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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 — 두 제국의 알고리즘

에필로그: 제3의 플레이어 — 작은 나라의 전략


도입부

2026년 1월,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M16 팹의 에어록 앞에서 엔지니어들이 정전기 방지복으로 갈아입는다. 신발 커버, 헤어넷, 장갑. 클린룸 입장 전 의례처럼 반복되는 절차다. 문이 열리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대기 중 먼지 농도가 1세제곱미터당 100개 이하로 유지되는 공간. 바깥 공기보다 수백 배 깨끗하다. 형광등 아래 웨이퍼 캐리어들이 자동 이송 시스템을 따라 조용히 움직인다.

이 공간에서 HBM4 양산 라인이 가동을 시작했다.

완성된 칩은 크기 1센티미터 남짓, 무게 몇 그램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칩 하나가 없으면, 샌프란시스코 데이터센터의 NVIDIA 블랙웰 가속기가 연산을 멈춘다. 선전 AI 연구소의 고성능 클러스터가 속도를 잃는다. 아부다비 하이퍼스케일 캠퍼스의 G42 인프라가 대기 상태에 빠진다.

한 나라의 한 공장에서 만들어진 작은 물체가 세 대륙의 알고리즘을 움직인다.

이것이 "작은 나라"의 레버리지다.

본편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제국에 집중했다. 기술이 자본을 집중시키고, 자본 집중이 사회 불안을 낳고, 사회 불안이 제도 재설계를 강요하는 공식이 두 제국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방식을 추적했다. 그러나 세계는 두 나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NVIDIA가 설계하고, TSMC가 제조하고, ASML(네덜란드)이 장비를 독점하고, SK하이닉스(한국)가 AI 메모리의 57~60%를 공급한다. 미국도 중국도 혼자서는 완결적 공급망을 갖추지 못한다. 미중 패권 경쟁은 틀이지, 전부가 아니다. 그 틀 안에서, 때로는 그 틀을 이용하여, 생존하고 번영하는 "제3의 플레이어"들이 있다.

에필로그는 그들을 추적한다.

한국, 인도, EU, 중동. 네 국가와 지역이다. 각자의 레버리지는 다르다. 한국은 AI 공급망의 병목인 HBM, 인도는 14억이라는 규모와 독자적 디지털 인프라, EU는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 표준, 중동은 석유에서 전환 중인 막대한 자본이다.

그리고 네 플레이어는 하나의 공통 질문 앞에 서 있다.

이 레버리지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


섹션 A: 네 가지 경로 — 중간 강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가져라

2026년 2월,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Chatham House)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제목은 《중간 강국은 어떻게 미중 AI 지배력을 헤쳐나갈 수 있는가(How Middle Powers Can Weather US and Chinese AI Dominance)》였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AI 강국 사이에서 중간 강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를 네 가지로 정리한 문서였다.

이 보고서가 중요한 이유는 타이밍에 있다. 2026년은 미중 AI 격차가 3~6개월로 좁아진 해다. 격차가 좁을수록 역설적으로 중간 강국의 협상력이 커진다. 미국도, 중국도 동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GPAI(AI 글로벌 파트너십)에 44개국이 참여하고, 연간 갱신 라이선스 체계가 공급망 참여국들을 구조적 선택의 위치에 놓는 이 시점이다.

보고서는 중간 강국의 AI 역량을 8개 빌딩블록으로 나눈다. 데이터, 컴퓨트, 모델, 에너지, 산업, 인재, 인프라, 신뢰다. 어느 블록에서 강점을 가지느냐가 어떤 경로가 실현 가능한지를 결정한다.

첫 번째 경로는 특화(Specialize)다. 글로벌 공급망의 특정 병목에 집중하여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을 확보한다. 네덜란드의 ASML이 전형적 사례다. 인구 1,700만의 작은 나라에서 세계 유일의 EUV(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장비를 만드는 회사. 이 장비 없이는 TSMC도 삼성도 인텔도 첨단 칩을 제조할 수 없다. 2019년부터 중국에 단 한 대도 팔지 않았다. 분기 매출 비중이 49%(2024년 2분기 피크)에 달했던 이 회사가 규제 시행 후 연간 기준 20% 수준으로 축소됐음에도, 2030년 매출 전망은 710억 달러다. 특화의 위력이다.

