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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 — 두 제국의 알고리즘

Ch.13: 칩 전쟁과 디커플링 — 기술 경쟁의 경제학


도입부: 벨트호벤의 결산

2024년 7월, 네덜란드 남부 노르트브라반트주. 벨트호벤(Veldhoven).

인구 4만 5,000명의 이 소도시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계를 만드는 회사가 있다. ASML. 정식 명칭은 Advanced Semiconductor Materials Lithography. 한 대의 가격이 3억 5,000만 달러에 달하는 기계를 만드는 회사다. 그리고 그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지구 위에 이 회사 하나뿐이다.

ASML의 CEO 크리스토프 푸케(Christophe Fouquet)가 2024년 2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날, 숫자 하나가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중국 매출 비중 49%. ASML 전체 매출의 거의 절반이 중국에서 왔다. 반도체 수출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 중국 고객들이 살 수 있는 장비를 최대한 비축했기 때문이었다. 그 해 ASML이 중국에 판매한 DUV(심자외선, Deep Ultraviolet) 시스템의 비중은 전체의 70%에 달했다.

2025년, 연간 비중은 33%로 줄었다. 2026년 전망은 20%다.

2년 만에 29%포인트가 증발하는 궤적. 3억 5,000만 달러짜리 기계 한 대 판매가 취소될 때마다 어딘가에서 소음이 들릴 것만 같은 숫자다. 푸케는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사업을 운영합니다." 그의 말은 경고도, 항의도 아니었다. 사실의 진술이었다. ASML은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 단 한 대의 EUV(극자외선, Extreme Ultraviolet) 장비도 중국에 팔지 않았다. 그것은 ASML의 선택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정부가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미국의 요청을 수용한 결과였다.


이 장면이 함축하는 것은 무엇인가.

반도체는 21세기의 석유다. 이 비유는 진부하게 들릴 만큼 반복되었다. 그러나 석유와 반도체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 캐나다, 아랍에미리트 등 여러 곳에서 나온다. 첨단 반도체는 다르다. 설계는 주로 캘리포니아에서. 제조는 주로 대만에서. 그리고 제조에 필요한 핵심 장비는 오직 네덜란드 한 회사에서만 나온다.

이 극단적인 지리적 집중이 기술 경쟁의 병목을 만든다. 미중 기술 경쟁은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AI 모델 개발, 데이터 수집, 인재 확보, 규제 설계. 그러나 이 모든 전선의 밑바닥에는 반도체라는 단일 기반이 놓여 있다. 그 기반을 둘러싼 전쟁의 현재를 이 챕터에서 추적한다.

CHIPS Act의 이행 현황, ASML이라는 글로벌 병목, 수출 규제의 진화와 밀수의 경제학, 중국의 반도체 자급 현실. 이 네 차원이 교차하는 곳에서 기술 경쟁의 경제학이 드러난다.


섹션 A. CHIPS Act — 반도체를 본국으로

52년 만의 전환

2022년 8월 9일,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했다. CHIPS and Science Act. 정식 명칭의 CHIPS는 Creating Helpful Incentives to Produce Semiconductors의 약자다. 총 527억 달러의 연방 자금이 반도체 제조·연구·인력 양성에 투입된다. 거기에 투자세액공제 25%가 더해진다.

이 법안의 역사적 맥락은 수치보다 중요하다.

1970년, 미국은 세계 반도체 생산의 37%를 차지했다. 2022년, 그 수치는 12%로 떨어져 있었다. 52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비용 효율성을 좇아 생산이 아시아로 이동했다.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이 위탁 생산(파운드리, Foundry)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미국 기업들은 설계에 집중하고 제조는 아시아에 맡겼다. NVIDIA는 팹리스(Fabless) — 공장 없이 설계만 하는 — 구조로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반도체 기업이 되었다. 이 분업은 20년 이상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다 2022년, 두 가지 충격이 동시에 왔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위기가 반도체 부족의 실체를 드러냈다. 자동차 공장이 멈추고, 전자기기 생산이 중단되었다. 신형 차를 사려고 했더니 반도체가 없어서 출고가 6개월 뒤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 수백만 명이었다. 그리고 지정학적 긴장이 대만을 둘러싸고 고조되었다. TSMC의 첨단 공정 70% 이상이 대만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각인되었다. 공급망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취약성이, 그것이 위협받자 선명하게 드러났다.

