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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6 — 마지막 직업

프롤로그: 이정훈의 선택


1. 출발 게이트

인천공항 제2터미널, 115번 게이트. 2025년 3월의 어느 화요일 오후.

이정훈(53세)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탑승권을 들고 있다. 대한항공 KE481, 인천-하이퐁. 출발 16시 40분. 좌석 34C.

창가도 통로도 아닌 가운데 자리다. 여행사 직원이 가장 싼 자리를 골랐을 것이다. 편도.

가방은 하나다. 캐리어 하나에 28년을 넣을 수는 없었지만, 넣어야 할 것은 많지 않았다. 작업복 세 벌, 안전화 한 켤레, 아산 공장에서 쓰던 디지털 버니어 캘리퍼스. 면도기, 속옷, 양말. 책은 없다. 노트북도 없다. 사원증은 없다. 2년 전에 반납했다.

게이트 앞 전광판에 하이퐁이라는 글자가 떠 있다. 베트남 북부 항구 도시. 인구 210만. 한국 자동차 부품 공장이 열두 곳 들어서 있는 곳이라고 박상호가 말했다. 이정훈은 그 도시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구글 지도에서 위성 사진을 확대해본 것이 전부다. 공장 지붕의 회색과 논의 초록이 번갈아 나타나는 풍경이었다. 아산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공장 밀집 지역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 회색 지붕, 주차장, 컨테이너 야적장,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녹색. 그 생각이 맞는지는 도착해봐야 안다.

게이트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 젊다. 베트남 여행객이거나 출장자이거나 유학생일 것이다. 이정훈의 나이대는 드물다. 50대 초반 남성이 캐리어 하나 들고 편도로 하이퐁에 가는 일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종류의 이동이다. 출장도 이민도 아니다. 노동부의 해외 취업 통계에도, 외교부의 재외국민 등록에도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매년 50만 명 이상이 비자발적으로 직장을 떠난다. 그중 제조업 비중이 가장 높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추적하는 통계는 없다. 재취업률, 자영업 전환율, 폐업률은 있다. 그 뒤의 이동 — 아산에서 하이퐁으로, 울산에서 자카르타로, 거제에서 수라바야로 — 은 집계되지 않는다. 이정훈은 제도의 언어에 포착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가 앉아 있는 플라스틱 의자는 차갑다. 3월의 공항은 난방과 냉방 사이에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온도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낸다. 딸에게 전화할까 망설인다. 아침에 이미 했다. 아빠 잘 다녀와. 열여섯 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해한 것인지, 이해를 포기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아내는 전화 끝에 덧붙였다. 몸 조심해. 세 단어. 매일 아산 공장에 출근할 때도 같은 말을 들었다. 달라진 것은 출근지뿐이다. 아산에서는 차로 15분이면 도착했다. 하이퐁까지는 3시간 40분이 걸린다. 거리가 바뀌었을 뿐, 아내의 세 단어는 같다.

전화기를 다시 넣는다.


2. 간판이 내려가던 날

이틀 전, 아산.

치킨집 간판이 내려가고 있었다. 크레인 차량이 골목에 겨우 들어와 "정훈치킨"이라는 네 글자를 떼어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보낸 업체였다. 간판은 본사 자산이다. 이정훈의 것이 아니었다. 이름만 그의 것이었고, 그 이름도 이제 떼어졌다.

22개월이었다. 퇴직금 2억 4,000만 원 중 1억 2,000만 원을 투자하고, 5,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월 순이익 150만 원. 딸 사교육비가 80만 원이었다. 남는 70만 원으로 대출 이자를 내면 생활비가 모자랐다. 아내의 마트 파트타임 수입 95만 원이 가계를 지탱했다.

그 구조가 22개월 동안 유지되었고, 더는 유지되지 않았다.

22개월 동안 이정훈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닭을 해동하고, 양념을 배합하고, 튀김 온도를 맞추었다. 오전 11시에 첫 주문이 들어오고, 저녁 8시에 마지막 배달이 나갔다. 밤 10시에 기름때를 닦고, 11시에 정산을 했다. 매출이 올라가는 날은 금요일과 토요일뿐이었다. 비가 오면 배달 주문이 늘었지만, 배달 플랫폼 수수료가 24퍼센트였으므로 매출이 늘어도 수익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현대차에서 28년간 소리를 듣던 사람이 치킨을 튀기고 있었다. 그 사실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흔한 풍경이다. 이상한 것은 그 풍경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정훈이 치킨집을 연 것은 판단 오류였는가. 아마 그렇다.