두 번째 경로는 제휴(Align)다. AI 초강대국 중 하나와 전면 제휴하여 기술 접근권과 안보 보장을 얻는다. 전략적 자율성을 일부 포기하는 대가로 최첨단 생태계에 진입하는 전략이다. 위험은 분명하다. 상대 진영과의 단절, 그리고 제휴 상대의 정치 변화에 노출된다.

세 번째 경로는 공유(Share)다. 유사한 입장의 국가들과 주권을 공유하여 집단적 협상력을 키운다. EU 27개국이 단일 시장으로 묶여 AI Act라는 세계 최초의 포괄적 규제를 만들어낸 방식이다. 의사결정이 느리다는 것이 약점이지만, 한번 결정된 기준은 글로벌 표준이 된다. GDPR이 7년 만에 전 세계 데이터 보호의 기준이 된 것처럼.

네 번째 경로는 헤징(Hedge)다. 미국·중국·유럽 등 복수의 공급원에서 AI 역량을 선별 조합하여 특정 진영에 종속되지 않는다. 양다리가 아니라 다리가 여러 개인 전략이다. 인도가 미국의 FAANG으로부터 3만 2,000~3만 3,000명을 채용받으면서 BRICS 의장국을 맡고, G20 AI 원칙을 공동 설계하는 방식이다.

네 경로는 배타적이지 않다. 한국의 매핑은 특화+제휴다. HBM이라는 병목을 보유하면서 미국 쪽으로 기울어진 동맹 구조를 유지한다. 인도의 매핑은 헤징+공유다. 미국 기술과 독자 인프라를 조합하고 BRICS와 G20을 동시에 활용한다. EU는 공유+특화다. 단일 시장의 규제 표준이 기반이고 ASML이라는 하드웨어 병목이 숨겨진 레버리지다. 중동은 헤징+제휴다. 자본을 무기로 미국 기술을 구입하면서 중국 인프라도 부분 활용한다.

Chatham House가 정리한 네 경로는 추상적 전략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네 플레이어가 각자의 방식으로 실행하고 있는 전략이다.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에필로그의 나머지다.


섹션 B: 한국 — HBM 패권과 줄타기의 기술

SK하이닉스가 삼성을 넘어선 날

2025년, 한국 반도체 업계에서 처음으로 역전이 발생했다.

SK하이닉스 연간 영업이익 47.2조 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 43.6조 원. 1969년 삼성전자가 설립된 이후, 국내 반도체 매출에서 삼성을 넘어선 경쟁자는 없었다. 삼성은 D램 시장에서 수십 년간 1위를 지켰다. SK하이닉스는 만년 2위였다. 이 역전의 핵심에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이 있었다.

HBM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왜 이 역전이 지정학적 사건인지가 보인다.

AI 모델을 훈련할 때, GPU는 1초 동안 수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메모리와 주고받아야 한다. 기존 DRAM은 이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다. HBM은 DRAM 칩 여러 장을 수직으로 적층하고 TSV(실리콘 관통 전극)로 연결하여 대역폭을 기존 대비 수십 배로 끌어올린 메모리다. NVIDIA H100, H200, Blackwell 아키텍처 모두 HBM 없이는 설계 자체가 불가능하다.

SK하이닉스는 이 기술에서 세계 1위다. HBM 세계 시장 점유율 57~60%. 2026년 2월, SK하이닉스와 삼성은 HBM4 양산을 동시에 시작했다. OpenAI의 Stargate 프로젝트를 위해 양사는 월 90만 장의 DRAM 웨이퍼 공급 의향서(LOI)에 서명했다. 한국이 AI 공급망의 심장부를 쥐고 있다.

줄타기의 구조

그러나 이 위치는 특권인 동시에 압박이다.