CHIPS Act는 이 인식 전환의 결과물이었다. 국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여 생산 기반을 재편하려는 시도. "제도 재설계"의 현재진행형 사례다.

세 회사의 보조금 협상

2024년, 바이든 행정부는 3개 기업과 보조금 협약을 마무리했다.

Intel은 78억 6,000만 달러를 받는다. 애리조나주 챈들러(Chandler)의 Fab 52에서 Intel 18A(1.8nm) 공정을 양산한다. 미국 본토 최초의 2nm 이하 첨단 공정이다. 오하이오주 뉴올버니(New Albany)에 2개 추가 공장을 짓는 계획도 있었으나, 이 프로젝트는 2030년으로 연기됐다. Intel이 2024년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며 경영난에 빠진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한때 세계 반도체 제조의 왕좌에 있던 회사가 TSMC에 선두를 내주고, 이제 자국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여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처지가 됐다.

TSMC는 66억 달러를 받는다. 애리조나주 피닉스(Phoenix)에 이미 첫 번째 공장(Fab 1)이 가동 중이다. 4nm 공정으로 출발해 AI 칩을 생산한다. 두 번째 공장은 건설이 완료되어 2nm/3nm 장비가 설치 중이다. 2027년 양산이 목표다.

삼성전자는 47억 5,000만 달러를 받는다. 텍사스주 테일러(Taylor)에 짓는 공장은 원래 4nm 공정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2nm GAA(Gate-All-Around) 공정으로 전환되었다. 2026년 말 양산이 목표다. 테슬라가 165억 달러 규모의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 세 회사의 행보가 만드는 전체 그림은 무엇인가.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은 2023년 59%에서 2025년 66%로 상승했다. 삼성전자는 12~13%를 차지한다. 두 회사가 전체의 78%를 차지하는 구조 속에서, 미국은 TSMC와 삼성 모두를 자국 영토 안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분산된 위험을 미국의 통제 아래 집중시키는 전략이다.

보조금 총액 192억 달러. 한국 반도체 산업 연간 설비 투자와 비슷한 규모다. 이 금액이 단순한 산업 보조금이 아니라는 것은 협상 조건을 보면 알 수 있다. 보조금 수혜 기업은 10년간 중국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거나 확장할 수 없다. 자금을 받은 순간, 기술 경쟁의 지형이 바뀐다.

애리조나 사막의 문화 충돌

TSMC 피닉스 공장 건설 현장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2021년 착공 이후, 현장에서 마찰이 쌓였다. 대만에서 건너온 엔지니어 수백 명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 건설 노동자들이 있었다. 두 집단 사이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보다 훨씬 컸다.

대만 엔지니어들은 TSMC의 문화에 익숙했다. 공장 건설 일정에서 하루의 지연도 용납하지 않는 문화. 필요하면 주말도, 야간도 당연히 일하는 문화.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서 즉시 결정하는 문화. 반면 미국 건설 현장에는 다른 논리가 작동했다. 노동법이 있었고, 초과근무에는 추가 수당이 붙었고, 안전 규정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두 팀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1권에서 말한 "제도의 경직"이 노동 현장에서 물성을 가진 순간이었다.