그러나 판단 오류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개인의 어리석음보다 경로의 좁음이 먼저 보인다. 50대 남성 제조업 퇴직자의 정규직 재취업률은 18퍼센트다. 나머지 82퍼센트에게 열린 문은 많지 않다.

자영업이 가장 넓은 문이었다. 넓은 문은 대개 낮은 문턱을 의미하고, 낮은 문턱은 대개 높은 경쟁률을 의미한다. 2024년 한국의 자영업자 수 약 570만 명. 자영업자 비율 23.2퍼센트는 OECD 평균(15.6퍼센트)의 1.5배, 일본(9.5퍼센트)의 두 배를 넘는다. 국회미래연구원(2025)과 OECD 통계가 확인하는 수치다.

폐업 신고를 하러 세무서에 갔을 때, 대기 번호표를 뽑았다. 37번. 앞에 14명이 있었다. 화요일 오전 10시에 세무서에서 폐업 신고를 기다리는 14명. 세무서 직원은 서류를 확인하면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하루에 스물다섯 건에서 서른 건 사이를 처리한다고 했다.

이정훈은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나이대가 비슷했다. 50대 초반에서 60대 초반. 넥타이를 맨 사람은 없었다. 운동화를 신은 사람이 많았다. 어딘가에서 밀려나 자영업으로 흘러들어왔다가 다시 밀려나는 사람들. 이정훈이 이 시리즈의 공식을 알았더라면, 그들을 공식의 세 번째 칸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 불렀을 것이다.

회수한 금액은 3,800만 원이었다. 투자금 1억 2,000만 원의 32퍼센트. 대출 5,000만 원은 남았다. 현대자동차에서 쌓은 퇴직금이 22개월 만에 치킨 기름과 함께 증발한 셈이었다.

숫자로 보자. 2024년 한국 폐업 건수 108만 건, 역대 최고. 치킨 프랜차이즈 3년 생존율 45.4퍼센트. 배달 플랫폼 수수료 24퍼센트. 이정훈의 매출에서 재료비, 임대료, 인건비, 플랫폼 수수료를 빼면 150만 원이 남는 구조였다. 이 구조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것인데, 골목 치킨집의 매출 천장은 낮고 비용 바닥은 높다. 구조가 개인의 노력을 제한한다.

제조업에서 자영업으로, 자영업에서 폐업으로, 폐업에서 자산 고갈로 이어지는 사슬. 이정훈의 이야기는 개인사가 아니다. 이것은 탐욕의 이야기가 아니다. 구조의 이야기다.


3. 28년

이정훈은 1996년에 현대자동차 아산 공장에 입사했다.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생산기술부에 배치받았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1년 전이다. 입사 동기 42명 중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것은 29명이었다. 이정훈은 살아남은 쪽이었다. 성실했기 때문이다. 성실함은 미덕이었다.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을 시스템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 그 미덕이 28년 동안 이정훈을 지켰고, 그 미덕의 유효기간이 끝났을 때 이정훈을 지켜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8년 동안 그는 소리를 들었다. 프레스 라인에서 금속이 찍히는 소리, 금형이 정렬될 때의 미세한 진동, 도장 라인에서 부품 표면의 광택 차이. 그 감각들은 매뉴얼에 없었다. 기계가 측정하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이정훈은 소리만으로 금형 정렬 상태를 판단했고, 손끝으로 공정의 온도를 읽었고, 부품 광택의 미세한 차이로 도장 불량을 잡아냈다. 불량률을 0.3퍼센트에서 0.09퍼센트로 낮춘 공정 개선이 부장 승진의 근거였다.

그 감각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암묵지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고, 매뉴얼로 옮길 수 없고, 따라서 데이터로 변환할 수도 없는 것. 후배에게 "이 소리가 나면 금형을 확인해"라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이 소리"가 정확히 어떤 소리인지를 주파수로 기술할 수는 없었다. 몸이 아는 것이었다.

설비의 진동 주파수가 0.2헤르츠 올라갔을 때, 이정훈은 그것을 손바닥으로 느꼈다. 그 느낌을 스프레드시트에 입력할 수는 없었다. 입력할 필요도 없었다 — 그 느낌이 이정훈 자체였기 때문이다. 공정의 온도를 손끝으로 읽고, 설비의 진동으로 이상을 감지하고, 불량이 나기 전에 멈추는 판단. 그것이 이정훈의 자산이었다.

그 자산이 자산이기를 멈춘 것은 2023년이었다.