안보 축을 먼저 본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Chip 4 동맹(미국·일본·대만·한국) 참여를 공식화했다. CHIPS Act 보조금을 통해 삼성이 47억 5,000만 달러를 받았다. 이 축에서 한국은 미국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 공급자다.

무역 축은 정반대다. 중국은 한국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모두 중국 내 레거시 반도체 생산 시설을 운영한다. 중국 없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수익 구조가 달라진다.

2026년부터 수출 허가가 연간 갱신 체계로 전환되었다. 매년 미국의 정치 상황이 한국 기업의 중국 사업 가능 범위를 결정하는 구조다. 한쪽에서 최첨단 HBM을 미국 데이터센터로 보내고, 다른 쪽에서 레거시 메모리를 중국 소비 시장에 공급한다. 이 균형의 외줄 위에서 한국 기업들은 매년 갱신 협상을 해야 한다.

줄타기의 난이도는 이렇게 규정된다. 미국의 수출 규제 압박이 강화되면, 중국 내 한국 공장의 사업 범위가 좁아진다. 반대로 중국을 포기하면,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이 사라진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수출 규제는 더 촘촘해지고 있다. 2026년 1월 15일 발효된 H200 수출 심사 변경은 "거부 추정"에서 "건별 심사"로 바뀌었지만, 이는 동맹국에만 해당하는 완화다. 한국의 위치는 동맹에 가깝다. 그러나 얼마나 가까운지는 매년 재검증된다.

AI 기본법과 소버린 AI

한국이 이 줄타기 위에서 내놓은 대응은 세 가지다.

첫째, 2026년 1월 22일 AI 기본법 시행이다. 19개 개별 AI 법안을 하나로 통합한 포괄 입법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시행된 포괄적 AI 규제다. EU의 AI Act가 수년간의 협상 끝에 탄생한 것과 달리, 한국은 2년 만에 제정과 시행을 마쳤다. 1권에서 분석한 제도 적응의 역사적 밴드(14~64년)를 대폭 압축한 사례다.

둘째, 소버린 AI(sovereign AI, 주권형 AI) 전략이다. 네이버, SK텔레콤, LG AI Research, NC AI, 업스테이지 등 5개 컨소시엄이 독자 AI 모델 개발을 진행 중이다. 네이버에 따르면 HyperCLOVA X는 GPT-4 대비 한국어 학습 데이터가 6,500배 많다. 국가 AI 컴퓨팅 센터에는 2027년까지 GPU 1만 5,000기가 배치되고, AI 인프라 총 투자 규모는 650억 달러다.

셋째, 기술 다변화다. HBM이라는 현재 레버리지에 안주하지 않고 차세대 메모리 아키텍처 연구에 투자한다. 3D 낸드에서 HBM으로 전환했듯, HBM4 이후의 아키텍처에서도 설계 레이어를 선점하는 전략이다.

밀린 자들이 쌓이는 곳

HBM 호황이 만드는 빛의 이면에 그림자가 있다.

OECD 분석에 따르면 한국 전체 일자리의 38.8%가 업무의 70% 이상이 자동화 위험에 노출된 "고위험" 직종이다. 이 비율은 OECD 38개국 중 상위권이다. 반도체 섹터에서 2.8% 고용이 증가하는 동안, 제조업 전체 고용은 뒷걸음질쳤다. KDI(한국개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IT 투자가 2배 늘면 기업 전체 인력이 60명 이상 줄어들지만, 남은 인력의 1인당 임금은 올라간다.

1권에서 확인한 패턴이 정확히 반복되고 있다. 생산성이 폭발하고, 남은 자의 임금은 오르고, 밀린 자는 늘어난다. 엥겔스의 일시정지 — 생산성은 오르되 임금은 정체하거나 하락하는 시기 — 는 한국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HBM 라인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의 연봉은 올랐다. 공장 외곽의 협력업체 납품 기업들이 갈 곳은 줄었다. 클린룸 안과 클린룸 밖의 두 개의 한국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

AI 공급망의 병목을 쥔 나라가 동시에 자동화 충격에 가장 많이 노출된 나라일 수 있다. 읽은 나라와 밀린 나라의 경계가 국경이 아니라 산업 섹터와 기술 레벨을 따라 그어지고 있다.