미국 미디어는 이 마찰을 종종 "미국 노동자들의 노동 의욕 문제"로 단순화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이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생태계의 이식 가능성이었다. TSMC는 공장 하나를 옮기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대만 전역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급망, 인력 훈련 체계, 협력업체 네트워크, 그리고 무언의 작업 문화를 통째로 옮기는 과업이었다. 신주(新竹)의 웨이퍼 공급업체, 타오위안(桃園)의 화학약품 공장, 대만 전역에 퍼진 수천 개의 협력사들 — 이것들을 피닉스 사막에 복제하는 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첫 번째 공장 양산은 당초 계획보다 1~2년 늦어졌다.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은 아시아의 3~5배에 달한다. 건설 노동 비용, 규제 준수 비용, 공급망 재구축 비용이 중첩된다. CHIPS Act의 527억 달러 보조금은 이 비용 격차를 메우기 위한 것이었다. 다만 보조금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생태계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생태계는 시간이 만든다.

이것이 CHIPS Act의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정책은 만들어졌다. 자금은 투입되었다. 반도체 제조 생태계는 수십 년의 축적 위에서만 작동한다. 축적은 명령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대만이 1970년대부터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50년의 시간을 단기간에 압축하는 것이 CHIPS Act가 실제로 요구하는 일이다.

1권의 공식이 여기서 반복된다. 기술 혁신이 자본 집중(아시아 파운드리 독점)을 만들고, 공급망 위기가 사회적 각성을 촉발한 뒤, 국가가 제도를 재설계(CHIPS Act)한다. 다만 이번의 제도 재설계는 한 국가 안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대만, 네덜란드, 일본, 한국을 포함하는 다국적 공급망 위에서만 작동한다.


섹션 B. ASML —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병목

10만 개의 부품

ASML의 EUV 장비 한 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품은 10만 개 이상이다. 이것들을 운반하는 데 40개의 화물 컨테이너가 동원된다. 보잉 747 화물기 세 대 분량이다. 설치하고 보정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린다.

이 장비가 하는 일은 빛을 이용해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것이다. 리소그래피(Lithography). 파장이 짧을수록 더 미세한 회로를 새길 수 있다. EUV는 파장 13.5 나노미터의 극자외선을 사용한다. 이 빛을 만들기 위해 레이저가 작은 주석(錫) 방울을 1초에 5만 번 쏴서 플라스마를 생성한다. 그 플라스마에서 나오는 빛을 거울로 집광하여 웨이퍼에 쏜다. 그 거울은 지구 표면 수준으로 평평해야 한다. 오차가 허용되는 수준은 수 나노미터 이내다. 지구를 네덜란드 크기로 줄였을 때 가장 높은 산과 가장 깊은 계곡의 높이 차이가 수 밀리미터여야 하는 수준의 정밀도다.

이 기술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것들이 있다. 네덜란드 본사의 수십 년 광학 기술. 독일 칼자이스(Carl Zeiss SMT)의 초정밀 거울 가공 기술. 일본 AGC의 특수 다층 코팅 기술. 캘리포니아 사이머(Cymer, 현 ASML 자회사)의 레이저 광원 기술. 이것들이 하나의 기계 안에서 통합된다. 어느 한 부품이 빠지면 EUV 장비는 작동하지 않는다.

중국이 EUV를 자체 개발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 모든 기술을 독립적으로 재현해야 한다. 상하이 소재 반도체 장비 기업 SMEE(上海微电子装备)가 노력 중이다. 그러나 업계 분석가들의 평가는 공통적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10~15년의 시간과 수천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한 프로젝트다.

EUV가 없으면 무엇을 잃는가. 5nm 이하 공정이 사실상 차단된다. 현재 TSMC와 삼성이 양산하는 최첨단 공정이 3nm, 2nm다. AI 가속기 칩 — NVIDIA의 H100, H200, Blackwell 시리즈 — 은 모두 5nm 이하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EUV 없이는 이 칩들을 만들 수 없다. 이것이 ASML이 가진 권력의 원천이다.

병목의 소유권 문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ASML은 미국 기업이 아니다.

