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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스케인 대로를 따라 늘어선 콘도미니엄 분양 사무소마다 풍선이 흔들린다. "선착순 분양," "다운페이먼트 5%," "승인 보장." 에어컨이 만들어낸 차가운 공기가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밖으로 새어 나오고, 안에서는 분양 상담사들이 쉴 새 없이 전화를 받고 있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면 밤새 줄을 서야 하는 단지도 있었다.
그 줄 안에는 택시 운전사가 있었다. 웨이트리스가 있었다. 이민 2년 차 조경 노동자가 있었다. 이들은 한 채가 아니라 두 채, 세 채의 콘도를 "투자"하고 있었다. 대출 심사는 형식에 불과했다. 이름, 주소, 그리고 자기 신고 소득(stated income). 소득을 증빙하는 서류는 필요 없었다. "연봉이 이만큼입니다"라고 적으면, 확인 없이 받아들여졌다. 업계에서는 이것을 "거짓말쟁이 대출(liar's loan)"이라 불렀다. 더 극단적인 것도 있었다 — NINJA 대출. No Income, No Job, No Assets. 소득 없음, 직업 없음, 자산 없음. 그래도 대출이 나왔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대출을 만든 사람이 대출의 위험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로커는 대출을 성사시킬 때마다 수수료를 받고, 대출은 은행으로 넘어가고, 은행은 그것을 묶어 증권으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팔았다. 마치 뜨거운 감자를 재빨리 옆 사람에게 넘기듯, 위험은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이동했다. 감자가 식을 때까지 자기 손에 남아 있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감자의 온도 — 대출의 질 — 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5장 마지막에서 언급한 CDO(부채담보부증권)의 원료가 바로 이것이었다. 수천 개의 모기지 대출을 하나로 묶고, 그 묶음을 잘라 등급을 매기고, 잘린 조각을 다시 묶어 또 등급을 매기는 — 그 구조의 맨 아래에는 마이애미의 콘도 분양 사무소에서 서류 한 장 없이 실행된 대출들이 깔려 있었다.
이 서류들을 읽은 사람이 있었을까? 증권으로 포장되기 전, 원래의 대출 서류 — 차입자의 소득, 직업, 자산, 상환 능력을 기록한 문서 — 를 한 줄 한 줄 읽은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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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실리콘밸리의 작은 사무실.
월스트리트에서 비행기로 다섯 시간 거리다. 밤 11시가 넘었다. 건물 전체에 불이 꺼졌는데 한 방만 환하다. 방 안에는 화이트보드 두 개가 벽을 차지하고 있고, 보드 위에는 수식과 날짜가 빼곡하다. 듀얼 모니터에는 스프레드시트가 떠 있다. 수천 줄짜리 데이터 — 개별 모기지 대출의 금리, 만기, 연체율, 리셋 시점이 한 줄 한 줄 나열되어 있다. 책상 위에는 빈 레드불 캔이 세 개 서 있고, 네 번째 캔에서 기포가 빠지고 있다. 스피커에서는 메탈리카의 ...And Justice for All이 울린다. 벽을 두드리는 듯한 더블 베이스 드럼 위로, 일그러진 기타 리프가 흐른다. 앨범의 주제는 정의 시스템의 부패다. 이 남자의 하루와 잘 어울리는 선곡이다.
마이클 버리(Michael Burry). Scion Capital의 설립자. 카고 반바지에 티셔츠. 맨발이거나 양말만 신고 있다. 그의 왼쪽 눈은 의안이다 — 두 살 때 망막모세포종으로 한쪽 눈을 잃었다. 이 사실이 그를 평생 사람들과의 눈 맞춤을 피하게 만들었고, 대신 숫자와 서류에 시선을 고정하는 습관을 길러주었다. 서류를 읽을 때 그는 고개를 약간 오른쪽으로 틀었다. 남은 한쪽 눈의 시야를 모니터 정중앙에 맞추기 위해서다. 이 자세로 그는 밤마다 수백 페이지를 읽었다.
버리는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였다. 2007년, 그는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자폐 스펙트럼 장애)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진단했다고 밝혔다. 아들이 같은 진단을 받은 뒤, 증상 목록을 읽다가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어색함, 특정 주제에 대한 강박적 몰입, 감정보다 패턴으로 세상을 읽는 습관. 월스트리트의 사교 문화 — 골프, 디너 파티, 칵테일 — 에서 그는 항상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그 이방인의 눈이, 내부자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버리는 의사 출신이다. 스탠퍼드 의과대학에서 수련의 과정을 밟다가, 당직이 끝난 새벽에 주식 분석 블로그를 운영했다. 36시간 연속 근무를 마치고 다른 수련의들이 쓰러지듯 잠들 때, 그는 모니터 앞에 앉아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는 글을 썼다. 그 블로그의 분석이 너무 정확해서, 헤지펀드들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2000년, 그는 의학을 버리고 Scion Capital을 설립했다. 의사에서 투자자로의 전환은 돌연해 보이지만,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연장이었다. 진단이란 증상 속에서 패턴을 찾아 원인을 추론하는 일이고, 투자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아 결과를 추론하는 일이다. 도구만 달랐지, 사고의 구조는 같았다.