AI 품질 예측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센서 데이터와 과거 품질 기록을 학습한 모델이 불량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9개월이 걸렸다. 이정훈이 몸에 새긴 판단을, AI는 9개월 만에 흡수했다.

정확히 말하면 흡수한 것이 아니다. 우회한 것이다. 이정훈의 감각과 같은 결론에 다른 경로로 도달했다. 소리를 듣지 않고, 온도를 만지지 않고, 광택을 보지 않고 — 데이터로. AI는 이정훈의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센서 3,200개의 실시간 데이터와 과거 5년치 품질 기록이면 충분했다. 경험이라는 단어가 이력서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역할 재조정"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해고가 아니었다. 모니터링 감독으로 전환되었다. 실질 업무는 기존의 5퍼센트였다. 화면을 보고, AI가 이상 신호를 보내면 확인 버튼을 누르는 일. 28년의 감각이 확인 버튼 하나로 압축되었다.

1830년대 랭커셔의 백발 수직공이 주급 3실링 6펜스에도 직기 앞을 떠나지 못했던 것처럼, 이정훈도 사무실을 떠나지 못했다. 자리가 정체성의 마지막 거처였기 때문이다.

이정훈은 분노하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 무거운 부분이었다.

분노에는 부당함의 인식이 필요하다. 이정훈에게 일어난 일은 부당하지 않았다. 합리적이었다. AI가 더 정확했고, 더 빨랐고, 더 쌌다. 성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더 잔인했다.

희망퇴직을 수락한 날, 인사팀 직원이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에 서명하는 데 3분이 걸렸다. 28년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 3분이었다.

사원증을 반납했다. 플라스틱 카드 한 장에 이름, 사번, 직급이 적혀 있었다. 매일 목에 걸고 다녔던 것. 그 카드가 이정훈을 현대자동차 아산 공장 생산기술부 부장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판단이 그를 만들었다. 그러나 카드가 없으면 공장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고, 게이트가 열리지 않으면 판단을 쓸 곳이 없었다.

반납하고 남은 것은 주민등록번호뿐이었다. 그의 경험이 데이터로 변환되지 않은 채 공장 밖으로 나왔다.


4. 네 번째 편지

이 시리즈의 1권에서 우리는 세 통의 편지를 상상한 적이 있다.

기원전 2세기, 라티푼디움에 토지를 빼앗긴 로마의 소농이 있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농지가 사라져 있었다. 그는 프롤레타리우스가 되었다 — "아이를 낳는 것 외에 국가에 기여할 것이 없는 자." 그의 상실은 경제적 빈곤이 아니었다. 시민이라는 자격 자체가 사라진 것이었다. 로마는 그에게 빵을 주었다. 정체성은 주지 않았다.

1830년대, 랭커셔의 수직공이 있었다. 주급 25실링이 4실링 6펜스로 떨어졌다. 84퍼센트의 붕괴. 그러나 그가 공장을 거부한 진짜 이유는 임금이 아니었다. 작업의 리듬을 빼앗기는 것, 자기 이름 대신 기계 번호로 불리는 것, 직물의 품질을 자기 손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 — 그는 기계가 아니라 정체성에 저항했다.

나는 직조공이다. 1834년의 이 증언은 직업 묘사가 아니라 존재 선언이었다.

2020년대, AI 번역 모델의 학습 데이터를 만들던 번역가가 있었다. 자기 노동이 자기 대체를 가속시키는 역설. 번역가의 문장이 AI에 흡수될수록, 번역가가 필요 없어지는 구조. 기술이 정체성이었고, 정체성이 감옥이었다.

소농이 수직공에게, 수직공이 번역가에게 편지를 썼다면. 번역가가 이정훈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의 첫 줄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네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소농은 로마를 위해 싸웠고, 수직공은 직물의 품질을 지켰고, 번역가는 언어의 결을 다듬었고, 이정훈은 금형의 떨림을 감지했다.

밀린 자는 이전 시스템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이다. 충실함이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

생산성이 폭발할 때마다 경제 구조가 재편되고, 누군가는 밀려나며, 누군가는 그 변화를 읽는다. 이 공식은 2,000년 넘게 같은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달라진 것은 속도뿐이다. 소농의 몰락에는 한 세기가 걸렸고, 수직공의 대체에는 수십 년이 걸렸고, 이정훈에게는 9개월이 걸렸다. 이정훈은 그 공식의 가장 최근, 그리고 가장 빠른 사례다.