ASML은 네덜란드 기업이다. 주주 구성을 보면 미국 기관투자자들이 최대 주주 그룹이지만, 법인 소재지는 벨트호벤이고 경영진은 유럽인이다. 그리고 ASML의 기술은 한 나라의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 독일, 일본, 미국 기업들의 수십 년 협력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2019년 미국이 네덜란드에 ASML의 중국 EUV 수출 허가를 내주지 말라고 요청했을 때, 네덜란드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이후 DUV 장비에 대한 추가 제한도 단계적으로 가해졌다. 그러나 이 결정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집행한 것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정부와의 외교적 협상의 결과였다. ASML에게 이것은 연간 수십억 달러의 매출 손실을 의미했다. 그 손실을 네덜란드가 감내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동맹 관리의 문제였다.

로마는 칸나에(Cannae) 이후에도 동맹 체계를 유지했다. 이탈리아 동맹들을 군사력 동원망 안으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ASML을 가능하게 만드는 네덜란드·독일·일본과의 기술 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전선에서의 반도체 우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다. ASML은 "미국의 무기"가 아니라 "다국적 기술 협력이 만든 병목"이다. 그 병목을 지속적으로 통제하려면 동맹 관리가 필수다.

동맹이 흔들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이미 보였다. 2025년, 중국은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대한 보복으로 희토류(稀土類) 수출 통제를 강화했다. 유럽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희토류는 ASML 장비에 쓰이는 특수 소재의 원료다. 지정학적 압박이 기술 공급망의 여러 절점(節點)을 동시에 건드릴 때, 동맹 네트워크의 결속이 흔들린다.

비축과 붕괴 사이

2024년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연간 기준 36.1%였다. 그러나 개별 분기로 보면 49%에 달한 시기도 있었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그 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ASML에 지불한 금액은, ASML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넘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많이 샀는가. 규제가 더 강화되기 전에 살 수 있는 장비를 최대한 확보하려 했기 때문이다. 특히 DUV 장비. EUV는 어차피 살 수 없었다. 그러나 DUV 멀티 패터닝 기법으로 5nm 이하에 가까운 회로를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불리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방법.

그래서 중국 기업들은 DUV를 쌓았다. 창고에 장비를 넣어두는 것이 아니었다. 새 공장을 짓고,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아직 설치하지 않은 장비를 구입해 보관하는 방식이었다. 규제가 강화되면 시장에서 사라질 자산을 미리 확보하는 것. 미중 기술 전쟁이 만들어낸 특수한 형태의 투자 논리다.

그리고 2025년, 강화된 수출 규제가 DUV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약 33%로 줄었고, 2026년에는 20% 수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ASML의 2030년 매출 전망은 710억 달러다. 중국 매출 감소를 상쇄하는 것은 AI 붐이 만들어내는 첨단 반도체 수요다. 글로벌 AI 가속기 시장의 팽창이 ASML의 EUV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TSMC, 삼성, 인텔이 애리조나와 텍사스의 새 공장에서 EUV 장비를 가동하기 시작하면 그 수요는 더 커진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병목은 지금 그 가치를 가장 격렬하게 검증받고 있다.

1권에서 말한 "레버리지의 탈물질화"가 여기에도 작동한다. 토지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기계로 이동했던 레버리지가, 이제 파장 13.5나노미터의 빛 자체가 되었다. 그 빛을 만들 수 있는 곳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레버리지의 극단적 집중을 보여준다.


섹션 C. 수출 규제의 경제학 — 제재, 밀수, 그리고 역설

규칙의 진화

2022년 10월 7일.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수출 규제를 발표한 날의 날짜를 기억하는 업계 관계자들이 있다. 그들은 이날을 "10·7"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이 공격받은 날과 우연히 같은 날짜다.

그날 발효된 규제의 핵심은 NVIDIA의 A100과 H100 GPU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AI 훈련에 사용되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 이 칩이 없으면 대규모 AI 모델을 훈련시키기 어렵다. 반도체 수출 규제가 단순한 군사 기술 통제를 넘어 AI 능력 통제로 확장된 순간이었다.

그 이후의 흐름은 빠르게 전개됐다.

