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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 — 두 제국의 알고리즘

제15장: 세 가지 시나리오 — 향후 20년


도입부: 방콕의 교실, 나이로비의 병원, 자카르타의 관청

교실의 선택

2028년 3월, 방콕 외곽의 한 공립학교.

교사 수파차이는 교실 앞 스크린을 켠다. 화면에 AI 튜터 인터페이스가 뜬다. 지난달까지 이 화면에는 미국산 서비스가 올라와 있었다. 이번 달부터 달라졌다. 딥시크(DeepSeek)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용이 20분의 1이다.

학교 운영위원회는 두 달 전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다. 성능 비교표를 들고 온 교감이 말했다. 태국어 지원은 오히려 딥시크가 낫다. 학생 이름을 태국 문자로 정확히 읽고, 피드백을 태국어로 돌려준다. 예산 항목 하나가 20분의 1로 줄어든다는 계산 앞에서, 회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파차이는 어떤 세계관을 가르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예산에 맞는 것을 골랐다. 교실의 41명 학생들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질문을 입력하고 답을 받는다. 어느 나라의 알고리즘이 그 답을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알고리즘이 교과서를 대체하는 세계에서, 이 선택은 기술 선택이다. 그리고 동시에 제도 선택이다. 어떤 데이터로 훈련되었는지, 어떤 가치 체계로 정렬되었는지가 다른 AI가, 수파차이 교실의 41명에게 세계를 가르치고 있다.

방콕의 이 교실은 거대한 분기점의 축소판이다.

나이로비와 자카르타

같은 시각, 나이로비의 한 병원 영상의학과.

의사 아미나는 계약서 마지막 장에 서명한다. 진단 AI를 중국산으로 전환하는 계약이다. 성능 비교 리포트를 세 번 읽었다. 미국 제품과 대등하다. 가격은 3분의 1이다. 훈련 데이터에 동아프리카 영상이 포함되어 있다. 케냐 환자에게 더 잘 맞는다는 내부 평가가 나왔다.

아미나가 서명하는 동안, 병원 IT 담당자는 서버 마이그레이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이제 이 병원의 진단 AI는 베이징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연결된다.

자카르타에서는 공무원 하디가 서류를 처리한다. 행정 처리 시스템을 미국 클라우드에서 알리클라우드(阿里云)로 이전하는 승인 문서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디지털 전환 예산이 삭감된 해에, 알리바바(阿里巴巴)는 현지화 지원과 기술 교육을 패키지로 제공했다. 하디는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비용이 절반이고 서비스가 더 좋다. 국적이 문제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국적이 문제다.

거대한 분기

이 사건들은 개별적이지 않다.

방콕의 교사, 나이로비의 의사, 자카르타의 공무원 — 이들은 각자의 예산과 필요에 따라 선택했다. 다만 그 선택들이 쌓이면 하나의 구조가 된다. 어느 나라의 AI 생태계가 다음 세대의 기술 기반값이 되는가. 그 기반값이 결정되면, 그 위에 올라타는 모든 서비스와 데이터와 관계가 함께 결정된다.

이것은 교역로의 문제가 아니다. 표준의 문제다.

로마의 도로 규격에 맞는 바퀴를 만들면 로마 제국 전체 시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 규격에서 벗어나면 제국의 도로를 달릴 수 없었다. AI 시대의 도로는 API 호환성이고, 데이터 포맷이고, 거버넌스 규범이다.

질문이 전환된다. "향후 20년,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갈리는가?"

이 챕터는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예측은 확률로 말하지만 우리는 그 확률을 알지 못한다. 대신 조건으로 말한다.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 어떤 경로가 강화되는가. 세 경로가 열리는 조건과 변수를 정리한다.

세 경로의 윤곽

경로는 세 가지다.

첫 번째: 미국이 AI 기술 패권을 유지하는 경로. 프론티어 모델 선두, 달러 기축, 동맹 네트워크가 동시에 유지될 때 이 경로가 강화된다. 미국이 AI 인프라의 표준을 장악하고, 디지털 달러 패권을 통해 기존 금융 패권을 연장한다.

두 번째: 중국이 실질적 추월을 달성하는 경로. "충분히 좋은 AI"가 "최고의 AI"를 대체하는 세계에서, 에너지 우위와 글로벌 사우스 확산이 결합될 때 이 경로가 강화된다. 비용과 접근성이 성능보다 중요한 변수가 되는 세계다.

세 번째: 세계가 두 개의 기술 블록으로 갈라지는 경로. 미국도 중국도 결정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채, 하드웨어 스택과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거버넌스 규범이 각각 분기한다. 방콕 교실의 수파차이와 싱가포르 핀테크의 CTO가 모두 이중 비용을 부담하는 세계다.

1권에서 확인한 핵심 공식 — 기술이 폭발하고, 자본이 집중되고, 밀린 자들이 생겨나고, 제도가 뒤를 쫓는다 — 은 지금 두 제국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그 공식의 결과는 하나가 아니다. 세 갈래 길이 있다.

1769년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의 수력방적기에서 1833년 공장법까지 64년이 걸렸다. 2026년에 64년을 더하면 2090년이다. 그 사이의 20년 — 2026년에서 2045년까지 — 이 이 책의 독자가 투자하고, 커리어를 선택하고, 자녀를 키우는 시간이다. 엥겔스의 일시정지(Engels' Pause) 한가운데에서, 세 갈래 길 중 어느 것이 실현될지 알지 못한 채 움직여야 한다.


섹션 A: 시나리오를 읽는 도구 — 6대 변수 프레임워크

1893년 런던이 놓친 것

1893년은 특별한 해였다.

그 해, 독일의 철강 생산량이 영국을 처음 추월했다. 런던의 《이코노미스트》는 이것을 1면에 실었다. 데이터는 명확했다. 영국 독자들의 반응도 명확했다.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불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위안이었다.

위안이 더 강했다.

"우리에게는 금융이 있다. 파운드가 있다. 왕립 해군이 있다. 철강 하나가 역전된다고 무슨 일이 있겠는가."

이 위안은 반쯤 옳았다. 1913년, 독일 제조업이 세계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8%였다. 영국은 13.6%였다(Bairoch 통계). 두 나라의 제조업 순위가 역전되었다. 독일의 유기화학 제품은 세계 시장의 90%를 장악했다. 반면 런던은 여전히 세계 금융의 중심이었다. 파운드는 기축통화였다. 왕립 해군은 "두 번째와 세 번째 강대국 해군을 합친 것보다 강해야 한다"는 원칙을 유지했다.

그리고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독일은 군사적 도박을 선택했다. 제조업 추월을 패권 전환으로 이어가지 못한 것이 압박이었다. 전쟁은 패배로 끝났다. 한편 그 과정에서 영국은 미국에 막대한 빚을 졌다. 파운드의 힘은 서서히 빠졌다. 달러가 무역신용 통화로 파운드를 앞선 것은 1920년대였다. 외환보유고 기준으로 달러가 파운드를 추월한 것은 1920년대 후반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로 달러 패권이 공식화된 것은 1945년이었다.

철강 역전에서 금융 패권 전환까지 30~50년이 걸렸다.

단일 지표가 역전될 때 공포에 빠지는 것도, 안심하는 것도 오류다. 역사적 패권 전환은 여러 변수가 동시에 이동할 때만 발생했다.

2025년, MMLU 벤치마크에서 미중 AI 성능 격차가 17.5%포인트(2023년)에서 0.3%포인트로 좁아졌다(Epoch AI). 이것을 보고 공포에 빠지는 것도, "아직 프론티어는 우리가 앞선다"고 안심하는 것도 1893년의 오류다.