2005년, 버리는 다른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다. 모기지 담보부 증권(MBS)의 투자설명서(prospectus)를 읽고 있었다. 한 건당 200페이지가 넘는 서류다. 법률 용어와 재무 구조가 빽빽하게 적힌, 읽기를 거부하는 문서.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 중에 이 서류를 끝까지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류를 만든 은행의 직원조차 전부 읽지 않았다. 그러나 버리에게 이 서류는 환자의 차트와 같았다. 증상이 적혀 있었다. 읽기만 하면 진단이 보였다.
버리는 읽었다. 한 줄 한 줄. 밤마다. 쿠퍼티노의 사무실에서 형광등 불빛 아래, 메탈리카의 리프를 배경 삼아, 한쪽 눈으로 모니터에 고정한 채.
그리고 발견했다. 수천 건의 개별 모기지 대출 중 상당수가 2/28 변동금리(ARM) 구조였다. 처음 2년은 낮은 고정금리, 이후 28년은 시장금리에 연동되는 변동금리. 2년 뒤 금리가 리셋되면, 월 상환액이 30~50% 급등한다. 서브프라임 차입자 — 신용등급이 낮고, 소득 증빙이 불충분한 사람들 — 가 이 급등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것은 새로운 질문이 아니었다. 600년간 자본 배분의 핵심에 있던, 가장 오래된 질문이었다. "이 사람이 돈을 갚을 수 있는가." 메디치의 스크리또이오에서 조반니가 물었던 질문. 잉글랜드 은행의 이사회가 물었던 질문. 저축은행 여신심사위원회에서 물었던 질문. 버리의 스프레드시트는 그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차이가 있었다. 메디치의 지점장은 상인의 얼굴을 보고 판단했다. 저축은행의 심사역은 시행사의 분양률을 놓고 토론했다. 그런데 2005년의 월스트리트에서는, 이 질문을 묻는 사람 자체가 사라졌다. 대출 브로커는 수수료를 받으면 끝이었다. 은행은 대출을 증권화해서 넘겼다. 증권을 산 투자자는 AAA 등급만 보았다. 체인의 어느 지점에서도 "이 사람이 돈을 갚을 수 있는가"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 묻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었으니까.
버리는 이 구조의 붕괴에 베팅했다. 신용부도스왑(CDS)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서브프라임 MBS가 부도나면 돈을 받는 포지션을 구축했다. FCIC(금융위기조사위원회)의 기록에 따르면, 2005년 중반까지 수십억 달러 규모의 포지션이 완성되었다.
월스트리트는 웃었다. 실리콘밸리의 의사 출신이 주택 시장의 붕괴에 돈을 건다고? 미국 주택 가격은 대공황 이후 전국적으로 하락한 적이 없었다. 역사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버리의 투자자들은 웃지 않았다. 분노했다. CDS 포지션을 유지하려면 분기마다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했고, 그 비용은 펀드 수익률을 갉아먹었다. 수익이 마이너스인 분기가 이어졌다. 투자자들의 이메일이 쏟아졌다 — 처음에는 의문, 다음에는 불만, 그다음에는 분노. 환매를 요구하는 편지가 법률 사무소의 레터헤드로 바뀌기 시작했다. 버리는 환매를 동결했다. 투자자들의 돈을 인질로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결정이 그에게 얼마나 무거웠는지는, 그가 남긴 기록에서 짐작할 수 있다. 밤마다 스프레드시트의 숫자는 그의 판단이 옳다고 말했다. 그러나 낮에 도착하는 이메일은 그가 미쳤다고 말했다. 아스퍼거가 만들어낸 사회적 고립은 이 시기에 더 깊어졌다. 그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 서툴렀다. 데이터가 스스로 말할 것이라 믿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옳은 판단을 내렸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고통 — 이것은 카산드라의 저주와 같았다.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은 그 예언자처럼, 버리는 시스템의 붕괴를 보았지만 증명할 방법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쿠퍼티노의 사무실에서 메탈리카를 틀어놓고 스프레드시트를 들여다보는 남자와, 그의 판단에 돈을 맡긴 채 환매도 못하는 투자자들 사이의 긴장은 극한에 달했다.
아무도 읽지 않은 서류를 읽은 대가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3
버리가 읽고 있던 서류의 정체를 이해하려면, CDO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부채담보부증권). 이름부터 사람을 밀어낸다. 그러나 구조는, 한 번 풀어놓으면, 의외로 직관적이다.
아파트 건물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건물에는 1층부터 꼭대기 펜트하우스까지 층이 있다. 홍수가 나면 1층이 먼저 잠긴다. 물이 더 차오르면 2층, 3층이 잠기고, 펜트하우스가 잠기려면 건물 전체가 물에 잠겨야 한다.