중국이 A100 대신 H800으로 우회하자, 2023년 10월에는 H800도 금지됐다. 고대역폭메모리(HBM, High Bandwidth Memory)까지 규제 대상이 확대된 것은 2024년 12월이었다. 그리고 2025년 1월, 바이든 행정부는 임기 막바지에 이른바 "AI 확산 규칙"을 발표했다. 국가를 3개 티어로 분류하여 성능 임계치 이상의 AI 칩 접근을 차별화하는 복잡한 틀이었다. 사실상 H100과 H200의 중국 판매를 추가로 차단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이 규칙은 5개월 만에 철회됐다. 2025년 5월,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의 AI 확산 규칙을 폐기하고 새로운 수출 통제 프레임워크를 예고한 것이다. 규제의 방향 자체가 행정부 교체와 함께 뒤집힌 사례였다.

각 규제마다 중국은 그 아래 성능의 대안을 찾았고, 미국은 다시 그 대안을 막는 규제를 추가했다. 규제와 우회의 반복. 이것은 기술 전쟁에서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패턴이다. 1800년대 영국이 방직 기계 기술자의 해외 이주를 금지했을 때, 미국은 영국 기술자들을 밀수하듯 데려왔다. 기술 통제의 역사는 규제와 우회의 끝없는 반복이다.

그런데 2025년 12월, 이 흐름에 반전이 일어났다. 트럼프 행정부가 NVIDIA H200의 중국 수출을 승인했다. H200은 H100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바이든이 금지한 칩을 트럼프가 허용한 것이다.

이 후퇴의 배경에는 두 가지 압력이 있었다. 첫째, NVIDIA의 로비였다. NVIDIA의 중국 매출 비중은 약 13%다. 숫자만 보면 작다. 그러나 NVIDIA의 연간 매출이 약 1,870억 달러 규모임을 감안하면 약 240억 달러다. 절대 금액으로는 결코 작지 않다. 둘째, 화웨이(华为)의 부상이라는 역설이었다. H200을 팔지 못하면 그 수요가 Ascend 910C로 향할 수 있다. 화웨이에게 중국 AI 칩 시장을 통째로 내주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은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논리는 반도체 수출 규제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드러낸다. 규제가 강할수록 중국의 자급화 동기가 강해진다. 규제가 약하면 첨단 기술이 흘러들어간다. 이 양면 사이에서 최적점을 찾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그리고 미국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그 최적점이 달라진다는 것이 수출 규제 전략의 가장 큰 구조적 취약성이다.

텍사스 남부의 밀수 재판

2025년 텍사스 남부 연방검사청에서 기소장 하나가 공개됐다.

피고인들은 1억 6,000만 달러 규모의 NVIDIA H100과 H200 밀수 네트워크를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2024년 10월부터 2025년 5월 사이의 일이었다. 칩은 직접 중국으로 가지 않았다.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 → 홍콩을 경유하는 경로를 택했다. 서류상으로는 정상적인 기업 간 거래처럼 보였다. 화물 문서에는 다른 물품명이 적혔다.

피고인들의 면면은 밀수 네트워크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주었다. AI 스타트업 대표가 있었다. 중개 무역상이 있었다. 물류 회사 직원이 있었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하나였다. 중국 본토의 AI 연구소나 기업이 H100/H200을 원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공급할 경로가 있다는 사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에는 시장이 형성된다. 그 시장이 불법이라고 해도.

이 기소 사건은 수출 규제의 집행 현실을 드러냈다. 법을 만드는 것과 법을 집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NVIDIA H100 하나의 크기는 손바닥만 하다. 컨테이너 화물의 바닥에 숨기면 세관 검사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있다. 물리적 부피가 작고 단위당 가치가 극히 높은 물건. 세관의 관점에서 이것은 밀수 단속에서 가장 어려운 종류의 화물이다.

