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같은 날, 두 개의 숫자
2024년 2월 22일 목요일 오후, 도쿄증권거래소.
닛케이 225 지수가 39,098.68포인트로 마감됐다. 1989년 12월 29일, 버블 경제가 정점을 찍던 날 기록한 38,915.87을 34년 2개월 만에 넘어선 순간이었다. 그날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은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었다. 스크린 홀딩스 10.2퍼센트, 어드밴테스트 7.5퍼센트, 도쿄 일렉트론 6퍼센트. 방아쇠는 엔비디아의 실적 서프라이즈였고, 그 충격이 태평양을 건너 도쿄에 착지했다.
그러나 같은 해, 다른 숫자가 있었다.
2025년 4월, 일본 경찰청이 처음으로 공식 집계를 발표했다. 2024년 한 해 동안 혼자 살다가 자택에서 숨진 사람은 76,020명이었다. 그중 65세 이상이 58,044명 — 전체의 76.4퍼센트. 내각부 추산으로 사망 후 8일 이상 지나 발견된 "고립사"는 21,856명. 발견까지 평균 13.8일. 그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뜻이다.
주가 최고치와 고독사 7만 6,000명. 두 숫자는 같은 나라에서, 같은 해에 나왔다. 기업이 부활하는 동안 사회가 해체되고 있었다.
2. 잃어버린 30년의 진짜 이유
통념적 서사는 이렇다. 1990년 버블이 꺼졌고, 디플레이션이 이어졌으며, 구조 개혁에 실패했다. 이 서사는 틀리지 않지만 불완전하다.
보다 정확한 진단은 기술 전환 실패에 있다. 1988년,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의 51퍼센트를 점유했다.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 중 여섯이 일본 기업이었다. 그 지배력이 2019년에 10퍼센트 이하로 붕괴했다. 30년의 이야기다.
소니, 파나소닉, 샤프의 몰락은 단일 사건이 아니다. 세 회사는 한 회계연도에 합산 200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하드웨어 스펙 경쟁에 집착하는 동안, 소프트웨어가 생태계를 정의하는 시대가 왔다. 소니의 전자책 단말기 리브리에는 일본어만 지원했고, 아마존 킨들이 등장하자 역사에서 지워졌다. 인터넷, 모바일, 클라우드, AI — 매 전환마다 일본은 관전자였다.
더 깊은 곳에 구조적 원인이 있었다. 종신고용 시스템은 안정성을 제공하지만 급진적 혁신을 억제한다. 합의 기반 의사결정 체계(稟議制, 린기세이)는 속도를 막는다. 일본 기업의 디지털 전환 성공률은 약 30퍼센트 — 미국과 독일의 80퍼센트와 대조된다. 벤처캐피털 투자 비율은 GDP 대비 0.08퍼센트로, 미국의 0.64퍼센트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7장에서 ASML이 30년간의 투자로 대체 불가능한 해자를 쌓은 것을 보았다. 일본은 같은 30년 동안 보유하고 있던 해자를 스스로 메웠다.
3. 반도체 부활 — 국가가 베팅한다
2025년 8월 26일, 스탠퍼드 대학교 Hot Chips 컨퍼런스. 73세의 노인이 기조연설 무대에 올랐다. 라피더스 CEO 고이케 아쓰요시(小池淳義). 그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1999년 이후 26년 만에 일본인이 이 무대에 선 것이기도 했다. Hot Chips는 인텔, AMD, 엔비디아의 엔지니어들이 최신 칩 아키텍처를 발표하는 반도체 설계의 최전선이다. 아직 양산 실적이 없는 회사의 CEO가, 생일에, 그 무대에 올라왔다. 웨스턴 디지털 일본법인 사장을 지낸 그는 은퇴할 수 있었다. 대신 국가적 도박의 책임자가 되는 쪽을 택했다.