역사에서 추출한 여섯 변수

역사에서 생산성 혁명과 패권 경쟁이 동시에 진행된 네 사례를 들여다보면, 공통으로 작동한 변수가 있다.

로마 대 카르타고(Carthage). 기술 변수는 도로·수도·법체계라는 "프로토콜 표준화"였다. 제도 변수는 시민권의 단계적 확장이었다. 카르타고는 경제적으로 회복력이 강했다 — 퓨닉 전쟁 중에도 동전을 주조했다. 반면 용병 의존 체제는 제도적 확장성이 없었다. 결국 시민권을 이탈리아 반도 전체로 확장하며 인적 기반을 넓힌 로마가 이겼다.

영국 대 독일(1870~1914). 제조업 추월은 패권 전환을 의미하지 않았다. 금융 패권의 관성, 동맹 네트워크, 그리고 독일이 "다음 파도"(2차 산업혁명의 화학·전기)를 선점했음에도 군사적 도박으로 몰린 전략적 오류가 결정했다.

미국 대 소련(1947~1991). 소련의 패배는 기술력 부족이 아니었다. 핵무기, 반도체, 우주 기술 모두 소련이 개발했다. 문제는 그 기술을 민간 부문으로 확산하는 제도적 유연성의 부재였다. DARPA가 인터넷을 낳고, 그 인터넷이 실리콘밸리를 낳는 군민전환(civil-military conversion)이 소련에는 없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전환(1914~1945). 유일한 "평화적 전환"이다. 대량생산과 금융 혁신, 그리고 무엇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통한 영국의 자본 소진이 전환을 완성했다.

이 네 사례에서 공통으로 추출되는 변수는 여섯 개다.

첫째, 기술 프론티어. 누가 다음 파도를 선점하는가. 단일 벤치마크가 아니라 시스템 수준의 혁신 — 에이전트 AI, 과학적 발견 응용 — 에서의 지속적 선도가 기준이다. 현재 미국이 선두지만 격차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중국 오픈소스 AI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024년 말 1.2%에서 2025년 8월 30%로 뛰었다(LLM Stats).

둘째, 자본·금융 구조. 금융 패권은 제조업 패권보다 훨씬 느리게 전환된다. 달러는 현재 글로벌 외환보유고의 56.32%를 차지한다(IMF COFER). 위안화는 2%에 머물며, 자본통제가 계속되는 한 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셋째, 동맹·네트워크. 기술 동맹은 이해관계의 정렬이다. 미국은 CHIPS Act(반도체지원법)로 TSMC(台积电)·삼성·인텔의 팹 투자를 묶고, ASML(ASML Holding N.V.)의 EUV 수출 통제를 네덜란드·일본·한국과 공조한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带一路, BRI)와 디지털 실크로드로 글로벌 사우스에 인프라를 심는다.

넷째, 제도적 유연성. 소련의 실패가 증명한 변수다. 기술을 민간으로 확산하는 제도적 경로의 유무. 미국은 느리지만 50개 주의 분산 실험이 피드백 루프를 만든다. 중국은 빠르지만 오류가 교정되지 않고 증폭될 위험이 있다. 단기보다 장기에 결정적이다.

다섯째, 인적 자본. 전 세계 AI 연구자의 47%를 중국이 배출한다. 반면 다수는 미국 대학원에서 훈련받아 미국 기업에서 일한다. H-1B 비자 수수료 10만 달러 인상이 이 흐름을 위협하는 동시에, 중국은 K비자로 역방향 인재 유치에 나섰다.

여섯째, 에너지·인프라. AI 시대의 에너지는 산업혁명 시대의 석탄이다. 중국은 2024년 약 430GW 전력을 순 추가했다 — 미국(약 30GW)의 14배다(국가에너지국/Jefferies). 반면 미국은 NVIDIA GPU 시장의 92%를 장악한다. 에너지는 중국 우위, 첨단 반도체는 미국 우위라는 구조다.

이 여섯 변수를 하나의 표로 정리하면 미중 경쟁의 현 위치가 드러난다. 미국은 기술 프론티어, 자본·금융, 동맹·네트워크에서 우위를 유지한다. 중국은 에너지·인프라에서 구조적 우위를 가진다. 인적 자본과 제도적 유연성은 양쪽 모두 취약성을 안고 있다.

여섯 변수와 세 시나리오

이 여섯 변수 중 하나가 역전되었다고 해서 패권이 전환되지 않는다. 1893년의 철강 역전이 그랬다. 다만 여섯 변수가 동시에 이동하기 시작할 때 — 그것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미중 AI 경쟁에서 세 시나리오는 이 여섯 변수의 조합으로 정의된다.

시나리오 A는 미국이 기술 프론티어, 자본·금융, 동맹·네트워크 세 변수를 유지할 때 강화된다. 시나리오 B는 중국이 에너지·인프라의 우위를 에너지 집약적 AI 응용으로 전환하고, 인적 자본 제약을 로보틱스로 보완하며, 동맹·네트워크를 글로벌 사우스로 확장할 때 강화된다. 시나리오 C는 기술 프론티어는 양쪽이 각자 유지하되, 동맹·네트워크가 두 블록으로 분리되고 제도적 유연성에서 공통 기반을 찾지 못할 때 강화된다.

세 시나리오는 조건의 집합이다. 예측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섯 변수의 현재 위치는 어떤 시나리오를 가리키는가.

2025년 현재, 미국이 우위를 유지하는 변수가 셋이다 — 기술 프론티어, 자본·금융, 동맹·네트워크. 중국이 구조적으로 앞서는 변수가 하나다 — 에너지·인프라. 나머지 둘(인적 자본, 제도적 유연성)은 양쪽 모두 취약성을 안고 있다. 이 배치에서 시나리오 A의 기반이 가장 넓다.

그러나 정적인 우위보다 중요한 것은 이동의 방향이다. 만약 핵심 동맹국이 수출 통제 공조에서 이탈하거나 중국 AI 인프라를 채택하면, 동맹·네트워크 변수가 흔들리고 시나리오 C가 강화된다. 만약 중국의 에너지 우위가 AI 응용의 비용 경쟁력으로 전환되면서 글로벌 사우스 채택이 가속되면, 시나리오 B가 강화된다. 만약 미국 내부에서 포퓰리즘이 이민 제한과 기술 규제로 이어지면, 시나리오 A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약화된다.

이것이 이 책이 시나리오 A에 가장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되, 시나리오 C를 B보다 높게 놓는 이유다. 현재 가장 활발하게 진행 중인 구조 변화는 추월이 아니라 분열이기 때문이다. 제16장에서 이 가중치를 구체적 숫자와 모니터링 체계로 전환한다.


섹션 B: 시나리오 A — 미국 기술 패권 유지

청문회장의 침묵

워싱턴 D.C., 러셀 상원 사무소 건물의 한 위원회 청문회장.

2025년 봄, 상원 AI 소위원회 청문회. 증인석에는 IT 기업의 임원, 경제학자, 노동 전문가가 앉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AI 책임자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eyman)은 같은 해 일찍이 공개 발언을 통해 말했다. "18개월 안에 모든 화이트칼라 업무가 자동화됩니다."

청문회장에서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질문을 한다. 더 많은 질문을 한다. 두 시간이 지난다. 청문회가 끝난다.

법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2025년 한 해, 미국 의회를 통과한 연방 AI 법안은 단 1건이었다. TAKE IT DOWN Act — 동의 없는 허위 성적 이미지의 삭제를 강제하는 법이다. 생성형 AI의 경제적 영향, 화이트칼라 일자리 대체, 알고리즘 책임에 관한 포괄적 연방 법안은 0건이었다.