CDO의 구조가 이것이다.
수천 개의 개별 모기지 대출을 하나의 풀(pool)에 담는다. 매달 차입자들이 갚는 원리금이 이 풀로 흘러 들어온다. 이 현금흐름을 위에서부터 내려보내는 폭포(waterfall) 구조로 배분한다. 가장 위의 트랜치(tranche, 프랑스어로 '조각')가 먼저 돈을 받고, 남은 것을 그 아래 트랜치가 받고, 맨 아래 트랜치는 마지막에 남은 것을 가져간다. 반대로, 대출이 부실화되면 손실은 맨 아래 트랜치부터 흡수한다. 1층이 먼저 침수되는 것이다.
이 구조의 핵심은 한 가지 가정에 있었다. 홍수는 국지적이라는 것. 캘리포니아의 집값이 떨어져도, 플로리다의 집값은 괜찮을 것이다. 텍사스에서 연체가 늘어도, 뉴욕은 버틸 것이다. 한쪽에서 손실이 나도 다른 쪽에서 상환이 이어지니, 풀 전체로 보면 위의 트랜치는 안전하다. 분산(diversification)의 마법. 이 가정 위에서, BBB 등급의 대출들을 묶어도 상위 트랜치에는 AAA를 붙일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복잡하다. 그런데 월스트리트는 한 발 더 나갔다.
CDO의 하위 트랜치 — BBB 등급, 팔기 어려운 조각들 — 를 다시 모았다. 이 BBB 조각들을 또 하나의 풀에 넣고, 또 트랜치를 나누고, 또 등급을 매겼다. 이것이 CDO-squared(CDO의 제곱)다.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재료들을 모아 새 포장에 담고 "프리미엄 밀키트"라는 라벨을 붙인 것이다. 안에 든 재료가 무엇인지는 포장을 뜯기 전까지 알 수 없다. 포장을 뜯는 사람도 없었다.
이 마법을 가능하게 한 공식이 있었다.
2000년, 캐나다의 금융수학자 데이비드 X. 리(David X. Li)가 발표한 가우시안 코퓰라(Gaussian copula) 모델. 이 모델은 수천 개 대출의 부도 상관관계를 하나의 숫자로 압축했다. 캘리포니아의 대출 A가 부도날 때, 플로리다의 대출 B도 부도날 확률이 얼마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단일 상관계수(correlation)로 표현한 것이다.
코퓰라 모델은 우아했다. 복잡한 현실을 한 줄의 수학으로 요약했다. CDO의 각 트랜치에 붙여야 할 등급을 계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월스트리트는 이 공식을 순식간에 채택했다. 블랙-숄즈가 옵션 시장의 언어가 된 것처럼, 가우시안 코퓰라는 CDO 시장의 언어가 되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한 아파트 단지에 1,000세대가 산다. 이 중 한 세대가 수도관이 터질 확률은 연 1%다. 그런데 한 세대의 수도관이 터졌을 때, 옆집 수도관도 함께 터질 확률은 얼마인가? 코퓰라 모델은 이 "함께 터질 확률"을 하나의 숫자로 정리했다. 정상적인 날씨에서 측정하면, 각 세대의 수도관은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상관관계는 낮다. 그러나 한파가 오면? 영하 20도의 날씨에서는 수도관이 동시에 얼고, 동시에 터진다. 상관관계가 1에 가까워진다. 코퓰라 모델은 한파가 올 가능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식에는 블랙-숄즈와 같은 종류의 맹점이 있었다. 상관계수는 호황기의 데이터에서 추출되었다. 주택 가격이 꾸준히 오르던 시기의 데이터로 상관관계를 측정하면, 상관관계는 낮게 나온다 — 한쪽이 떨어져도 다른 쪽은 괜찮다는 결론. 그러나 위기가 오면 상관관계는 고정값이 아니라 상태 의존적으로 급등한다. 공포는 전염된다. 캘리포니아의 집값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플로리다의 집값도 떨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그 예상이 현실이 된다.
5장에서 LTCM이 무너진 이유를 기억할 것이다. "자산 가격의 상관관계가 유지된다"는 가정이 러시아 모라토리엄 이후 폭파되었다. 정확히 같은 패턴이었다. LTCM의 교훈은 "상관관계는 위기 때 변한다"였다. 그런데 CDO의 가우시안 코퓰라는 상관관계가 안정적이라는 전제 위에 세워졌다. LTCM 파산에서 10년도 지나지 않아, 월스트리트는 같은 실수를 더 거대한 규모로 반복하고 있었다.
BIS(국제결제은행)는 이미 2005년에 경고했다. 구조화 상품의 등급만으로는 다차원적 위험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고. 그러나 경고는 무시되었다. 모델이 주는 거짓 확신이 너무 편리했기 때문이다. AAA를 붙이면 연기금이 사주고, 연기금이 사주면 은행이 더 만들고, 더 만들면 수수료가 쌓인다. 모델은 이 수익 기계의 윤활유였다.