2022년 설립된 라피더스는 일본 반도체 업계에 30년 만에 생겨난 국가 프로젝트다. 목표는 2027년까지 2나노미터(2nm) 반도체 양산. 이것이 얼마나 도발적인 선언인지를 이해하려면 맥락이 필요하다. 일본이 반도체 패권을 잃은 이후 최첨단 공정은 TSMC와 삼성 두 회사의 영역이었다. 그 두 회사가 이미 양산하고 있는 기술에, 후발주자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IBM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어 2나노 GAA(게이트올어라운드) 트랜지스터 기술을 이전받았다. 벨기에 반도체 R&D 기관 IMEC과도 협력 중이다. 2025년 4월, 홋카이도 치토세 IIM-1 공장에서 첫 EUV 노광이 성공했다. 2025년 7월 18일, 2나노 GAA 트랜지스터 시제품의 전기 특성 측정 성공을 발표했다. 60개 이상의 잠재 고객과 협의 중이다.
치토세가 선택된 데는 이유가 있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수자원, 저온 기후, 재생에너지 접근성이 모두 갖춰진 곳이다. 착공 이후 4,000명의 건설 노동자가 몰려들었고, 공항 근처의 논밭에 아파트와 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60~70년대 한국의 중화학공업 도시들이 만들어지던 풍경과 묘하게 겹친다.
그 건설 현장의 클린룸 설계를 감독하는 사람들 중에는 60대가 적지 않다. 다나카 히로시(仮名), 64세. NEC에서 30년간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로 일하다 2012년 사업부 매각과 함께 조기 퇴직했다. 이후 10년간 자동차 부품 회사의 품질 관리직을 전전했다. 라피더스의 채용 공고를 본 것은 2023년 봄이었다. "은퇴 후 마지막으로 반도체를 만져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4장에서 TSMC 구마모토 공장이 논밭 위에 세워지는 장면을 보았다 — 치토세에서는 같은 풍경이 30년의 공백을 안은 엔지니어들의 손으로 반복되고 있다. 14장에서 다룰 "밀린 자"와 다나카의 차이는 명확하다. 다나카는 밀려났다가 다시 불려온 사람이다. 단, 그의 세대가 은퇴하면 그 경험을 이어받을 다음 세대가 충분한지는 별개의 질문이다.
일본 정부의 의지는 숫자로 표현된다. 2022년 이후 반도체 산업에 투입된 보조금 누계 257억 달러 — GDP 대비 세계 최대 규모다. 라피더스의 총 소요 투자액은 약 4조 엔(270억 달러)으로 추산되며, 현재 약 1.7조 엔이 확보된 상태다. 일본 정부는 이 회사의 의결권 11.5퍼센트와 거부권을 가진 황금주를 보유한다.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진입을 결정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4장에서 대만 TSMC의 "실리콘 방패" 전략을 보았다. 그 TSMC가 일본에도 왔다. 2024년 2월 24일, 구마모토현 기쿠요 마치(菊陽町). TSMC 창립자 모리스 창, 회장 마크 류, CEO CC 웨이가 JASM(Japan Advanced Semiconductor Manufacturing) 개소식 무대에 섰다. 소니, 덴소, 도요타가 소수 지분으로 참여한 합작 공장이다. 12나노 및 22나노 공정으로 월 5만 5,000장 웨이퍼를 생산한다. 소니의 이미지 센서와 덴소의 자동차 반도체 수요가 이 공장의 주요 고객이다. 2027년에는 제2공장(6~7나노)이 가동 예정이고, 양 공장 합계 투자액만 200억 달러를 넘는다.
JASM이 들어선 구마모토현의 땅값은 전국 1위 상승률을 기록했다. 기쿠요 마치 상업용지는 3년 누적 66퍼센트 상승. 대졸 초임은 구마모토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28만 엔. 관련 기업 35개사 이상이 지역에 진출했다. 단일 공장이 지역 경제의 중력 자체를 바꿨다.
낙관론과 회의론이 동시에 존재한다. 30년의 공백으로 엔지니어 생태계가 소실됐고, 후발 주자로서 고객 확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일본은 반도체 소재라는 다른 카드를 여전히 쥐고 있다. 포토레지스트 세계 시장의 87~91퍼센트, 실리콘 웨이퍼의 53퍼센트, 코터와 디벨로퍼 장비의 88퍼센트 — 이 숫자들은 일본이 반도체 제조의 "보이지 않는 병목"을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다.
