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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뉴욕.
헤이든 애덤스는 지멘스(Siemens) 사무실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기계공학 엔지니어로 입사한 지 1년. 해고 통보는 간결했고,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책상 위의 물건을 박스에 넣으면서, 그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한 달쯤 뒤, 이더리움 재단 연구원인 친구 칼 플로어슈(Karl Floersch)가 전화를 걸어왔다.
"기계공학은 잊어. 지금 당장 이더리움을 공부해. 이게 미래야."
애덤스는 암호화폐가 뭔지 몰랐다.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있었으나, 그게 자기 인생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해고된 사람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퇴직금을 털어 솔리디티(Solidity)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 레딧에 올린 짧은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다. 복잡한 주문장(order book) 없이, 수학 공식 하나로 작동하는 탈중앙화 거래소의 아이디어였다.
x * y = k
풀에 있는 토큰 A의 수량이 x, 토큰 B의 수량이 y이고, 두 수의 곱 k는 상수다. 누군가 A를 사면 풀에서 A가 빠져나가고 B가 들어온다. k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가격이 자동 조정된다. 매수자와 매도자가 호가를 부를 필요가 없다. 풀 자체가 거래 상대방이 된다.
뉴욕증권거래소에는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를 쏟아내는 마켓메이커가 있고, 호가를 중개하는 스페셜리스트가 있고, 그 위에 수천 명의 직원과 수백 대의 서버가 있다. 부테린의 제안은 그 모든 것을 수학 공식 한 줄로 대체하겠다는 것이었다. 금융업 종사자들은 비웃었다. 호가창 없이 어떻게 거래소가 돌아간다는 것인가. 마켓메이커의 호가 제시, 스프레드 관리, 유동성 공급 — 수십 년간 쌓아올린 시장 구조를 수학 공식 한 줄로 대체한다는 발상은 장난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금융을 모르는 애덤스에게는 그 편견이 없었다. 블랙-숄즈 공식이 그러했듯, 때로 아웃사이더의 무지가 인사이더의 관성을 이긴다. 뉴욕의 작은 방에 틀어박혀, 그는 부테린의 아이디어를 코드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더리움 재단에서 65,000달러의 그랜트를 받았다. 월스트리트의 퀀트 펀드가 한 명의 트레이더에게 지급하는 연간 보너스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사무실도 직원도 없었다. 2018년 11월, 프라하에서 열린 개발자 컨퍼런스 Devcon 4에서 그는 유니스왑(Uniswap)이라 이름 붙인 프로토콜을 세상에 공개했다. 발표자는 애덤스 한 명뿐이었고, 관객 대부분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유니스왑의 핵심 아이디어를 비전문가를 위해 풀어보면 이렇다. 전통적인 거래소에서는 사과를 팔고 싶은 사람과 사고 싶은 사람이 만나야 거래가 성립한다. 팔고 싶은 사람이 "1,000원에 팝니다"라고 쓰고, 사고 싶은 사람이 "1,000원에 삽니다"라고 쓰면 거래가 체결된다. 이것이 주문장(order book) 방식이다. 유니스왑은 다르게 작동한다. 거대한 항아리 두 개를 상상하면 된다. 한쪽에는 사과가, 다른 쪽에는 돈이 들어 있다. 사과를 사고 싶은 사람은 항아리에 돈을 넣고 사과를 꺼낸다. 항아리 속 사과가 줄어들수록 남은 사과의 가격이 올라간다. 두 항아리의 곱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가격이 자동 조정된다. 매도자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항아리가 거래 상대방이다.
2020년 여름이 오기까지 아직 2년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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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세계가 멈췄다.
3월 11일, 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다. 3월 15일, 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0.25%로 긴급 인하했다. 도시들이 봉쇄되고, 공항이 닫히고, 사람들이 집 안에 갇혔다.
금리가 0에 수렴하면, 돈은 갈 곳을 잃는다. 은행 예금 이자가 사라지고, 국채 수익률이 바닥을 치면, 자본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낯선 곳으로 흘러든다. 2008년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고, 그때 자본이 향한 곳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였다. 2020년, 자본이 향한 곳 중 하나가 이더리움이었다.