2007년, CDO 시장의 잔액은 1조 3,590억 달러에 달했다. 2000년의 2,280억 달러에서 7년 만에 6배로 불어났다. FCIC의 기록에 따르면, CDO 트랜치의 약 80%에 AAA 등급이 부여되었다.
아파트 비유로 돌아가자면, 이런 상황이었다. 건물의 80%가 펜트하우스라고 분류되어 있었다. 그리고 곧 드러나게 되지만, 이 펜트하우스 중 90% 이상이 사실은 지하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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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을 붙인 것은 신용평가사였다. 그리고 등급이 거짓이었던 이유는, 시스템의 구조에 내장되어 있었다.
무디스(Moody's)와 S&P(Standard & Poor's). 금융 시장의 문지기. 이 두 회사의 등급은 법적 구속력에 가까웠다 — 연기금과 보험사는 규정상 AAA 등급 채권만 매입할 수 있었다. 등급이 곧 접근권이었다. 무디스가 AAA를 붙이면, 전 세계 연기금의 수조 달러가 그 상품을 매입할 수 있게 되었다. AAA를 붙이지 않으면, 그 상품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게이트키퍼 중의 게이트키퍼. 그래서 그들의 실패는 더 치명적이었다.
FCIC는 결론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이 위기는 신용평가사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다." 평가사들을 "금융 파괴의 필수 톱니바퀴(essential cogs in the wheel of financial destruction)"라고 표현했다.
핵심 메커니즘은 단순했다. 발행사 지불 모델(issuer-pays model). CDO를 만들어 파는 투자은행이 평가 수수료를 무디스와 S&P에 직접 지불했다. 한 건당 25만~50만 달러. 이것은 식당 주인이 위생 검사관에게 검사비를 내는 구조다. 검사관이 불합격 판정을 내리면, 식당 주인은 다음번에 다른 검사관을 부른다. 무디스가 AAA를 거부하면, 투자은행은 S&P에 간다. 경쟁이 등급을 끌어올렸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무디스의 구조화 상품 매출은 2000년 1억 9,900만 달러에서 2006년 8억 8,700만 달러로 급증했다.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3%에서 44%로 올라갔다. 구조화 상품 등급 매기기가 회사 수익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 수익을 포기할 용기가 있는 경영진이 있었을까?
내부에서는 경고가 있었다. 에릭 콜친스키(Eric Kolchinsky)는 무디스의 CDO 등급 담당 매니저였다. 2007년 9월, 그는 CDO 등급 산정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이후 그는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FCIC에 증언했다. S&P 내부에서는 더 적나라한 표현이 오갔다. 2007년 4월 5일, 분석가 섀넌 무니(Shannon Mooney)와 라훌 딜립 샤(Rahul Dilip Shah) 사이에 오간 인스턴트 메시지. 상원 조사소위원회(PSI) 보고서 298쪽에 기록된 그 문구: "소가 구조화해도 등급을 줄 것이다(it could be structured by cows and we would rate it)." 농담처럼 들리지만, 현실의 정확한 묘사였다.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2006년에 발행된 Aaa 등급 MBS 트랜치의 83%가 나중에 강등되었다. 같은 해 발행된 투자적격 CDO 트랜치의 76%가 정크(투기) 등급으로 추락했다. 2007년에는 그 비율이 89%에 달했다. 위기가 끝난 뒤에는 CDO 트랜치의 90% 이상이 강등되었고, Aaa CDO 채권의 80% 이상이 결국 정크 등급으로 떨어졌다. AAA가 쓰레기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길어야 2년이었다.
600년 전 피렌체에서, 토마소 포르티나리는 부르고뉴 궁정의 총애를 탐해 본사의 규칙을 어겼다. 메디치 본점이 금지한 대규모 왕실 대출을 브뤼헤 지점에서 독단적으로 실행했다. 1720년 런던에서, 의회 의원들은 남해회사로부터 공짜 주식을 받고 감독 의무를 내팽개쳤다. 2006년 뉴욕에서, 신용평가사들은 수수료 수입을 위해 부실 상품에 최고 등급을 부여했다. 도구는 바뀌었지만, 패턴은 놀라울 정도로 동일했다. 게이트키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 포르티나리의 탐욕, 남해회사 이사회의 내부거래, 무디스의 수수료 의존 — 규모만 달랐을 뿐, 구조는 600년간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사람 중에서, 가장 넓게 연 사람이 있었다.
앤젤로 모질로(Angelo Mozilo).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Countrywide Financial)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
모질로의 이야기는 아메리칸 드림의 교과서처럼 시작된다. 뉴욕 브롱크스,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 아버지는 정육점 주인이었다. 모질로는 열네 살부터 모기지 회사에서 일했고, 1969년 컨트리와이드를 공동 창업했다. 브롱크스의 정육점 아들이 미국 최대 모기지 대출 회사의 꼭대기에 올라선 것이다. "모든 미국인이 집을 가져야 한다"가 그의 공식 구호였다. 주택 소유의 민주화. 소외된 지역사회에 대출을. 청사진만 놓고 보면, 이것은 미국의 가장 좋은 신화였다.