4. 노인의 나라가 만드는 미래
2024년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3,625만 명, 전체 인구의 29.3퍼센트.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다. 합계출산율은 2024년 1.15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중위 연령 50.8세. 2050년 총인구는 1억 490만 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고독사 76,020명은 이 구조가 만든 결과다. 간병 인력은 2040년까지 57만 명이 부족해질 것으로 추산된다. 900만 채에 달하는 빈집(空き家, 아키야)이 전국에 산재한다. 일본 전역의 시정촌 중 절반 가까이가 2050년까지 소멸 위기에 처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 숫자에는 얼굴이 있다. 도쿄 아다치구의 한 아파트. 요시다 켄타(仮名), 41세. 특수청소업체 "리라이프(ReLife)"에서 7년째 일하는 현장 책임자다. 그가 방호복을 입고 현관문을 열 때마다 마주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부재다 — 누군가가 여기 살았고,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 시신의 체액이 바닥에 스며든 뒤, 벽지를 뜯고 장판을 걷어내고 오존 처리를 해야 원상복구가 된다. 통상 3시간에서 수일이 걸리고, 비용은 수십만 엔에서 수백만 엔. 사망 후 평균 13.8일 — 그 시간 동안 우편함에 전단지가 쌓이고, 이웃은 이상한 냄새를 맡았지만,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요시다는 월평균 12건을 처리한다. 가장 오래 방치된 현장은 사후 4개월이었다. 그는 유품 속에서 가족 사진이 나오는 날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 사진 속에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실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으니까. 특수 청소업은 일본에서 성장 산업이다. 그 사실 자체가 진단이다.
그러나 일본이 이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포기가 아니라 실험이다.
도쿄 세타가야구의 요양원에서, 79세 사카모토 씨는 물개 모양 로봇 PARO를 처음 쓰다듬었을 때 그것을 놓지 못했다. PARO는 57센티미터, 2.7킬로그램. 촉각과 소리와 빛에 반응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눈을 깜박인다. 전 세계에 5,000대가 보급됐고, 그중 3,000대가 일본에 있다. 도쿄 신토미 요양원은 PARO를 포함한 20종의 로봇을 도입해 일본 정부의 공식 모델 시설이 됐다. 복수의 연구에서 치유 로봇이 노인의 스트레스와 고독감을 유의미하게 낮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은 "AI와 로봇으로 인구 감소를 보완하는 세계 최초의 대규모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 세계 2위 시장.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 2025년 14억 4,000만 달러. 2025년 예산에서 케어 로봇 보조금 약 300억 엔. AI 의료 영상 진단, 원격 진료, 자율주행 노인 이동 서비스 — 이 모든 것이 고령화라는 압박에서 나왔다.
재건의 역설이 여기에 있다. 일본이 고령화 솔루션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였다. 가장 먼저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법을 찾게 됐다.
5. 주가는 최고인데 인구는 최저
9장에서 UAE가 자본으로 미래를 사려 한 것을 보았다. 일본은 다르다 — 30년의 시간을 이미 지불했다.
닛케이 최고치 경신이 일본의 부활을 의미하는가. 숫자를 보자. 이 랠리의 70퍼센트를 주도한 것은 해외 투자자들이었다. 일본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관망했다. 워렌 버핏이 일본 5대 종합상사 지분을 평균 8.5~9.8퍼센트까지 확대하며 주목받았는데, 버핏 본인의 설명이 의미심장하다. "단순히 재무 기록을 보고 주가가 얼마나 낮은지 놀랐다." 부활의 증거가 아니라, 30년간 얼마나 저평가됐는지의 반증이다.
1989년, 세계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 중 일본 기업이 32개였다. 2024년, 상위 50개 중 일본 기업은 도요타 하나다.
그러나 완전한 패배로 읽기도 어렵다. 일본은행이 2024년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다. 임금 인상률이 199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이 2년 이상 목표치 2퍼센트를 초과했다. "잃어버린 30년"의 구조적 특징이었던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4년 기업 거버넌스 개혁을 통해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고 행동주의 투자자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기업의 부활과 사회의 해체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반도체 장비주가 급등하는 날, 76,020명이 혼자 죽어갔다. 이 두 현실은 모순이 아니다. 같은 구조적 선택의 두 결과다.
