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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 — 사이의 전략

7장: 기술 병목의 권력 — 네덜란드와 ASML


1. 벨트호번의 비밀

네덜란드 남부, 아인트호번에서 남서쪽으로 10킬로미터. 인구 4만 5,000명의 소도시 벨트호번(Veldhoven). 지도에서 거의 찾기 어려운 이 도시에, 인류가 만든 가장 정밀한 기계의 고향이 있다.

ASML 본사 캠퍼스. 2만 명 이상의 직원이 일하고, 캠퍼스 중심의 De Run 1000 빌딩에서는 90개국 출신 4,000명의 엔지니어가 하나의 기계를 만들기 위해 모여 있다. 이 캠퍼스에서 출하되는 기계 한 대의 가격은 2억 2,000만 달러 — 약 3,000억 원이다. 최신 High-NA 기종은 3억 8,000만 달러. 2030년에 출시될 Hyper-NA는 7억 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이 기계가 없으면 TSMC가 칩을 만들 수 없다. 삼성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 NVIDIA의 AI 가속기가 존재할 수 없다. 애플의 아이폰 칩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 세계 첨단 반도체의 100퍼센트가 이 기계를 거친다.

6장 끝에서 싱가포르의 천장을 보았다. 허브이지만 코어가 없는 나라. 네덜란드는 정반대다. 벨트호번이라는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소도시에서, 세계 반도체 산업의 코어를 만든다. 2026년 3월, 아인트호번 시의회는 ASML의 두 번째 캠퍼스 건설을 승인했다 — 추가 2만 명 고용을 목표로. 이 조용한 소도시가 세계 반도체 지정학의 심장이다.


2. 빛으로 그림을 그리다

반도체를 만드는 것은 본질적으로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빛을 쏘아 회로 패턴을 새기는 공정, 리소그래피(lithography).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리려면 더 짧은 파장의 빛이 필요하다 — 더 세밀한 그림에 더 가는 붓이 필요한 것처럼.

ASML의 EUV(극자외선) 기계는 파장 13.5나노미터의 빛을 쓴다. 기존 DUV(심자외선)보다 14배 이상 짧다. 이 빛 덕분에 2나노미터 이하의 초미세 회로를 그릴 수 있고, 오늘날 스마트폰 AP, AI 가속기, 고성능 서버 칩이 모두 이 기술로 만들어진다.

이 빛을 만드는 과정은 경이롭다. 기계 안에서 매초 5만 번, 다음이 반복된다. 머리카락 굵기의 3분의 1인 액체 주석 방울이 초속 70미터로 발사된다. 저출력 레이저가 주석 방울을 납작한 원반으로 눌러준다. 고출력 레이저가 원반을 순간 기화시켜 플라즈마를 만든다. 플라즈마에서 EUV 빛이 방출된다. 약 100개 층의 몰리브덴-실리콘 거울이 이 빛을 웨이퍼 위로 정밀하게 유도한다. 이 모든 과정은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 EUV 빛은 공기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기계 한 대를 구성하는 부품, 10만 개 이상.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기계. 그리고 이 기계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지구상에 단 하나다.


3. 30년의 해자

ASML이 하룻밤에 독점자가 된 것이 아니다. 30년에 걸친 투자, 실패, 글로벌 협력의 산물이다.

1984년, 필립스와 ASMI의 합작으로 설립. 1986년, 독일 칼 자이스(Carl Zeiss)와 광학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 파트너십이 결정적이었다. 자이스가 15년에 걸쳐 개발한 초정밀 다층 반사경 — 거울 표면의 허용 오차 0.1나노미터 이하, 원자 1개 크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 없이는 EUV 빛을 원하는 위치에 집중시킬 수 없다. 이 거울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은 세계에서 자이스뿐이다. ASML은 2016년 자이스 지분 25퍼센트를 10억 유로에 인수해 이 관계를 공급 계약을 넘어 자본적 결합으로 격상시켰다.

독일 트럼프(TRUMPF)가 세계 유일의 초고출력 이산화탄소 레이저를 10년에 걸쳐 개발했다. 출력 20밀리줄, 주파수 50킬로헤르츠 —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산업용 펄스 레이저다. 이것 없이는 매초 5만 번 주석을 기화시킬 수 없다. 트럼프 없이는 ASML의 EUV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2013년, 미국 샌디에이고의 광원 기술 기업 사이머(Cymer)를 인수했다. 이 인수가 나중에 지정학적 함의를 갖게 될 줄은 당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012년에는 고객사들이 투자자가 됐다. TSMC 10억 달러, 삼성 10억 달러, 인텔 40억 달러. 총 60억 달러. 단순한 장비 구매가 아니었다. "함께 만들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자신들의 경쟁자가 같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 ASML 없이는 누구도 다음 세대의 칩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총 R&D 투자 약 90억 달러. 12조 원. 30년.