섹션 C: 인도 — 규모의 제3의 길

2026년 2월 4일 오후, 방갈로르

TCS 마니아타 테크 파크의 점심시간이 막 끝났다. 5만 명 이상이 근무하는 이 캠퍼스는 방갈로르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카페테리아에서 나온 직원들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경력 8년차 소프트웨어 테스터 라비(Ravi)의 휴대폰에 알림이 울렸다. Nifty IT 지수가 장중 6% 급락했다.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이었다. 인포시스(Infosys), TCS, 위프로(Wipro)가 일제히 5~8% 하락했다. Anthropic의 Claude Cowork 출시 소식이 시장을 덮쳤다. 인도 IT 주요 기업의 시가총액 약 2조 루피(약 230억 달러)가 단 하루 만에 사라졌다.

라비는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을 안다. 소프트웨어 테스트 시나리오를 생성하고, 버그를 기록하고, 리포트를 작성한다. 반복적이고 구조화된 작업이다. 그리고 자신이 AI에 그 작업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도 안다. 스프레드시트를 채우고, 패턴을 레이블링하고, 엣지 케이스를 기록한다. 그 AI가 자신의 일자리를 대체할 AI라는 것도 라비는 알고 있다.

2,830억 달러 규모의 인도 IT 아웃소싱 산업이 이 순간을 향해 달려왔다. TCS는 2025년 1만 2,000명을 감축했다. 인도 IT 4사는 2025년 상반기에만 2만 5,000명 이상을 해고했다. 향후 수년 내 최대 50만 개의 IT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가장 취약한 것은 경력 4~12년의 중급 인력이다. AI가 가장 먼저, 가장 빠르게 흡수하는 레이어다.

IT 수출이 무너지면 루피가 달러 대비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한 산업의 위기가 통화 위기로 전이되는 경로다.

이것이 인도판 엥겔스의 일시정지다.

India Stack: 세계가 복제하려는 인프라

인도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AI가 인도의 가장 큰 수출 산업을 잠식하는 바로 그 순간, 인도는 세계가 복제하려는 디지털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India Stack은 3개 층의 디지털 공공 인프라(DPI, Digital Public Infrastructure)로 구성된다. 첫 번째 층인 Aadhaar는 14억 명의 생체 인증 기반 디지털 신원이다. 은행 계좌 개설, 정부 보조금 수령, 병원 진료 기록 연동이 모두 이 번호 하나로 이루어진다. 두 번째 층인 UPI(Unified Payments Interface, 통합지불인터페이스)는 스마트폰으로 즉시 무료로 이루어지는 송금 네트워크다. 은행 계좌 없이도 휴대폰 번호만으로 돈을 보낼 수 있다. 세 번째 층인 DigiLocker는 학력증명서부터 운전면허, 세금 서류까지 모든 공식 문서를 디지털로 보관하고 인증하는 플랫폼이다.

이 3층 구조가 만들어낸 효과는 물질적이다. 2014년 인도 성인 인구의 53%가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었다. 2022년 이 비율은 80% 이상으로 올랐다. 8년 만의 변화다.

2026년 2월까지 23개국이 인도와 DPI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UPI 방식의 즉시 결제 시스템을 채택하려는 나라가 늘고 있고, Aadhaar 방식의 생체 신원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정부들이 인도에 자문을 구한다. 디지털 인프라가 수출 상품이 된 최초의 대규모 사례들이다.

이것이 인도가 가진 두 번째 레버리지다. IT 아웃소싱이라는 실행 레이어의 레버리지가 흔들리는 순간, 디지털 인프라 설계 노하우라는 설계 레이어의 레버리지가 부상하고 있다.

소버린 AI와 인구 역설

소버린 AI 분야에서도 인도는 독자 경로를 걷는다.

