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원증을 반납하는 손
2024년 가을, 아산.
현대자동차 아산 공장 인사팀 사무실. 오후 2시. 이정훈(52세)이 플라스틱 카드를 내려놓는다.
사원증이다. 이름, 사번, 직급이 인쇄되어 있다. "이정훈, 생산기술부, 부장." 네 단어가 28년을 요약한다. 1996년에 처음 발급받았을 때 이 카드는 새것이었다. 목에 걸고 공장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차단기가 올라갔다. 차단기가 올라가는 것은 출입 허가의 신호이자, "이 안에서 당신은 의미 있는 사람이다"라는 확인이었다.
인사팀 직원이 카드를 받아 서류철에 끼운다. 서류철에는 다른 카드들이 이미 꽂혀 있다. 이정훈의 카드가 특별히 다르지 않다. 같은 규격, 같은 재질, 같은 방식으로 끼워진다. 28년이든 3년이든 카드의 크기는 같다.
2장에서 우리는 "누군가가 사원증을 반납하고 있다"고 썼다. 그 누군가가 이정훈이다.
사원증은 출입 허가증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출입 허가증이기도 했다. 공장 게이트에 카드를 대면 차단기가 올라갔고, 그 게이트 안에서만 이정훈의 28년이 의미를 가졌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면 금형 정렬 상태를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으면 이정훈이 이정훈일 이유가 없다.
사원증은 정체성의 물질적 닻이었다.
이정훈이 사원증을 건네는 손이 떨렸는지는 알 수 없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인천공항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담담했다. 사원증을 반납한 것은 그보다 수개월 전이다. 반납의 순간에는 분노도 눈물도 없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서 이정훈은 인천공항에서 하이퐁행 비행기를 탔다. 그 선택의 무게를 이해하려면, 그가 무엇을 내려놓았는지를 먼저 보아야 한다. 매일 목에 걸었던 카드 한 장. 그 카드에 담긴 것은 이름과 사번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회적 존재 전체였다.
한국에서 대기업 사원증이 의미하는 것의 목록은 길다. 아파트 전세 계약 시 근무처 확인 자료. 결혼 시장에서의 자격 증명. 대출 심사에서의 신용 대용물. 부모와 친척에게 보고할 수 있는 성공의 증거. 자신이 "정상 궤도"에 있다는 내면의 확인.
사원증을 반납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동시에 반납하는 것이다. 출입증이 아니라 정체성을 반납하는 것이다.
1장에서 로마의 병사가 토지를 잃고 프롤레타리우스가 되었다. 2장에서 피렌체 장인이 이름을 새기던 시대가 공장의 번호로 대체되었다. 토지에서 손으로, 손에서 명함으로 — 정체성의 근거가 이동해왔다.
이정훈의 사원증 반납은 이 이동의 가장 최근 장면이다.
그런데 사원증을 반납한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토지를 잃은 병사에게 로마는 빵을 주었다. 길드를 잃은 장인에게 공장은 임금을 주었다. 명함을 잃은 이정훈에게, 누가 무엇을 주는가.
2. 경력의 탄생 — 20세기가 발명한 구성물
"경력(career)"이라는 단어는 원래 마차가 달리는 경주로를 뜻했다. 라틴어 카루스(carrus)에서 파생된 프랑스어 카리에르(carriere). 직선으로 달리는 궤도. 목적지가 정해진 길.
이 단어가 "인간의 직업 경로"를 의미하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 — 단일 조직에서 위계를 따라 상승하는 장기적 직업 궤도 — 는 20세기 중반에 형성된 개념이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경력 경로(career path)", "경력 개발(career development)", "경력 사다리(career ladder)" 같은 복합어가 영어에서 급격히 증가한 시기는 1950~1960년대다. 대기업 관료제가 절정에 달한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우연이 아니다. 경력이라는 개념은 대기업이라는 제도가 만든 것이다.
그 제도의 물적 토대를 놓은 것이 포드주의(Fordism)였다.
헨리 포드가 1913년 하이랜드 파크 공장에서 이동 조립 라인을 도입한 것은 생산 혁명이었다. 그러나 포드주의의 본질은 효율적 생산이 아니었다. 1914년 포드가 선언한 "5달러 하루 임금" — 당시 업계 평균의 두 배 — 은 노동자를 자기 제품의 소비자로 만드는 전략이었다.