그러나 이 해자에는 역설이 있다. ASML이 자체 제조하는 부품은 전체의 약 15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 85퍼센트는 전 세계 800개 이상의 공급업체가 납품한다. 자이스의 거울, 트럼프의 레이저, 사이머의 광원 시스템 —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공급이 끊기면 ASML 생산 전체가 멈춘다. ASML이 멈추면 전 세계 첨단 반도체 생산이 멈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기계가, 동시에 가장 취약한 기계다. 단일 실패점(Single Point of Failure)이 세 개나 존재한다.

숫자가 이 취약성의 규모를 보여준다. 2025년, ASML이 출하한 EUV 장비는 48대. DUV 첨단 장비를 합쳐도 179대. 전 세계의 모든 스마트폰 칩, 모든 AI 가속기, 모든 데이터센터 서버가 연간 48대의 EUV 기계에 의존한다. 이 숫자가 병목의 진정한 의미다. 대량생산되는 상품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수작업에 가까운 정밀 조립을 거치는 예술 작품이다.

이것이 해자다. 돈만으로 넘을 수 없는, 시간이 만든 해자.


4. 총리실의 강제 선택

2023년 1월, 헤이그. 네덜란드 총리 집무실.

미국의 요청은 명확했다. ASML의 첨단 DUV 장비까지 중국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라. 미국, 네덜란드, 일본 3국 협의 형태로.

이미 전조가 있었다. 2020년, 네덜란드 정부는 ASML의 대중국 EUV 수출 허가를 조용히 취소했다. ASML은 이미 완성된 EUV 장비를 중국에 납품하지 못했다. 그러나 DUV 장비에 대해서는 미국과 비공식적 "신사 협정"이 있었다 — 일정 물량까지는 허용한다는 암묵적 양해. 한 보도에 따르면, ASML은 이 양해선을 초과하는 물량을 중국에 판매했다. 이후 ASML이 미국에 중국에서의 "눈과 귀(eyes and ears)" 역할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ASML은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023년 1월의 회담이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3년간의 밀고 당기기 끝에 도달한 최종 결정이었다.

이제 한 단계 더 — EUV뿐 아니라 DUV ArF 이머전 시스템까지 막으라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딜레마는 간단하지 않았다. ASML은 네덜란드 경제의 심장이다. 시가총액 약 5,530억 달러, 유럽 최대 테크 기업. 2025년 매출 327억 유로(약 48조 원), 순이익 96억 유로(약 14조 원). 공급업체에만 연간 160억 유로(약 22조 원)를 지출한다. 직원 44,000명. 네덜란드 전체 민간 R&D 투자 최대 단일 기업. 수만 개의 일자리가 이 회사의 공급망에 연결되어 있다.

중국은 핵심 고객이었다. 2023년 중국 매출 비중 29퍼센트. 2024년 1분기에는 49퍼센트까지 치솟았다 — 수출 제한 시행 전 선제 주문이 몰린 것이다. 이 매출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미국을 선택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NATO 안보 의존. EU 차원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방향. 한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협상 테이블에 우크라이나 지원까지 올려놓았다. 그리고 역설적 논리 하나 — 수출 통제는 ASML의 기술이 중국 경쟁자에게 전수되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

2023년 9월부터 DUV 첨단 장비의 대중국 수출이 금지됐다. 2024년 9월, 추가 확대. ASML의 1970i와 1980i 이머전 DUV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려면 수출 허가가 필요해졌다. 사실상 모든 첨단 리소그래피 장비의 대중국 수출이 차단됐다.

5장에서 이스라엘이 하이파 항구 문제로 미국 편을 선택한 것을 보았다. 네덜란드도 같은 구조적 선택을 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은 안보 동맹 논리로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미국이 네덜란드의 손으로 스위치를 끄게 한 것이다.


5. 스위치는 누가 쥐고 있는가

ASML은 네덜란드 기업이다. 그러나 스위치는 미국이 쥐고 있다.

핵심은 사이머다. 2013년 인수한 이 기업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본사가 있다. EUV 광원 시스템의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기술이 들어간 이상, 미국 수출관리규정(EAR)의 적용을 받는다. ASML이 네덜란드 법인이어도, 미국산 부품이 포함된 장비를 미국 허락 없이 수출할 수 없다.