크라수스는 화재를 기다렸다. 이정훈은 화재를 기다리지 않았다. 화재가 그에게 왔다.


5. 박상호의 전화

박상호(51세)는 이정훈의 현대차 동기였다. 2년 먼저 퇴직했다. 차이가 있다면, 박상호는 치킨집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다.

퇴직 후 6개월을 보냈다. 이력서를 열두 군데 넣었고, 면접은 두 곳에서 봤고, 채용은 없었다. 면접에서 받은 질문은 "요즘 젊은 친구들이랑 잘 지낼 수 있겠어요?"였다. 쌓아온 기술이 아니라 나이가 먼저 보이는 시장이었다.

53세 제조업 기술자에게 한국의 노동시장이 제안하는 것은 "경비," "택배 분류," "시설 관리" 같은 단어들이었다. 생산기술 경험과 연결되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내일배움카드로 등록한 재취업 교육 과정 목록에는 "바리스타 자격증," "드론 촬영 기초," "디지털 마케팅 입문"이 있었다. 프레스 금형 정렬이나 도장 공정 품질 관리는 없었다. 제도의 언어가 이정훈과 박상호의 경험을 번역하지 못하는 것이다.

박상호가 하이퐁에 도착한 것은 2023년 가을이었다. 한국 동료의 소개로 한국계 자동차 부품 공장의 공정 기술 고문이 되었다. 월급은 한국의 60퍼센트였지만, 생활비가 3분의 1이었으므로 실질 소득은 한국에서의 마지막 연봉과 비슷했다.

그러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하이퐁의 공장에서 박상호는 다시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말할 수 있었다. 명함에 "공정 기술 고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떤 명함도 만들 수 없었다. 퇴직자, 구직자, 무직 — 어느 것도 명함에 넣을 단어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AI가 흡수한 기술이, 베트남에서는 아직 사람에게서만 나왔다. 하이퐁의 공장에는 AI 품질 예측 시스템이 없었다. 센서 네트워크도 없었다. 프레스 라인의 금형 정렬은 여전히 사람의 귀와 손으로 확인하는 곳이었다. 자동화가 삼킨 경험이 자동화되지 않은 곳에서 다시 가치를 찾은 것이다. 위치를 바꾸니 무용한 것이 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박상호가 이정훈에게 전화한 것은 치킨집이 문을 닫기 두 달 전이었다.

형님, 여기서는 아직 형님이 필요해요.

간단한 문장이었다. 하이퐁 한국계 부품 공장에 공정 기술 컨설턴트가 필요하다. 프레스 라인과 도장 공정을 아는 사람. 한국에서 30년 가까이 그 일을 한 사람. 월급은 한국 시세의 60퍼센트, 숙소는 공장이 제공, 계약 기간은 1년이되 연장 가능.

이정훈은 두 달을 고민했다. 고민이라기보다는 셈이었다. 치킨집 잔여 계약 해지 비용, 대출 잔액, 딸의 학교, 아내의 직장, 국민연금 수령까지 남은 햇수.

딸은 고등학교 1학년이다. 아내는 마트에서 일한다. 이정훈이 하이퐁에 가면 딸은 아버지 없이 학교에 다니고, 아내는 혼자 가계를 유지한다. 아버지가 베트남에 있다는 사실을 딸이 학교에서 뭐라고 설명할지 — 이정훈은 그것까지 생각했다.

한국의 사회 안전망에서도 이탈한다. 국민연금 수령까지 15년이 남았다. 건강보험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고용보험 가입 이력은 현대차 퇴직과 함께 끊어졌고, 치킨집 자영업 기간에는 임의가입이었다. 하이퐁에서 다치면 베트남 의료보험이 적용될지, 한국 건강보험이 적용될지, 알 수 없다.

셈의 어느 칸에도 확실한 숫자는 없었다. 확실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 치킨집 22개월이 그것을 보여주었다. 대출 이자는 매달 나가고, 매출은 늘지 않고, 퇴직금은 줄어들고, 딸의 사교육비는 올라간다. 이 궤적의 끝이 어디인지는 세무서에서 대기 번호를 뽑으며 이미 보았다.


6. 공식이 닿지 않는 곳

SK하이닉스의 HBM이 엔비디아의 심장에 실리는 동안, 이정훈은 치킨을 튀기고 있었다.