더 오래 일할수록 더 많이 받고, 더 높이 올라간다. 이 공식을 처음으로 제도화한 것이 포드주의다. 경력이라는 구성물의 물적 토대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그람시는 1934년 옥중 수고에서 포드주의를 분석하며, 이것이 단순한 생산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 유형을 만드는 기획이라고 지적했다. 고임금-고생산성-고소비의 선순환은 노동자를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사회적 통제 시스템이었다. 경력이라는 사다리의 은유는 이 시스템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1911)이 이 구조를 완성했다. 작업을 세분화하고, "계획하는 사람"과 "실행하는 사람"을 분리하는 것. 이 분리가 화이트칼라 직종의 폭발적 팽창을 낳았다. 계획하고, 조정하고, 감독하고, 보고하고, 기록하는 새로운 중간 계층. 이들이 바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블루칼라는 임금을 받지만 경력을 쌓지 않는다는 암묵적 전제가 형성되었다.
미국 화이트칼라 비율은 1900년 약 17퍼센트에서 1950년 약 37퍼센트, 1970년 약 48퍼센트로 증가했다. 경력이라는 단어의 보급이 이 수치와 정확히 연동된다.
윌리엄 화이트는 1956년 조직인간(The Organization Man)에서 이 새로운 인간 유형을 해부했다. 화이트의 핵심 명제는 이것이었다. "조직인간은 소속이 정체성이고, 소속이 안전이며, 소속이 의미다." IBM의 누구, GE의 누구 — 소속이 이름보다 중요한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명함이 곧 정체성이라는 등식이 여기서 공식화되었다.
화이트는 이것을 비판으로 썼다. 경고였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서 이 모델은 비판 없이, 심지어 열망의 대상으로 수용되었다.
비판이 목표가 되었다.
화이트가 연구한 1950년대 미국 기업들 — GM, GE, IBM, 듀폰 — 은 수만 명의 직원에게 평생 고용에 가까운 안정성을 제공했다. 교외 주택, 회사 차량, 의료보험. 기업이 삶의 토대 전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충성을 받았다. 이 기업들이 만든 경력 모델이 이후 전 세계 대기업의 표준이 되었다.
3. 회사인간과 명함 — 충성이 정체성을 대체한 시대
애버글렌은 1958년 저서 일본의 공장(The Japanese Factory)에서 일본 고용 관계의 핵심을 "전인격적 귀속(total commitment)"으로 규정했다. 서구에서 고용은 노동력과 임금의 교환이다. 일본에서 고용은 "사람 전체"의 헌신이다. 노동자는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조직에 귀속시킨다.
"직원은 공장과의 관계를 임금의 대가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계약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관계는 전인격적 귀속으로, 가족 관계와 유사한 구조다." 애버글렌의 서술이다.
가족 관계에서 구성원은 경제적 이익이 감소해도 가족을 떠나지 않는다. 회사가 가족이라면, 회사를 떠나는 것은 가족을 배신하는 것이다. 정체성이 조직에 귀속된다는 것은, 조직을 떠나면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어는 1973년 비교 연구 영국의 공장-일본의 공장에서 이 차이를 더 날카롭게 포착했다. "일본어 '우치노 카이샤(うちの会社)'의 '우치'는 '내 집안'을 의미한다." 영어에서 "내 회사(my company)"는 소유격이지만, 일본어에서는 가족의 언어다.
종신고용 시스템의 3요소 — 종신고용, 연공서열, 기업별 노조 — 는 상호 강화했다. 종신고용이 있으니 연공서열이 의미를 갖고, 기업별 노조가 있으니 파업이 기업 붕괴를 의미하여 억제된다. 시스템 전체가 "이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는 행동을 보상했다.
도요타 생산 방식(TPS)은 이 약속에 새로운 층위를 추가했다. 포드주의의 종신고용은 "이 자리를 유지한다"는 약속이었다. 도요타주의의 종신고용은 "회사가 당신의 지식에 투자하므로 당신도 회사에 투자하라"는 상호 약속이었다. 장기 고용을 통해 노동자의 암묵지가 축적되고, 이 암묵지가 카이젠(改善)의 원천이 되었다. 이정훈이 이 모델에서 이해된다. 그는 단순히 오래 다닌 것이 아니다. 소리와 촉각으로 쌓은 암묵지의 저장소였다.
"회사인간(会社人間, kaisha ningen)"이라는 단어가 1970~1980년대 일본에서 자조적으로, 때로는 자랑스럽게 쓰였다. 회사에 전인격적으로 헌신하는 사람. 회사인간의 정체성은 세 층으로 구성된다.