1월 1일 기준, 이더리움 위의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 DeFi) 프로토콜들에 묶여 있는 총예치금(Total Value Locked, TVL)은 약 6억 8,800만 달러였다. 적은 돈이 아니지만, 월스트리트의 기준으로는 반올림 오차에 불과한 규모다.
6월이 되었을 때, TVL은 10억 달러를 넘었다. 아직까지는 점진적 성장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사건이 모든 것을 바꿨다.
6월 15일, 컴파운드(Compound)가 거버넌스 토큰 COMP의 배포를 시작했다.
컴파운드는 탈중앙화 대출 프로토콜이다. 사용자가 암호화폐를 예치하면 이자를 받고, 다른 사용자가 담보를 맡기고 빌려간다. 은행의 예금-대출 기능을, 건물도 직원도 없이 스마트컨트랙트 하나로 구현한 것이다. 창업자 로버트 레쉬너(Robert Leshner)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을 갖춘 정통 금융인이었다. 정장을 입고 기관 투자자를 만나는 그를, 사람들은 "월스트리트의 문법으로 말하는 DeFi 빌더"라고 불렀다.
COMP 토큰 배포의 구조는 단순했다. 컴파운드에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도, 빌리는 사람에게도, COMP 토큰을 보상으로 준다. 레쉬너의 설명은 이랬다.
"우리의 프로토콜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프로토콜의 지분을 나눠주겠습니다."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COMP의 시장 가격이 치솟으면서,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리는데도 보상 토큰의 가치가 이자 비용을 초과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돈을 예치하고, 그 예치금을 담보로 다시 빌리고, 빌린 돈을 또 예치하는 순환을 반복했다. '풍차 돌리기'라 불리는 재귀적 레버리지(recursive leverage)였다. 수백 퍼센트, 때로는 수천 퍼센트의 연환산 수익률(APY)이 화면에 떴다.
이 수익률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세 겹으로 나뉜다. 첫째, 차입자가 내는 이자에서 오는 실수익. 둘째, 보상 토큰의 시장 가치. 셋째, 그 토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 둘째와 셋째가 첫째를 압도하는 구조였다. 토큰 가격이 오르면 수익률이 올라가고, 수익률이 올라가면 자금이 유입되고, 자금이 유입되면 토큰 가격이 오른다. 순환이 순환을 먹여 살리는 구조 — 이것이 지속 가능한지 아닌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묻기엔 수익률이 너무 높았다.
누군가가 이 행위에 이름을 붙였다. 유동성 채굴(yield farming).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듯, 자본을 뿌리고 토큰을 수확한다는 뜻이었다. 텔레그램과 디스코드에서 "디젠(degen)"이라는 단어가 자조적인 훈장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퇴폐적 도박꾼이라는 뜻이었으나, 쓰는 사람들은 자랑스러워했다. 새벽 4시에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가스비와 청산 위험과 보상 토큰 가격을 동시에 추적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7월 TVL은 18억 달러. 8월 39억 달러. 9월 93억 달러. 석 달 만에 9배가 뛰었다.
코로나 봉쇄가 이 폭발에 연료를 부었다. 집에 갇힌 사람들이 노트북을 열었다. 주식 시장에는 로빈후드(Robinhood)가 있었고, 암호화폐 시장에는 메타마스크(MetaMask)가 있었다. 여우 머리 모양의 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세계 어디서든 은행 계좌 없이 DeFi에 접속할 수 있었다. 크롬 브라우저에 탭이 열 개쯤 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풍경이었다. 이더스캔에서 보류 중인 트랜잭션을 확인하는 탭, 유니스왑의 분홍색 유니콘이 그려진 거래 화면, 컴파운드의 녹색 대시보드, 텔레그램의 "고래 알림(Whale Alert)" 채널. 화면마다 숫자가 깜박이고, 숫자가 바뀔 때마다 자산이 늘거나 줄었다.
누군가는 이 여름을 "DeFi 서머"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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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모니터의 푸른 빛만이 감도는 방에서, 앙드레 크로니에(Andre Cronje)는 또다시 같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브라우저 탭을 열어 Aave의 이자율을 확인한다. 옆 탭에서 컴파운드의 이자율을 확인한다. 또 옆 탭에서 dYdX의 이자율을 확인한다. 가장 높은 곳에 스테이블코인을 옮긴다. 내일이면 순서가 바뀌어 있으니 다시 확인해야 한다. 모레도 마찬가지다.
