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30일, 수요일 밤.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타트업이 웹사이트 하나를 열었다. 별다른 발표도, 기자회견도 없었다. 창립자 샘 올트먼은 트위터에 짤막한 글을 올렸다. "ChatGPT를 써보세요." 그게 전부였다.
첫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둘째 날도. 그런데 셋째 날부터 입소문이 번졌다. 변호사가 판례 요약을 시켜봤다. 번역가가 자기 전공 언어를 테스트했다. 프로그래머가 코드를 짜달라고 했다.
결과가 돌아올 때마다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경외와 공포가 동시에.
서울의 한 법률 사무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경력 12년의 법률 리서치 담당자가 퇴근 후 노트북을 열었다. 판례 검색어를 입력했다. 평소 3시간 걸리던 작업이었다. 결과가 30초 만에 돌아왔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인용이 부정확한 곳이 있었다. 그런데 전체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그는 화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의 직업적 자부심의 근거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5일 만에 100만 명이 접속했다 [IAI12-005]. 2개월 만에 1억 명을 넘었다. 인스타그램은 같은 숫자에 도달하는 데 2년 반이 걸렸다. 틱톡은 9개월이 필요했다. UBS 보고서는 이렇게 썼다. "20년간 인터넷을 관찰했지만, 이보다 빠른 소비자 앱 확산을 본 적이 없다."
Y콤비네이터의 폴 그레이엄은 다른 점을 짚었다. "ChatGPT에 대한 반응에서 놀라운 것은 감탄하는 사람의 수만이 아니다. 그들이 누구인가다." 뭔가 근본적으로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글은 내부적으로 "코드 레드"를 선언했다. 20년간 검색 시장을 지배해온 회사가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디 애틀랜틱》은 ChatGPT를 2022년 "올해의 돌파구"로 선정했다. 한 기자의 표현이 정확했다. "일반인이 현대 AI의 힘을 직접 체험한 최초의 순간."
Part 2에서 우리는 기계가 인간의 근육을 대체한 150년을 추적했다. 증기기관에서 공장 시스템으로, 수직공의 몰락에서 사회 재설계까지. Ch.11은 영국이 패권을 얻고 잃는 과정으로 끝났다. "1차 산업혁명이 근육을 대체했다면, 다음 폭발은 무엇을 대체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기면서.
이제 Part 3이 시작된다. 두 시대의 경험을 안고, 세 번째 시대로 들어간다. 로마의 도로와 콘크리트, 영국의 증기기관과 면직물 이후의 세계다.
이번에 대체되는 것은 근육이 아니다. 인지다. 생각하는 능력, 분석하는 능력, 판단하는 능력. 인간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영역이다.
1. 트랜스포머 — 인지의 증기기관
2017년, 구글 브레인의 연구자 8명이 한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은 "Attention Is All You Need." 어텐션이면 충분하다. 이 논문이 제안한 아키텍처가 트랜스포머(Transformer)다 [IAI12-100]. 2025년 기준, 이 논문의 인용 횟수는 17만 3,000회를 넘었다 [IAI12-001]. 21세기에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중 하나다.
트랜스포머가 한 일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다음 단어를 예측하라." 문장에서 앞의 단어들을 보고, 뒤에 올 단어를 맞추는 것. 이것이 전부다. 충분히 큰 규모로 실행하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Ch.7에서 우리는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보았다.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기계. 원리 자체는 간단했다. 물을 끓이고, 증기로 피스톤을 밀어라. 트랜스포머도 마찬가지다. 텍스트 데이터를 예측 능력으로 전환한다.
증기기관이 면직물, 채광, 운송, 제철로 확장되었듯이 트랜스포머도 퍼져나갔다. 2020년 이후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 음성, 영상, 로봇공학으로 확장되었다. DALL-E(2021년)가 텍스트에서 이미지를 생성했다. Sora(2024년)가 텍스트에서 동영상을 만들었다. 하나의 아키텍처가 인지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다.
차이는 규모에서 벌어진다. 트랜스포머 이전에 AI 연구는 일종의 연금술이었다. 어떤 구조가 더 나은지, 어떤 알고리즘이 작동하는지, 경험적 실험에 의존했다.