그러나 신화에는 어두운 면이 있었다. 모질로는 항상 짙은 선탠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월스트리트에서 그의 별명은 "오렌지맨(the Orange Man of Wall Street)"이었다. 값비싼 양복, 불자연스러울 정도로 그을린 피부, 그리고 회의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 2006년, SEC 공시에 따르면 그의 총 보수는 약 4,800만 달러였다. 같은 해 컨트리와이드가 실행한 대출의 상당수에 대해 차입자들은 자기 소득조차 증빙하지 않았다. 4,800만 달러의 보수와 서류 한 장 없는 대출 사이의 간극 — 이것이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이었다.
컨트리와이드는 2006년 한 해에만 4,680억 달러의 대출을 실행했다. 미국 모기지 시장 점유율 1위. 사업 모델은 단순했다. 대출을 많이 만들어라. 가능한 한 많이. 대출을 성사시키면 수수료. 그 대출을 MBS로 묶어 넘기면 또 수수료. 대출의 질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리스크는 증권화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중요한 것은 양이었다.
그리고 모질로는 게이트키퍼를 직접 포획했다. "Friends of Angelo" — 모질로의 개인적 지시로 운영된 특혜 대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연방 상원의원, 연방판사, 팬니메이 CEO 짐 존슨, 그리고 각종 규제 당국 관계자들에게 시장 금리보다 낮은 특별 금리의 모기지 대출이 제공되었다. 상원 윤리위원회가 나중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혜자 명단에는 상원 금융위원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문을 지켜야 할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달라는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포르티나리가 부르고뉴 궁정에 뇌물을 보내 메디치 본사의 통제를 벗어난 것과 구조적으로 동일한 행위였다. 600년의 시차를 두고 게이트키퍼 포획이 반복되었다.
2006년, 서브프라임 대출은 전체 모기지의 약 23.5%인 6,000억 달러에 달했다. 1990년에 9%에 불과하던 비중이었다. 여기에 Alt-A(서브프라임과 프라임 사이의 회색 지대) 대출 약 4,000억 달러를 더하면, 전체 모기지 시장의 거의 40%가 기준 이하의 대출로 채워진 것이다.
2007년,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을 때, 모질로는 내부 이메일에서 자사의 대출 상품 일부를 "독(toxic)"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시기 또 다른 이메일에서는 "우리의 독(poison of ours)"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독을 만든 사람이 독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내부적으로 "독"이라 부르는 동안 외부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SEC가 나중에 인사이더 트레이딩 관련 소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모질로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10월 사이에 약 1억 3,900만 달러 상당의 컨트리와이드 자사주를 매각했다. 독이라고 알면서 팔았고, 팔면서 떠났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독을 찍어내는 공장의 주인이, 공장이 불타기 전에 자기 짐만 챙긴 것이다.
대출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는 이미 멈출 수 없는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게이트키퍼가 문을 지키는 이유는 위험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신용평가사는 문에 "안전" 스티커를 붙이는 역할을 방기했고, 모질로는 문짝을 떼어냈다. 심사가 없으면 여과가 없고, 여과가 없으면 독이 시스템 전체로 퍼진다.
서류를 읽을 이유가 없었다. 읽지 않아도 돈이 들어왔으니까.
5
음악이 멈추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었다.
첫 번째 신호는 연체율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연체율이 2006년 말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2/28 변동금리 대출의 금리 리셋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버리가 스프레드시트에서 예측한 바로 그 시나리오. 월 상환액이 급등하자, 차입자들이 갚지 못하기 시작했다.
2007년 7월, 무디스와 S&P가 대규모 등급 하향을 발표했다. 수백 개의 서브프라임 관련 MBS 트랜치의 등급이 한꺼번에 떨어졌다. 불과 1~2년 전에 AAA를 받은 상품들이었다. 시장에 충격이 퍼졌다. AAA가 하루아침에 정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등급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2007년 8월 9일, 프랑스의 BNP 파리바가 산하 3개 펀드의 환매를 동결했다. 이유: 펀드가 보유한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의 가치를 산정할 수 없다. "가치를 모르겠다"는 것은 "가치가 0일 수도 있다"와 같은 의미였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같은 날 948억 유로의 긴급 유동성을 공급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최대 규모였다.
그 뒤로 위기는 계단을 내려가듯 한 단계씩 깊어졌다.
2008년 3월 16일, 베어스턴스(Bear Stearns). 월스트리트의 5대 투자은행 중 가장 먼저 무너졌다. JP모건이 주당 2달러에 인수했다 — 일주일 전 주가가 57달러였다. 뉴욕 연준은 290억 달러의 비소구 대출로 인수를 지원했다. "인수"라는 단어가 쓰였지만, 실질은 구제금융이었다.