법학을 전공했다가 프로그래밍으로 전향한 크로니에는, 통신 기술과 핀테크를 거쳐 이더리움 생태계에 발을 들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이 단순 반복이 견딜 수 없었다.
"왜 내가 매일 이걸 직접 해야 하지? 코드가 알아서 가장 이자가 높은 곳으로 돈을 옮기면 되잖아."
그는 주말을 쪼개 도구를 만들었다. iEarn이라 이름 붙인 프로토콜이었다. 사용자가 돈을 넣으면 스마트컨트랙트가 여러 대출 프로토콜을 스캔해 최고 수익률을 제공하는 곳으로 자금을 자동 이동시킨다. 수익률 통합기(yield aggregator)의 시초였다. 600년간 은행원이 해오던 일 — 고객의 돈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 을 코드 몇 줄이 대신했다. 다만 은행원에게는 출퇴근 시간이 있고, 코드에는 없었다.
2020년 초 코드를 공개했을 때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마케팅이 없었고, 투자 유치도 없었다. 코드가 작동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코드가 은행보다 수십 배 높은 이자를 가져다준다는 사실만으로 수억 달러가 밀려들었다.
7월, 크로니에는 DeFi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실험을 감행했다. Yearn Finance의 거버넌스 토큰 YFI를 배포하면서, 그는 자신을 위한 물량을 정확히 0개로 설정했다. 초기 투자자 몫도 없었고, 벤처캐피털의 지분도 없었다. 오직 프로토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사용자만이 토큰을 받을 수 있었다.
공정한 출시(Fair Launch). 비트코인 이후 가장 탈중앙화된 토큰 배포라는 평가가 나왔다. 0달러에서 출발한 YFI의 가격은 한때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을 추월했다. 크로니에는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 다른 프로토콜 창업자들처럼 토큰의 10%만 자기 몫으로 떼어놓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찼다.
대신 매일 수만 명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버그가 발견될 때마다, 가격이 급락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에게 책임을 물었다. 살해 협박도 섞여 있었다. 크로니에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프로덕션 환경에서 테스트한다(I test in prod)"고 말한 적이 있다. 빠르게 만들고, 빠르게 배포하고, 문제가 생기면 빠르게 고친다. 실리콘밸리의 "빠르게 움직이고 깨뜨려라(Move fast and break things)"를 DeFi에 적용한 것인데, 사용자의 돈이 걸려 있는 프로토콜에서 이 철학은 다른 결과를 낳았다. 깨지는 것이 코드가 아니라 예금이었다.
그는 수차례 "DeFi를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트위터를 폐쇄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가장 탐욕스러운 자본이 몰려든 시장에서, 그 판을 짠 설계자는 돈에 무관심했고, 그래서 더 빨리 소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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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 서머의 세 건축가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왔다.
레쉬너는 정장을 입은 체제 내 혁신가였다. 그에게 DeFi는 무정부적 혁명이 아니라, 더 효율적인 자본 배분을 위한 기술적 진화였다. 그는 "머니 레고(Money Legos)"라는 비유를 즐겨 썼다. 레고 블록 하나는 플라스틱 조각이지만, 결합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컴파운드에서 빌린 돈을 유니스왑에 넣고, 유니스왑의 유동성 지분을 다시 담보로 맡기는 식의 프로토콜 간 조합이 가능한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조합 가능성(composability)이 DeFi의 성장 속도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전통 금융에서 은행과 증권사와 보험사가 각각의 면허와 규제와 시스템 안에서 격리되어 있는 것과 달리, DeFi의 프로토콜들은 누구의 허가도 없이 서로를 호출할 수 있었다. 한 블록 안에서 대출, 거래, 유동성 공급이 연쇄적으로 실행되었다.
크로니에는 반체제적 해커였다. 커뮤니티에 모든 권한을 넘기고 뒤로 물러났다.
