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판이 내려가는 시간
2024년 겨울, 서울 마포구.
골목 끝에서 크레인 차량이 간판을 떼어내고 있다. "○○치킨"이라는 네 글자가 벽에서 분리되는 데 30분이 걸린다.
간판을 올리는 데는 퇴직금 1억 2,000만 원과 대출 5,000만 원과 22개월이 걸렸다. 내리는 데는 30분이다.
간판은 프랜차이즈 본사의 자산이다. 이름만 그의 것이었고, 그 이름도 이제 떼어졌다. 본사에서 보낸 업체가 작업을 한다. 철거 비용은 점주 부담이다.
4장의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는 "간판이 내려가는 곳에서, 다른 종류의 밀림이 시작되고 있다"고 썼다. 그 밀림의 현장이 여기다.
이 골목에서 올해 세 번째 폐업이다. 첫 번째는 카페였다. 두 번째는 분식집이었다. 세 번째가 치킨집이다.
세 곳 모두 주인이 50대였다. 세 곳 모두 퇴직금으로 시작했다. 세 곳 모두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카페의 빈자리에는 네일숍이 들어왔다. 분식집 자리에는 임대 문의 전화번호만 붙어 있다. 치킨집 자리에 무엇이 들어올지는 아직 모른다.
3개월에서 6개월 뒤 새 간판이 올라온다. 같은 자리에 다시 치킨집이 들어오는 확률은 20에서 30퍼센트다. 나머지는 다른 업종이 들어온다. 그 업종도 3년 안에 절반이 사라진다.
2024년 한국에서 폐업한 사업체는 108만 건이다. 1995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 기록이다. 폐업률 9.04퍼센트. 자영업자 중 "3년 내 폐업을 고려 중"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4퍼센트다.
거의 절반이 출구를 찾고 있다.
이 108만이라는 숫자를 다르게 읽어야 한다. 108만 가계의 자산이 증발했다는 뜻이다. 간판 하나의 무게는 쇠와 아크릴만이 아니다. 그 뒤에는 누군가의 28년이 있고, 누군가의 퇴직금이 있고, 누군가의 딸 학원비가 있다.
108만 건이 2024년에만 갑자기 터진 것은 아니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 지원금이 한계 상태의 자영업자를 연명시켰다. 정부의 대출 지원과 임대료 지원이 폐업을 억제했다. 2022년 이후 지원이 끊기면서 누적된 부실이 한꺼번에 터졌다.
108만 건은 일시적 급증이 아니다. 구조적 부실의 지연된 청산이다.
회전이 빠를수록 개별 사업자의 자본 손실이 가속화된다. 이것은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신호가 아니다. 구조가 사람을 갈아 넣고 있다는 신호다.
2. 밀림의 사슬
이 구조에는 이름이 있다. 밀림의 사슬이다.
5권에서 우리는 이 사슬의 원형을 보았다. 제조업 자동화가 숙련 노동자를 밀어내고, 밀려난 사람들이 서비스업으로 이동하고, 서비스업의 과잉 경쟁이 다시 그들을 밀어내는 구조. 5권은 국가 단위에서 이 패턴을 분석했다. 5장은 한 사람의 궤적에서 그것을 추적한다.
사슬의 첫 번째 고리는 제조업이다. 한국 제조업 고용은 2016년 467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2023년 말 441만 명. 7년 동안 26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전체 취업자 중 제조업 비중은 2000년 20.4퍼센트에서 2024년 약 15퍼센트로 줄었다. 단순 총량 감소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고용의 질적 변화다. 정규직 자리가 줄고, 기간제와 파견이 늘었다. 생산기술직 실질 임금은 화이트칼라 대비 정체했다.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 수도 연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두 번째 고리는 퇴직이다. 한국 대기업의 평균 퇴직 연령은 50세에서 53세 사이다. 법정 정년 60세와 실제 퇴직 사이에 7년에서 10년의 간극이 있다. 국민연금 수령 가능 연령까지는 또 10년이 남는다.
이 두 개의 간극 사이에서, 50대 남성 제조업 퇴직자가 정규직으로 재취업하는 비율은 18퍼센트다. 비정규직과 계약직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25에서 30퍼센트. 나머지 절반에게는 자영업이거나 구직 포기다.