이 구조가 한국 기업에 직접 작동하고 있다.

삼성은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NAND 플래시의 35~40퍼센트를 생산한다.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전체 DRAM의 40퍼센트를, 다롄 공장에서 NAND 20퍼센트를 생산한다. 두 회사의 중국 생산 비중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명선이다.

2025년 8월의 충격. 미국 상무부가 삼성과 SK하이닉스의 VEU(검증된 최종 사용자) 자격을 취소했다. 이 자격이 있으면 중국 공장에서 미국산 장비를 별도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자격이 사라지자 장비 하나하나에 미국 정부의 개별 허가가 필요해졌다. 2025년 12월, 부분 완화 — 기존 시설 유지에만 허용, 용량 확장이나 기술 업그레이드는 불가.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ASML의 장비 없이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ASML의 장비는 미국 기술에 의존한다. 따라서 미국은 ASML을 통해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생산에 간접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기술 병목의 지정학"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병목을 장악한 자가 스위치를 쥔다. 그리고 그 스위치는 벨트호번이 아니라 워싱턴에 있다.


6. 400년의 반복

1장에서 한자동맹의 세 겹 독점이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우회된 것을 보았다. 그 우회의 결과가 VOC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다.

1602년 설립된 VOC는 인류 최초의 진정한 다국적 기업이자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전략은 단순했다. 향신료 무역로의 병목점을 장악하라. 말루쿠 제도의 정향, 반다 제도의 육두구, 인도 말라바르 해안의 후추. VOC는 인도네시아에서 구매한 정향을 유럽에서 14~17배 가격에 판매했다. 1670년, VOC 선단은 유럽 전체 상선 총 톤수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

400년이 흘렀다. 인구 1,800만의 이 작은 나라는 다시 같은 위치에 있다.

17세기 — 세계 향신료 무역의 병목. 19~20세기 — 로테르담 항구, 유럽 화물의 관문. 20세기 — 로열 더치 셸, 석유 공급망. 21세기 — ASML, 반도체 제조의 병목. VOC가 해상 무역로를 장악했다면, ASML은 반도체 제조의 기술적 병목을 장악했다. 구조가 동일하다. 유일한 공급자. 모든 경쟁자가 이 기업을 통과해야 함. 국가가 이 병목을 통제하면 지정학적 레버리지 발생. 대체재 없음.

이 나라의 전략적 사고방식은 "가장 강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자가 되는 것"이다. 3장에서 리콴유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불가결성을 보았다. 네덜란드의 불가결성은 성격이 다르다. 400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병목점을 찾아 점유해온 역사적 DNA다. 설계가 아니라 축적이다.

중국은 이 독점을 깨려 한다. 상하이 SMEE가 28나노미터 수준의 DUV 장비를 생산하고 있으나, ASML의 EUV와는 최소 10년 이상의 격차다. 전직 ASML 엔지니어들이 참여하는 비밀 EUV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도 있다. 중국 정부의 목표는 2028년, 현실적 전망은 2030년 이후.

그러나 근본적 장벽이 있다. 장비의 설계도를 복사할 수 있어도, 자이스가 15년 걸려 개발한 광학계와 트럼프가 10년 걸려 개발한 레이저를 단기간에 복제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실제 양산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피드백 데이터 — 고장 패턴, 최적화 노하우, 부품 간 상호작용의 미세한 균형 — 는 구매하거나 훔칠 수 없다. 5장에서 이스라엘의 사이버 기술 유출 사례를 보았다. 그러나 ASML의 해자는 코드 몇 줄이 아니라 30년치 경험의 총합이다. 시간이 만든 해자는 돈으로 넘을 수 없다.


7. 독점이 국가를 만들 때

ASML의 사례는 이 책의 핵심 명제 — "사이의 전략" — 의 가장 완벽한 현대적 실현이다.

네덜란드는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인텔도, 대만의 TSMC도, 한국의 삼성도, 중국의 SMIC도 ASML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4장에서 대만의 TSMC가 "실리콘 방패"로 기능하는 것을 보았다. ASML은 그 방패를 만드는 도구의 유일한 공급자다. 방패 자체보다 방패를 만드는 기술이 더 강력한 레버리지를 갖는다 — 방패는 여러 개 만들 수 있지만, 방패를 만드는 도구는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점 레버리지"와 "경쟁 레버리지"의 구조적 차이다. TSMC는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이지만, 삼성이라는 경쟁자가 있다. 삼성은 세계 최대의 메모리 기업이지만,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존재한다. "가장 잘 만드는 것"은 시장 우위를 줄 뿐이다. "유일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존재 자체의 필수성을 만든다. ASML은 후자다. 경쟁자 없음. 대체재 없음. 가격 결정권은 ASML에. 고객에게 선택권 없음.

