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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4 — 느린 정의, 빠른 질서

3장 — 규제의 속도


1. 37년의 간극

1973년,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가 파생상품 가격을 계산하는 수식을 발표했다.

블랙-숄즈 공식은 추상적인 수학이 아니었다. 이 수식이 있으면 옵션 가격을 이론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였다. 위험을 분리하여 거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수십조 달러 규모의 시장이 이 수식 위에 세워졌다 — 물론 블랙-숄즈 하나가 파생상품 시장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의 금리 자유화, 1980년대의 금융 규제 완화, 1990년대의 전산화가 함께 작동했다. 그러나 수학이 없었다면 이 시장은 이렇게 빠르게 자라지 못했다.

기술이었다. 금융 기술이었다.

2010년 7월 21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도드-프랭크법에 서명했다. 장외파생상품 시장에 처음으로 포괄적 규제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1973년에서 2010년까지 37년이었다.

3권에서 우리는 이 간극의 안쪽을 보았다. 마이클 버리가 서브프라임 MBS 투자설명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을 때 — 아무도 읽지 않은 그 서류들을 — 그는 시스템의 균열을 발견했다. 그러나 제도는 들을 귀가 없었다. 브룩슬리 본의 경고도, 마이클 버리의 베팅도, 제도의 응답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정보는 있었다. 신호는 있었다. 경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도가 신호를 처리하지 못했다.


2. 왜 37년인가

1장의 로마에서 우리는 기득권 포획을 보았다. 원로원이 라티푼디움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규제 결정권자였다.

금융에서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 그러나 더 정교하다.

1998년 그린스펀, 루빈, 레빗의 반격은 노골적 이해충돌이 아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시장 자기조절을 믿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 이데올로기가 20세기 금융 세계에서 "효율적 시장 가설"이라는 학문적 언어를 입고 부활한 것이었다. 2장의 영국 공장주들이 "계약의 자유"를 들어 아동 노동 규제를 막은 것과 논리 구조가 같다.

이념이 이해관계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념이 이해관계보다 오래 산다.

2000년, 의회는 상품선물현대화법(Commodity Futures Modernization Act, CFMA)을 통과시켰다. OTC 파생상품을 CFTC 및 SEC의 규제 관할에서 명시적으로 면제한다는 내용이었다 — 신용부도스왑(CDS)과 이자율 스왑을 포함한 대부분의 장외 파생상품이 연방 감독 없이 거래될 수 있게 됐다. 규제 공백을 법으로 확정한 것이었다. 이 법안은 의회 회기 마지막 날 11,000페이지 예산안에 슬며시 끼워 넣어졌다. 별도의 위원회 심의도 없었고, 표결에 부쳐진 의원 대부분은 내용조차 읽지 않았다[주4].

경고는 있었다. 브룩슬리 본의 경고(1998). LTCM 붕괴(1998) — 노벨상 수상자들이 만든 헤지펀드가 파산 직전까지 갔고 FRB가 개입해야 했다. 오렌지 카운티 파산(1994) — 캘리포니아 지방정부가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약 17억 달러를 잃었다.

신호는 반복됐다. 제도는 반복적으로 신호를 무시했다.

구조적 이유가 있었다. C-01이 분석한 5가지 메커니즘 중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했다.

기득권 포획: 금융 산업은 미국 최대 로비 집단 중 하나였다. 규제가 완화될수록 수익이 늘었다. 더 많은 로비 자금이 더 많은 규제 완화를 가져왔다.

이념적 장벽: "시장이 스스로 규제한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 주류 경제학의 언어였다. 규제를 요구하는 사람이 "시장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됐다.

정보 비대칭: CDO(부채담보부증권), CDS(신용부도스왑)의 구조는 규제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이클 버리가 읽은 투자설명서를 — 2인치 두께의 서류를 — 규제 당국은 읽지 않았다. 읽을 인력도, 읽을 유인도 없었다.


3. 피를 봐야 움직인다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했다.