BharatGen Param2는 170억 파라미터 규모의 멀티모달 AI 모델로, 22개 인도 언어를 지원한다. 힌디어, 타밀어, 텔루구어, 마라티어까지. 영어권 프론티어 모델들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언어 공간이다. 14억 인구 중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비율은 10~12%에 불과하다. 나머지 12억 명을 AI가 서비스하려면 인도어 AI가 필요하다. GPU 3만 8,000기 기존 보유량에 2만 기를 추가하면서, 보조금 GPU 접근 비용을 시간당 65루피(약 1달러)까지 낮췄다. 스타트업과 연구자들이 프론티어 연산에 접근할 수 있는 장벽을 낮추는 전략이다.

외교적으로 인도의 포지션은 독특하다. G20과 BRICS를 동시에 주재하는 나라. FAANG이 인도에서 3만 2,000~3만 3,000명을 채용하는 동안, 인도는 AI Impact Summit 2026을 주최하며 AI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재자를 자임한다. 어느 진영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 양쪽으로부터 모두 필요한 존재가 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인도의 헤징 전략이 작동하는 데는 전제 조건이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 68%는 세계 최대 수준이다. 매년 1,200만 명이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이론상 인구 보너스다. 그러나 15~29세 청년 중 정식 직업훈련을 받은 비율은 4%에 불과하다. McKinsey는 2030년까지 인도 일자리의 70%가 AI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추정했다. 1,200만 명이 매년 진입하는 노동시장에서 IT 일자리가 줄고, 제조업 일자리는 충분히 늘어나지 않는다면 인구 보너스는 인구 압박이 된다.

인구 보너스는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India Stack이라는 디지털 인프라가 제도 적응을 가속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AI가 인프라보다 빠르게 고용을 잠식할지. 그 결과에 인도의 제3의 길 성패가 달려 있다.

방갈로르 TCS 테크 파크로 돌아간다. 라비는 화면을 바라보며 한 가지 계산을 한다. 자신이 지금 훈련시키는 AI가 얼마나 빨리 자신의 업무를 대체할지. 그 속도가 자신이 새 역량을 쌓는 속도보다 빠른지. 이 계산이 인도 IT 산업 전체가 지금 하고 있는 계산이다.


섹션 D: EU — 규제 강국의 딜레마

두 개의 레버리지

네덜란드 남부 벨트호벤(Veldhoven)에 있는 ASML 본사.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EUV(Extreme Ultraviolet,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장비 한 대를 이동하려면 트럭 40대가 필요하다. 무게 160톤 이상, 부품 수 10만 개 이상, 가격 3억 달러 이상. 이 장비가 없으면 7나노미터 이하의 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 세계에서 이 장비를 만드는 회사는 ASML 하나뿐이다.

2019년부터 중국에 단 한 대도 팔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회사의 2030년 매출 전망은 710억 달러다. 중국을 배제하고도 성장하는 병목이다.

EU가 AI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에 밀린다는 서사가 있다. 그 서사에서 빠지는 것이 ASML이다. 인구 1,700만 네덜란드의 단 하나의 기업이 미중 반도체 전쟁의 가장 결정적 레버를 쥐고 있다.

2026년 초, ASML은 유럽 유일의 프론티어 AI 도전자 Mistral AI 시리즈C 라운드에 13억 유로를 투자하며 리드 투자자가 되었다. 하드웨어 장비 회사가 AI 소프트웨어 회사의 최대 외부 주주가 된 것이다. EU의 숨겨진 레버리지 두 개 — 반도체 공급망 병목과 유럽 프론티어 AI — 가 처음으로 손을 잡은 순간이다.

AI Act: 규제가 산업을 만들 수 있는가

2026년 8월 2일, EU AI Act의 고위험 시스템 관련 규칙이 전면 시행된다.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다. 의료 진단, 신용 평가, 채용 결정, 교육 평가 등 고위험 영역에 적용되는 AI 시스템은 투명성 요건과 인간 감독 의무를 충족해야 한다. 위반 시 최대 3,500만 유로 또는 글로벌 매출의 7%를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EU의 규제 선도가 항상 EU에 유리하게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GDPR 시행 이후 EU의 VC 투자는 미국 대비 26% 감소했다. 연간 준수 비용은 약 160억 유로로 추산된다. EU 집행위원회가 의뢰한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보고서는 GDPR을 "전략적 재조정이 필요한" 이슈로 명시했다.