1층, 직업적 역할 — "나는 ○○ 주식회사의 영업3과 과장이다."
2층, 집단적 소속 — "나는 ○○ 사람이다."
3층, 인격적 정체성 — "나는 어떤 사람인가."
1층과 2층이 3층을 압도한다. 정년퇴직은 1층과 2층을 동시에 제거하는 사건이다. 남편이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이 해체된 존재가 집에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 모델을 1970~1980년대에 압축 수용했다. "우리 회사"라는 표현이 한국어에서도 "우치노 카이샤"와 동일한 정서적 함의를 갖는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일본의 회사인간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문화적 산물이다. 한국의 기업 정체성 문화는 한 세대 안에 압축 형성되었다. 구해근이 분석했듯이, 한 세대 만에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이행하면서 전통적 정체성 자원 — 토지, 가문, 지역 공동체 — 이 해체된 빈자리를 기업 소속이 채웠다.
더 급격하게 만들어진 것은 더 취약하다. AI 충격이 가할 해체도 더 급격할 것이다.
에즈라 보겔은 1963년 일본의 신중산계급에서, 일본 회사원의 정체성이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소속 집단에서 파생됨을 분석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나는 어디 소속인가"로 대체된다. 한국에서도 이 구조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첫 만남에서 "뭐 하세요?"라고 묻는 사회. 2장에서 베버의 Beruf를 보았다 — 직업이 곧 소명이라는 등식. 한국의 명함 문화는 그 등식의 동아시아판이다.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 명함 교환은 고도로 의례화되어 있다. 일본의 메이시 교환(名刺交換, meishi koukan)이 그 전형이다. 명함을 두 손으로 건네고, 받는 순간 고개를 숙이며, 받은 명함을 즉시 주머니에 넣으면 결례다. 회의 중에는 테이블 위에 상대의 직급 순서대로 명함을 배열해둔다. 종이 한 장에 그 사람의 사회적 좌표 전체가 실린다.
한국의 명함 문화는 이 동아시아적 뿌리를 공유하면서도 고유한 강도를 가진다. 명함은 세 가지를 동시에 전달한다. 첫째, 회사와 직급. 둘째, 사회적 서열에서의 위치. 셋째, 신뢰의 대리 신호. 삼성 과장의 신용은 삼성이라는 조직의 신용에서 차용된다. 명함은 이 차용 관계를 공식화한 문서다. 일본에서 명함이 경의의 매개라면, 한국에서 명함은 서열의 즉각적 확정 도구다 — 명함 없이는 누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하는지조차 정해지지 않는다.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이사. 이 서열이 결정하는 것은 직무 범위만이 아니다. 누가 먼저 인사하는가, 누가 밥값을 내는가, 누가 먼저 술을 따르는가. 직함 없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격식을 정할 수 없는 사회다.
2장에서 우리는 피렌체 장인이 캐비닛 뒷면에 이름을 새기는 것을 보았다. 그 이름 새기기는 "나는 이것을 만든 사람이다"라는 선언이었다. 명함의 "과장"이라는 두 글자는 그 선언의 관료제 버전이다. 다만, 장인의 이름은 자기 작품에 새겨졌고, 과장의 직함은 조직이 부여한 것이다.
자기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다. 빌린 것은 반납해야 한다.
4. 정민호의 하루 — 명함은 있지만 역할이 빈 과장
서울 노원구, 2025년 봄.
정민호(45세)가 출근한다. 중견 자동차 부품 기업의 기획팀 과장이다. 매출 3,000억 원대의 회사, 직원 500명. 명함에 "기획팀 과장"이라 인쇄되어 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이 회사에 입사한 것이 2004년이다. 21년째다.
정민호의 하루를 따라가본다.
오전 9시, 자리에 앉는다. 컴퓨터를 켠다. MS 코파일럿이 메일함을 정리해놓았다. 오전 회의 아젠다가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어 있다. 주간 보고서 초안이 7분 만에 완성되어 화면에 떠 있다.
3년 전이었으면 보고서 초안 작성에 하루가 걸렸다. 데이터를 모으고, 엑셀 피벗 테이블을 만들고,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구성하고, 문장을 다듬었다. 그것이 정민호의 핵심 역량이라 믿었다. 20년간 그렇게 믿어왔다.