158년 역사의 투자은행이 무너지는 데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그 다음 날 AIG가 구제를 요청했다. 그 다음 주에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마비에 가까워졌다. 주식 시장이 붕괴했고, 신용 시장이 얼어붙었고, 기업들이 직원 급여를 지불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위기는 극적이었다. 한 번에, 눈에 보이게, 거대하게 터졌다. 미국에서만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에 약 400만 건 이상의 주택 압류가 완결됐다[주5]. 일부 집계에서는 압류 신청(foreclosure filing) 기준으로 1,000만 건을 상회하기도 했다. 집을 잃는다는 것은 숫자가 아니었다. 자녀의 학교, 이웃의 얼굴, 쌓아온 신용 이력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이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 뒤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2008년 9월부터 2009년 말까지 미국에서만 8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주6]. 제조업 노동자, 건설 인부, 은행 창구 직원 — 파생상품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필요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짊어지게 될 위험이 수십 층 위에서 설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훗날 9장에서 우리는 알고리즘이 채용과 해고를 결정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점심시간 직전, 스마트폰으로 날아온 해고 통지. 20년을 일한 상담사가 "효율성"이라는 단어 하나에 직업을 잃는 장면. 그때도 직접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그 결정의 구조를 알지 못한다. 구조를 설계한 사람과 구조를 감당하는 사람이 분리된다는 것 — 패턴은 반복된다.

5주 후인 10월 23일, 앨런 그린스펀이 하원 감독위원회에 앉았다. 18년간 연준 의장으로서 금융 세계의 규칙을 설계한 사람이었다. 헨리 왁스먼 위원장이 물었다. "당신은 시장이 스스로를 규제하게 놔두는 것의 확고한 옹호자였습니다. 제 질문은 단순합니다. 당신이 틀렸습니까?"

그린스펀이 답했다. "네, 저는 결함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영구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사실에 매우 고통받고 있습니다[주7]."

왁스먼이 되물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세계관이, 당신의 이데올로기가 옳지 않았다는 겁니까?"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것이 제가 충격을 받은 정확한 이유입니다. 저는 40년 넘게 그것이 탁월하게 잘 작동한다는 매우 상당한 증거를 가지고 살아왔으니까요."

40년간 견지한 이데올로기가 의회 증언석에서 공식적으로 붕괴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것을 "100년에 한 번 오는 신용 쓰나미"라고 불렀다. 앞서 본의 경고를 함께 막았던 SEC 위원장 아서 레빗도 나중에 인정했다. "나는 완전히 틀렸다. 앨런 그린스펀도 완전히 틀렸다. 밥 루빈도 완전히 틀렸다[주8]."

그것이 공식적 인정이었다. 브룩슬리 본이 경고를 쓰던 1998년의 워싱턴 봄밤으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의 인정이었다. 그 10년 동안 집을 잃은 400만 가구는, 그 인정이 위안이 되지 않았다.

22개월 후인 2010년 7월, 도드-프랭크법이 통과됐다. 2,300페이지. OTC 파생상품 규제, 볼커 룰(은행의 자기자본 투기 제한), CFPB(소비자금융보호국) 창설. 37년간 움직이지 않던 제도가 22개월 만에 움직였다.

피를 봐야 움직인다. 그러나 피를 보고 나면 빠르게 움직인다.

이것이 패턴이다. 1987년 블랙 먼데이에 다우지수가 하루 22.6% 폭락하자, 서킷 브레이커(거래 일시 중단 제도)가 수개월 만에 도입됐다. 2010년 플래시 크래시에 다우지수가 9분 만에 998포인트 추락하자, 개선된 서킷 브레이커가 그해 도입됐다.

위기 전에는 37년. 위기 후에는 22개월, 혹은 몇 달.


4. 10일의 붕괴

2022년 11월 2일. 코인데스크가 보도를 냈다.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계열사 알라메다 리서치의 재무제표가 주로 FTX 발행 토큰(FTT)으로 구성돼 있다는 내용이었다[주9].