2020년, OpenAI의 카플란 등이 이 상황을 바꿨다. "스케일링 법칙(Scaling Laws)"이 발견한 것은 이것이었다. 모델의 성능은 세 변수의 멱법칙(power law)을 따른다. 파라미터 수, 데이터셋 크기, 훈련에 투입된 컴퓨트. 세 변수를 키우면 성능이 올라간다. 예측 가능하게. 7자릿수 이상의 범위에서 이 관계가 성립했다.
이것은 연금술에서 화학으로의 전환이었다. "더 영리한 알고리즘을 찾아라"에서 "더 큰 모델을 더 많은 데이터로 학습시켜라"로. 와트가 증기기관의 효율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것처럼, AI 연구자들도 성능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 화학에는 아직 불완전한 주기율표만 있다. 성능의 총량은 예측 가능하지만, 그 성능이 어떤 형태로 발현되는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2022년, 딥마인드의 호프만 등이 이 법칙을 더 정밀하게 다듬었다. 친칠라(Chinchilla) 연구가 밝혀낸 것은 "규모의 방향"이었다 [IAI12-101]. 파라미터만 키우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데이터도 같은 비율로 늘려야 한다. 최적 비율은 토큰 수 대 파라미터 수가 약 20 대 1이었다.
친칠라는 파라미터 700억 개에 데이터 1조 4,000억 토큰을 학습했다. 고퍼(Gopher)는 파라미터 2,800억 개에 3,000억 토큰이었다. 친칠라가 이겼다. 4배 작은 모델이 4.7배 많은 데이터로 이겼다.
Ch.2에서 로마의 운영체제를 논할 때, 도로만 늘리고 역참 시스템을 안 만든 제국은 없었다고 썼다. AI에서도 마찬가지다. 규모의 세 축이 균형 있게 커져야 한다.
결과가 뒤따랐다. GPT-1(2018년)에서 GPT-4(2023년)까지, 6년간 모델의 파라미터 수는 약 1만 5,000배 증가했다 [IAI12-002]. 1억 1,700만 개에서 약 1조 7,600억 개로. AI 훈련에 투입된 컴퓨트는 2010년 이후 약 100억 배 증가했다 [IAI12-004]. 연평균 4.4배 성장. 무어의 법칙이 2년마다 2배라면, AI 컴퓨트는 5~6개월마다 2배씩 늘어났다.
한 분석가의 전망이 이 추세를 정리한다. 전 OpenAI 연구원 레오폴드 아셴브레너는 이를 "OOM(자릿수) 세기"로 요약했다 [ISA12-001]. 컴퓨트 스케일업이 연간 약 0.5 OOM. 알고리즘 효율성 개선이 연간 약 0.5 OOM. 합산하면 매년 약 1 OOM, 즉 유효 컴퓨트가 매년 약 10배씩 개선된다는 추정이다.
추세선이 이 방향을 가리킨다. GPT-2에서 GPT-4까지 4년간 총 약 3.5~4 OOM이 축적되었다. 다만 단일 분석가의 외삽이라는 점에서, 이 수치는 확정된 미래가 아닌 유력한 시나리오로 읽어야 한다.
GPT-3의 훈련 비용은 약 460만 달러였다(2020년) [IAI12-003]. GPT-4는 약 7,800만~8억 달러로 추정된다 [IAI12-103]. 상각 컴퓨트 기준과 하드웨어 취득 기준의 차이다. 2025년 기준 차세대 프론티어 모델의 단일 훈련 비용은 약 5억~10억 달러를 넘어선다. 앤트로픽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이렇게 밝혔다. "2024년에 이미 단일 훈련이 10억 달러에 근접했다."
규모가 커지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 2022년, 구글 리서치의 웨이 등이 "이머전트 능력(Emergent Abilities)"이라는 현상을 보고했다 [IAI12-013]. 작은 모델에는 없던 능력이, 모델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리학자 필립 앤더슨이 1972년 《사이언스》에 쓴 표현을 빌리면, "양이 질을 바꾼다(More is Different)."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 세 자릿수 덧셈. 파라미터 60억 개짜리 모델의 정확도는 1%였다. 1,750억 개짜리 모델은 80%를 기록했다. 선형적 성능 향상이 아니다. 비선형적 점프다.