2008년 9월 7일,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 — 미국 주택 모기지 시장의 양대 기둥 — 이 연방주택금융청(FHFA)의 관리 하에 들어갔다. 정부 보증 기관이 사실상 파산한 것이다. 미국 전체 모기지의 절반 이상을 보증하는 두 기관의 몰락은, 주택 시장의 토대 자체가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8일 뒤, 마지막 계단이 왔다.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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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2일 금요일 저녁, 뉴욕 연방준비은행.
맨해튼 다운타운, 리버티 스트리트 33번지. 르네상스 양식의 석조 건물은 요새처럼 생겼다. 이 건물의 지하 금고에는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금이 보관되어 있다. 그 위층 회의실에서, 월스트리트의 수장들이 모여 있었다.
재무장관 헨리 폴슨. 뉴욕 연준 총재 티모시 가이트너. 그리고 JP모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시티그룹의 CEO들. 나무 패널로 둘러싸인 회의실. 오래된 커피와 땀 냄새가 섞인 공기. 주말 내내 계속될 협상의 첫 번째 밤이었다.
리먼 브라더스가 죽어가고 있었다.
6개월 전 베어스턴스에게는 구명줄이 내려왔다. 그러나 리먼에게는 같은 처방이 적용되지 않았다. 폴슨은 "공적 자금 투입의 법적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민간 구제를 찾아야 했다. 바클레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가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두 곳 모두 리먼의 독성 자산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다.
일요일 밤, 협상은 결렬되었다.
2008년 9월 15일 월요일 새벽 1시 45분, 리먼 브라더스 홀딩스는 연방파산법 제11장에 따른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자산 6,390억 달러, 부채 6,130억 달러. 채권자 10만 명 이상. 미국 역사상 최대의 파산이었다.
새벽이 밝아오면서, 7번가 745번지 리먼 브라더스 본사 앞의 풍경은 초현실적이었다. 건물 파사드에 설치된 거대한 LED 스크린에는 뉴스 속보가 흐르고 있었다 — 자사의 파산 뉴스가. 건물 안의 직원들은 그 화면을 올려다보며 자신들의 일터가 죽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오전이 되자, 직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회전문을 밀고 나오는 사람들의 손에는 골판지 박스가 들려 있었다. 가족 사진, 화분, 상패, 커피잔 — 수년간의 직장 생활을 한 박스에 담아 거리로 나왔다. 보도에는 카메라맨과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한 시대가 끝나는 장면은 이렇게 생겼다. 폭발도 없고, 비명도 없다. 박스를 든 사람들이 조용히 걸어 나올 뿐이다.
같은 시각, 뉴욕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월스트리트 역을 지나고 있었다. 통근 시간대의 객차 안에서, 승객들은 무료 일간지 Metro의 1면을 펼쳐 들고 있었다. 리먼 파산 속보. 고개를 든 승객의 눈에,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월스트리트 역의 타일 벽이 보였을 것이다. 역명이 새겨진 그 벽은 1905년부터 같은 자리에 있었다. 100년 넘게 금융의 심장부를 지나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이 아침, 지하철은 평소처럼 달렸지만, 위에서는 모든 것이 멈추고 있었다.
다음 날, 더 큰 충격이 왔다. 리먼 브라더스 채권을 7억 8,500만 달러어치 보유하고 있던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Reserve Primary Fund)가 순자산가치 1달러를 밑돌았다 — "원금 손실(breaking the buck)." 미국 머니마켓펀드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다.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단기 투자 상품에서 원금 손실이 발생하자, 머니마켓펀드 전체에서 환매 쇄도가 벌어졌다. 금융 시스템의 동맥이 경화되기 시작했다.
시장은 즉시 반응했다. 다우존스 지수가 500포인트 이상 폭락했다. LIBOR-OIS 스프레드 — 은행 간 신뢰를 측정하는 지표 — 가 급등했다. 은행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기자금시장은 초단기로만 겨우 굴러갔다. 은행들은 밤새 돈을 빌려주는 것조차 꺼렸다. 2007년 8월에 이미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에서 1,900억 달러(20%)가 증발한 바 있었지만, 리먼 이후의 경색은 그 규모를 압도했다.
9월 16일, AIG가 무너질 차례였다.
AIG — American International Group. 세계 최대 보험사. 130개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직원 수 11만 6,000명. 자산 규모 1조 달러. 이 거대한 기업을 무너뜨린 것은 본사가 아니었다. 런던 메이페어, 커존 스트리트의 한 사무실이었다. AIG 파이낸셜 프로덕츠(AIGFP). 직원 약 400명. AIG 전체 인력의 0.3%에 불과한 이 소규모 팀이, 회사 전체를 끌어내렸다.