애덤스는 금융을 모르는 순수한 빌더였다. 해고된 기계공학자가 친구의 조언을 따라 수학 공식 하나를 코드로 옮겼을 뿐인데, 그것이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량을 넘어섰다. 2020년 9월, 유니스왑의 일일 거래량이 코인베이스(Coinbase)를 추월했을 때 업계가 경악한 이유는 명확했다. 수천 명의 직원, 수억 달러의 투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기업이, 직원 한 명이 방구석에서 만든 오픈소스 코드에 패배한 것이다. 호가창이 없어도, 상장 심사가 없어도, 고객센터가 없어도 거래소는 작동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세 사람은 DeFi의 세 갈래를 체현하고 있었다. 크로니에의 완전한 탈중앙화, 레쉬너의 전통 금융과의 융합, 애덤스의 수학적 인프라. 동기도 달랐다. 크로니에는 "내 돈을 자동으로 관리하고 싶다"는 개인적 게으름에서 출발했고, 레쉬너는 "더 효율적인 자본 시장"이라는 기관적 비전을 품었으며, 애덤스는 "수학 공식이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빌더의 호기심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세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들이 만든 프로토콜에는 여신심사위원회가 없었다. 바인더를 넘기는 심사역도, 분양률 가정을 지적하는 리스크관리팀장도, "조건부로 올려봅시다"라고 말하는 위원장도 없었다. 대신 코드가 있었다. 코드가 담보를 확인하고, 코드가 금리를 정하고, 코드가 청산을 집행했다. 600년간 다섯 명이 2시간에 걸쳐 하던 일을, 코드가 12~15초 만에 해치웠다. 문제는 코드에게는 "잠깐, 이게 정말 괜찮은 건가?"라고 묻는 습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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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콜이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은 이렇다.
Aave라는 프로토콜에서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은 담보를 맡긴다. 이더리움(ETH) 1,000달러어치를 담보로 넣으면, 프로토콜이 정한 담보비율(LTV, Loan-to-Value)에 따라 일정 금액을 빌릴 수 있다. LTV가 80%라면, 800달러까지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금리는 알고리즘이 정한다. 풀의 이용률(utilization rate) — 전체 예치금 중 얼마나 빌려갔는가 — 에 따라 금리가 자동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수요와 공급이 직접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다.
여기까지는 은행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은행에서 부동산 PF 대출을 받으려면, RM이 시행사를 만나고, 감정평가서를 발주하고, 바인더를 묶고, 여신심사위원회에 올린다. 다섯 명이 2시간을 논쟁하고, 분양률 73%가 현실적인지를 두고 심사역과 RM이 맞서고, 위원장이 고민 끝에 "조건부 가결"을 선언한다. 680억 원의 흐름이 결정되는 데 수 주에서 수 개월이 걸린다.
Aave에서는 약 12~15초면 된다. 2020년 당시 이더리움의 블록 생성 시간이다. 담보를 넣는 트랜잭션이 블록에 포함되는 순간, 코드가 담보 가치를 확인하고, LTV를 계산하고, 대출을 승인한다. 서류가 없고, 회의가 없고, 도장이 없다. 신원 확인도 없다. 프로토콜은 빌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며, 알 필요도 없다. 주소(address)와 담보만 있으면 된다. 나이지리아의 대학생이든, 뉴욕의 헤지펀드든, 서울의 직장인이든 동일한 규칙이 적용된다. 지리적 위치, 사회적 지위, 과거의 신용 이력 — 인간 게이트키퍼가 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모든 것이 제거되었다.
"이 사람이 돈을 갚을 수 있는가?"
600년간 자본 배분의 핵심이었던 이 질문이 변형된다. 메디치 은행의 지점장은 브뤼헤 양모 무역상의 평판과 상환 이력을 저울질했다. 저축은행의 심사역은 시행사의 재무제표와 분양률 가정을 따졌다. 무디스의 분석가는 CDO 트렌치의 상관관계를 모델에 집어넣었다. 질문의 형태는 달라졌으나 구조는 같았다 — 인간이 판단하고, 인간이 결정하며, 인간이 책임졌다.