더 놀라운 사례도 있다. GPT-3(2020년)는 시에 운율을 맞추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GPT-4(2023년)는 소네트를 썼다. 외국어 번역 능력도 마찬가지였다. 특정 규모 이하에서는 무작위 출력에 가까웠던 번역이, 임계점을 넘자 전문 번역가 수준으로 도약했다. 누구도 이런 능력이 "다음 단어 예측"에서 나타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이머전트 능력이 100가지 이상 발견되었다. 고급 추론, 맥락 내 학습, 유추, 기호 연산. 모델을 키우면 어떤 능력이 나타날지 미리 예측할 수 없었다.
이것이 이번 혁명을 이전과 구분하는 핵심이다. 수직공의 몰락은 예측 가능했다. 기계가 더 빠르게 직조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았다.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AI의 경우는 다르다. 규모를 키우면 예상하지 못한 능력이 갑자기 나타난다. 3년 전에는 불가능했던 과제를 오늘 AI가 해낸다. 내일 무엇을 해낼지는 아무도 모른다. 위협의 방향조차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진짜 차이다.
MATH 벤치마크가 이 속도를 보여준다 [ISA12-003]. 2021년, AI의 수학 문제 풀이 정확도는 5%였다. 연구자들은 "근본적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예측했다. 3년 뒤, 정확도는 90%를 넘었다. 근본적 돌파구 없이. 단순한 스케일링만으로.
MMLU(대학 수준 지식 테스트)도 비슷한 궤적을 보였다 [ISA12-004]. 벤치마크가 만들어진 지 3년 만에 사실상 해결되었다. 추론 비용은 2년 미만에 약 1,000배 절감되었다 [ISA12-002]. 산업혁명 시기 러다이트들이 "기계는 결코 숙련공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과 구조적으로 같은 패턴이다.
2. 인지 노동 자동화의 범위 — 역사적 역전
산업혁명이 타격한 것은 육체노동이었다. 수직공, 방직공, 마차 모는 사람. 저숙련 노동자가 먼저 밀려났고, 고숙련 장인은 상대적으로 보호되었다. Ch.9에서 우리는 이 패턴을 수직공의 몰락을 통해 보았다.
이번에는 순서가 뒤집혔다.
2023년, 엘룬두 등이 《사이언스(Science)》에 논문을 발표했다 [IAI12-006]. "GPTs are GPTs." 이 연구가 역전을 수치로 보여주었다. 미국 노동력의 약 80%가 업무의 최소 10%에서 LLM(대형 언어 모델, Large Language Model)의 영향을 받는다. 약 19%는 업무의 50% 이상이 영향권 안에 있다.
LLM 단독으로 전체 업무의 약 15%가 동일한 품질로 더 빠르게 수행 가능하다 [IAI12-007]. LLM 기반 소프트웨어 도구를 결합하면, 47~56%의 업무가 가속 가능하다.
핵심 발견은 이것이다. 고소득, 고학력 직군이 저소득 직군보다 노출도가 더 높다. 번역·통역 약 76%, 법률 서비스 약 72%, 회계·세무 약 68% [IAI12-021]. 숙련 중산층의 핵심 업무가 가장 높은 노출도를 보인다.
매킨지의 2024년 갱신 추정은 더 나아간다 [IAI12-015]. AI 업무 자동화의 중앙값 시점이 2045년으로 앞당겨졌다. 이전 추정 대비 약 10년 빨라진 것이다. 근로시간의 60~70%가 이론적으로 자동화 가능하다. 이 규모의 인지 자동화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자동화의 파도가 공장이 아니라 사무실을 덮쳤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노출(exposure)은 대체(replacement)가 아니다. 엘룬두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이 업무에 AI가 적용될 수 있다"는 범위이지, "이 사람이 해고된다"는 결론이 아니다. 노출이 보완(augmentation)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경제혁신그룹(EIG)의 분석은 역설적 결과를 보여준다 [IAI12-019]. 2022년에서 2025년 사이, AI 노출이 가장 높은 직군의 실업률 증가폭은 0.30%포인트에 그쳤다. AI 노출이 가장 낮은 직군은 0.94%포인트 증가했다. AI에 더 많이 노출된 직군이 오히려 고용이 더 안정적이었다.