5권에서 우리는 국가의 전략을 분석했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이 어떻게 불가결한 위치를 설계하는지, 사이를 전략적 자산으로 만드는 방법을 보았다. 시안의 클린룸은 항온 22도를 유지하고, 이천의 팹은 24시간 가동된다. 국가는 읽고 있었다. 공식을 알고, 위치를 설계하고, 불가결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공식은 아산의 치킨집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시안의 클린룸이 밤새 항온 22도를 유지하는 동안, 아산의 치킨집은 밤 10시에 문을 닫았다. 이천의 팹에서 나노미터 단위의 공정이 가동되는 동안, 아산의 골목에서는 크레인이 치킨집 간판을 떼어내고 있었다. 같은 나라의 두 풍경이다. 한쪽은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불가결한 노드이고, 다른 쪽은 폐업 108만 건 중 하나다. 국가의 불가결성과 개인의 밀림이 같은 시간에 같은 나라에서 진행된다.

5권은 국가가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물었다. 이 책은 묻는다. 국가의 공식이 치킨집까지 도달하지 않을 때, 개인은 무엇을 하는가.

기술이 생산성을 폭발시킨다. 자본이 집중된다. 사회가 불안해진다. 제도가 재설계된다 — 이것이 이 시리즈가 다섯 권에 걸쳐 추적한 공식이다.

그런데 네 번째 칸, 제도 재설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공장법이 시행되기까지 64년이 걸렸다. 크라수스의 사적 소방대가 사라지고 공적 소방대 비길레스가 창설되기까지 59년이 걸렸다. 제도는 항상 뒤늦게 왔다. 한 번도 오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그 전에 물에 잠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정훈은 그 물에 잠기는 사람이다. 제도가 도착하기 전의 시간 — 그 시간을 살아내는 것이 이 책의 질문이다.

이정훈은 제도를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위치 이동이었다. 한국에서 자동화가 삼킨 기술이 아직 자동화되지 않은 곳으로 가는 것.

그 선택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하이퐁의 공장에도 벽에 "스마트 팩토리 추진 계획 2027"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을 것이다. 자동화의 파도는 시간차를 두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정훈의 28년이 하이퐁에서 유효한 기간은 3년일 수도 있고, 5년일 수도 있다.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도 그는 간다.

확실한 서사가 없다. 성공 보장도, 귀환 계획도, 딸에게 설명할 깔끔한 이유도 없다. 이 책의 어디에서도 "이정훈처럼 하라"고 쓰지 않을 것이다.

그의 선택은 정답이 아니라 가설이다. 틀릴 수 있는 가설. 그러나 아산의 치킨집에서 월 150만 원을 버는 것이 어떤 결말로 향하는지는 이미 보았다. 보았으므로 움직이는 것이다. 구조를 읽었으므로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7. 딸에게

탑승 안내 방송이 나온다. 34번에서 40번 좌석.

이정훈은 일어선다. 가방을 멘다. 게이트를 향해 걸으면서 딸을 생각한다.

열여섯 살.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 대학 진학 상담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코딩 학원에 다닌다. 월 120만 원. 이정훈의 치킨집이 월 150만 원을 벌던 곳이었다. 그 숫자의 무게를 딸은 아직 모른다. 알게 될 것이다.

한국의 사교육비 총액은 2024년 기준 29조 2,000억 원이다. 4년 연속 역대 최고를 갱신했다. 대학 진학률 76퍼센트, OECD 1위. 이 숫자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를 특정 경로에 밀어넣고 있고, 그 경로의 끝에 있는 직업들이 AI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직업들이다.

사교육 9년에서 11년, 투자액 1억에서 3억 원. 그 투자의 도착지가 AI 고노출 직종이라면, 이것은 개인의 선택인가 구조적 함정인가. 1833년 영국의 부모가 아이를 탄광에 보낸 것도 선의였다. 2025년 한국의 부모가 아이를 SKY 입시 경로에 보내는 것도 선의다. 두 선의 사이에는 시대착오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정훈은 딸의 사교육비로 월 80만 원을 냈다. 치킨집 순이익의 절반 이상이었다. 수학 학원, 영어 학원, 국어 논술. 그 학원들이 딸을 보내는 방향 — 대학, 취업, 경력 — 이 이정훈 자신이 걸었던 경로와 같은 구조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이정훈은 안다. 자기가 걸었던 길의 끝이 어떤 모습인지를 이정훈은 보았다.

딸이 언젠가 물을 것이다. 아빠, 나 뭘 공부해야 해.

이정훈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온도를 읽고, 금형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 모든 것이 9개월 만에 AI에 흡수되었다. 인하대 기계공학과 졸업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경험이 쓰이는 위치가 사라진 것이 문제였다.