Aave는 그 질문 자체를 다시 쓴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 "이 주소의 담보가 충분한가." 질문의 주체가 인간에서 코드로 넘어갔고, 질문의 대상이 사람에서 숫자로 바뀌었다. 신용(credit)이라는 인간적 개념이 담보비율이라는 수학적 임계값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리고 코드는 한 가지 더 한다. 담보 가치가 떨어져 건전성 지표(health factor)가 1.0 아래로 내려가면, 자동 청산이 실행된다. 청산 봇이 담보의 절반을 매각하고, 부채를 상환하며, 5%의 보너스를 가져간다. 0.3초. 항소 절차는 없다. 사정을 참작하는 위원회도 없다. 저축은행에서 PF 대출이 부실화되면, 시행사를 방문하고, 경매를 논의하며, 법원에 압류 신청을 넣는다. 몇 달, 때로는 몇 년이 걸린다. Aave에서는 트리거부터 실행까지 1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코드는 냉정하고, 그 냉정함이 시스템을 안전하게 만든다 — 적어도 코드가 정상 작동하는 한.
Aave에는 또 하나의 발명이 있었다. 플래시론(flash loan). 담보 없이 수백만 달러를 빌릴 수 있되, 빌린 돈을 같은 트랜잭션 안에서 갚아야 한다. 이더리움의 트랜잭션은 원자적(atomic)이다. 중간에 쪼갤 수 없다. 빌리고, 활용하고, 갚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트랜잭션에 들어가야 하며, 갚지 못하면 전체 트랜잭션이 되돌려진다. 시작한 적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기존 금융에서는 불가능한 구조다. 은행에 가서 "10억을 빌려주세요, 0.1초 뒤에 갚을게요"라고 말하면, 문 앞에서 막힌다. 심사 서류를 내야 하고, 신용 조회를 해야 하며, 위원회에 올려야 한다. 그러나 코드의 세계에서는 시간의 입자가 다르다. 하나의 블록 안에서 빌리고, 차익을 실현하고, 원금과 수수료를 갚는 일이 가능하다. 12초라는 블록타임 안에 600년 금융이 상상하지 못한 구조가 작동하고 있었다.
속도의 차이를 나열하면 이렇다. 메디치 은행에서 피렌체의 환어음이 브뤼헤에 도착하는 데 20~25일이 걸렸다. 1694년 잉글랜드 은행의 첫 국채 청약에는 12일이 소요되었다. 블랙-숄즈 공식을 TI 계산기에 넣고 옵션 가격을 산출하는 데는 수 분이 걸렸다. 2010년 플래시 크래시에서 다우존스가 1,000포인트 빠지는 데는 34분이었다. Aave의 대출 승인은 약 12~15초, 청산은 0.3초다. 자본 배분의 속도가 압축된 궤적이 여기에 있다. 환어음에서 스마트컨트랙트까지, 25일에서 수십 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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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2월 31일 기준, DeFi 프로토콜들의 TVL은 154억 달러에 달했다. 1월의 22배였다. 프로토콜별로 보면, 컴파운드 27억 달러, 유니스왑 24억 달러, Aave 20억 달러, 메이커다오(MakerDAO) 16억 달러, Yearn Finance 4억 5,000만 달러. 사용자 수는 1월의 약 15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성공 서사다. 그러나 그 수치 아래에는 균열이 있었다. 수천 퍼센트 APY의 이면에는 순환 참조가 숨어 있었다. 보상 토큰의 가치가 신규 유입 자금에 의존하고, 유입 자금은 높은 APY에 의존하며, APY는 다시 보상 토큰의 가치에 의존한다. 토큰 보상을 제거한 뒤에도 양(+)의 수익이 남는 프로토콜은 극소수였다. 나머지는 새 자본이 옛 자본의 수익을 지불하는 구조로 돌아가고 있었다 — 찰스 폰지가 1920년 보스턴에서 우편 쿠폰으로 했던 것과 구조적으로 닮은 형태였다.
10월 26일, 이더스캔에 트랜잭션 하나가 올라왔다. 하베스트 파이낸스(Harvest Finance)를 대상으로 한 공격이었다. 트랜잭션을 열면 수십 개의 내부 호출이 중첩된 실행 흔적이 보인다. 플래시론으로 수억 달러를 순간 조달하고, 커브(Curve) 풀에 쏟아부어 UST 가격을 왜곡한 뒤, 그 왜곡된 가격으로 하베스트 볼트에 예치하고 즉시 인출하기를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플래시론을 갚고, 차익만 챙겨 사라진다. 2,400만 달러. 걸린 시간은 수 초였다.