이제 AI가 7분 만에 해낸다.
정민호의 몫은 검토 20분이다. AI가 작성한 것과 자신이 작성했을 것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20분. 때때로 정민호는 AI가 완성한 보고서를 지우고 손으로 다시 쓴다. 결과물은 사실상 동일하다. 그러나 손으로 타이핑하는 행위 자체가 "내가 이 일을 한다"는 감각을 유지시킨다. 이것이 저항인지, 의례인지, 자기기만인지 정민호 자신도 모른다.
회의에서 그의 발언은 AI가 제시한 분석과 대부분 겹친다. 3년 전에는 정민호만이 알고 있는 업계 맥락이 발언에 힘을 실었다. 이제 AI가 그 맥락의 상당 부분을 데이터로 제시한다.
오후 3시.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업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명함에 "과장"이라 쓰여 있고, 출근을 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서명을 한다. 그러나 과장이라는 직함이 수행하던 업무의 내용이 비어가고 있다. 직함은 남아 있되 직함의 무게가 달라졌다.
마이크로소프트 코리아의 2024년 조사에서 코파일럿 도입 기업의 보고서 작성 시간은 평균 64퍼센트 감소했다. 회의 준비 시간 51퍼센트 감소. 이메일 처리 시간 45퍼센트 감소. 그런데 "절약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답하지 못하는 직원이 47퍼센트였다.
정민호가 그 47퍼센트 안에 있다.
해고되지 않았다. 구조조정 대상도 아니다. 아직 잘리지 않았으니까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나 괜찮은 것이 아니라 비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정훈이 밀려났다면, 정민호는 비워지고 있다. 직업은 존재하지만 그 직업을 구성하는 핵심 태스크가 AI에 흡수된 상태. 맥킨지는 이것을 "무용화(hollowing)"라 불렀다 — 대체와 다른 현상이다. 대체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고, 무용화는 직업은 존재하지만 내용이 비워지는 것이다.
정민호의 연봉은 6,800만 원이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 전세 4억 원, 전세 대출 2억 원. 아들(14세)과 딸(11세)의 사교육비 월 130만 원. 경제적으로 불안정하지는 않으나 여유도 없다. 이 경제 구조에서 "전환 투자" — 새로운 역량 개발, 이직 준비 — 를 결정하기 위한 경제적 자원도, 심리적 자원도 부족하다.
한국노동연구원(2024)에 따르면, 40~50대 직장인 중 "현재 직장이 불안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1.3퍼센트다. 같은 응답자 중 "이직 또는 전직을 구체적으로 준비 중"이라는 비율은 14.2퍼센트다.
불안을 느끼지만 행동하지 않는 상태. 정민호가 그 안에 있다.
5권 14장에서 이정훈이 사원증을 반납한 날을 기억한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능함이 아니라 무용함의 감각이었다. 정민호는 사원증을 반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용함의 감각은 같은 속도로 자라고 있다.
5.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허상 — 20년 경력과 3시간 교육 사이
서울 금천구, 직업훈련기관. 2025년 4월의 토요일 오전.
"AI 시대 디지털 전환 과정" 교실에 40~50대 수강생 24명이 앉아 있다. 정민호도 그 중 하나다. 회사가 권유한 외부 교육이다. 주말 과정, 8주. 강사가 프롬프트 작성법을 가르친다. "AI에게 명확하게 지시하는 기술이 미래의 핵심 역량입니다."
정민호는 20년간 엑셀 피벗 테이블을 만들었다. 옆자리 수강생은 52세, 전 보험사 지점장이다. 그가 속삭인다. "6개월 뒤에는 프롬프트도 AI가 알아서 쓴다는데."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직업 전환의 목적지로 삼는 것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첫째, 기술 수명이 짧다. 링크드인 데이터 기준으로 "프롬프트 엔지니어" 채용 공고는 2023년 초 급증했다가 2024년 중반 이후 전성기 대비 6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대신 "AI 엔지니어", "ML 엔지니어" 등 더 광범위한 역량을 요구하는 직함이 증가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 역할은 ML 엔지니어 역할로 수렴하고 있다 — 비기술 직군의 전환 경로가 아니라 기술 직군의 특화 역할로.