EU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규제하는 AI는 있으나, 규제받을 AI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능력이 부족하다.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개 AI 기업 중 EU 기반은 0~1개다. 글로벌 AI VC 투자의 60%가 SF 베이 에어리어에 집중되는 동안, EU 비중은 약 13%다. 1권에서 로마 vs 카르타고 프레임을 빌리면, EU는 정교한 규칙을 가졌으나 시장 확장성이 부족한 카르타고의 상황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그러나 2025년 데이터는 다른 가능성도 보여준다. 유럽 AI VC 투자는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 파리 AI 액션 서밋에서 프랑스는 1,090억 유로의 AI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Mistral AI의 기업가치는 140억 달러를 넘었고, 연간 반복 매출(ARR)은 4억 달러로 1년 만에 20배 성장했다.

규제가 신뢰 기반 생태계를 만들고, 그 신뢰가 기업과 자본을 끌어당기는 선순환이 가능한지. EU의 실험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미국 AI 기업이 EU 시장에 진출하려면 AI Act를 준수해야 한다. 준수 비용이 EU 기업에는 "내재화된 비용"이지만, 미국 기업에는 "추가 비용"이다. 이 비대칭이 EU 기업에게 홈그라운드 이점을 부여할 수 있다.

규제가 산업을 만드는가. 이 질문의 대답을 EU는 지금 쓰고 있다.


섹션 E: 중동 — 석유에서 알고리즘으로

자본이 방향을 바꿀 때

아부다비 MGX 본사의 회의실 벽면 스크린에 두 개의 선이 그려져 있다. 하나는 UAE 석유 매장량의 잔여 가채 연수, 다른 하나는 현재 진행 중인 AI 인프라 투자 규모다. 두 선의 교차점에 분석가가 말한다. "그때가 되면 두 가지 중 하나만 남습니다. 새로운 레버리지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이 절박함이 걸프 국가 AI 전략의 속도를 설명한다.

크라수스의 전략이 있다. 로마의 목조 인슐라에 화재가 나면, 크라수스의 소방대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은 집주인이 헐값에 건물을 팔겠다고 할 때까지 물을 뿌리지 않았다. 화재가 기회였다.

걸프 국가들의 논리는 같다. 석유의 가치가 하락하기 전에 다음 시대의 자산을 대량 매입한다. 석유(물질적 레버리지) → 데이터센터(반물질적 레버리지) → AI 서비스(비물질적 레버리지). "레버리지의 탈물질화" 패턴이다. 토지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API 호출로 권력의 원천이 이동하는 역사적 흐름을 걸프 국가들은 읽었다.

투자 규모는 이 방향 전환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UAE의 G42와 OpenAI, NVIDIA가 공동 추진하는 Stargate UAE 캠퍼스는 총 5GW 규모로 투자 규모 200억 달러다.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 산하 HUMAIN은 NVIDIA와 500MW 규모의 AI 팩토리를 공동 구축한다. 걸프 지역 기업의 95%가 3년 내 소버린 AI 플랫폼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들에게 유리한 조건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돈이다. 석유 수입이 여전히 풍부한 지금이 투자 적기다. 둘째, 에너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태양광 발전 단가는 세계 최저 수준이며, UAE는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 중이다. AI 데이터센터의 가장 큰 비용 중 하나는 전력이다. 에너지 비용 우위는 AI 인프라 운영 비용을 낮추는 구조적 강점이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UAE 인구는 약 1,000만 명, 사우디아라비아는 약 3,600만 명이다. AI 엔지니어 대부분을 해외에서 유치해야 한다. AI 모델은 주로 미국에서 구입하고, 인프라 건설에는 중국 기업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두 강국의 기술에 동시에 종속되는 구조다. 자본은 있으나 역량의 원천이 외부에 있다.

G42는 미국의 압력에 응해 중국과의 연계 자산을 매각하고 미국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끊는 대가로 세계 최강의 프로세서에 접근하는 독점 클럽에 진입하는 것이다. 헤징 전략이 제휴로 수렴하는 순간이다.