재취업하더라도 이전 임금의 8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는 비율은 10퍼센트 미만으로 추정된다. 재취업의 "여부"가 아니라 재취업의 "질"이 문제다.
세 번째 고리는 자영업이다. 퇴직자의 35에서 40퍼센트가 자영업으로 전환한다. 수중에 퇴직금 1억 5,000만 원에서 2억 5,000만 원이 있고, 치킨 프랜차이즈 창업 비용이 8,000만 원에서 1억 5,000만 원이다. 퇴직금과 창업 비용이 맞닿는 금액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이 경로를 강화한다. 대기업 평균 임금 대비 중소기업 평균 임금 비율은 약 57퍼센트다. 대기업을 나온 사람에게 중소기업 재취업은 임금이 40퍼센트 이상 감소함을 의미한다.
재취업이 어렵고, 목돈이 있고, "치킨집이나 해야지"라는 경로가 사회적으로 정상화된 구조에서, 자영업 진입은 합리적 선택처럼 보인다.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압력이다.
네 번째 고리는 폐업이다. 치킨집 3년 생존율은 45.4퍼센트다. 100명이 시작하면 3년 뒤 55명이 문을 닫는다. 5년 생존율은 20에서 25퍼센트로 떨어진다. 10명 중 2명만 살아남는다.
폐업 후 창업 자금 회수율은 평균 30에서 40퍼센트다. 1억 원을 투자했다면, 손에 남는 돈은 3,000만 원에서 4,000만 원이다. 나머지 6,000만 원에서 7,000만 원은 가맹비, 인테리어, 설비에 묶인 매몰 비용이다. 가맹 계약 조기 해지 시에는 위약금까지 부과된다.
다섯 번째 고리는 자산 고갈이다. 퇴직금이 증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년이 채 안 된다. 남은 퇴직금으로 생활비와 사교육비를 감당하면 월 300만 원에서 400만 원이 빠져나간다. 30개월이면 바닥이다.
한국 가계 자산의 75에서 80퍼센트는 부동산에 묶여 있다. OECD 평균이 50에서 60퍼센트인 것과 비교하면 비정상적 집중이다. 유동 자산이 먼저 소진되고, 부동산 담보 대출로 버티다가, 결국 주택 처분 압력이 발생한다.
자영업 폐업이 주거 불안으로 연결되는 사슬이다.
그리고 사슬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부모의 자산 고갈이 자녀의 교육 투자를 위축시키거나, 부채를 동반한 교육 투자가 다시 AI 고노출 직종으로의 진입으로 이어진다. 교육 투자가 "상승 사다리"가 아니라 "다음 밀림의 진입로"가 될 위험이 있다.
이것은 사업 실패가 아니다. 구조적 사슬의 한 고리다.
3. 숫자의 지도
숫자를 펼쳐놓으면 지도가 된다. 밀림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전체 취업자의 23에서 24퍼센트다. OECD 평균이 15퍼센트다. 미국은 6퍼센트, 독일은 9퍼센트, 일본은 10퍼센트다.
한국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OECD 국가는 그리스, 터키, 멕시코 — 경제 발전 수준이 다르거나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나라들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선진국 중 이상치다.
이 비율은 1990년대 초반 35에서 37퍼센트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하락 추세임에도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것은, 조기 퇴직과 불충분한 사회안전망이 결합된 구조적 요인이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치킨 전문점은 약 8만에서 9만 개다. 맥도날드 전 세계 매장 수가 4만 개다. 한국 치킨집이 맥도날드 전 세계 매장의 두 배다. 인구 5,200만 명에서 치킨집 하나당 잠재 고객은 580명에서 650명이다.
경쟁 밀도로 보면 수익이 나기 어려운 구조다. 치킨집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조리 기술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배달 플랫폼이 판로를 열어놓았다. 시작하기 쉽다는 것은 경쟁자도 쉽게 들어온다는 뜻이다.
치킨집 월 매출이 600만 원일 때 — 중소 상권 기준이다 — 식재료비 200만 원, 임대료 80만 원, 인건비 60만 원, 플랫폼 수수료 144만 원, 기타 비용 66만 원을 빼면 남는 것은 150만 원이다.
2025년 최저임금 기준 월급은 206만 원이다.
사장이 최저임금보다 적게 번다. 퇴직금 1억 원 이상을 투자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일하고, 돌아오는 것이 최저임금 미달이다.