같은 해, 7대 테크 기업은 로비에 5,000만 달러를 썼다. 의회 개회일당 40만 달러꼴이다. AI 로비스트는 전체 로비스트의 26%를 차지했고, 2022년 대비 168% 증가했다.

같은 날 베이징. 10개 부처 합동 AI 윤리 관리 조치가 공식 발표된다. 초안 공개에서 시행까지 걸린 시간은 9개월이다.

두 나라의 시계는 다른 속도로 돌아간다. 그 간극이 시나리오 A의 내부 위험이다.

2035년, 시나리오 A가 실현된다면

2035년 봄, 피츠버그의 한 지역 병원.

간호사 출신 행정 코디네이터 데니스(Denise)는 화면을 들여다본다. AI 보조 시스템이 오늘 그녀의 케이스 목록을 정리해 놓았다. 환자 34명. 보험 청구, 퇴원 조율, 사후 관리 알림까지 80%가 자동 처리되었다. 남은 20%만 그녀의 판단이 들어간다.

2028년만 해도 이 일은 세 명이 했다.

다만 데니스의 시급은 오히려 올랐다. 병원은 코디네이터를 줄이는 대신 역할을 바꿨다. 반복 처리는 AI가 맡고, 환자 가족과의 어려운 대화는 그녀가 맡는다. 피츠버그 시의 "AI 전환 수당" 프로그램이 재교육 비용을 댔다. 연방 AI 세수를 재원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AWS AI 인프라 위에서 돌아가는 이 시스템은 메뉴 언어가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로 나뉜다. 피츠버그의 병원이 아랍어를 지원하게 된 것은 2031년부터다. 미국 AI 표준이 글로벌 표준이 된 세계에서, 그 표준은 이 병원 화면에도 와 있다.

데니스는 그 배경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케이스를 처리한다.

이것이 시나리오 A가 실현된 세계의 한 단면이다. 패권은 선전 포고 없이 도착한다. 병원 화면의 메뉴 언어로, 재교육 프로그램의 재원으로, AI 시스템의 API 표준으로.

다섯 조건의 동시 충족

미국이 AI 시대에도 기술·금융·제도적 패권을 유지하는 경로는 다섯 가지 조건의 동시 충족을 요구한다. 이 중 하나라도 이탈하면 시나리오 A는 약화된다.

조건 1: 기술 선두 유지.

단순한 벤치마크 1위가 아니다. 시스템 수준의 혁신 — 에이전트 AI, 멀티모달 추론, 과학적 발견 응용 — 에서의 지속적 선도다. 현재 미국 프론티어 모델(GPT-5, Claude Opus, Gemini 3 Pro)은 벤치마크 선두를 유지한다. 다만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

MMLU 격차: 17.5%포인트(2023년) → 0.3%포인트(2025년). HumanEval 격차: 31.6%포인트 → 3.7%포인트. 시간 격차: 평균 7개월에서 3~6개월로 단축(Recorded Future 분석). 중국 오픈소스 AI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024년 말 1.2%에서 2025년 8월 30%로 뛰었다. 오픈 가중치 모델 상위 10개 중 9개가 중국산이다.

이 숫자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기술 선두를 유지하는 데 드는 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조건 2: 이민 정책의 안정화.

실리콘밸리는 이민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OpenAI, Google DeepMind, Anthropic의 핵심 연구자 중 상당수는 인도, 중국, 동유럽 출신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H-1B 비자 수수료 10만 달러 인상은 이 흐름에 역방향 압력을 가하고 있다.

FAANG 기업들은 인도 현지 채용을 3만 3,000명으로 늘렸다(전년 대비 18% 증가). 미국 유학 후 인도 취업을 선호하는 비율은 30~40%다. 인재가 미국으로 향하는 흐름이 반전되면, 기술 선두 유지라는 조건 1이 흔들린다. 조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조건 3: 달러 기축통화 체제 지속.

달러는 현재 글로벌 외환보유고의 56.32%를 차지한다. 2001년 피크 72%에서 하락했다. 다만 환율 효과를 제거하면 실질적 하락폭은 0.12%포인트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St. Louis Fed). 위안화는 2%에 머문다. 유로는 20%다. 달러의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달러 패권은 관성적으로 유지된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한 조건이 아니다. 파운드에서 달러로의 전환이 30~50년에 걸쳤듯, 달러 침식도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AI 서비스를 달러로 결제하는 것이 글로벌 표준이 되면 달러 패권이 강화된다. 반면 위안화로 결제되는 AI 서비스가 확산되면 달러 패권은 침식된다.

조건 4: 동맹 네트워크 결속.

CHIPS Act 이행이 진행 중이다. 인텔 78억 6,000만 달러, TSMC 66억 달러, 삼성 47억 5,000만 달러의 보조금이 약속되었다. ASML의 EUV 장비 독점이 유지되는 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은 구조적 병목에 직면한다. ASML의 2024년 대중국 DUV 매출은 연간 기준 36.1%(분기 피크 49%)였다가 수출 규제 강화로 2025년에는 연간 약 33%로 축소되었다.

이 조건의 위험은 동맹국 내부에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동맹국과의 마찰을 유발한다. 대만 해협의 안정이 흔들리면 TSMC 공급망이 위협받는다. 동맹은 결속이지 계약이 아니다. 인센티브가 정렬되어 있을 때만 유지된다.

조건 5: R&D 투자의 지속적 확대.

빅테크 4사의 AI 설비투자는 2025년 4,000억 달러에서 2026년 6,350억~6,650억 달러로 확대된다. 하이퍼스케일러 5사(Oracle 포함) 합산으로는 6,600억~6,900억 달러다. 이 투자는 인류 역사상 단일 기술 부문에 쏟아지는 가장 큰 민간 투자다.

다만 투자가 수익으로 전환되어야 선순환이 유지된다. AI 투자 대비 수익화 지연은 "AI 버블" 논란을 만들고 있다. Amazon의 잉여현금흐름(FCF)은 마이너스 전환이 전망된다. 투자가 수익을 만들지 못하면 다음 라운드의 투자가 위협받는다.

시나리오 A의 작동 메커니즘

다섯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 시나리오 A는 이렇게 작동한다.

미국 프론티어 AI 모델의 선두가 유지된다. AWS·Azure·GCP라는 글로벌 AI 클라우드 인프라의 표준이 미국 중심으로 고착된다. AI 서비스를 달러로 구독하는 것이 세계 표준이 된다. 디지털 달러 패권이 물리적 달러 패권을 대체하며 강화된다. 동맹국은 미국 생태계에 의존하고, 중국은 내수 AI 응용 강국으로 수렴한다. 글로벌 패권에 대한 도전은 좌절된다.

이것이 시나리오 A의 논리적 사슬이다.

내부에서 오는 위협

시나리오 A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중국이 아니다.

2025년 AI 직접 해고는 5만 5,000명에 달한다. 포드 CEO는 "AI가 화이트칼라 절반을 대체할 것"이라고 공개 발언했다. 세일즈포스(Salesforce) CEO는 "이미 업무량의 50%를 AI가 처리한다"고 말했다. 2026년 1~2월에만 기술기업 3만 2,000명이 해고되었다.

국민의 79%가 AI 규제에 찬성한다. 공화당 지지자 84%, 민주당 지지자 81%. 미국 역사에서 이런 초당적 합의를 보이는 현안은 드물다. 그렇지만 청문회장에서 법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빅테크 로비가 그 간극을 채우고 있다. 7대 테크 기업이 로비에 쏟아부은 5,000만 달러는 의회의 행동을 막는 구조적 힘이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는 로마의 소방대를 사유화했다. 밀린 자의 집에 불이 나면 가격을 흥정했다. 21세기의 크라수스들도 같은 방식으로 밀린 자의 고통이 법안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다.