디스코드 채팅방이 패닉으로 물들었다.
"왜 잔고가 줄어들어?" "관리자?" "끝났다."
이 한 건이 예외는 아니었다. 2월에는 bZx 프로토콜이, 8월에는 YAM이 35분 만에 99% 폭락했다. 9월에는 스시스왑(SushiSwap) 창업자 셰프 노미(Chef Nomi)가 개발자 펀드 1,400만 달러를 스스로 매도했다 — "러그풀(rug pull)", 발밑의 양탄자를 잡아당기는 행위가 생태계의 어휘에 새겨진 사건이었다. 공통점은 하나였다. 공격자든 내부자든, 코드의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규칙의 빈틈을 이용했다.
게이트키퍼를 제거하면 마찰이 사라진다. 그러나 마찰이 사라진 자리에 빈틈도 남는다. 2016년 더 다오(The DAO) 해킹 때 제기된 질문 — 코드의 취약점을 이용하는 것이 도둑질인가, 계약의 이행인가 — 이 4년 뒤에도 답을 찾지 못한 채 반복되고 있었다. 그때 이더리움은 하드포크로 역사를 되돌리는 극단적 조치를 택했다. "코드가 법"이라는 원칙을 스스로 위반한 것이다. DeFi 서머의 공격들에 대해서는 그런 구제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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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년 뒤, 코드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가장 거대한 구조물이 무너졌다.
테라(Terra)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었다. 달러에 1:1로 연동되는 UST라는 토큰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LUNA라는 토큰이 있었다. 보통의 스테이블코인 — 예컨대 USDT나 USDC — 은 은행에 달러를 예치해놓고 그만큼의 토큰을 발행한다. 1달러의 토큰 뒤에 1달러의 실물 자산이 있다. 단순하지만 견고한 구조다. 테라의 접근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달러 한 푼 없이, 순수하게 알고리즘과 차익거래 인센티브만으로 가격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담보 없는 안정성. 그것은 지지대 없는 아치와 같은 구상이었다 — 힘의 균형이 유지되는 한 서 있지만, 한쪽이 밀리는 순간 전체가 무너진다.
작동 방식은 이랬다. UST의 가격이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차익거래자가 시장에서 UST를 싸게 사서 프로토콜에서 1달러어치의 LUNA로 교환한다. UST가 소각되어 공급이 줄고, 가격이 1달러로 돌아온다. 반대 방향도 같은 원리다 — 이론적으로는.
창업자 도권(Do Kwon). 스탠퍼드 컴퓨터공학 전공. 그는 스스로를 "스테이블코인의 마스터"라 칭했고, 비판자들에게는 "나는 트위터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토론하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메이커다오의 DAI를 겨냥해 "내 손으로 DAI는 죽을 것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알고리즘이 완벽하다는 확신이었다. LTCM의 머튼과 숄즈가 노벨상을 받은 직후 모델의 완벽함을 확신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확신이었다.
앵커 프로토콜(Anchor Protocol)이 성장 엔진이었다. UST를 맡기면 연 19.5~20%의 이자를 지급했다. "DeFi의 저축 계좌"라는 마케팅이었다. 유통되는 UST의 70% 이상이 앵커에 묶여 있었다. 문제는 이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대출 수요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부족분은 테라폼랩스(Terraform Labs)와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가 수혈했다. 보조금으로 이자를 지급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수혈이 끊기면 앵커가 흔들리고, 앵커가 흔들리면 UST가 흔들리고, UST가 흔들리면 전체가 무너진다.
2022년 5월 7일 토요일, 대규모 매도가 시작되었다. 커브(Curve) 풀에서 UST가 쏟아져 나왔다. 가격이 0.985달러로 내렸다. 도권의 반응 — "난 주말에 일어난 일 따윈 신경 안 쓴다."
5월 9일 월요일, 앵커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UST가 0.60~0.70달러까지 추락했다. 도권이 트윗했다. "추가 자본을 투입 중이다 — 진정해라 얘들아(Deploying more capital — steady lads)."
그러나 알고리즘의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가 멈추지 않았다. UST 매도 → LUNA 발행 → LUNA 가치 하락 → UST 신뢰 붕괴 → UST 추가 매도. 80,000 비트코인(약 30억 달러), LFG의 준비금 전액이 페그 방어에 쏟아졌다. 역부족이었다.