11월 6일, 바이낸스 CEO 창펑자오(CZ)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바이낸스가 보유 중인 FTT 전량(약 5억 8천만 달러 상당)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11월 8일, FTX가 출금 처리를 사실상 중단했다. 72시간 내 60억 달러 이상의 출금 요청이 쏟아졌고 시스템이 버티지 못했다. 같은 날 바이낸스는 FTX 인수 의향서(MOU)에 서명했으나, 하루 만인 11월 9일 실사 후 인수를 철회했다.

11월 11일, FTX와 130여 개 계열사가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 법원에 챕터 11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뱅크먼-프리드가 CEO직에서 사임하고 구조조정 전문가 존 레이 3세가 후임으로 선임됐다.

10일이었다. 당시 기업 가치 320억 달러짜리 회사가 10일 만에 사라졌다. 고객 자금 80억 달러 이상이 계열사로 빠져나가 있었다. 사기였다. 그러나 그 사기를 가능하게 한 것은 규제 공백이었다.

아이러니는 그보다 깊었다. 뱅크먼-프리드는 무너지기 두 달 전인 2022년 9월에도 "더 엄격한 규제가 다음 암호화폐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공개 발언했다. 의회에 출석하여 CFTC의 암호화폐 감독을 옹호하기도 했다.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업계 리더의 모범으로 보였다.

FTX가 무너진 직후, 《복스(Vox)》 기자 켈시 파이퍼가 뱅크먼-프리드에게 트위터 DM을 보냈다. 규제 옹호가 진심이었느냐고 물었다.

"응, 그냥 홍보용이었어[주10]."

같은 대화에서 그는 덧붙였다. "젠장할 규제당국들. 모든 걸 더 나쁘게 만들 뿐이야[주11]." 의회 증언석의 얼굴과 비공개 메시지의 얼굴 사이의 간극 — 그것이 산업의 자율 규제라는 개념의 구조적 한계였다.

2022년 10월 3일, FSOC(금융안정감시위원회)가 공식 보고서에서 "암호화폐 현물시장에 대한 직접적 연방 감독 없음"을 가장 심각한 공백으로 지목했다[주12]. 그 보고서가 나온 지 39일 만에 FTX가 무너졌다.

경고는 정확했다. 의회는 없었다.

3권 12장이 끝날 때 우리는 메디치 가문의 지점장 이야기로 돌아갔다. 600년 동안 금융의 핵심 질문은 하나였다. "이 사람이 돈을 갚을 수 있는가?" 2005년 월스트리트에서는 이 질문을 묻는 사람이 사라졌다. 그것이 2008년 위기의 진짜 원인이었다.

FTX도 같았다. 기본 질문이 사라졌다. "이 거래소의 고객 자금은 고객 것인가?" 규제가 없으니 묻는 사람도 없었다.


5. 규제의 시간 해상도

3권 3장에서 우리는 경기도 외곽 저축은행의 여신심사위원회를 보았다. 2010년대 초, 부동산 PF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저축은행들이 연쇄 도산한 한국 금융 위기의 한복판이었다.

BIS 비율. PF 연체율. 분기별 보고서. 위원장이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훑는다. 용인 건 시행사의 현장 공정률은 93%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시행사 대표가 전화를 안 받기 시작한 것은 그 서류에 잡히지 않는다. 현장에 발품을 팔아야 안다.

이것이 규제의 시간 해상도 문제다.

현실은 매일 움직인다. 규제는 분기마다 측정한다. 그 사이에서 위기가 자란다.

1998년 LTCM의 레버리지 비율은 분기별 규정 안에 있었다. 실시간으로 보면 달랐다. 2008년 리먼의 자본 비율도 서류상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모기지 시장이 하루 단위로 무너지는 동안 분기 보고서는 아직 다음 달이었다. CEO 리처드 풀드는 2008년 4월 주주들에게 "최악은 지나갔다"고 말했다. 5개월 후 회사는 파산했다. 수석 리스크 관리자 매들린 앤톤치치는 모기지 위험을 줄이라고 건의했지만 무시당했고, 회계 부정을 지적한 수석부사장 매튜 리는 서한을 보낸 며칠 후 해고됐다. 서류상의 숫자는 건강했다. 현실은 무너지고 있었다.