이것이 시나리오 A의 내부 모순이다. 기술 패권을 만들어낸 민주적 제도가, 기술 패권이 낳은 비용을 수용하지 못한다. 밀린 자의 분노가 쌓이면 포퓰리즘이 된다. 포퓰리즘이 정책이 되면 이민이 막히고, 동맹이 흔들리고, 시나리오 A의 조건들이 연쇄적으로 이탈한다.

시나리오 A는 미국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진다.

시나리오 A가 무효화되는 조건

시나리오 A는 다섯 조건의 동시 충족을 요구한다. 역으로, 다음 중 하나라도 발생하면 이 시나리오는 구조적으로 약화된다.

첫째, 기술 역전의 지속. 중국 AI 모델이 주요 벤치마크(MMLU, HumanEval, MATH)에서 미국 모델을 3회 연속 선점하고, 그 선점이 6개월 이상 유지될 때. "좁혀지는 격차"와 "역전된 격차"는 질적으로 다른 사건이다.

둘째, 달러 비중의 임계 하락. IMF COFER 기준 달러 외환보유고 비중이 50% 이하로 떨어지고, 위안화 비중이 5%를 돌파할 때. 파운드에서 달러로의 전환이 30~50년 걸렸다는 선례를 고려하면, 이 임계값 자체보다 이동 속도의 가속이 더 중요한 신호다.

셋째, 동맹 이탈. 핵심 기술 동맹국(네덜란드, 일본, 한국) 중 하나가 대중국 첨단 장비 수출을 단독으로 재개하거나, 미국 블록 내 팹 투자 계획이 대규모로 지연·취소될 때. 동맹은 이해관계의 정렬이다.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결속이 풀린다.

이 조건들은 예측이 아니다. 모니터링 기준이다.


섹션 C: 시나리오 B — 중국 추월

2035년, 시나리오 B가 실현된다면

2035년 8월, 라고스(Lagos) 외곽의 한 물류 창고.

운영 책임자 치디(Chidi)는 창고 입구에서 태블릿을 든다. 화면이 켜지면서 중국어 인터페이스가 잠깐 보였다가 자동으로 영어와 요루바어로 전환된다. 알리클라우드(阿里云) 기반 재고 관리 AI다. 나이지리아 전국 27개 창고가 이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다.

치디는 이 시스템이 어디서 왔는지 안다. 비용은 몰랐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2031년, 나이지리아 물류업계가 미국산 시스템을 검토했다. 연간 라이선스 비용이 이 시스템의 네 배였다. 요루바어 지원은 "검토 중"이었다. 알리바바(阿里巴巴)의 현지 파트너는 이미 라고스에 기술팀이 있었다. 계약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창고 입구 위쪽에 카메라가 달려 있다. 입고 물량을 자동으로 인식한다. 치디가 태블릿에 확인 사인을 넣는 순간, 데이터가 선전(深圳)의 서버로 흘러간다. 치디는 알고 있다.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것이 시나리오 B의 논리다. 기술 패권은 최고 성능이 아니라 가장 많은 곳에 심긴 기본값에서 온다. 라고스의 창고가 그 기본값이다.

아스타나의 훈련센터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Astana). 2025년 가을.

도심의 한 직업훈련센터. 콘크리트 외벽에 중국어와 카자흐어로 병기된 현판이 붙어 있다. 중국 디지털 실크로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세워진 시설이다.

강의실 앞에 화웨이(华为, Huawei)에서 파견된 엔지니어 왕타오(王涛)가 서 있다. 수강생 40명이 화웨이 클라우드 플랫폼의 기초 과정을 듣는다. 교재는 중국어와 카자흐어로 함께 쓰여 있다. AI 하드웨어는 중국 정부가 지원했다.

수강생들은 6개월 뒤 화웨이 인증 AI 기술자 자격을 받는다. 졸업 후 일자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다. 카자흐스탄 전국 12곳에 같은 훈련센터가 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9곳, 키르기스스탄에는 5곳이다.

아무도 이것을 "패권 확장"이라 부르지 않는다. "기술 협력"이라 부른다.

이름이 무엇이든, 이 수강생들의 기술 세계관의 기본값은 중국 생태계가 된다. 그들이 설치하고, 유지하고, 가르치는 시스템은 화웨이의 운영체제로 돌아간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다음에 AI 인프라 조달을 할 때, 이 수강생들이 자문한다.

이것이 시나리오 B의 현장이다.

시나리오 B의 핵심 논리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거나 기술 패권을 공유하게 되는 시나리오 B의 핵심 논리는 다음 명제에 있다.

프론티어 AI의 성능 격차가 좁아질수록, 비용과 접근성이 성능보다 중요한 변수가 된다.

방콕 교사 수파차이의 선택이 이것을 보여준다. 미국 AI가 중국 AI보다 0.3%포인트 더 정확해도, 비용이 20배라면 수파차이는 중국 AI를 선택한다. 나이로비 의사 아미나가 미국 진단 AI 대신 중국 AI를 선택한 것도 성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비용과 현지 적합성 때문이다.

"충분히 좋은 AI(Good Enough AI)"가 "최고의 AI"를 시장에서 대체하는 구조 — 이것이 시나리오 B의 핵심이다.

다섯 조건

조건 1: 반도체 자급 달성 또는 실질적 우회.

'Made in China 2025(中国制造2025)' 반도체 자급률 목표는 70%였다. 중국 내 생산 전체 기준 약 50%이나, 중국 기업 자체 설계·제조분은 19~23%다. 반도체 장비 자급률은 13.6%에 머문다. EUV 장비가 없다.

그러나 화웨이의 자급 시도는 진행 중이다. 어센드(Ascend) 910C는 SMIC(中芯国际, 중신국제) 7나노미터 공정으로 생산되며, 수율 40%의 한계에도 2025년 약 60만 개, 2026년 160만 다이 생산이 목표다. SMIC의 첨단 노드 월 생산 능력은 2025년 4만 5,000장에서 2027년 8만 장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EUV 없이 DUV 멀티패터닝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가 이 조건의 핵심이다. 비용과 수율에서 구조적 열세가 있지만, "충분한 수량의 충분한 성능"이 목표라면 완전 자급이 필요 없다.

조건 2: 에너지 우위의 전략적 활용.

산업혁명 시대, 영국이 풍부한 석탄으로 증기기관 시대를 선도했다. AI 시대의 석탄은 전력이다.

중국 데이터센터의 전기료는 미국의 절반 이하다(Fortune). 2024년 중국이 순 추가한 전력 용량은 약 430GW — 같은 해 미국(약 30GW)의 14배가 넘는다(국가에너지국/Jefferies). 2030년 여유 전력은 약 400GW로 전망된다. 미국의 전력망 업그레이드는 수십 년이 걸리는 인허가 과정에 막혀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DeepSeek은 H800 GPU 2,048장, 훈련 비용 600만 달러로 미국 빅테크의 10분의 1 이하 자원으로 경쟁력 있는 모델을 만들었다. 에너지 비용이 절반이면 추론 비용도 그에 따라 하락한다. 규모 경제가 붙으면 "충분히 좋은 AI"의 한계비용이 극적으로 낮아진다.

DeepSeek의 API 가격은 입력 기준 100만 토큰당 0.55달러다. OpenAI의 추론 모델 o1은 15달러다. 모델 등급과 성능이 다르므로 직접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가격 차이 자체가 시장에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조건 3: 글로벌 사우스에서 기본값 채택.