AIGFP를 이끈 사람은 조셉 카사노(Joseph Cassano)였다. 브루클린 출신, 경찰관의 아들. 카사노의 팀은 CDO에 대한 CDS를 대규모로 판매했다 — CDO가 부도나면 AIG가 손실을 보상하겠다는 보험 계약이었다. 보험료 수입은 AIG의 이익에 바로 반영되었다. 그런데 이 "보험"은 전통적 보험과 결정적으로 달랐다. 화재보험이나 자동차보험은 손실 확률을 보험수리적으로 계산하고, 그에 맞는 준비금을 적립한다. AIGFP의 CDS는 준비금이 거의 없었다. AAA 등급 CDO가 부도날 확률은 사실상 0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2007년 8월, AIG의 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카사노는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이 포트폴리오에서 1달러라도 잃는 것이 힘든 시나리오입니다(It is hard for us, without being flippant, to even see a scenario within any kind of realm of reason that would see us losing one dollar in any of those transactions)."
6개월 뒤, AIG의 CDS 관련 손실은 수백억 달러에 달했다. 카사노의 자신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인간의 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지점을 보여주었다. LTCM의 메리웨더가 "수렴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확신한 것과 같은 종류의 확신이었다. 모델이 "안전"이라고 말하면, 현실도 안전해야 한다는 믿음. 그 믿음이 틀렸을 때의 대가는 400명이 아니라 11만 6,000명이, 그리고 AIG와 거래한 전 세계 금융기관이 치러야 했다.
9월 16일 화요일 밤, 뉴욕 연준. 폴슨, 버냉키, 가이트너 —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이틀 전 리먼을 구하지 않은 결정의 여파가 시장을 삼키고 있었다. AIG마저 쓰러지면, CDS 계약의 상대방인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소시에테제네랄 —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도미노의 두 번째 조각이 넘어가면, 세 번째는 자동이었다.
연준은 AIG에 850억 달러의 긴급 대출을 실행했다. 한국 GDP의 약 5%에 맞먹는 금액이 하룻밤 사이에 결정되었다. 리먼은 구하지 않았지만 AIG는 구했다 — 리먼의 파산이 가져온 충격파가 너무 거대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400명이 만든 구멍을 메우는 데 850억 달러가 들었다.
위기의 총 비용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IMF는 글로벌 관련 손실을 약 4조 500억 달러로 추산했다 — 미국 2조 7,000억, 유럽 1조 2,000억, 일본 1,490억 달러. FCIC는 미국 가계 자산 약 11조 달러가 소실되었다고 기록했다. 400만 가구가 집을 잃었다. 실업률은 2009년 10월 10.0%를 찍었다.
라스베이거스 외곽에는 건설이 중단된 주택단지가 사막에 방치되었다. 반쯤 완성된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로 모래바람이 불었다. 클리블랜드의 주택가에서는 한 블록에 세 채가 공매에 넘어갔고, 남은 집들의 가치도 함께 추락했다. 한 사람의 채무불이행이 이웃의 자산 가치를 깎아먹는, 상관관계의 전염이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가우시안 코퓰라가 "낮다"고 추정한 바로 그 상관관계가.
쿠퍼티노의 사무실에서, 마이클 버리의 스프레드시트는 마침내 검증되었다. 아무도 읽지 않은 서류를 읽은 남자가 옳았다. 그가 대출 서류에서 발견한 것 — "이 사람들은 돈을 갚을 수 없다" — 은 600년 된 질문에 대한 가장 단순한 답이었다.
7
이 장의 핵심 질문을 꺼내야 한다. 2008년의 위기는 무엇의 실패였는가.
이 책이 추적해 온 세 가지 시선 — 게이트키퍼, 퀀트, 프로토콜 빌더 — 은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읽는다. 6장은 이 세 시선이 처음으로 동시에 교차하는 지점이다.
게이트키퍼의 시선: 문지기의 부재.
가장 직관적인 진단이다. 문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문을 열었다. 신용평가사는 수수료를 위해 등급을 팔았다. 모질로의 컨트리와이드는 심사 없이 대출을 찍어냈다. 규제 당국 — SEC, 연준 — 은 경고 신호를 보고도 행동하지 않았다. FCIC는 결론에서 단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이 위기는 피할 수 있었다(The crisis was avoidable)."
이 진단의 해법은 분명하다. 더 강한 규제, 더 독립적인 평가 기관, 더 엄격한 심사. 게이트키퍼를 교체하거나 강화하면 된다. 메디치 은행이 포르티나리를 소환했어야 했듯이, 무디스와 S&P의 이해충돌을 제거하고, 대출 기준을 법으로 강제하면 된다. 사실 2010년의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이 정확히 이 방향이었다.
퀀트의 시선: 모델의 거짓 확신.
4장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연장이다. 블랙-숄즈는 불확실성에 가격을 붙였고, 5장의 LTCM은 모델에 대한 과신이 어떤 재앙을 부르는지 보여주었다. CDO는 이 과신의 정점이었다.