빠른 의사결정이 반드시 올바른 의사결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련이 1950~60년대에 막대한 자원을 기술 도약에 투입했을 때, 단기 지표에서 미국을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 투자가 민간 혁신 생태계와 연결되지 않자, 장기적으로는 기술 경쟁력이 내부에서 침식되었다. 걸프의 AI 투자가 외부 인재와 외부 기술에 의존하는 한, 같은 패턴이 반복될 수 있다.


섹션 F: 한국 독자를 위한 시사점 — 밀린 나라인가, 읽은 나라인가

세 가지 조건

네 제3의 플레이어를 비교하면 공통 패턴이 드러난다.

한국의 HBM, 인도의 인재와 디지털 인프라, EU의 규제 표준, 중동의 자본. 형태는 다르지만 공통 구조는 동일하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확보하고, 미중 경쟁을 레버리지로 전환하며, 시간과 경쟁한다.

이 공통 구조를 분해하면 세 가지 조건이 나온다.

첫 번째 조건은 불가대체성(不可代替性)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역할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의 HBM, 네덜란드의 EUV. 인도가 23개국에 DPI를 수출하는 것도 이 범주다. 불가대체성이 있는 나라는 미중 양측 모두가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협상력이 생긴다. 협상력은 선택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다.

두 번째 조건은 양측 효용(兩側效用)이다. 미국에게도, 중국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한국은 NVIDIA에 HBM을 공급하면서 중국 소비 시장에도 메모리를 판매한다. 인도는 FAANG의 최대 인재 공급처이면서 BRICS의 의장국이다. 양측 효용이 없으면 선택을 강요받는다. 선택을 강요받은 순간 레버리지는 사라진다.

세 번째 조건은 제도적 민첩성이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제도적 대응이 따라가는 능력이다. 한국이 AI 기본법을 2년 만에 제정·시행한 것이 이 범주다. 1권에서 제시한 산업혁명의 제도 적응 사례는 64년이었다. AI 시대에 이 주기를 압축할 수 있는가. 그러나 입법이 제도 작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세 개의 시계

세 조건 각각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그리고 그 유효기간은 서로 다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불가대체성의 시계. 중국의 HBM 자급 시도가 진행 중이다. CXMT(长鑫存储) 등 중국 기업들이 HBM 개발에 진입했다. 중국 반도체 장비 자급률은 2024년 기준 13.6%다. 낮다. 그러나 방향은 위를 향한다. 화웨이 Ascend 910C 생산은 2025년 60만 개에서 2026년 160만 개로 늘어난다. 중국이 HBM을 완전히 자급하는 데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방향이 정해진 경쟁에서 "언제"는 확률의 문제이지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양측 효용의 시계. 연간 갱신 라이선스 체계는 매년 불확실성을 재생산한다. AI 칩 관세 25%는 미국 공급망 외 고급 AI 칩에 적용된다. 미중 기술 분기가 심화될수록 "중간 지대"는 좁아진다. 한국이 양쪽 모두에 공급할 수 있는 공간의 폭은 구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제도적 민첩성의 시계. 법안이 통과되어도 집행 역량이 따라가지 않으면 제도는 형식에 그친다. AI 기본법이 시행되었어도, 고위험 자동화에 노출된 38.8%의 일자리 문제는 입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밀릴 조건과 읽을 조건

한국이 밀릴 조건을 먼저 본다.

단일 산업(HBM) 과의존이 유지되고, 중국의 HBM 자급이 가시화되고, 차세대 메모리 아키텍처에서 설계 레이어 진입에 실패할 경우. 연간 라이선스 체계 압박 속에 중국 시장을 급격히 잃으면서 미국 대체 수요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을 경우. AI 자동화 전환 과정에서 밀린 자들이 누적되고, 제도적 대응이 충격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한국이 읽을 조건은 이렇다.