아프리카에서 딥시크의 사용량은 미국 AI 서비스 대비 2~4배 높다(Microsoft AI Diffusion Report 2025). Temu는 글로벌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의 24%를 차지하며 Amazon(25%)과 사실상 동률이다(IPC 2025). 중국의 디지털 서비스 무역흑자는 2025년 33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디지털 실크로드는 하드웨어만이 아니다. 아스타나의 훈련센터처럼, 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생태계를 심는다. 글로벌 사우스 50억 인구가 중국 AI 생태계를 기본값으로 채택하면, 데이터와 사용자가 축적되고, 그것이 모델 개선의 선순환을 만든다.

조건 4: 인구 문제의 기술적 보상.

중국의 인구절벽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5년 출생아 792만 명. 60세 이상 인구는 2025년 23%에서 2035년 30% 이상으로 증가한다. 4년 연속 총인구 감소가 진행 중이다.

중국 정부는 "물리적 AI(Physical AI)"로 이 감소를 상쇄하려 한다.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가 핵심이다. 2026년 반도체 슈퍼사이클에서 "물리적 AI"가 핵심 테마로 부상했다(SEMICON Korea 2026). 이 전략이 성공하면 인구절벽의 충격이 완화된다. 다만 로봇이 출생아를 대체할 수 있는지는 기술적 문제이기 이전에 경제적·사회적 문제다.

조건 5: 부채의 연착륙.

거시 레버리지 비율 302.4%(2025년, 전년 대비 12.4%포인트 증가). IMF 확장 정의 기준 정부 부채는 GDP의 약 127%(2025년 추정). FDI 순유출은 2024년 1,680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부동산 투자는 2025년 1~3분기 전년 대비 13.9% 감소했다.

Goldman Sachs의 추정에 따르면 부동산 침체로 연간 약 2%포인트의 GDP 성장률이 하락한다. 그러나 Morningstar는 2026년 말~2027년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전망한다. 일본식 장기 침체를 피하면서 구조조정을 완수할 수 있다면, 이 조건은 충족된다.

시나리오 B의 작동 메커니즘

다섯 조건이 충족될 때 시나리오 B는 이렇게 작동한다.

딥시크형 효율적 AI와 에너지 우위가 결합된다. AI 서비스의 한계비용이 극적으로 하락한다. 비용 감소는 글로벌 사우스에서 중국 AI 생태계의 기본값 채택을 유도한다. 방콕, 나이로비, 자카르타의 선택들이 수십억 건 반복된다. 데이터와 사용자가 축적된다. 모델이 개선된다. 개선된 모델이 더 많은 채택을 유도한다.

이 선순환이 작동하면, 미국의 프론티어 AI 기술 우위가 시장 우위로 전환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최고의 모델이 있어도 가격과 접근성이 낮은 경쟁자에게 시장을 잃는다. 결과는 실질적 기술 패권의 공유 또는 역전이다.

이중 제약이 가로막는다

그러나 시나리오 B를 가로막는 두 개의 구조적 제약이 있다.

첫 번째는 인구절벽이다. 소비 위축, 내수 시장 축소, 노동력 감소 — 이것들은 단기 정책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다.

두 번째는 혁신의 제도적 천장이다. 알리바바(阿里巴巴) 정규직은 2022년 25만 4,941명에서 2025년 12만 4,320명으로 51.2% 감소했다. 바이두(百度)는 2024년 말 3만 5,900명으로 2021년 피크 대비 21.1% 줄었다. 이것이 AI 효율화인가, 규제 억압인가. 어느 쪽이든, 대졸자의 73.1%가 공무원이나 국유기업을 희망하는 사회에서 — 민간기업 선호는 12.5% — 민간 부문의 창조적 파괴는 억제된다.

탕핑(躺平, 드러눕기)은 경제적 압박이기도 하지만, 제도에 대한 무언의 저항이기도 하다. CAC(国家互联网信息办公室, 중국 인터넷 정보판공실)가 탕핑 관련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검열할 때, 그것은 사회 불만의 조기 경보 시스템을 차단하는 것이다. 제도가 피드백 없이 운영될 때, 오류는 교정되지 않는다.

시나리오 B는 다섯 조건이 모두 충족되고 이중 제약이 극복될 때만 실현된다. 그 조건은 쉽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다.

시나리오 B가 무효화되는 조건

시나리오 B의 이중 제약(인구절벽 + 제도적 천장)이 극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악화되면, 이 시나리오는 무효화된다.

첫째, 반도체 자급 정체. 2030년까지 중국 기업의 자체 설계·제조 반도체 자급률(협의 기준)이 30%를 넘지 못하면, 하드웨어 병목이 "충분히 좋은 AI" 전략의 확장을 구조적으로 막는다.

둘째, 부채 위기의 현실화. 거시 레버리지 비율이 350%를 초과하면서 GDP 성장률이 3% 이하로 떨어지면, AI 인프라 투자와 사회 안전망 확충을 동시에 감당할 재정 여력이 소진된다.

셋째, 글로벌 사우스 이탈. 인도가 독자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글로벌 사우스에서 중국 AI 서비스 점유율이 정체 또는 하락하면, "기본값 채택" 전략의 전제가 무너진다. 인도의 선택이 이 변수의 가장 큰 미지수다.

넷째, 인구절벽의 가속. 합계출산율이 0.8 이하로 떨어지고, 로보틱스에 의한 노동력 보상이 제조업을 넘어 서비스업·돌봄 영역으로 확장되지 못하면, 내수 시장 축소가 선순환을 끊는다.


섹션 D: 시나리오 C — 분열된 세계

2035년, 시나리오 C가 실현된다면

2035년 11월,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환승 구역.

투르키예 보건부 디지털 정책 자문 에르칸(Ercan)은 가방에서 스마트폰 두 대를 꺼낸다. 하나는 미국 블록용이다. 구글 헬스케어 AI 시스템에 접속하려면 이 단말기가 필요하다. EU 의료 데이터 규범을 준수하는 기기다. 다른 하나는 화웨이 단말기다. 중앙아시아 보건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시스템은 이쪽만 지원한다.

제네바 회의를 마치고 바쿠로 가는 길이다. 도착지에 따라 어느 폰을 쓸지 달라진다.

에르칸의 일은 투르키예가 어느 AI 표준을 채택할지 자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방이 이미 답을 말하고 있다. 투르키예는 둘 다 채택했다. 두 표준 모두에 호환되는 중간 레이어를 직접 개발하는 데 지난 2년을 썼다.

비용이 얼마나 들었냐고 누군가 물은 적 있다. 에르칸은 잠깐 생각했다가, 하나를 포기하는 비용보다는 쌌다고 답했다. 아직까지는.

이것이 시나리오 C의 일상이다. 분열은 선언 없이 진행된다. 공항 환승 구역의 스마트폰 두 대로, 중간 레이어 개발팀의 야근으로, "아직까지는"이라는 유보 어구로.

두 개의 서버 랙

2029년(가상), 싱가포르.

핀테크 스타트업 '페이브릿지(Paybridge)'. CTO 아미라 아흐마드(Amirah Ahmad)는 서버실 입구에 서서 두 개의 랙을 바라본다.

왼쪽 랙. AWS 클라우드 연결, NVIDIA H200 가속기, OpenAI API 통합. 미국 블록 고객용 서비스가 올라가 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고객 중 절반이 여기 연결된다.

오른쪽 랙. 알리클라우드(阿里云) 연결, 화웨이 어센드(Ascend) 가속기, 딥시크(DeepSeek) API 통합. 중국 블록 고객용 서비스다. 나머지 절반 —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고객 — 이 여기 연결된다.

같은 서비스를 두 개의 스택으로 운영한다. 코드베이스가 두 개다. 인증 시스템이 두 개다. 결제 파이프라인이 두 개다. 개발팀의 40%가 이 이중 유지보수에 투입된다.

아미라는 기술 경쟁의 비용을 자신 같은 회사가 부담한다고 말한다.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자신들이.