5월 12일, LUNA 가격 0.01달러 아래. 유통량은 수억 개에서 6.5조 개로 폭증했다 —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마르크화가 증발한 것과 같은 현상이 디지털 토큰에서 재현된 것이다. 5월 13일 금요일, 검증인들이 네트워크를 정지시켰다. 상장 폐지 공지가 줄을 이었다. UST와 LUNA의 합산 시가총액 약 400억 달러. 7일 만에 흔적도 없었다. 저축은행 하나가 부실화되는 데는 수 년, LTCM이 무너지는 데는 수 개월이 걸렸다. 코드의 세계에서는 7일이면 충분했다.
LUNA의 가격 궤적은 숫자 하나로 요약된다. 2022년 4월 최고점 119달러 — 5월 13일 0.000001달러. 그 사이에 놓인 것은 알고리즘의 실패, 그리고 그 알고리즘을 설계한 인간의 오만이었다.
연쇄 파산이 이어졌다. 쓰리 애로스 캐피털(Three Arrows Capital)이 LUNA 투자에서 전액 손실을 입고 쓰러졌다. 3AC에 대출해준 셀시우스(Celsius)와 보이저(Voyager)가 고객 자금을 인출하지 못하고 파산했다. 이 연쇄의 끝에 2022년 11월 FTX의 붕괴가 기다리고 있었다 — 알라메다 리서치(Alameda Research)가 루나 사태로 입은 손실을 FTX 고객 자금으로 메꾼 것이 후에 밝혀졌다.
한국에서만 피해자가 약 2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앵커의 20% 이자에 퇴직금을 넣은 사람이 있었고, 대학 등록금을 넣은 사람이 있었다. "DeFi의 저축 계좌"라는 마케팅은 은행 예금의 안전성을 연상시켰지만, 그 뒤에 있는 것은 담보 없는 알고리즘이었다. 저축은행 예금자가 자기 돈이 부동산 PF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모르듯, 앵커 예금자도 자기 돈이 어떤 메커니즘 위에 올려져 있는지 몰랐다. 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문지기의 실패는 결국 가장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큰 피해를 남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1호 사건으로 지정했다. 도권은 싱가포르에서 두바이로, 세르비아로, 몬테네그로로 도주했다. 2023년 3월 위조 여권 혐의로 체포되었다. 미국으로 인도되어 재판을 받았고, 2024년 11월 사기 등 9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천재의 오만은 이 600년 서사에서 가장 지루하게 반복되는 패턴이다. 15세기 로렌초 데 메디치가 예술에 몰두하며 은행을 방치한 것, 아이작 뉴턴이 남해회사에 재투자해 전 재산을 날린 것, 머튼과 숄즈가 노벨상 직후 LTCM을 파산시킨 것. 도권은 같은 패턴의 2022년 버전이었다. "알고리즘이 완벽하다"는 주장은 "모델이 완벽하다"는 주장의 블록체인 번역이었고, 결말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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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것은 하나의 프로토콜만이 아니었다.
테라/루나의 붕괴 이후 DeFi 전체의 TVL은 2022년 5월 2,290억 달러에서 6월 817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해킹 피해도 급증했다 — 2022년 한 해 동안 DeFi에서 약 31억 달러가 해킹과 익스플로잇으로 사라졌다. "코드가 법"이라는 슬로건이 "코드의 결함이 곧 재앙"이라는 현실과 충돌한 한 해였다.
무너진 것은 "코드가 게이트키퍼를 대체할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이었다.
DeFi 서머가 증명한 것은 분명했다. 은행 없이도 대출이 가능하고, 거래소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며, 심사위원회 없이도 자본이 배분될 수 있다. x * y = k라는 공식 하나가 코인베이스를 거래량에서 추월했고, 스마트컨트랙트 하나가 저축은행 여신심사위원회의 기능을 12~15초 만에 수행했다. 해고된 기계공학자, 남아공의 법학도, 정장을 입은 CFA 홀더 — 그 누구도 금융 제도권의 인가를 받지 않았으나, 그들이 만든 코드는 작동했다.