여기서 딸 사교육비 80만 원을 빼면 남는 것은 70만 원이다. 대출 이자 월 20만 원을 내면 50만 원이 남는다. 그것으로 53세 남성 한 사람의 생활비, 국민연금,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자영업자는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한다.
프랜차이즈는 "경험 없는 사람이 시작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러나 경험 없는 사람이 대량으로 진입하면 시장 전체의 생존율이 낮아진다.
프랜차이즈가 검증한 것은 "가맹본부의 수익 모델"이지 "가맹점주의 생존 가능성"이 아니었다. 가맹본부는 가맹점이 폐업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오히려 폐업한 자리에 새 가맹점주가 다시 가맹비를 내고 들어온다.
계약서에 모두 적혀 있다. 사기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설계된 비대칭이다.
이 숫자들은 개별 실패의 기록이 아니다. 구조의 기울기를 보여주는 좌표다.
4. 과잉자격의 역설
밀림의 사슬은 아래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위에서도 작동한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6퍼센트다. OECD 1위다. 독일은 33퍼센트에 불과하다. 독일에서는 고교 졸업자의 65퍼센트 이상이 이원제 직업교육을 거친다. 한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적 낙인에 가깝다. 독일에서는 존중받는 대안 경로다.
같은 교육 연수를 투입해도 전혀 다른 구조가 만들어진다.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000억 원이다. 4년 연속 역대 최고다. 학생 1인당 월 평균 47만 원이 사교육에 투입된다. 고등학생은 약 70만 원이다.
서울은 전국 평균보다 40에서 50퍼센트 높다. 고소득 가구는 월 67만 6,000원, 저소득 가구는 월 20만 5,000원 — 격차가 3.3배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1년, 사교육비만 4,300만 원에서 6,600만 원이 든다. 대학 등록금까지 합산하면 자녀 한 명에게 1억에서 3억 원이 투입된다.
이 투자의 목적지는 세 곳이다. 대기업 사무직, 공무원, 전문직 자격증. 세 경로 모두 AI 노출도가 낮지 않다. 4장에서 분석했듯이, 사무 종사자의 AI 태스크 대체율은 60에서 75퍼센트로 추정된다. 전문가 그룹 — 의사, 변호사, 회계사, 교사, 기자 — 은 45에서 65퍼센트다.
한국 사회가 가장 많은 교육 투자를 집중한 곳이, AI에 가장 많이 노출된 곳이다.
대졸 임금 프리미엄은 축소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고졸 대비 150에서 160퍼센트였던 대졸 임금이, 2023년에는 130에서 140퍼센트로 줄었다. 프리미엄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투자 비용은 매년 올라가는데 수익률은 매년 내려간다.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22대 1이다. 수십만 명의 청년이 2년에서 5년을 시험 준비에 투자한다. 그 기회비용은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이다. 경쟁을 통과한 공무원이 수행하는 업무가 AI 자동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투자의 시점과 수익의 시점 사이에 이미 환경이 바뀌어 있다.
동시에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다. 세계 최저다. 자녀 한 명에게 더 많은 교육 투자를 집중하면서 출생 자체를 포기하는 패턴이다. 사교육비 총액이 사상 최고인데 학생 수는 줄고 있다. 1인당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집중 투자의 목적지가 AI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취업률이 높은 전공이 AI 노출도도 높다"는 역설이 여기 있다. 경영학과 취업률 65에서 70퍼센트, AI 노출도 높음. 컴퓨터공학과 취업률 75에서 82퍼센트, AI 노출도 중에서 높음. 의학과 취업률 95퍼센트, 영상의학 등 일부 전공에서 AI 압박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취업이 잘 된다는 것이 AI에 안전하다는 것과 같지 않다. 이것이 사교육비를 내는 한국 학부모들이 직면한 정보 부재의 핵심이다.
3장에서 우리는 명함의 무게를 분석했다. 명함에 새겨진 직함이 정체성의 닻이 되는 구조를. 사교육비 29조 원은 그 명함을 얻기 위한 투자다. 명함의 가치가 흔들리면, 투자의 전제가 무너진다.
사교육비를 성실히 내고, SKY를 목표로 공부시키고, 대기업 사무직에 입사시킨 부모. 시스템이 요구한 모든 것을 이행한 사람들이다. 그 충실함의 목적지가 흔들리고 있다.