이것이 시나리오 C의 현장이다.

이미 진행 중인 분열

시나리오 C는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다. 이미 진행 중이다.

하드웨어 스택의 분열. 미국 블록은 NVIDIA GPU + TSMC 파운드리 + ASML EUV + SK하이닉스·삼성 HBM으로 구성된다. 중국 블록은 화웨이 어센드 + SMIC 파운드리 + DUV 기반 대안 + 국산 HBM 개발로 구성된다. 두 스택은 기술 표준이 다르다. 화웨이의 CANN(Compute Architecture for Neural Networks) 프레임워크는 NVIDIA의 CUDA 생태계와 호환되지 않는다. 한쪽 스택을 선택하면 다른 쪽 소프트웨어 생태계 전체가 닫힌다.

2026년까지 이 하드웨어 이분화는 가시화된다(Pantheon Insights 분석). 어느 하드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위에 올라가는 모든 소프트웨어 선택이 결정된다.

소프트웨어·모델 생태계의 분열. 미국 블록에는 OpenAI API, Claude, Gemini가 있다. 중국 블록에는 딥시크, 통이치엔원(通义千问, Qwen), GLM, 키미(Kimi)가 있다.

주목할 것은 오픈소스의 역할이다. 오픈 가중치 모델 상위 10개 중 9개가 중국산이다(ChinaTalk). 오픈소스는 분열의 다리가 될 수도 있고, 중국 생태계의 글로벌 확산 경로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각국 정부의 규제 선택에 달려 있다.

미국의 "Decoupling America's AI from China Act" 법안 — 딥시크의 충격 이후 발의된 이 법안 — 은 오픈소스 채택에도 제한을 가하려 한다. 통과된다면 분열이 가속화된다.

거버넌스·규범의 분열. 미국은 최소 규제다. 연방 AI 법안 1건(2025년). 트럼프는 바이든의 AI 안전 행정명령을 취임 첫날 폐기했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구속력 있는 생성형 AI 규제를 시행했다(2023년 8월, 9개월만에). EU는 AI Act(인공지능법)를 2026년 8월 전면 적용한다. GPAI(인공지능 글로벌 파트너십)에는 44개국이 참여하지만, 미중 간 공유 프레임워크는 부재하다.

규범의 분열은 하드웨어 분열보다 더 깊다. 어떤 AI가 허용되고 어떤 AI가 금지되는지,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 이 규범들이 일치하지 않으면 시스템 통합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 주도 인터넷과 비중국 인터넷으로 분기가 진행되고 있다." 슈미트는 2025년 9월 인터뷰에서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나는 미국과 중국이 AI에서 대등하게 경쟁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중국이 오픈소스 모델로, 미국이 폐쇄형 모델로 경쟁하면서 "일대일로에 해당하는 세계 대부분이 미국 모델이 아닌 중국 모델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카이푸 리(李开复, Kai-Fu Lee)는 말한다. "중국 앱 채택국과 미국 앱 채택국으로 세계가 양분된다."

시나리오 C의 세 축

분열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거버넌스라는 세 축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이 세 축이 동시에 분기할 때 시나리오 C는 고착화된다. 하나만 분기하면 다른 두 축이 연결을 유지할 수 있다. 세 축이 모두 분기하면 두 생태계 사이의 교류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지금 어느 수준인가. 하드웨어 분기는 진행 중이다. 소프트웨어 분기는 시작되었다. 거버넌스 분기는 이미 현실이다. 세 축 모두에서 분기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고착화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다.

분열의 비용 분배

시나리오 C의 비용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은 각자의 블록에서 생태계를 구축하고 혁신한다.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블록 내 경제 주체들이 공유한다.

그러나 아미라의 스타트업처럼 제3국의 기업들은 이중 비용을 부담한다. 양쪽 블록 고객을 모두 가진 기업은 두 개의 인프라를 유지해야 한다. 개발팀의 40%가 이중 유지보수에 투입된다는 것은, 혁신에 쓸 자원의 40%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글로벌 혁신도 둔화된다. 두 생태계 사이의 지식, 데이터, 인재 교류가 감소한다. AI 발전 속도 전체가 저하된다.

소비자 비용도 상승한다. 중복 인프라, 비호환 기기, 분리된 서비스 — 그 비용은 최종 사용자에게 전가된다.

1권에서 다룬 "공존의 환상"이 이 시나리오에서 공식적으로 종료된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기술적 분리를 막을 것이라는 믿음 — 이 믿음은 수출 규제와 표준 분열 앞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열이 기회가 되는 곳도 있다

시나리오 C는 모든 이에게 비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양쪽 모두에 필요한 기술을 가진 나라는 분열이 심화될수록 협상력이 강해진다. SK하이닉스와 삼성의 HBM은 미국 블록(NVIDIA)에 공급된다. 동시에 중국은 자국 HBM 개발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한국 메모리 기업들이 미국 블록의 공급망에 깊이 편입되어 있는 지금, 시나리오 C에서 한국의 레버리지는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이 논점은 에필로그에서 네 "제3의 플레이어" — 한국, 인도, EU, 중동 — 를 다루면서 상세히 전개된다.

시나리오 C가 역전되는 조건

시나리오 C는 세 축(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거버넌스)의 분기가 고착화될 때 실현된다. 역으로, 다음 조건이 충족되면 분열은 역전될 수 있다.

첫째, AI 안전 협정. 미중 양국이 AGI 안전에 관한 공동 프레임워크에 합의할 때. 핵 비확산 조약(NPT)이 냉전 한가운데인 1968년에 체결된 선례가 있다. 상호확증파괴(MAD)의 공포가 협력을 강제했듯, AGI의 존재적 위험이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 기술 표준의 재통합. 양측이 공통 AI 인터페이스 표준에 합의하거나, 사실상의 호환 레이어가 시장에서 형성될 때. 인터넷 초기 TCP/IP가 분열 가능했던 네트워크를 하나로 통합한 선례가 있다.

한편, 시나리오 C에는 한 가지 하위 변형을 고려해야 한다. 미중 양극 분열이 아닌 다극 분산이다. EU가 Mistral과 AI Act를 기반으로 제3의 AI 거버넌스 블록을 구축하고, 인도가 13억 인구의 데이터와 DPI(Digital Public Infrastructure)를 레버리지로 독자 기술 블록을 형성하면, 세계는 양극이 아닌 3~4극으로 분산된다. 이 변형에서 미중 어느 쪽도 자기 블록의 기본값을 강제하지 못한다. 분열의 비용은 더 높아지지만, 협상의 공간도 넓어진다. 에필로그에서 다루는 "제3의 플레이어"가 이 변형의 핵심 변수다.


섹션 E: 시나리오의 교차와 시간축 — 현실은 혼합체다

1769년에서 2090년까지

1769년. 리처드 아크라이트가 더비셔의 크롬퍼드(Cromford, Derbyshire)에 수력방적기 공장을 세웠다. 그것이 랭커셔 수직공들의 세계를 어떻게 바꿀지 아무도 몰랐다.

1785년 무렵, 랭커셔 수직공의 주급은 25실링이었다. 숙련 직조는 자부심 있는 일이었다.

1835년, 같은 수직공의 주급은 4.5실링으로 떨어져 있었다. 생산성은 급등했다. 실질임금은 수십 년간 뒤처졌다. 생산성의 과실이 노동에 도달하지 않는 그 긴 간극이 "엥겔스의 일시정지"였다.

1833년, 공장법이 통과되었다. 아크라이트의 공장에서 공장법까지 64년.

이 64년은 제도 적응의 역사적 밴드 — 14년에서 64년 — 의 상한이다. 철도는 14년, 인터넷은 27년이 걸렸다. 64년은 이 밴드에서 가장 긴 사례다.