이 역설은 새로운 계층선을 그린다. 과거에는 "숙련 vs 비숙련"이 분할선이었다. 이제는 "AI를 쓸 줄 아는 고숙련"과 "AI에 대체되는 고숙련"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PwC의 2025년 보고서가 이 분할을 수치로 보여준다 [IAI12-020]. AI 숙련 노동자의 임금 프리미엄은 56%에 달한다. 2023년의 25%에서 2배 이상 상승했다. AI 노출 수준별 임금 성장률을 보면 패턴이 더 선명해진다. 저노출 직군은 7.9%, 중노출 직군은 12.6%, 고노출 직군은 16.7%.
투자자에게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이 있다. "AI가 모든 것을 바꾼다"는 기술결정론의 유혹이 찾아오지만, 로마에서 배운 교훈이 있다. 도로와 콘크리트가 제국을 만든 것이 아니다. 제도와 법률이 흐름을 조직했다. AI도 가능성을 연다.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과 제도다.
국제기구들의 전망은 그 규모를 보여준다. IMF는 선진국 일자리의 약 60%가 AI 영향권에 있다고 추정한다 [IAI12-057]. 절반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받고, 나머지 절반은 대체 위험에 직면한다. 저소득국은 26%다. 약 2.3배의 격차.
세계경제포럼(WEF)의 전망도 있다 [IAI12-060]. 2025~2030년 사이 약 1억 7,000만 개의 새 일자리가 창출되고, 약 9,200만 개가 소멸한다. 순증 약 7,800만 개(+7%).
골드만삭스는 AI가 약 3억 개의 풀타임 일자리에 해당하는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IAI12-008]. 매킨지는 연간 약 2조 6,000억~4조 4,000억 달러의 경제 가치를 생성형 AI가 창출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IAI12-014]. 이 수치는 2021년 기준 영국 전체 GDP(약 3조 1,000억 달러)에 맞먹는 규모다.
산업혁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증기기관이 공장을 가능하게 했지만, 주식회사와 은행 시스템이 자본을 공급했고, 공장법과 교육법이 사회를 재편했다. 숫자가 크다고 해서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3. 생산성 폭발의 증거와 역설
증거는 있다. 2023년, 깃허브 코파일럿(GitHub Copilot) 연구가 가장 잘 통제된 대규모 현장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IAI12-009]. 무작위 대조 실험에서 AI 코딩 도구를 사용한 개발자는 작업 완료 속도가 55.8% 빨랐다. 경험이 적은 개발자일수록 이득이 컸다.
브린욜프슨 등의 2025년 연구는 더 넓은 범위에서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IAI12-069]. 포춘 500대 기업의 고객지원 에이전트 5,179명을 추적한 결과, AI 보조 도구는 평균 생산성을 14% 향상시켰다. 신입 및 저숙련 노동자는 34% 향상.
"AI를 사용한 2개월 경력이 AI 없는 6개월 경력과 동등하다." 숙련도 격차가 압축된다. 경험의 가치가 줄어든다. 신입에게 더 유리하다는 역설이 여기에도 있다.
자본은 이 증거에 반응하고 있다. 빅테크 4사의 AI 자본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IAI12-010]. 2024년 약 2,560억 달러에서 2025년 약 4,270억 달러로. 2026년에는 약 6,500억 달러가 예상된다. 3년간 약 2.5배 성장이다.
엔비디아(NVIDIA)가 이 흐름의 수혜자다 [IAI12-011]. AI 칩 데이터센터 시장 점유율 약 90~95%(2025년 기준). 매출은 2023 회계연도 270억 달러에서 2025 회계연도 963억 달러로 증가했다 [IAI12-106]. 시가총액은 약 4조 4,400억 달러(2026년 2월) [IAI12-051].
골드러시에서 돈을 버는 것은 금을 캐는 사람이 아니라 곡괭이를 파는 사람이다. 엔비디아는 AI 시대의 곡괭이 장사꾼이다.
OpenAI의 매출도 이 가속을 반영한다 [IAI12-017]. 2023년 약 20억 달러, 2024년 약 60억 달러, 2025년 약 200억 달러 이상. 매년 약 3배. 역사상 가장 빠른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성장이다.