둘째, 바닥이 올라온다. OpenAI는 GPT-4o 출시 발표에서 "자연어 지시가 더 자연스러워졌으므로 사용자가 특별한 프롬프트 기법을 알 필요가 없다"고 명시했다. Anthropic의 클로드 모델 문서도 "모델이 발전할수록 복잡한 프롬프트 기법의 필요성이 감소한다"고 적었다. 오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으로 달성 가능한 출력 품질은 6개월 후 특별한 기법 없이도 달성 가능해진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달리는 것과 같다 — 달리는 속도를 유지해야 제자리다.
셋째, 전환이 아닌 연장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기존 업무를 AI 도구를 써서 더 빠르게 하는 방법이지, 설계 레이어로 이동하는 방법이 아니다. 정민호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배운다고 해서 AI 코파일럿이 대체한 보고서 작성 능력이 복원되지 않는다.
에선 몰릭은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배우는 것은 좋다. 그러나 '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다'를 정체성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6개월 후 AI가 그것을 대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정체성이 당신이 가진 더 깊은 전문성을 가리기 때문이다."
1권에서 분석한 패턴이 반복된다. 역직기가 수직공의 기술을 대체할 때, 일부 수직공이 "역직기를 더 잘 다루는 수직공"이 되려 했다. 그러나 역직기 조작은 7년 수련이 필요한 숙련이 아니라 수주 교육으로 습득 가능한 반숙련이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구조가 이것과 같다.
한국고용정보원(2023) 조사에서 40~50대 재취업 교육 참여자의 과정 선택 기준 1위는 "취업 수요가 많다고 들어서"(41.2퍼센트)였다. 2위는 "국비 지원이 된다"(28.7퍼센트). "하고 싶어서"는 17.3퍼센트에 그쳤다. 시장 신호 또는 지원 가능성에 의해 교육이 결정되고, 개인의 강점이나 역량 분석에 기반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2024) 통계가 이 불일치를 확인한다. 40~50대 직업훈련 참여자의 훈련 분야 미스매치 비율 — 훈련 후 취업 직종이 훈련 분야와 불일치하는 비율 — 은 57.3퍼센트다. 절반 이상이 훈련받은 것과 다른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는다.
진단 없는 처방이다. 스웨덴의 TRR(직업안정위원회)은 화이트칼라 노동자 대상으로 역량 분석, 개인화된 전환 계획, 수년간의 지원을 제공한다. 한국의 내일배움카드는 개인이 과정을 선택하고, 국가는 비용을 지원한다. 전자는 진단 후 처방이고, 후자는 진단 없는 처방이다.
정민호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과정에 앉아 있는 것은 합리적 반응이다. 시스템이 더 나은 경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민호에게 있지 않다. 진짜 질문은 "어떤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그가 갖고 있는 20년 산업 맥락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레이어에서 배치할 것인가"다. 후자의 질문에 답하는 시스템이 한국에는 없다.
6. 두 개의 의자 — 시계와 빈 책상
도쿄, 1993년.
다나카 과장이 32년 근속 후 정년퇴직한다. 기념식에서 은시계를 받는다. 동료들이 박수를 친다. 부서장이 "오랜 헌신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은시계에 회사 로고가 새겨져 있다.
일본에서 은시계 증정 의식은 단순한 감사 표현이 아니었다. 시계는 "당신의 시간은 더 이상 회사의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이자, "당신을 정의하던 시간 구조가 끝났다"는 선고였다.
분리의 의례(rite of passage)다.
다나카는 다음 날 양복을 입고 나갈 곳이 없었다. 지갑 속 명함이 사라졌다. 이름은 있지만 직함이 없었다. 이후 2년간 이웃과 마주치지 않으려 아침 산책 시간을 바꾸었다. 회사인간의 1층(직업적 역할)과 2층(집단적 소속)이 동시에 제거된 뒤, 3층(인격적 정체성)이 지탱되지 않은 것이다.
서울, 2025년.
정민호는 퇴직하지 않았다. 명함에 "과장"이라 쓰여 있다.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고, 저녁 6시에 퇴근한다. 급여가 계좌에 입금되고, 건강보험료가 빠져나간다. 형식은 완벽하다.
그러나 AI 코파일럿이 보고서를 7분 만에 완성하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이메일을 요약한 뒤 남는 것은 검토와 서명이다. 명함이 있지만 명함 속 "과장"이 수행하던 것들이 비었다.
다나카는 회사를 떠난 뒤 비었다. 정민호는 회사에 앉은 채로 비고 있다.