2026년에 64년을 더하면 2090년이다.

물론 AI 시대는 다르다. 기술 사이클이 3~5년으로 단축되었다. 다만 제도의 사이클이 동일하게 단축될지는 알 수 없다. 제도가 한 파도에 적응하기 전에 다음 파도가 온다면, 구조적 간극은 오히려 누적될 수 있다.

그 불확실성 한가운데에서, 이 책의 독자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2026년부터 2045년까지의 20년이 그 시간이다.

시간축별 시나리오 매트릭스

세 시나리오는 섹터별로, 시간축별로, 지역별로 다르게 전개된다.

단기(2026~2030년).

AI 모델 개발에서는 시나리오 A가 우세하다. 미국 기업들이 프론티어 모델을 선도한다. 빅테크 4사의 Capex가 6,350억~6,650억 달러로 확대되는 시기에, 자본 투입에서의 압도적 우위가 유지된다.

AI 응용·보급에서는 A와 B가 혼합된다. 선진국 시장은 미국 서비스가 기본값이지만, 글로벌 사우스에서는 딥시크와 중국 AI 서비스의 채택이 확산된다. 방콕 교실의 수파차이 같은 선택들이 누적된다.

반도체에서는 A가 우세하지만 C의 씨앗이 심어진다. 미국 블록의 NVIDIA + TSMC + ASML 공급망이 유지되는 동안, 중국은 화웨이 어센드 생산을 확대하며 독자 스택을 구축한다.

금융에서는 달러 관성으로 A가 유지된다. 위안화 2%, 달러 56%의 구조는 단기에 바뀌지 않는다.

거버넌스에서는 이미 C가 시작되었다. EU AI Act 전면 적용(2026년 8월), 미국 최소 규제, 중국 포괄 규제의 세 방향 분기가 고착화된다.

중기(2030~2035년).

이 시기가 진짜 분기점이다.

AI 모델 격차가 더욱 축소되면서 A와 B가 경합한다. "충분히 좋은 AI"의 성능이 프론티어 모델과 실용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수준에 도달한다면, 비용과 접근성이 결정적 변수가 된다.

반도체에서는 기술 분기가 심화된다. 중국의 자급 시도가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느냐에 따라 C의 고착화가 결정된다. 독자 EUV 또는 차세대 리소그래피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면 시나리오 B가 강화된다. 실패한다면 시나리오 C 하에서 중국 블록은 성능 열세를 비용과 규모로 보완하는 경로를 선택한다.

거버넌스 분열은 C로 고착화된다. GPAI가 미중 공동 프레임워크를 만들지 못하면 국제 AI 거버넌스는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로 EU 기준이 제3국으로 확산되는 부분, 미국 기업들의 자발적 표준, 중국 국가 기준의 세 조각으로 나뉜다.

장기(2035~2045년).

이 시기는 불확실성이 극히 높다.

결정적 변수는 세 가지다. AGI(범용 인공지능) 달성 여부. 대만 해협의 안정성. 중국 부채 문제의 해결 방식.

미국 기업이 AGI를 달성한다면 시나리오 A가 불가역적으로 강화된다. 기술 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그 속도가 추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대만 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시나리오 C가 급전환한다. TSMC 공급망이 끊기면 미국 블록 전체가 반도체 위기에 직면한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중국이 아닌 세계 전체에 가장 큰 비용을 부과한다.

중국이 부채 연착륙에 성공하고 에너지 우위를 지속적으로 활용한다면 시나리오 B가 현실화될 수 있다.

어느 하나가 확실하게 실현될 조건은 지금 알 수 없다.

Goldman Sachs가 말하지 않은 것

Goldman Sachs는 GenAI가 글로벌 GDP를 7%, 약 7조 달러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한다. 연간 1.5%포인트의 생산성 상승이다(Epoch AI 분석 기반).

McKinsey는 2030년까지 AI가 13조 달러의 추가 경제활동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숫자들은 "AI가 성장을 가져올 것"을 말한다. 그러나 "누가 그 성장을 가져갈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Goldman Sachs의 7조 달러가 세 시나리오 중 어느 것에서 어느 블록에 집중되느냐 — 그것이 향후 20년을 결정한다.

시나리오 A에서 이 7조 달러는 미국 빅테크와 달러 생태계에 집중된다. 시나리오 B에서는 중국 AI 서비스와 글로벌 사우스 데이터 생태계로 분산된다. 시나리오 C에서는 이중 비용으로 일부가 소실되고, 남은 성장이 두 블록으로 분리된다.

어느 시나리오에서 투자자와 정책 결정자가 어떻게 포지셔닝하느냐 — 그것이 다음 챕터의 주제다.


섹션 F: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 두 시계의 간극

뉴딜이 가르쳐주는 것

1929년 10월 24일, 월가 주가가 폭락했다.

검은 목요일이었다. 그 다음 해, 그 다다음 해, 그 다다다음 해 — 미국 경제는 계속 침체했다. 1932년, 실업률은 25%에 달했다. 공장은 멈췄고, 은행은 무너졌으며, 농부들은 수확물을 불태웠다.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가 취임한 것은 1933년 3월이었다. 대공황 발발 4년 후였다. 뉴딜 정책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외부 충격이 가해진 이후였다.

민주적 제도는 이 패턴을 반복한다. 위기가 충분히 커진 후에야 대응한다.

노예제 폐지는 건국 90년 후, 남북전쟁이라는 외부 충격 이후였다. 여성 참정권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외부 충격 이후였다. 뉴딜 노동법은 대공황이라는 외부 충격 이후였다.

AI의 위기는 아직 "충분히 크지 않은" 것인가. 5만 5,000명의 화이트칼라 해고가 충분하지 않다면, 얼마가 충분한가. 2026년 졸업생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야 의회가 움직이는가.

두 시계의 속도

미국에서 AI 관련 법안은 연방 차원에서 교착 상태다. 반면 38개 주에서 약 100개의 AI 관련 조치가 채택되었다. 주 단위 분산 실험이 진행 중이다. 컬로라도는 AI 영향 평가를 의무화했다. 일리노이는 채용 AI 알고리즘 규제를 시행했다. 캘리포니아는 AI 투명성 법안을 논의 중이다.

연방 차원의 교착이 주 단위 혁신을 막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분산적 실험 메커니즘이다. 50개 주가 50개의 실험실이 된다. 효과가 있는 것이 연방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속도가 느리다. 국민 79%의 AI 규제 찬성이 연방 입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대의 실패(democratic deficit)"다.

중국의 시계는 다르다. 생성형 AI 규제 구상에서 시행까지 9개월이었다. 세계 최초의 구속력 있는 생성형 AI 규제다. 정부 AI 자본지출은 2025년 4,000억 위안이다. "월요일 결정이 금요일 전국 배치로 이어진다"는 Oxford Blavatnik의 연구는 이 속도를 측정한다.

속도만 보면 권위주의가 유리하다. 다만 속도는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속도와 오류 교정

권위주의 제도의 두 가지 구조적 약점이 있다.

첫째, 정보 왜곡이다. 탕핑(躺平) 관련 소셜 미디어 게시물이 CAC 명령으로 검열될 때, 사회 불만의 신호가 차단된다. 정책 결정자는 실제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린다. 오류가 교정되지 않고 증폭된다.

둘째, 기업가 정신의 억압이다. 마윈(马云) 사건 이후 중국 민간 기업가들의 행동 패턴이 바뀌었다. 대졸자의 73.1%가 공무원이나 국유기업을 희망한다. 혁신의 원천이 되는 민간 부문의 창조적 파괴가 억제된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AI 시대에 중앙집중적 데이터 처리가 분산 시스템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효율"과 "적응"은 다르다. 효율적인 시스템은 빠르게 목표를 달성한다. 적응적인 시스템은 목표가 틀렸을 때 그것을 감지하고 바꾼다.