AI가 이 문제를 바꿀 수 있다. 건설 현장 드론 영상, 자재 납품 데이터, 레미콘 타설 기록을 실시간 교차 검증하면 "서류 공정률과 현장이 맞지 않는다"는 신호를 분기 말이 아니라 주 단위로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AI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규제 근거 법률, 예산 확보, 시스템 구축, 시범 운영, 전면 시행. 최소 3~5년.

그 사이에 다음 위기가 자란다. 속도의 역설이다.


6. 37년에서 6개월로

간극이 압축되고 있다.

블랙-숄즈에서 도드-프랭크까지 37년이었다. 비트코인에서 GENIUS Act까지 17년이었다[주13]. EU AI Act는 ChatGPT 등장 후 33개월 만에 발효됐다. 중국은 8.5개월 만에 생성형 AI 규제를 냈다.

37년 → 17년 → 33개월 → 8.5개월.

그러나 기술 변화의 속도도 함께 빨라지고 있다. 블랙-숄즈 공식은 1973년에 나왔고 파생상품 시장이 성숙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ChatGPT는 2022년 11월에 나왔고 2023년 초에 전 세계 1억 명이 쓰고 있었다. AI 모델은 6개월 주기로 세대를 교체한다.

규제자가 EU AI Act 세부 지침을 작성하는 동안, 규제하려는 AI 시스템은 이미 세 번 바뀐다.

간극의 절대 시간은 줄었다. 그러나 기술과 규제 사이의 상대적 거리는 여전히 크거나 더 커졌다.

이것이 4권이 직면하는 핵심 긴장이다. 37년의 간극에 공장 아동 수만 명이 희생됐다. AI 시대의 간극에는 무엇이 희생되고 있는가? 그것이 충분히 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7. 위기를 기다릴 수 없는 이유

2장에서 우리는 영국 공장법이 최종적으로 작동한 조건을 분석했다. 세 가지였다. 증거의 공식화, 사회적 학습, 집행 메커니즘의 설계.

금융 규제도 같은 패턴을 밟았다. 브룩슬리 본의 경고(증거의 공식화)가 있었고, LTCM과 엔론(사회적 학습의 시도)이 있었다. 그러나 집행 메커니즘이 설계되기 전에 위기가 왔다.

영국은 64년 동안 수만 명의 아이들이 고통받는 시간을 감당했다. 금융은 37년의 간극 끝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감당했다. AI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위기의 규모는 무엇인가?

알고리즘이 수백만 명의 신용 결정을 내리고, 채용을 결정하고, 의료 진단에 개입하고, 민주주의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 이 시스템들이 체계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질 때 — 2008년의 리먼처럼 — 그때 제도가 움직일 것인가?

그때는 이미 수십 년이 지나 있을 수 있다.


다음 두 장에서 우리는 현재진행형인 두 개의 실험을 본다. 4장은 브뤼셀이다. 35개월의 협상 끝에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법을 만들어낸 유럽연합. 그리고 5장은 베이징이다. 8.5개월 만에 규제를 발표한 중국. 두 실험은 속도와 정당성이라는 트레이드오프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37년이 걸린 금융 규제의 교훈을 앞에 두고, 두 체제는 서로 다른 답을 선택했다. 금융 위기 때 그린스펀이 "나는 시장이 스스로 오류를 교정할 것이라는 40년간의 믿음에서 결함을 발견했다"고 고백했다면, AI 시대의 입법자들은 어떤 결함을 발견하게 될 것인가 — 그리고 그 발견이 또 다시 위기 이후에 올 것인가. 4장은 그 질문에 먼저 답하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