6. 후쿠시마의 그림자, 에너지의 현실
2025년 12월, 니가타현 가시와자키가리와(柏崎刈羽) 원전. 세계 최대 원자력 발전소다. 최대 출력 820만 킬로와트. 새로 지은 방파제와 방수문 뒤에서, TEPCO(도쿄전력)는 6호기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14년 만에 TEPCO가 원전을 다시 돌린다는 것이다.
같은 시각, 원전 정문 앞에 300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원전 재가동 반대." 니가타현민의 60퍼센트는 재가동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응답했고, 70퍼센트는 TEPCO의 운영 능력 자체를 불신했다.
그러나 숫자는 반대편에서도 말한다. 일본 전력의 60~70퍼센트가 화석연료 수입에 의존한다. 연간 LNG와 석탄 수입 비용만 10.7조 엔, 약 680억 달러. AI 데이터센터의 급증이 전력 수요를 밀어올리고 있다. 현재 원전 비율 8~9퍼센트를 2040년까지 20퍼센트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산이다.
후쿠시마 이후, 일본은 전면 원전 중단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을 시도했다. 해상풍력 사업이 차질을 빚자, 다시 원전으로 돌아왔다. 현재 14기가 가동 중이고, 3기가 추가 승인을 기다린다.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개발에도 IHI와 주부전력이 뛰어들었다. 트라우마와 현실 사이에서, 일본은 현실을 택했다.
8장에서 인도네시아가 자원의 저주를 올라타려 한 것을 보았다. 일본은 반대편이다 — 자원이 없는 나라가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의 본보기. 후쿠시마의 기억을 안고도 원전을 재가동하는 선택.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선택지가 없는 나라의 생존 전략이다.
7. 미중 사이에 선 일본, 그리고 소재의 무기화
일본이 선택한 지정학적 포지션은 미국 편향, 중국 시장 유지라는 이중 전략이다. 2022년 경제안전보장추진법 제정,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 동참,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 제한. 동시에 중국은 여전히 일본의 최대 교역 파트너다. 2024년 일본의 대중 수출액 1,246억 달러. 완전한 디커플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본의 레버리지는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2019년 7월, 일본이 한국에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가지 반도체 소재 수출을 제한했을 때, 세계는 소재 패권이 기술 패권이 될 수 있음을 목격했다. 한국의 불화수소 수입이 87.9퍼센트 감소했고, 한국 정부는 2019년 8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7년간 7.8조 원 투자 계획을 발표해야 했다.
포토레지스트, 실리콘 웨이퍼, 코터와 디벨로퍼. 이것은 반도체 "소재의 병목"이다. 미국이 ASML을 통해 반도체 장비의 병목을 쥐고 있다면, 일본은 반도체 소재의 병목을 쥐고 있다. 두 병목이 결합할 때, 어떤 나라도 양쪽의 동의 없이는 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8. 거울이 보여주는 것
핵심 공식을 적용하면 일본은 역방향의 사례다. 1988년, 일본은 기술 혁신의 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그 자본 집중이 사회적 긴장 — 종신고용, 합의 문화, 변화 저항 — 을 만들었고, 제도 재설계에 실패했다. 디지털 전환을 놓치고,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놓치고, AI를 늦게 시작했다. 공식이 역방향으로 돌았다. 기술 우위가 자본 집중을 낳았지만, 사회적 관성이 제도 재설계를 막았고, 30년이 흘렀다.
지금 일본은 다시 공식의 정방향을 시도하고 있다. 국가 주도 기술 투자(라피더스, JASM 유치)가 자본을 집중시키고, 그 압력이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제도 재설계를 이끌고 있다. 성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사이의 전략"의 관점에서 일본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 과거의 제조 패권과 미래의 AI 생태계 사이, 미국 동맹과 중국 시장 사이에 서 있다. 이 사이에서 30년간 방향을 정하지 못한 것이 "잃어버린 30년"이었다. 지금 일본이 찾고 있는 것은, 그 사이를 다시 레버리지로 만드는 방법이다.