5. 플랫폼 종속
밀림의 사슬에서 자영업자가 만나는 또 하나의 벽이 있다. 플랫폼이다.
배달 플랫폼 3사가 시장의 97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다. 배달의민족 59퍼센트, 쿠팡이츠 24퍼센트, 요기요 14퍼센트. 과점 구조다. 치킨집 주문의 60에서 70퍼센트가 이 플랫폼을 통해 들어온다.
플랫폼 없이는 영업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경제학 용어로 "플랫폼 종속"이라 한다. 일단 의존하면 떠나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수수료 인상에도 협상력이 없다. 2024년 배달의민족이 중개수수료를 5.8퍼센트에서 6.8퍼센트로 올렸을 때, 소상공인 단체가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떠날 곳이 없었다.
실질 수수료 부담은 매출의 약 24퍼센트다. 중개수수료에 배달수수료, 결제수수료 약 3퍼센트, 광고수수료를 합산한 수치다. 월 매출 600만 원이면 144만 원이 플랫폼에 나간다.
플랫폼 밖의 주문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30퍼센트의 매출만 남는다. 그것만으로는 문을 닫아야 한다. 수수료를 내면 150만 원이 남는다.
나갈 문이 없다.
자영업자에게는 두 명의 임대인이 생겼다. 건물주에게 물리적 임대료를 내고, 플랫폼에 디지털 임대료를 낸다. 이중 임대료 구조다. 배달 매출 비중이 50퍼센트를 넘는 자영업자에게 플랫폼은 건물주만큼의 비용을 부과하는 보이지 않는 임대인이다.
플랫폼 내 노출 순위는 광고비에 의해 결정된다. 상위 노출을 얻지 못하면 앱에서 찾기 어렵다. 광고비를 쓰면 수익이 줄고, 수익이 줄면 더 높은 매출이 필요해진다.
동시에 플랫폼은 각 자영업자의 주문 데이터, 고객 리뷰, 재주문율, 인기 메뉴를 모두 갖고 있다. 자영업자는 자신의 가게 데이터에 대한 전체 접근권조차 없다. 정보의 비대칭이 권력의 비대칭을 만든다.
플랫폼 종속의 다른 축은 라이더다. 배달 플랫폼 종사자는 약 66만 명이다. 전업 22만 명, 부업 44만 명. 배달 라이더 40만에서 50만 명의 월 수입 중위값은 150만에서 250만 원이다.
4대 보험 가입률은 낮고, 사고 위험은 높고, 알고리즘이 배차와 경로를 결정한다. 라이더는 플랫폼에 종속된 "프리랜서"다. 독립성도 보호도 없는 이중 취약 상태다.
치킨집을 폐업한 사람이 배달 라이더로 전환하는 것은 통계상 현실적 경로다. 자영업에서 밀려난 사람이 플랫폼 노동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그 경로 역시 알고리즘에 종속되는 구조다.
밀림의 사슬은 자영업에서 끝나지 않는다.
1권에서 우리는 수직공이 역직기에 밀려나는 과정을 보았다. 수직공에게 역직기는 도구가 아니라 구조였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임금이 82퍼센트 하락하고, 거부하면 일자리를 잃었다. 플랫폼도 같은 구조다. 받아들이면 매출의 24퍼센트를 내야 하고, 거부하면 고객의 70퍼센트를 잃는다.
200년 전의 역직기와 2024년의 배달 앱. 도구가 달라졌을 뿐, 구조의 논리는 같다.
6. 도착한 불안, 도착하지 않은 제도
이 시리즈는 하나의 공식을 따라왔다.
기술 혁신이 자본 집중을 낳고, 자본 집중이 사회 불안을 낳고, 사회 불안이 제도 재설계를 촉발한다. 6권에서 이 공식은 확장되었다. 개인의 적응과 비공식 제도 형성이 사회 불안과 공식 제도 재설계 사이에 끼어든다.
5장에서 공식은 세 번째 항까지 도달했다.
기술 혁신. 한국의 로봇 밀도는 제조업 노동자 10,000명당 1,012대다. 세계 1위다. 2위 싱가포르 730대, 세계 평균 151대와의 격차가 압도적이다.