차이가 있다. 다나카에게는 분리의 의례가 있었다. 은시계, 박수, 감사의 말. 반쪽짜리였지만 의례이기는 했다. 반게넵의 통과 의례 3단계 — 분리, 전이, 통합 — 에서 다나카에게는 분리가 있었다. 새로운 정체성으로의 통합이 없었을 뿐이다.
정민호에게는 분리의 의례조차 없다. 해고 통보도, 퇴직식도, 은시계도 없다. 소리 없이 비워지고 있다.
의례 없는 무용화. 이것이 AI 시대 밀림의 새로운 형태다.
사원증을 반납하는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매일 오전 9시에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이 왜 앉아 있는지 점점 덜 분명해지는 과정이다. 해고 통보서에는 날짜가 있다. 무용화에는 날짜가 없다. 언제부터 비기 시작했는지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잔인하다.
1장에서 로마 프롤레타리우스는 토지를 잃고 정체성을 잃었다. 포드주의가 그 토지 대신 명함을 정체성의 토대로 제공했다. AI는 그 명함 아래에 있는 것들을 비워가고 있다.
프롤레타리우스는 한 번에 밀렸다. 정민호는 밀리지 않은 채 비워지고 있다.
7. 70퍼센트가 노출된다는 것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2023)는 생성형 AI로 자동화 가능한 업무 시간의 60~70퍼센트가 지식 노동 — 화이트칼라 업무 — 에 집중된다고 분석했다. 세부 수치가 이것을 구체화한다. 문서 작성과 편집의 자동화 가능성 80퍼센트 이상. 데이터 수집과 분석 75~85퍼센트. 고객 응대(표준 업무) 70퍼센트 이상. 의사결정 지원 보고서 75퍼센트 이상.
이 숫자가 정민호의 하루를 번역한다. 그리고 정민호만의 하루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2024년 Work Trend Index는 31개국 3만 1,000명의 지식 노동자를 조사했다. 응답자의 75퍼센트가 업무에 AI를 사용한다고 답했고, "AI 없이는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46퍼센트에 달했다. AI가 보조 도구에서 필수 환경으로 전환되고 있다.
깃허브 코파일럿 실험에서 코파일럿을 사용한 개발자 그룹은 코딩 태스크를 55.8퍼센트 빠르게 완료했다. BCG 컨설턴트 758명 대상 통제 실험에서 GPT-4를 사용한 그룹은 산출물 품질이 25.1퍼센트 향상되었고, 작업 속도도 25.1퍼센트 빨라졌다.
이 실험에서 특히 중요한 발견이 있다. "하위 성과자가 가장 큰 이득을 보았다"는 것이다. AI는 평균 수행 능력을 가진 노동자의 업무를 상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정민호의 위기를 설명한다. 중간급 업무의 AI 상향 평준화가 "중간급 전문가"의 차별화 근거를 제거한다. 20년 경력의 과장이 만드는 보고서와 3시간 AI 교육을 받은 신입이 AI와 함께 만드는 보고서 사이의 차이가 줄어든다. 경험의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것이다.
맥킨지(2024)의 후속 분석은 이 현상을 일반화했다. "AI 활용 능력"이 범용화될수록, 이를 보유한 사람의 임금 프리미엄이 빠르게 줄어든다. 1990년대의 "컴퓨터 활용 능력"처럼, 일정 시점 이후에는 기본 소양이 되어 차별 요소가 되지 못한다. 정민호의 20년 엑셀 숙련이 그랬듯이.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종업원 100인 이상 기업의 AI/자동화 도구 도입률은 48.3퍼센트였으며, 도입 기업의 62.1퍼센트가 "문서 작성 및 보고 업무"에 AI를 우선 적용했다. 도입 후 "해당 업무 담당자의 역할 변화"를 겪었다는 응답은 41.7퍼센트였으나, "역할 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의했다"는 응답은 19.3퍼센트에 불과했다.
역할이 변하고 있지만 무엇으로 변해야 하는지 조직이 모른다.
통계청(2024) 기준으로 한국의 사무직 종사자는 약 497만 명, 관리자는 약 47만 명이다. 사무직과 관리자를 합하면 약 544만 명, 전체 취업자의 19.6퍼센트다.
이들의 핵심 루틴 업무 — 보고서 작성, 데이터 수집과 분석, 이메일과 회의 후속 처리 — 중 60~75퍼센트가 현재 기술 수준의 AI 도구로 처리 가능하다는 추정은 보수적 수치에 가깝다.