수치만 보면, 생산성 혁명은 이미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인다. S&P 500 기업 중 약 374개가 공시에서 AI를 언급한다 [IAI12-022]. 기업들은 AI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역설이 있다.
미시 수준의 증거와 거시 수준의 현실 사이에 간극이 있다. 코파일럿의 55.8% 속도 향상. 브린욜프슨의 14% 생산성 개선. 기업 단위에서 AI는 분명히 작동한다. 국가 경제 전체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모든 투자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거시경제 생산성 데이터에는 AI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약 6,000명의 CEO를 대상으로 한 NBER 연구 결과에서 대다수가 "AI의 실질적 운영 영향은 미미하다"고 답했다. AI 파일럿 프로젝트의 포기율은 2023년 17%에서 2024년 말 42%로 2.5배 증가했다 [IAI12-065].
1987년,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가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컴퓨터 시대가 모든 곳에 보이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만 안 보인다." 이 "솔로우 패러독스"가 AI 시대에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익숙한 패턴이다. 경제학자 브린욜프슨은 이를 "J-커브 효과"로 설명한다.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 GPT)은 대규모 보완 투자를 요구한다. 워크플로를 재편하고, 직원을 재교육하고, 소프트웨어를 재설계해야 한다. 초기에 이런 투자가 진행되는 동안 생산성 측정치는 하락하거나 정체한다.
IT 혁명에서 실제로 이 패턴이 나타났다. 1970~80년대의 생산성 역설. 기업들이 PC를 도입했지만 생산성 지표는 움직이지 않았다. 1995~2005년에 노동생산성이 연평균 약 2.5~3.0%로 급등하며 J자의 상승 구간이 시작되었다 [IAI12-023]. 이전의 약 1.4~1.5%에서 약 1.0~1.5%포인트 올라간 것이다.
지연의 이유가 있었다. PC를 도입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직원들을 재교육하고,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했다. 월마트가 바코드와 재고관리 시스템을 결합해 유통을 혁신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AI에서도 같은 일이 진행 중이다. 다만, J-커브의 상승이 "반드시 온다"는 보장은 없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세모글루는 AI의 10년간 GDP 효과를 최대 약 1%로 추정한다 [IAI12-063]. 골드만삭스의 약 7%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IAI12-062]. 아세모글루의 논거는 이렇다. 초기 실험에서 보이는 생산성 개선은 "쉬운 과제"에서 나온 것이며, 이를 경제 전체로 외삽하는 것은 과도하다. 골드만삭스는 AI가 선진국 전반의 노동생산성을 매년 약 1.5%포인트 끌어올린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낙관론의 약 7%와 회의론의 약 1% 사이 어딘가에 현실이 있다. 확실한 것은 이것이다. 기술은 이미 여기 있다. 효과가 어디까지 미칠지는 자본의 배분과 제도의 대응에 달려 있다.
4. 속도의 차이 — 이번에는 더 빠르다
기술 확산 속도를 비교하면, 가속의 패턴이 보인다 [IAI12-016]. 증기기관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기까지 약 50~70년이 걸렸다. 전기는 약 30~40년이었다. 미국 공장의 약 78%가 전력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99년 약 5%에서 1929년에 이르러서였다 [IAI12-024]. 인터넷은 약 15~20년이었다.
생성형 AI는 출시 2년 만에 미국 성인의 39%가 사용하고 있다. PC는 출시 3년 뒤 20% 보급에 그쳤다. 인터넷은 2년 뒤 20%였다. 같은 보급률에 도달하는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ChatGPT의 주간 활성 사용자(WAU)가 이 속도를 보여준다 [IAI12-056]. 2023년 1월 1억 명. 2024년 12월 3억 명. 2025년 2월 4억 명. 2025년 말에는 약 8~9억 명에 달했다. 전 세계 인터넷 사용 인구의 약 5분의 1이 한 AI 서비스를 매주 사용하고 있다.
Ch.11에서 우리는 영국 패권 절정기의 길이를 비교했다. 네덜란드 약 70년, 영국 약 50년, 미국 약 25년. 기술 확산 속도에서도 같은 패턴이 보인다. 증기기관에서 전기로 약 2배, 전기에서 인터넷으로 약 2배. 가속이 가속되고 있다.