핵심 공식을 적용하면 ASML은 완벽한 사례다. 기술 혁신(30년간의 EUV 개발)이 자본 집중(시가총액 5,530억 달러, 유럽 최대 테크 기업)을 만들고, 이것이 사회적 긴장(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변수)이 되어, 제도 재설계(수출통제 체제의 탄생)를 촉발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ASML의 한계도 분명하다. 스위치가 워싱턴에 있다는 사실. 네덜란드가 독점의 이익을 오롯이 자국의 전략적 자산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미국의 지정학적 도구로 활용되는 구조. "없어서는 안 되는 자"가 되었으나, 그 "없어서는 안 됨"의 활용 권한은 더 강한 자에게 있다.

이 구조적 긴장은 유럽 차원에서도 감지된다. 이탈리아 보코니대 연구소(IEP)는 ASML을 "EU의 가장 중요한 협상 카드"라고 명명했다. 미국이 유럽에 대해 안보나 무역에서 압력을 가할 때, ASML의 독점적 지위가 유럽 전체의 협상력을 높여준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카드의 주인이 정작 네덜란드인지, 브뤼셀(EU)인지, 워싱턴인지는 불분명하다.

네덜란드 정부의 또 다른 고민도 있다. ASML이 네덜란드를 떠날 수 있다는 우려다.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ASML 유치를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ASML 스스로도 수출 통제가 성장을 제약할 경우 본사 이전을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한 적이 있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2026년 두 번째 캠퍼스를 승인하고, 주변 인프라 투자를 약속하는 등 유지 전략에 나섰다. 독점 기업을 보유한 국가의 역설 — 기업이 국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기업을 필요로 한다.

사이에 선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양쪽 모두에게 필수적이면서도, 양쪽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위치. 독점이 국가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독점만으로 주권이 되지는 않는다.


거울 속의 한국

ASML이 비추는 한국의 모습은 "병목의 병목"이다.

ASML 의존의 구조.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업이다. 그러나 두 회사 모두 ASML의 장비 없이는 최첨단 칩을 만들 수 없다. 2025년 기준 ASML은 EUV 시장 100퍼센트, 리소그래피 전체 시장의 94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다. EUV 장비 한 대에 3,000억 원. High-NA는 5,000억 원. 한국 반도체 산업의 전체 가치사슬이 벨트호번의 한 기업에 의존한다.

이중 병목. 더 심각한 구조가 있다. ASML 장비에 미국 기술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미국이 ASML을 통해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생산에 간접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삼성의 시안 공장(NAND 35~40퍼센트), SK하이닉스의 우시 공장(DRAM 40퍼센트)이 미국의 수출 허가에 좌우된다. 한국은 병목(ASML)에 의존하면서, 그 병목을 통제하는 또 다른 병목(미국 기술)에 이중으로 묶여 있다. 병목의 병목.

HBM이라는 가능성. 가장 근접한 돌파구가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다. 2025년 기준 시장 점유율 62퍼센트. NVIDIA의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HBM3E의 사실상 단독 공급자. 2026년 물량도 이미 완판. 차세대 루빈 플랫폼에서도 약 70퍼센트 점유율이 전망된다. 그러나 HBM은 아직 ASML이 아니다. 마이크론(21퍼센트)과 삼성(17퍼센트)이라는 경쟁자가 있다. "기술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ASML의 기준. 진정한 독점 레버리지에 도달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하다. 유일한 공급자 위치. 10년 이상 유지되는 기술 격차. 모든 경쟁자가 의존하는 핵심 공정. 국가가 수출을 통제하면 경쟁국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 SK하이닉스 HBM은 이 기준의 절반을 충족한다. 나머지 절반은 시간과 투자의 축적으로만 채울 수 있다.

ASML의 교훈은 명확하다. "가장 잘 만드는 것"보다 "유일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더 강력한 불가결성을 만든다. 네덜란드가 30년, 90억 달러를 투자해 만든 해자처럼 — 시간과 돈과 실패의 축적만이 진정한 독점을 만든다. 한국이 "ASML 모멘트"를 만들 수 있는가. 그 답은 HBM의 기술 격차를 얼마나 벌리고,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음 거울은 자원이라는 카드를 쥔 대국 — 인도네시아의 니켈 사다리다.


7장 끝 — 리서치 소스: R-15, R-02 (네덜란드 황금시대), C-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