생성형 AI 기업 도입률은 대기업 기준 45에서 55퍼센트다. 중소기업은 10에서 15퍼센트에 머물지만, 대기업 협력사를 통한 간접 노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가한 AI 의료기기는 180개를 넘었다. 2019년에 21개였던 것이 5년 만에 9배로 증가했다.
1차 자동화 — 로봇이 단순 반복 작업을 대체하는 단계 — 는 이미 완료되었다. 2차 자동화 — AI가 판단과 분석과 조정을 흡수하는 단계 — 가 진행 중이다.
자본 집중. 배달 플랫폼 3사의 시장 점유율이 97퍼센트다. 카카오뱅크는 직원 수천 명으로 고객 2,670만 명을 관리한다. 시중은행 지점 인력 효율의 10배 이상이다.
효율의 수혜자는 플랫폼과 자본이고, 비용의 부담자는 자영업자와 중간 노동자다. 2권에서 우리는 기술 혁신이 자본 집중을 가속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했다. 그 메커니즘이 배달 앱과 인터넷 은행이라는 형태로, 서울의 골목까지 도달했다.
사회 불안. 폐업 108만 건. 50대 남성 제조업 퇴직 후 정규직 재취업률 18퍼센트. 청년 확장 실업률 20에서 24퍼센트. OECD는 한국 현행 일자리의 38.8퍼센트가 높은 자동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추정한다. OECD 평균 14퍼센트의 약 3배다.
이 숫자들이 "사회 불안"이라는 추상어의 구체적 내용이다.
네 번째 항 — 제도 재설계 — 은 아직 오지 않았다. 플랫폼 수수료 상한제는 논의 중이지만 입법되지 않았다. AI 기본법은 국회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내일배움카드는 연간 300만에서 500만 원의 훈련비를 지원하지만, 훈련 이수와 실제 취업 사이의 연결은 약하다.
한국의 실업급여는 최대 9개월, 이전 임금의 60퍼센트다. 덴마크는 최대 2년, 이전 임금의 90퍼센트를 보장한다. 자영업자는 고용보험에서 대부분 제외되어 있다.
사회 불안은 도착했다. 제도 재설계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개인이 퇴직금으로 자기만의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그 안전망이 치킨집이다.
치킨집이 실패하면 안전망은 사라지고, 개인은 맨바닥 위에 선다.
7. 두 개의 의자 — 1997년의 퇴직자와 2024년의 퇴직자
1997년 12월, 서울.
IMF 구제금융 직후, 한 중견 자동차 부품 회사의 구조조정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김영수(가명), 47세, 생산관리 부장. 그는 회사가 시킨 모든 것을 했다. 야근을 했고, 주말 출근을 했고, 품질 관리 매뉴얼을 외웠다.
구조조정의 기준은 성실함이 아니었다. 인건비 총액이었다. 부장급 한 명을 줄이면 대리 두 명의 연봉이 나왔다. 그는 성실했기 때문에 비쌌고, 비쌌기 때문에 잘렸다.
퇴직금과 대출로 작은 부품 가공 공장을 차렸다. 선반 세 대, 직원 두 명. 20년간 금속을 깎아온 손이 아직 살아 있었다. IMF 이후 부품 단가가 30퍼센트 떨어진 시장에서 버텼다. 3년을 버텼다. 2001년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 3년 동안, 그는 자신의 기술로 일했다.
2024년 가을, 아산.
이정훈, 53세, 생산기술부 부장. 그도 회사가 시킨 모든 것을 했다. 소리를 들었고, 금형의 떨림을 감지했고, 28년간 불량률을 낮추는 데 헌신했다.
AI 시스템이 들어왔을 때, 그의 직함은 "AI 시스템 모니터링 감독"으로 바뀌었다. 4장에서 보았던 공동화의 구조 — 직함은 남고 내용은 사라지는 — 가 그에게도 적용되었다.
확인 버튼을 누르는 사람. 그리고 퇴직했다.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열었다. 22개월을 버텼다. 간판이 내려갔다.
27년의 시차. 구조는 같다. 이전 시스템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이 가장 먼저 밀려난다. 1997년에 밀어낸 것은 외환위기였다. 2024년에 밀어내는 것은 AI다.