이 속도의 차이가 개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로마에 사는 한 번역가의 이야기가 보여준다.
마르코라고 부르자. 이탈리아어-영어 번역가. 경력 14년 [IAI12-070]. 전문 분야는 법률과 금융이었다. 계약서, 감사보고서, 규제 문서. 용어 하나에 뉘앙스를 맞추려 한 문장을 30분씩 잡는 것이 그의 자부심이었다.
로마 시내의 작은 아파트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연수입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안정적이었다.
2023년 여름, 단골 클라이언트인 밀라노의 법률 사무소에서 이메일이 왔다. "기계번역 후편집(MTPE, Machine Translation Post-Editing)"으로 워크플로를 전환한다는 통보였다. AI가 초벌 번역을 하면, 번역가가 교정하는 방식이다. 단가는 단어당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마르코는 MTPE 작업을 받아보았다. AI의 초벌 번역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80%는 그대로 써도 될 수준이었다. 그가 14년간 쌓은 전문성이 발휘되는 나머지 20%가 있었지만, 클라이언트의 눈에 그 차이는 단가 인하를 정당화할 만큼 크지 않았다.
2024년, 소득이 60% 감소했다. 이메일 수신함에 새 의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한 달에 8건이 들어오던 것이 2~3건으로 줄었다. 2025년에는 80% 감소가 예상되었다. 대서양 건너 퀘벡의 프랑스어-영어 번역가도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15년 이상의 경력에 6자리 소득이 같은 속도로 무너졌다.
영국 작가협회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번역가의 3분의 1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고, 43%가 소득 감소를 보고했다 [IAI12-012].
Ch.9에서 우리가 본 수직공의 궤적과 나란히 놓으면, 속도의 차이가 드러난다. 랭커셔 수직공은 1800년대 초 최전성기에서 한 세대, 약 25~30년에 걸쳐 임금이 80% 이상 하락했다. 마르코는 2~3년 만에 같은 폭의 소득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속도가 약 10배 빠르다.
수직공에게는 한 세대의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은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있었다. 부모 세대가 몰락하는 동안, 자녀 세대는 공장 감독관이나 기관사가 될 수 있었다. 마르코에게는 그 시간이 없다. 적응의 시간이 압축된다. 이것이 AI 시대의 "밀린 자"가 직면하는 구조적 차이다.
번역가의 사례를 AI 시대 전체로 일반화하면 오류가 된다. 번역은 텍스트 입력과 텍스트 출력이라는 구조상 AI 자동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종 중 하나다. 모든 직종에서 이런 속도의 붕괴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법률 분야에서는 AI 사용이 2023~2024년 사이 315% 증가했다 [IAI12-018]. 법률 전문가의 79%가 AI를 일상 업무에 활용하면서도 고용은 유지되고 있다. 차이는 AI가 업무를 "대체"하는가, "보완"하는가에 달려 있다.
속도의 가속이라는 거시적 패턴은 부정하기 어렵다. 증기기관 50~70년, 전기 30~40년, 인터넷 15~20년. AI는 2년 만에 성인의 39%에 도달했다. 이 가속은 적응에 허용되는 시간도 압축한다.
Ch.10에서 우리는 산업혁명의 적응에 100년이 걸렸다고 보았다. AI 시대의 적응에 주어진 시간은 얼마인가.
5. 한국의 좌표 — 밀리는 27%, 읽는 24%
한국 독자에게 이 수치들이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10인 이상 사업장 AI 도입률 1위다(30.28%) [IAI12-068]. 국내 기업의 55.7%가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다(2025년 기준). 2026년에는 85%가 전망된다. 한국 직장인의 약 절반이 생성형 AI로 업무를 수행하며, 평균 1.5시간을 단축한다.
빠르게 도입한다는 것은 빠르게 생산성을 높일 기회다. 동시에 빠르게 밀려나는 사람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의 분석이 보다 직접적인 좌표를 제공한다 [IAI12-067]. AI 도입은 한국 GDP를 약 4.2~12.6% 높일 잠재력이 있다. 생산성은 약 1.1~3.2% 개선될 수 있다. 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 위축을 AI가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위험이 있다. 전체 근로자의 27%가 "높은 노출도, 낮은 보완도" 그룹에 속한다. AI가 이들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지만, 이들이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기는 어려운 위치에 있다.