가우시안 코퓰라는 CDO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었다. 호황기 데이터로 추정한 상관계수는 위기 시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졌다. 모델이 "안전하다"고 말한 상품이 쓰레기가 되었다. 블랙먼데이에서 포트폴리오 인슈어런스가 폭락을 증폭시킨 것처럼, LTCM에서 수렴 차익거래가 발산으로 바뀐 것처럼, CDO에서 가우시안 코퓰라는 위기의 규모를 키웠다. 패턴은 일관적이었다: 모델이 현실을 단순화하고, 단순화된 현실 위에 거대한 레버리지가 올라가고, 현실이 단순화를 거부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
5장에서 LTCM이 무너진 뒤, 월스트리트가 추출한 교훈은 "모델이 틀렸다"가 아니라 "모델이 덜 정교했을 뿐"이었다. CDO의 가우시안 코퓰라는 그 "더 정교한 모델"의 결정판이었고, 더 정교한 모델은 더 거대한 실패를 만들어냈다.
프로토콜 빌더의 시선: 불투명한 중앙화 시스템.
세 번째 시선은 2008년 당시에는 아직 명확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위기의 구조 속에는 훗날 블록체인과 탈중앙화 프로토콜이 해결하려는 문제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CDO의 기초자산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 모기지가 MBS로, MBS가 CDO로, CDO가 CDO-squared로 겹겹이 포장되면서, 원래의 대출은 추적 불가능해졌다. 투자자는 자신이 무엇을 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AAA라는 등급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등급을 부여한 기관은 발행사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이것은 투명성의 완전한 부재이자, 신뢰의 중앙 집중이었다. 시스템 전체가 소수의 신뢰 기관 — 무디스, S&P, 피치 — 의 판단에 의존했다. 이 기관들이 실패하면, 시스템 전체가 무너진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언어로 말하자면,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이 존재하는 아키텍처였다.
세 시선은 같은 사건을 보고 전혀 다른 교훈을 추출했다. 게이트키퍼의 시선은 "문지기를 교체하라"고 말하고, 퀀트의 시선은 "모델을 수정하라"고 말하고, 프로토콜 빌더의 시선은 "문지기가 필요 없는 시스템을 만들라"고 말했다. 이 세 가지 답은 각각 도드-프랭크법, 스트레스 테스트, 비트코인으로 현실화된다. 2008년은 세 갈래 길의 분기점이었다.
같은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메디치의 스크리또이오에서, 잉글랜드 은행의 머서스 홀에서, 조나단 커피하우스에서, CBOE의 트레이딩 피트에서, LTCM의 그리니치 사무실에서 — 600년 동안 반복된 질문. "이 사람이 돈을 갚을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주체가 인간이든, 수학 모델이든, 신용평가사이든, 결국 같은 패턴으로 실패했다. 게이트키퍼는 탐욕에 잠식되고, 모델은 현실의 복잡성 앞에서 무너졌다.
그런데 2008년에는, 이 질문의 형태 자체가 바뀌었다. 메디치의 지점장은 적어도 질문을 던졌다. 대답이 틀렸을지언정, 상인의 얼굴을 보고 판단하려는 시도는 했다. 2008년의 시스템에서는 질문 자체가 사라졌다. 대출 서류를 아무도 읽지 않았다. 질문하지 않으면 답이 틀릴 수도 없다. 그러나 현실은 질문 여부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버리만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것은, 600년 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오"라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은 돈을 갚을 수 없다. 아무도 읽지 않은 서류에 그 답이 적혀 있었다.
8
2008년의 폐허 위에서 두 가지 길이 갈렸다.
하나는 "시스템을 고치자"는 것이었다. 도드-프랭크법, 볼커 룰, 스트레스 테스트 — 게이트키퍼를 강화하고, 모델의 가정을 검증하고, 규제의 빈틈을 메우는 방향. 300년간 진화해 온 중앙은행 시스템의 연장선이었다. 연준은 전례 없는 규모로 유동성을 공급했고, 재무부는 7,000억 달러의 TARP(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를 가동했다. 시스템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구한 것이 정말 구할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은 보너스를 받았고, 주택을 잃은 400만 가구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리먼 파산 정확히 6주 뒤인 2008년 10월 31일 금요일, 오후 2시 10분. 암호학 관련 메일링 리스트에 9페이지짜리 문서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보낸 이: Satoshi Nakamoto. 이름인지, 가명인지, 한 사람인지 여러 사람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 문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에 의존하지 않는 전자 거래 시스템."
게이트키퍼가 실패하고, 모델이 실패하고, 정부가 구제하고, 분노가 들끓는 그 한가운데서 — 한 무명의 인물이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졌다. 게이트키퍼를 교체하거나 모델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자체가 필요 없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 문지기 없이도 문이 작동한다면?
CDO의 불투명한 겹겹의 포장, 신용평가사의 이해충돌, 추적할 수 없는 기초자산 — 이 모든 것의 대칭점에서, 9페이지의 백서는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기록되는 공개 원장, 단일 실패 지점이 없는 분산 아키텍처, 신뢰 기관이 아닌 암호학에 기반한 검증 시스템을 제안했다.
이 9페이지는 600년 자본 배분 역사의 세 번째 문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