HBM에서 차세대 메모리 아키텍처로 설계 레이어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AI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일부 확보할 경우. 연간 라이선스 체계 변화를 능동적으로 관리하며 미국과의 신뢰 자산을 축적하고, 중국과의 관계는 레거시 메모리 공급이라는 협력 가능 영역으로 제한하되 급격한 단절은 피할 경우. 그리고 HBM의 수익을 다음 레버리지 개발에 투자하는 "독일의 선택" — 1880년대 제조업 수익을 화학·전기 산업 연구에 재투자했던 — 을 반복할 경우.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영국 시찰단은 이렇게 기록했다. "독일이 우리가 발명한 과학을 우리보다 잘 활용하고 있다." 발명과 활용 사이의 간극이 30년 뒤 패권 이동의 씨앗이 되었다. 한국이 HBM을 만든 것에서 멈추는 것과, 그 기반에서 다음 기술 레이어를 설계하는 것은 같은 전략이 아니다.

어느 플레이어도 두 제국 중 하나가 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전략은 두 제국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자신도 두 제국 모두가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플레이어도 이것이 영구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닫는 이미지: 유효기간 안에

다시 이천으로 돌아온다.

2026년 1월, M16 팹의 클린룸. 완성된 HBM4 칩이 포장 라인으로 이동한다. 에폭시 몰딩, 전기적 테스트, 라벨링. 테스트를 통과한 패키지가 캐리어에 올려진다. 통과한 칩만이 출하된다.

이 칩들은 세 방향으로 흩어진다.

일부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로 향한다. Stargate 데이터센터의 NVIDIA 블랙웰 랙 안에서 OpenAI의 다음 모델 훈련에 투입될 것이다. 일부는 선전 AI 연구소로 간다. 수출 허가가 유지되는 한, 레거시 메모리 및 허용 등급 제품으로 이동하는 물량이다. 일부는 아부다비로 향한다. G42 캠퍼스의 Phase 1 인프라에 탑재될 것이다.

한 공장에서, 세 개의 알고리즘 제국이 시작된다.

이 구조를 가능하게 한 것은 기술이다. 3D 적층, 고대역폭 인터커넥트, 수십 나노미터 정밀도의 공정 노하우. 삼성 반도체가 적자이던 시절에 투자를 멈추지 않았던 결정들, SK하이닉스가 HBM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시기의 선택들. 수십 년의 축적이 지금 이 클린룸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구조가 계속 가능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지정학이다. 미국이 한국을 Chip 4 동맹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하는 한. 중국이 한국 메모리 없이는 자국 IT 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계산하는 한. 두 조건이 동시에 성립하는 한.

1권 연결점: 레버리지의 유효기간

레버리지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1769년,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가 수력방적기로 특허를 받았다. 1833년, 영국 공장법이 제정되었다.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사회가 제도를 바꾸는 데 64년이 걸렸다. AI 시대에 이 주기가 얼마나 압축되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의 독자가 투자하고, 커리어를 결정하고, 기업을 세우고, 정책을 만드는 것은 그 주기 안에서다.

2026년에서 20년을 더하면 2046년이다.

그 20년 안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HBM 이후의 설계 레이어를 만들 수 있을지. 인도의 연간 1,200만 노동시장 진입자가 AI와 함께 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 EU의 규제 기준이 혁신의 족쇄가 아닌 신뢰의 기반이 되어 Mistral 다음의 기업들을 키워낼 수 있을지. 중동의 자본이 기술 종속의 자본이 아닌 진짜 역량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이 질문들이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레버리지의 유효기간 안에 무엇을 할 것인가.

1권의 마지막 질문이 돌아온다.

당신은 밀린 자인가, 읽은 자인가.

에필로그는 하나를 더한다.

그리고 당신의 나라는?


이 책은 두 제국의 알고리즘을 추적했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제국만의 것이 아니다. 이천의 클린룸에서, 방갈로르의 테크 파크에서, 벨트호벤의 공장에서, 아부다비의 데이터센터에서도, 저마다의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다. 두 제국이 경쟁하는 세계에서, 제3의 플레이어들은 그 경쟁을 자신의 연산 자원으로 삼는다. 패권은 결말이 아니라 조건이다. 그 조건 위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