자기 경험으로부터 딸에게 줄 수 있는 확실한 처방은 없다.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것일 것이다 — 아빠가 다닌 대학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 아빠가 배운 것이 어디서 쓰이느냐가 문제였다는 것. 무엇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어디서 가치를 가지느냐. 위치를 읽는 것. 구조를 읽는 것. 확실한 답이 없는 상태에서도 자기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움직이는 것.

그 말을 지금 하지는 않는다. 전화기는 주머니 안에 있다.

하이퐁에 도착해서, 공장의 프레스 라인에 다시 선 뒤에, 그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생긴 뒤에. 지금은 아직 가설의 첫 줄도 쓰지 못한 상태다.


8. 출발

탑승구를 통과한다. 좁은 통로를 지나 34C에 앉는다.

창밖으로 인천공항의 활주로가 보인다. 3월의 회색 하늘. 비가 올 것 같은 빛이다.

이정훈은 안전벨트를 맨다. 옆 좌석의 승객은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고 있다. 출장인지 여행인지 알 수 없다. 이정훈의 여정에도 적절한 이름은 없다. 출장도 이민도 아니다. 퇴각도 진격도 아니다. 그냥 이동이다.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사원증을 반납하던 날이 떠오른다. 플라스틱 카드를 인사팀 직원에게 건네면서 느꼈던 감각. 무언가를 내려놓는 감각. 그때는 28년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나라를 내려놓는다. 두 번의 내려놓음 사이에 치킨집 22개월이 있었다. 그 22개월이 이정훈에게 가르쳐준 것은 하나다 —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아는 것과,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활주로를 향해 천천히 미끄러진다.

이 책은 이정훈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이정훈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이정훈은 하나의 경우다. 밀린 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하나의 형태다.

이 책에는 다른 선택들이 있다. 비워진 자리에서 다른 문을 여는 사람이 있다. 자기 판단이 AI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판단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은퇴한 기술자 12명이 만든 비공식 네트워크가 제도의 씨앗이 되는 과정이 있다. 금융의 한가운데서 알고리즘에 자리를 내준 심사역이 "신뢰"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장면이 있다. 시급 1만 2,000원의 요양보호사가 "마지막 직업"이라는 질문의 답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이유가 있다.

이정훈의 하이퐁은 답이 아니다. 하나의 가설이다. 다른 가설들이 이 책의 나머지를 채운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바퀴가 활주로를 떠나는 순간, 무게가 사라진다.

물리적인 무게만이 아니다. 아산이라는 주소, 치킨집이라는 장소, 폐업자라는 이름이 아래에 남겨진다.

인천이 작아진다. 이정훈은 창밖을 보지 않는다. 앞 좌석 등받이의 안전 수칙을 읽고 있다. 읽고 있다기보다는 시선을 둘 곳이 필요한 것이다. 비상 탈출구의 위치, 산소마스크의 사용법, 구명조끼의 착용 순서. 비상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다. 이정훈의 비상 상황에 대한 매뉴얼은 없다.

하이퐁까지 3시간 40분. 도착하면 박상호가 마중 나와 있을 것이다. 공장은 시내에서 30분 거리라고 했다. 숙소는 공장 근처 아파트. 월세 350달러 — 약 47만 원. 내일 아침 6시에 출근한다. 프레스 라인에 선다. 아산에서 해왔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소리가 같을지는 모른다. 기계가 다르고, 습도가 다르고, 금속의 조성이 다를 것이다. 하이퐁의 3월은 아산의 3월보다 덥고 습하다. 프레스 라인의 금속도 한국산이 아닐 것이다. 공장의 소음 패턴도, 진동의 주파수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소리를 듣는 법은 같다. 금형에 이상이 있을 때 소리의 결이 바뀌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 불량이 나기 전에 멈추는 판단. 그것은 특정 기계에 종속된 기술이 아니라, 기계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감각이다. 그 감각을 AI에게 넘기지 않은 채 가지고 나왔다. 데이터로 변환되지 않은 채.

이정훈은 눈을 감는다. 비행기가 수평 비행에 들어간다. 아래에 바다가 있을 것이다. 서해. 아산과 하이퐁 사이의 바다.

그 사이에서, 28년의 가치가 되살아나는지를 확인하러 간다.

확인 버튼이 아닌 방식으로.

손바닥으로, 귀로, 몸에 남은 감각으로.


프롤로그 끝 — 리서치 소스: C-01, C-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