반면 24%는 "높은 노출도, 높은 보완도" 그룹이다. AI에 노출되어 있지만, AI를 도구로 활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같은 기술에 노출되어도, 결과는 정반대가 될 수 있다.
27%와 24%. 이 숫자가 한국판 "밀린 자"와 "읽은 자"의 윤곽이다. 3%포인트 차이. 거의 같은 규모의 두 집단이 정반대의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KDI는 AI 도입이 주로 청년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경험의 가치가 압축되는 세계에서, 경험이 적은 세대가 역설적으로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한다. 브린욜프슨의 연구에서 "2개월+AI = 6개월 경력"이라는 등가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기존 인력의 숙련도 우위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신입의 진입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들 수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계층 재편의 선이 그려지고 있다. ILO(국제노동기구)의 2024년 분석이 보여주는 것은 불평등의 중첩이다 [IAI12-059]. 생성형 AI에 대한 고노출 비율이 고소득국은 34%, 저소득국은 11%다. 약 3배.
최고 노출 범주에서는 여성이 4.7%, 남성이 2.4%다. 약 2배. 사무직이 여성 고용의 핵심 원천이기 때문이다. "밀린 자"는 직업 범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젠더와 지리가 교차한다.
한국은 이 동전을 가장 빠르게 던지고 있다.
6. 전환부 — 기술이 열었다, 자본이 결정한다
이 장에서 우리는 세 번째 폭발의 윤곽을 보았다. 트랜스포머라는 아키텍처가 인지 자동화의 기반을 제공했다. 스케일링 법칙이 "규모가 지능을 만든다"는 예측 가능한 경로를 열었다. 이머전트 능력이 그 경로 위에서 예측 불가능한 도약을 만들어냈다.
영향의 범위는 전례 없이 넓다. 미국 노동력의 80%가 최소 10% 업무에서 LLM의 영향을 받는다. 고숙련, 고소득 직군이 자동화의 최전선에 섰다. 속도 또한 전례 없이 빠르다. 수직공에게 주어진 한 세대의 시간이, 번역가에게는 2~3년으로 압축되었다.
동시에, 생산성 역설이 진행 중이다. AI가 어디에나 있지만, 거시경제 통계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약 1%와 투자은행의 약 7% 사이에 현실이 있다. J-커브의 어느 지점에 우리가 서 있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자본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빅테크 4사의 AI 자본지출은 3년간 약 2.5배 증가했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2년 만에 1조 달러에서 4조 달러 이상으로 올랐다.
AI 스타트업이 전체 벤처캐피탈 투자의 과반(52.5%)을 흡수하고 있다 [IAI12-053]. 역사상 단일 기술 섹터로의 최대 자본 집중이다. 로마의 자본이 라티푼디움으로 흘러들어 갔고, 산업혁명의 자본이 철도와 공장으로 집중된 것처럼. 자본의 물길이 방향을 바꾸고 있다.
투자자에게 한 가지 관찰을 남겨둔다. 패권 전환기에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은 이전 패권의 핵심 자산이 아니었다. Ch.11에서 보았듯, 1870~1914년의 "읽은 자"는 영국 면직물 공장이 아니라 미국 철도 채권에 투자한 사람이었다. AI 시대에도 비슷한 질문이 성립한다. 가치가 이동하는 방향은 어디인가. 기존 산업의 AI 도입인가, AI 인프라 자체인가, 아니면 AI가 가능하게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산업인가.
기술이 가능성을 열었다. 로마에서도, 산업혁명에서도 그랬다. 이제 자본이 방향을 결정한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그 자본이 어디로, 어떻게, 왜 집중되는지를 본다. 빅테크, 데이터, 컴퓨팅 파워의 삼위일체. 로마의 라티푼디움은 토지에 자본을 집중시켰다. 산업혁명의 공장과 철도는 기계에 집중시켰다. AI 시대의 자본 집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일어나고 있다.
데이터, 알고리즘, 연산 능력. 만질 수 없는 것들이 부의 원천이 된다. 자본 집중의 새로운 형태가,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