치토세에서 다나카가 클린룸 설계도를 펼치는 동안, 도쿄에서 요시다는 다음 현장으로 향한다. 반도체 부활과 고독사 7만 6,000명은 같은 나라의 두 시간대다 — 하나는 미래를 되찾으려는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가 이미 끝난 시간이다. 거울은 미래를 보여준다. 그러나 거울이 바꿔주지는 않는다. 바꾸는 것은 거울 앞에 선 자의 몫이다.
거울 속의 한국
일본은 한국이 걸어가고 있는 길의 10~20년 앞에 서 있다. 같은 위기가, 다른 속도로, 이미 전개됐다.
물론 완전한 동치는 아니다. 일본은 내수 시장 규모, 세계 3위 경제권이라는 무게, 1960년대부터 축적해온 제조업 기술 생태계라는 완충재를 가졌다. 한국에는 그것이 없다 — 거울이 보여주는 미래가 더 날카로운 이유다.
출산율의 역전.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2024년 1.15다. 한국은 0.72(2023년 최저, 2024년 0.75로 소폭 반등). 일본이 초저출산으로 고통받는 동안, 한국은 그 아래를 달리고 있다. 한국이 일본보다 빠르게 같은 위기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일본이 수십 년에 걸쳐 경험한 간병 인력 부족, 빈집 증가, 지방 소멸을 한국은 더 압축된 시간 안에 맞이할 것이다. 2025년 9월,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퍼센트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반도체의 교훈. 일본이 1988년 세계 시장의 51퍼센트에서 2019년 10퍼센트 이하로 추락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2나노 경쟁에 뛰어드는 데 다시 30년이 필요했다. 라피더스가 의미하는 것은 이것이다 — "반도체를 잃으면 회복하는 데 30년이 걸린다." 한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을 지금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어가 공격보다 비용이 훨씬 싸다.
고독사와 1인 가구. 일본의 고독사 76,020명은 한국에서 이미 시작된 현상의 10~15년 후 모습이다.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은 2024년 전체 가구의 35퍼센트를 넘었다. 노인 1인 가구, 청년 1인 가구 — 이 숫자들이 누적되면 일본과 같은 구조적 고립이 만들어진다. PARO 같은 케어 로봇, IoT 안부 확인 시스템, 커뮤니티 케어 모델 — 일본이 검증하고 있는 해법들이 5~10년 뒤 한국의 실천 목록이 될 것이다.
이민과 제도의 속도. 일본은 착취적 기능실습제도를 폐지하고 2024년 "육성취로" 제도로 전환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한국은 K-STAR 비자, 탑티어 비자를 2025~2026년에 도입하며 제도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싱가포르의 외국인 인구 30퍼센트와 비교하면 한국의 5.3퍼센트는 여전히 먼 거리다. 인구 감소를 이민으로 보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에너지 정책의 진동. 일본은 후쿠시마 이후 전면 중단에서 재가동으로, 해상풍력에서 다시 원전으로 진동했지만 방향을 정했다. 한국은 더 극적으로 흔들린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서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뒤집힌다. 일본이 14년의 논쟁 끝에 "트라우마를 안고도 현실을 택하는" 합의에 도달한 것과 달리, 한국은 아직 합의의 출발선에 서지 못했다. AI 시대의 전력 수요 급증은 이 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든다.
소재와 협력의 가능성. 2019년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는 한국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 후 시작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운동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취약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 일본 포토레지스트와 한국 반도체 제조의 결합은 미중 경쟁 속에서 동북아 반도체 협력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하이파 항구 문제에서 안보 이익을 위해 미국 편을 선택했듯, 한일 반도체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논리다.
7개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대만의 실리콘 방패, 이스라엘의 군사-기술 순환, 싱가포르의 허브 전략, 홍콩의 실패한 선택, 네덜란드의 독점 레버리지, 인도네시아의 자원 사다리, UAE의 주권 자본. 그리고 이제 일본 — 30년 앞서 걸어간 나라가 보여주는 위기와 부활의 지도.
이제 거울을 내려놓고, 한국 자신을 본다.
→ 제3부로: 11장에서 한국은 거울 앞에서 전략가로 나선다.
10장 끝 — 리서치 소스: R-18, R-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