권위주의 시스템의 문제는 목표가 올바를 때는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반면 목표가 틀렸을 때, 그것을 인지하고 수정하는 메커니즘이 약하다. 소련이 붕괴한 것은 군사적 실패가 아니었다. 경제 계획의 오류를 70년간 교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이 소련과 다른 이유가 있다. "파편화된 권위주의(fragmented authoritarianism)" — 중앙 통제를 유지하면서 지방 수준에서 유연한 정책 실험을 허용하는 방식 — 이 어느 정도의 오류 교정 기능을 제공한다. 선전(深圳)이 시장 경제 실험의 공간이었듯, 일부 지역이 정책 실험실로 기능한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이 AI 시대의 속도에 충분한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AI가 제도 속도에 미치는 영향

두 가지 가설이 경합한다.

가설 A: AI가 제도 적응을 가속한다.

AI가 정책 분석, 여론 시뮬레이션, 영향 평가의 도구가 된다. 1,000페이지짜리 규제안을 AI가 24시간 안에 분석하고 시뮬레이션한다. 정책 결정의 질과 속도가 동시에 향상된다. 역사적 밴드의 상한인 64년이 30~40년으로 단축될 수 있다.

이 가설이 옳다면, 민주주의의 "위기 후 대응" 패턴이 깨진다. AI 위기의 신호를 조기에 감지하고 사전에 대응할 수 있다.

가설 B: 가속된 파괴와 가속된 적응이 상쇄된다.

AI가 파괴의 속도도 가속한다. 기술 사이클이 3~5년으로 단축되면, 제도가 한 파도에 적응하기 전에 다음 파도가 온다. 공장법이 통과된 1833년에는 수력방적기의 다음 혁신이 수십 년 뒤였다. AI 시대에는 GPT-4에 적응하기 전에 GPT-5가, GPT-5에 적응하기 전에 에이전트 AI가 온다.

이 가설이 옳다면, "엥겔스의 일시정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되, 각 일시정지의 기간은 짧아진다. 구조적 간극은 유지되거나 누적된다.

현재 증거는 두 가설 모두를 지지하는 방향으로도, 반박하는 방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느리지만 옳은가

제도는 기술보다 느리다. 역사적 기저율에 따르면 민주적 제도가 더 지속 가능한 적응을 달성해왔다 — 다만 그것은 과거의 기록이지, 보장된 미래가 아니다.

AI 시대에 이 명제는 도전받고 있다.

"민주주의가 느리지만 옳았는가, 아니면 AI 시대에는 속도가 정의(正義)가 되는가?"

이것은 AI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적 질문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향후 20년 동안 세 시나리오 중 어느 것이 강화되느냐에 따라 역사가 내릴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답을 기다리면서, 세 경로 중 어느 것이 강화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읽는 것이다.


1권 연결점: 같은 공식, 세 개의 결과

1권은 기술 폭발이 단선적으로 진행되는 역사를 보여주었다. 로마의 도로가 지중해 무역을 재편했고, 아크라이트의 공장이 영국 노동 구조를 재편했고, AI가 인지 노동을 재편하고 있다.

그러나 AI 시대는 단선이 아니다.

같은 폭발 — AI — 이 두 제국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1769년 랭커셔에서는 하나의 제도적 맥락 안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2026년에는 서로 다른 두 제도 —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 가 같은 기술을 동시에 흡수하고 있다. 그 결과는 세 경로로 갈린다.

1권에서 제시한 핵심 공식 — 기술→자본집중→사회불안→제도재설계 — 은 세 시나리오 모두에서 작동한다. 차이는 각 단계의 속도와 방향이다.

시나리오 A에서: 미국 주도의 프론티어 AI가 빅테크 5사의 초집중을 낳는다. 5만 5,000명의 화이트칼라가 밀린다. 포퓰리즘 반발이 형성된다. 그러나 민주적 제도가 — 느리더라도 — 적응을 통해 새로운 균형을 찾는다.

시나리오 B에서: 중국의 국가자본과 민간 AI가 하이브리드 집중을 이룬다. 탕핑과 35세 위기가 사회 불안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향식 제도 재설계가 빠르게 진행되지만, 오류 교정 능력의 한계가 장기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시나리오 C에서: 양쪽 블록 모두에서 이 공식이 작동한다. 제3국은 두 블록의 제도 재설계 비용을 동시에 부담한다. 방콕의 수파차이, 나이로비의 아미나, 싱가포르의 아미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두 알고리즘 사이에서 선택하고, 그 선택의 비용을 진다.

공식은 동일하다. 결과가 다를 뿐이다.

1권에서 랭커셔 수직공의 주급이 25실링에서 4.5실링으로 붕괴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AI 시대의 시계는 더 빠르다. 그러나 제도의 시계는 여전히 느리다. 이 간극 — 기술 변화의 속도와 제도 적응의 속도 사이의 간극 — 이 1권의 독자에게도, 이 챕터의 독자에게도, 그리고 세 시나리오 모두에서 동시에 고통을 만드는 원천이다.

그 고통의 공간에서, 읽은 자는 다르게 움직인다.


전환부: 지도에서 행동으로

세 경로를 그렸다. A: 미국이 프론티어 AI와 달러 기축, 동맹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세계 표준을 장악하는 경로. B: 중국이 에너지 우위와 효율적 AI로 글로벌 사우스의 기본값이 되는 경로. C: 하드웨어·소프트웨어·거버넌스 세 축에서 동시에 분기가 진행되어 두 개의 기술 블록이 굳어지는 경로.

세 경로는 배타적이지 않다. 섹터별로, 시간축별로, 지역별로 다른 시나리오가 동시에 작동한다. 단기에는 A가 우세하고, 중기에는 분기가 심화되며, 장기는 불확실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로가 맞는지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어떤 경로가 강화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읽는 것이다. 방콕의 교실에서 딥시크가 채택되는 것은 B의 신호다. 워싱턴 청문회장에서 법안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A의 내부 취약성 신호다. 싱가포르 핀테크의 두 서버 랙은 C가 이미 현장에 도달했다는 신호다.

신호를 읽는 것과 신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다른 능력이다.

2026년에 64년을 더하면 2090년이다. 엥겔스의 일시정지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지금 움직여야 한다.

1989년 12월 29일, 닛케이 지수가 3만 8,915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쿄의 한 증권사 리포트 제목은 "일본, 21세기의 패권국"이었다. 그 투자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정확한 예측이 아니었다.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더 나은 포지셔닝 프레임워크였다.


주요 데이터 출처: Epoch AI(미중 AI 벤치마크 격차, 시간 격차), IMF COFER/St. Louis Fed(달러 외환보유고), LLM Stats(오픈소스 모델 점유율), CNBC(빅테크 Capex, 화이트칼라 해고), Fortune/Brookings(중국 에너지 추가), White & Case(중국 AI 규제 소요 시간), Drata(미국 AI 법안 현황), Issue One(빅테크 로비), Goldman Sachs/McKinsey(GenAI GDP 영향), WEF Global Risks 2026(지경제 리스크 1위), Oxford Blavatnik School(민주주의 vs 권위주의 AI 정책 속도), Bairoch(1913년 독일·영국 제조업 비중), Microsoft AI Diffusion Report 2025(DeepSeek 아프리카 사용량), Pantheon Insights/Yale SOM(기술 블록 분기), ChinaTalk(오픈소스 모델 중국산 비율), SCMP(알리바바·바이두 고용), Zhaopin(대졸 취업 선호), CISSM/UMD(AI 규제 찬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