밀어내는 힘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 밀려나는 사람의 프로필은 놀라울 만큼 같다. 50대, 제조업, 관리직, 성실한 사람. 가장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 1997년의 김영수에게는 부품 가공이라는 — 비록 시장이 줄었지만 — 자신의 기술을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 2024년의 이정훈에게 치킨집은 자신의 28년 경력과 무관한 선택지였다.
AI가 대체한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퇴직 후의 전환 경로까지 좁아졌다.
김영수는 기술을 들고 나갈 수 있었다. 이정훈은 기술을 두고 나와야 했다. AI가 그의 기술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밀림의 사슬이 짧아졌다. 퇴직에서 자산 고갈까지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완충 지대가 줄었다.
8.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AI 노출도와 전환 여력. 이 두 축으로 좌표를 그리면 네 개의 사분면이 나타난다.
1사분면은 AI 노출도가 높고 전환 여력도 높은 자리다. 30대에서 40대 IT 개발자, 젊은 금융 분석가, 프리랜서 디자이너. 위험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다.
2사분면은 AI 노출도가 높고 전환 여력이 낮은 자리다. 50대 제조업 관리자, 50대 은행 창구 직원, 중장년 일반 사무직. 위험하고 움직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다.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나이, 재정, 네트워크, 심리 — 네 가지 벽이 동시에 막고 있다. 개인 차원의 해결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적 문제다.
3사분면은 AI 노출도가 낮고 전환 여력이 높은 자리다. 의사, 건축사, 전략 컨설턴트. 면허가 보호하고, 판단이 중심이고, 이동할 자원이 있는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다. 그러나 이 위치도 영구적이지 않다. 4장에서 보았듯이, 방사선과 영상 판독 AI는 이미 전문의 동등 성능을 보고하고 있다.
4사분면은 AI 노출도가 낮고 전환 여력도 낮은 자리다. 요양보호사, 돌봄 노동자, 단순 서비스직. AI가 대체하지 않는다. 손이 하는 일, 몸이 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저임금과 사회적 고립이 다른 형태의 취약성을 만든다. 안정적이지만 고립된 사람들이다.
이정훈은 2사분면이다. 28년간의 핵심 업무 — 공정 품질 판단, 생산계획 조정, 팀 관리 — 가 AI와 IoT 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AI 노출도는 높다. 53세, 퇴직금 대부분 소진, 제조업 내부 네트워크는 있으나 외부 전환에 활용하기 어렵다. 전환 여력은 낮다.
그런데 이정훈이 베트남 하이퐁으로 가는 것은 사분면 이동의 시도다. 한국에서 자동화된 공정 기술이 베트남에서는 아직 희소하다. 위치를 바꾸면 노출도가 달라진다.
5권에서 우리는 "불가결성은 위치의 함수"라고 분석했다. 같은 기술이 한국에서는 잉여이고 베트남에서는 희소하다. 프롤로그에서 "인천-하이퐁, 편도"라고 썼다. 그 편도 티켓은 2사분면에서 1사분면 또는 3사분면으로의 이동 시도다.
4장에서 정민호(45세)는 사무직의 공동화를 겪고 있었다. 그는 이 매트릭스에서 2사분면에 가깝다. AI가 그의 업무를 흡수하고 있지만, 이정훈보다 8년 젊다. 8년은 전환 여력의 차이를 만든다.
같은 사분면이라도 좌표가 같지 않다.
이 매트릭스는 처방이 아니다. 진단이다. 자기계발서는 "포지셔닝을 바꿔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2사분면에 놓인 사람에게 "좌표를 이동하라"고 말하는 것은, 구조를 재설계하지 않는 사회가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정훈이 하이퐁행 비행기를 탄 것은 용기의 표현이자, 동시에 한국 사회가 그에게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지 못한 결과다. 미래를 예측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 서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6장에서 우리는 두 사람의 서랍을 열어본다. 이정훈과 김수진 — 밀려난 사람과 건너간 사람. 그 차이가 개인의 능력인지, 구조적 조건인지를 묻는다.
문턱의 질문: 당신이 오늘 한 일 중에서, 내년에도 사람이 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어보라. 나눌 수 없다면 — 그 이유가 당신의 능력 때문인지, 아직 아무도 답을 모르기 때문인지를 구별하라. 그 구별이 지금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5장 끝 — 리서치 소스: R-05, R-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