544만 명이 앉아 있는 책상 위에서, 명함의 무게가 달라지고 있다.
이정훈의 사원증과 정민호의 명함 사이에는 표면적 차이가 있다. 이정훈은 손과 감각의 암묵지를 AI 머신비전에 빼앗겼고, 정민호는 분석과 종합과 보고의 인지 노동을 AI 코파일럿에 빼앗기고 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경계가 AI 앞에서 사라진다. OECD(2023)가 분석한 한국 일자리의 자동화 위험 분포에서, AI 노출 고위험군에 사무직(관리-행정)과 생산-기능직이 함께 포함된다. 공장과 사무실이 같은 구조적 위치에 놓여 있다.
8. 문턱 — 경력이라는 가설
1장에서 토지가 정체성이었던 세계를 보았다. 2장에서 손이 정체성이었던 세계를 보았다. 3장에서 명함이 정체성인 세계를 보고 있다.
세 구성물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토지=시민이라는 등식은 로마가 만들었다. 손=장인이라는 등식은 길드가 만들었다. 명함=경력이라는 등식은 포드주의와 조직인간이 만들었다. 자연법칙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구성물이다.
구성물은 조립되고, 작동하고, 깨진다.
깨진 자리에서 새로운 구성물이 조립된다. 그 새로운 구성물도 언젠가 깨진다. 로마의 구성물이 깨지는 데는 수백 년이 걸렸다. 길드의 구성물이 깨지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 경력이라는 구성물은 지금 깨지고 있다.
1부 세 장이 보여주는 것은 이 패턴이다.
이정훈은 사원증을 반납했다. 그는 구성물이 깨지는 순간을 통과한 사람이다. 소리를 듣고, 온도를 읽고, 금형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며 시스템에 충실했다. 그 충실함이 그를 지키지 못했다.
정민호는 사원증을 반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원증이 보장하던 것 — 충성하면 정체성을 보장한다는 약속 — 이 AI에 의해 이행 불가능해지고 있다. 명함은 있되 명함의 내용이 비어가는 상태. 새로운 종류의 밀림이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과 경단련 회장 나카니시 히로아키가 2019년에 "종신고용의 유지가 어렵다"고 공개 발언한 것은, 70년간 유지된 사회 계약의 공식적 해체 선언이었다. 충성하면 정체성을 보장한다는 약속이 약속하는 쪽에서 철회된 것이다.
한국에서 이 해체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이미 시작되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붕괴했다. 비정규직 비율은 1997년 이전 약 15퍼센트에서 2024년 38.2퍼센트로 증가했다. 그러나 제도가 붕괴한 뒤에도 정서는 남았다. "이번 회사에서 버텨야 한다"는 생존 논리가 지배했다. 경력이라는 구성물의 제도적 토대는 무너졌지만, 경력이 정체성이라는 심리적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OECD 기준 GDP 대비 사회보호 지출은 한국이 14.8퍼센트 — OECD 평균 21.1퍼센트를 크게 하회한다. "좋은 직장"이 사회안전망의 대리물인 나라에서, 직장을 잃는 것은 안전망 자체를 잃는 것이다. 명함의 무게가 다른 나라보다 무거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명함은 연락처가 아니라 생존 서류다.
교육 투자의 집중성이 이 무게를 더한다. 한국 부모는 자녀의 대학 입시에 9~11년, 1억~3억 원을 투자한다. 이 투자의 도착지가 "좋은 직업"이다. 투자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그 결과인 직업은 단순한 소득원이 아니라 투자의 정당화 근거가 된다. 명함은 그 정당화의 물질적 증거다.
1부는 여기서 끝난다.
토지에서 손으로, 손에서 명함으로 이동한 정체성의 근거가, 지금 다시 흔들리고 있다. 토지가 깨졌을 때 손이 대체했고, 손이 깨졌을 때 명함이 대체했다. 명함이 깨지고 있다.
다음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2부의 출발점이다.
2부에서 우리는 그 "깨짐"의 현장으로 간다. 역사적 관조에서 현재의 긴박함으로. AI가 대체하는 것의 정체를 묻는 곳으로. 서울 강남의 법률 사무소에서, 파라리걸이 승인 버튼 앞에 앉아 있다. 이정훈의 확인 버튼과 같은 자리다. 다른 업종, 같은 구조.
문턱의 질문: 명함이 없어진 뒤에도, 당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말할 수 있는가.
3장 끝 — 리서치 소스: R-03, C-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