그러나 테라/루나의 붕괴가 드러낸 것도 분명했다. 코드에도 게이트키퍼의 실패가 있다. 형태만 다를 뿐이다. 인간 게이트키퍼가 편향과 탐욕에 의해 실패했다면, 코드 게이트키퍼는 설계의 결함과 순환 참조에 의해 실패한다. 메디치 은행의 포르티나리가 부르고뉴 궁정에 과도한 신용을 제공해서 본사를 위기에 빠뜨린 것과, 앵커 프로토콜이 지속 불가능한 20% 이자를 약속해서 테라 전체를 무너뜨린 것 사이에는 600년의 시간이 있다. 그러나 실패의 구조는 동일하다. 위험을 과소평가한 누군가의 판단이, 시스템의 안전장치와 함께 붕괴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다. 포르티나리에게는 이름이 있었고, 메디치 본사는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의 대주주에게도 이름이 있었고, 검찰이 기소했다. 무디스의 분석가에게도 이름이 있었고, 의회가 소환했다. 러그풀을 실행한 익명의 개발자에게는 이름이 없다. 플래시론 공격으로 수천만 달러를 가져간 주소(address)에는 신원이 없다. 거버넌스 투표를 장악한 고래에게는 의무가 없다. 게이트키퍼가 사라진 자리에서, 책임도 함께 사라졌다.
그럼에도 2020년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2020년 말 154억 달러였던 TVL은 2021년 11월 1,813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테라 사태 이후 급락해 2022년 말에는 398억 달러까지 줄었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유니스왑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고, Aave에서는 여전히 12~15초마다 대출이 실행되었으며, 컴파운드의 금리 곡선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코드로 된 규칙은 멈추지 않았고, 그 규칙 위에서 자본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레쉬너는 컴파운드에서 물러나 수퍼스테이트(Superstate)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미국 국채를 토큰화해서 블록체인 위에 올리는 사업이었다. DeFi의 문법으로 전통 금융의 자산을 다루겠다는 것이다. 크로니에는 다시 돌아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또 떠났다. 애덤스는 유니스왑 랩스(Uniswap Labs)를 이끌며 프로토콜을 계속 개선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이후 행보는 DeFi의 세 갈래가 어디를 향하는지를 보여준다. 전통 금융과의 융합, 순수한 탈중앙화의 고독, 인프라의 묵묵한 진화.
DeFi가 만든 것은 코드로 된 규칙이었다. 규칙은 투명했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으며, 쉴 새 없이 작동했다. Aave의 LTV 파라미터는 공개되어 있었고, 유니스왑의 x * y = k는 누구나 검증할 수 있었으며, 컴파운드의 금리 곡선은 코드에 명시되어 있었다. 저축은행 여신심사위원회의 결정이 의사록의 행간에 묻히는 것과는 다른 세계였다.
그러나 어떤 규칙을 만들 것인지, 어떤 파라미터를 설정할 것인지, 어떤 프로토콜을 신뢰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었다. Aave의 거버넌스 포럼에서 LTV를 75%로 할지 80%로 할지 논쟁하는 것은 인간이었다. 유니스왑에 유동성을 공급할지 뺄지 판단하는 것도 인간이었다. 코드가 법을 집행했지만, 법을 쓰는 것은 인간이었다 — 적어도 2020년까지는.
이미 DeFi 내부에서 전환의 씨앗이 보이기 시작했다. MEV(최대 추출 가능 가치) 봇들은 트랜잭션의 순서를 재배치해서 차익을 추구하는 자동화된 에이전트였다. 거버넌스 제안을 자동으로 분석하고 투표하는 봇이 등장했다. Yearn의 볼트 전략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사람이 매번 개입하기에는 속도가 부족해지고 있었다.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서, 12초마다 새로운 블록이 생성되고 있었다. 그 블록 안에서 대출이 실행되고, 거래가 체결되며, 청산이 완료되었다. 아무도 도장을 찍지 않았다. 아무도 회의실에 앉지 않았다. 그런데 블록 안에서 점점 더 자주, 트랜잭션을 보내는 주체가 사람이 아닌 것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지갑 주소 뒤에 사람이 아니라 코드가 있었다. 코드가 규칙을 집행하는 시대를 넘어, 코드가 규칙을 선택하는 시대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