 창업자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한국의 의무 군복무는 18~21개월의 경력 공백이다. 제대 후 목표는 삼성, SK, 현대 취직이다. 군복무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가 되느냐, 취업 공백기가 되느냐. 제도 설계의 문제다.

재벌 일자리는 전체의 약 1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고학력 청년들은 그 10퍼센트를 위해 수년간 '취준'을 반복한다. 2024년 설문에서 중소기업 취업 의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주관적 규범' — 사회적 시선이었다. 개인의 태도보다 "남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가 더 크게 작용한다. 삼성전자의 '5년간 6만 명 채용 계획'이 뉴스가 되는 사회 구조 자체가, 재벌 의존성의 증거다.

세계가 AI 스타트업을 창업할 20대들이 재벌 취직 시험을 준비하며 2~3년을 보내는 동안, 이스라엘과 미국의 동년배들은 이미 스타트업을 시리즈 A까지 성장시킨다. 중소기업 평균 임금이 재벌 대기업의 63퍼센트 수준인 구조에서, 창업이라는 선택지는 경제적 합리성을 갖기 어렵다. 이것이 한국 AI 생태계의 근본적 병목이다.


5. 집중이라는 양날의 검

K-컬처와 재벌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극도의 집중, 체계적 훈련, 중앙 통제형 의사결정. K-팝 트레이니 시스템은 연습생을 5~8년간 갈아 넣어 글로벌 스타를 만든다. 재벌은 수십 년간 자본을 집중 투입해 세계적 제조 기업을 만들었다. 삼성전자의 2024년 R&D 투자 241억 달러(약 35조 원)는 글로벌 기업 중 2위 —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많다. 상위 4대 재벌의 매출이 GDP의 40.8퍼센트를 차지하는 집중도는 세계에 유례가 없다.

이 집중이 AI 시대에는 자산인가, 부채인가.

답은 "둘 다, 동시에"다.

SK하이닉스가 HBM에 집중 투자해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자가 된 것은 집중이 자산으로 작동한 사례다. 삼성이 HBM, 파운드리, AI 가속기, 온디바이스 AI를 동시에 추구하다 타이밍을 놓친 것은 집중이 분산되면서 부채가 된 사례다. 같은 재벌 구조, 같은 오너 경영, 같은 수직 통합. 집중의 방향에 따라 결과가 정반대로 갈린다.

K-팝 트레이니의 연간 탈락률 34.4퍼센트. 한국 AI 스타트업의 생존 전쟁. 이 두 숫자 사이에는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 극소수의 생존자가 세계적 성공을 거두고, 나머지는 시스템에서 퇴장한다. K-팝 연습생 1,170명 중 데뷔하는 10~20퍼센트와, 재벌의 그림자 아래에서 틈새를 찾아 생존하는 AI 스타트업들. 피라미드의 꼭대기는 화려하지만, 피라미드 자체는 바닥을 깎아 세워진다.

재벌의 수직 통합은 AI 하드웨어에서 압도적이다. 11장에서 본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 삼성과 SK하이닉스를 합치면 DRAM과 HBM 시장 모두에서 한국이 세계 시장의 지배적 다수를 쥐고 있다.

그러나 AI 소프트웨어와 모델에서는 재벌의 조직 문화 — 오너 중심 의사결정, 실패 불용, 연공서열 — 가 혁신을 가로막는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수천 개의 소규모 실험을 병렬로 실행할 수 있는 분산형 의사결정이다. 재벌의 오너 1인 체제는 이 요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AI는 이 두 세계를 교차시키고 있다. 하이브는 2024년 6월 AI 목소리로만 구성된 가상 팝그룹 신디8(Syndi8)을 출시했다. 자회사 슈퍼톤의 기술이다. 아티스트의 곡을 AI로 6개 언어에 녹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TXT의 컴백 트레일러에 AI 생성 이미지를 사용하자 팬들은 즉각 반발했다. "저급 AI"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K-팝 팬덤이 요구하는 본질은 "진정성" — 아티스트의 피와 땀이다. AI는 생산성을 높이지만, 그 진정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 적어도 아직은.

동시에 AI 번역과 더빙은 K-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을 가속화한다. 글로벌 AI 비디오 더빙 시장은 2024년 3,150만 달러(약 410억 원)에서 2032년 3억 9,700만 달러(약 5,160억 원)로 성장이 예측된다. AI 더빙 콘텐츠의 시청 시간은 78퍼센트 증가하고, 평균 시청 지속 시간은 60퍼센트 늘어난다. 그러나 이 기술은 양날이다. AI 번역이 K-드라마의 언어 장벽을 낮추는 만큼, C-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도 같은 속도로 글로벌화된다. K-컬처의 독점적 이점이었던 글로벌 배포 역량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K-컬처의 소프트 파워와 재벌의 하드 파워. 이 둘은 같은 구조 — 극도의 집중 — 에서 태어났고, 같은 한계를 공유한다. K-컬처는 대체 가능하다. 재벌은 혁신의 다양성에서 열위에 있다. K-팝 트레이니의 파이프라인이 마르고 있듯이, 재벌의 AI 인재 파이프라인도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그러나 집중의 역사가 전부 끝난 것은 아니다. 집중의 대상을 바꾸는 데 성공한 사례가 있다.

하이브의 방시혁은 팬덤을 플랫폼으로 바꿨다. 위버스(Weverse)는 245개국에서 서비스되고, 2025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BTS 한 팀에 매출의 95퍼센트를 의존하던 회사가, BTS의 군 입대 기간에도 매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24년 BTS가 하이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졌다. 한 팀 의존에서 플랫폼 다각화로 — 집중의 대상이 아이돌에서 인프라로 이동한 것이다. BTS 전원이 2025년 6월 전역한 뒤 예정된 82개 공연, 34개 도시의 월드투어는 그 위에 얹히는 보너스다.

네이버웹툰은 한국 콘텐츠를 수출하는 것을 넘어, 전 세계 창작자가 선택하는 플랫폼 자체가 됐다. 웹툰 글로벌 시장은 2025년 108억 5,000만 달러(약 14조 1,000억 원)에서 2031년 602억 5,000만 달러(약 78조 3,000억 원)로 성장이 예측된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그 시장의 67.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카카오의 픽코마는 일본 만화 앱 매출 1위를 기록했고, 연간 거래액이 1,000억 엔을 돌파했다. 한국은 일본 만화 시장에서 한국 플랫폼으로 역공을 가한 것이다.

집중은 한국의 DNA다. K-팝이든 반도체든, 한 가지에 모든 것을 걸고 세계 정상을 찍는 것. 그 DNA가 AI 시대에도 작동하려면, 집중의 대상을 올바르게 선택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HBM에서 올바른 선택을 했다. 삼성 파운드리는 그러지 못했다. K-팝은 글로벌 팬덤을 만들었지만, 그 팬덤이 한한령 앞에서 방패가 되지 못했다.

K의 힘은 집중에서 나온다. 재벌의 그림자도 집중에서 나온다. 힘과 그림자는 같은 광원의 산물이다. 황동혁은 13년을 집중해서 인류 역대 1위 시리즈를 만들었고, 치아 여덟 개를 잃었다. SK하이닉스는 HBM에 집중해서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자가 됐고, 삼성은 여러 곳에 분산해서 양쪽 전선에서 밀렸다. 연습생 1,170명은 탈락률 34.4퍼센트를 견디며 세계를 향해 춤을 추고, AI 연구자들은 6퍼센트의 임금 프리미엄 앞에서 실리콘밸리행 비행기를 탄다.

그 광원의 방향을 어디로 돌리느냐가 — 한국이 AI 시대에 사이에서 서는 방식을 결정한다.

K-팝이 증명했듯, 혁신은 자본을 끌어들이고, 자본은 격차를 만들며, 격차는 제도를 시험한다. SM과 YG와 JYP가 체계화한 트레이니 시스템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법을 바꿨다. 그 혁신이 빅4 기획사 합산 4조 원의 자본으로 집결됐다. 그러나 그 집결이 만든 피라미드 구조는 — 연습생 1,170명 중 탈락하는 80~90퍼센트, 한한령 앞에서 인질이 된 소프트 파워, BTS 입대 하나에 영업이익 38퍼센트가 증발하는 취약성 — 이미 제도적 대응을 요구하는 긴장을 만들어냈다.

재벌도 같은 경로를 밟는다. SK하이닉스의 HBM 집중 투자라는 혁신이 자본을 끌어모았고, 4대 재벌 매출이 GDP의 40.8퍼센트로 집중됐다. 그 집중은 AI 인재 유출과 스타트업 생태계 위축이라는 긴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K-팝 연습생 보호 조례가 논의되고 AI 기본법이 통과됐지만, 재벌 지배구조 개혁과 인재 유출 방지책은 여전히 미완이다. 집중의 DNA를 유지하면서 그 방향을 올바르게 재설계하는 것 — 그것이 K-컬처와 재벌이 AI 시대에 남겨야 할 과제다.


13장 끝 — 리서치 소스: R-08, R-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