전 세계 AI 개발자의 약 50%가 중국에 소재한다는 추정도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 AI 가속기 칩에 대한 수요는 중국에서 구조적으로 높다. 수요는 경로를 찾는다. 합법적 경로가 막히면 불법적 경로를 만든다. 이것이 금수(禁輸) 역사의 일관된 법칙이다. 21세기의 금수품은 원유나 무기가 아니라 실리콘 칩이 되었다.

궁핍의 혁신이라는 역설

수출 규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반작용은 밀수가 아니었다. DeepSeek이었다.

2025년 1월, 항저우(杭州)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深度求索)는 R1 모델을 공개했다. 그 기반인 V3 모델의 사전훈련에 사용된 GPU는 H800 2,048장. R1은 그 위에 512장의 H800으로 강화학습을 거쳤다. H800은 미국이 2022년 A100/H100 수출을 금지하자 NVIDIA가 중국용으로 성능을 낮춰 만든 우회 모델이었다. 그러나 그 H800도 2023년 10월에 금지됐다. DeepSeek은 이미 보유하고 있던 H800으로 훈련했다. 새로 살 수 없는 칩으로, 있는 것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그 결과물의 성능이 GPT-4와 동등하거나 일부 벤치마크에서 초과했다. V3 사전훈련 비용 약 558만 달러, R1 강화학습 비용 약 29만 달러. 합산해도 OpenAI 유사 모델 훈련 비용의 수십 분의 1 수준이었다. NVIDIA 주가는 공개 직후 일시적으로 17% 폭락했다. 수십억 달러의 GPU 인프라 투자가 정말 필요한 것이었는가, 라는 의문이 실리콘밸리에 퍼졌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수출 규제가 실패했다는 의미인가. 단정하기 어렵다. 규제는 중국이 H100과 H200을 대량으로 확보하는 것을 막았다. 그 제약이 없었다면 DeepSeek은 더 많은 GPU를 사용했을 것이고, 그 결과가 어땠을지는 알 수 없다. 더 강력한 모델이 더 빨리 나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규제가 성공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제약이 혁신의 방향을 바꿨다. 더 많은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대신, 더 적은 하드웨어로 같은 결과를 내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것이 "궁핍의 혁신"이다. MoE(Mixture of Experts) 아키텍처, 양자화 기법, 추론 효율화. 이 방향들은 DeepSeek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DeepSeek이 극한까지 밀어붙인 것은 하드웨어 제약이 강제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이 역설은 제재의 설계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중국의 AI 개발을 늦추려 했는데, 더 효율적인 AI 개발 방법론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 방법론은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전 세계로 퍼졌다. 미국의 AI 스타트업들도, 유럽의 연구자들도, 이 방법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재의 부산물이 역설적으로 글로벌 AI 발전을 가속화한 셈이다.

수출 규제는 분명 효과가 있다. 중국은 여전히 5nm 이하 첨단 공정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EUV 접근이 차단된 한 이 제약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나 규제는 "게임을 끝내는" 도구가 아니다.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도구다. 그리고 규칙이 바뀌면 전략도 바뀐다. 이 사실을 수출 규제 전략은 항상 전제해야 한다. 제도는 기술보다 느리다. 1권의 이 명제가 수출 규제에서도 반복된다. 규제가 만들어질 때마다 기술은 이미 한 발 앞서 있고, 정권이 바뀌면 규제의 방향 자체가 뒤집힌다.


섹션 D. 중국의 반도체 자급 — 현실과 한계

목표와 현실의 간격

중국 정부가 2015년 메이드 인 차이나 2025(中国制造2025)에서 설정한 반도체 자급률 목표는 70%였다. 2025년이 왔다. 중국 내 생산 전체를 따지면 약 50%지만, 중국 기업이 자체 설계·제조한 칩만 따지면 19~23%에 불과하다(IC Insights/TechInsights).

20%포인트의 격차. 숫자만으로는 진척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숫자의 구성을 뜯어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50%의 자급률은 어느 분야에서 왔는가. 메모리 반도체, 레거시 공정(28nm 이상) 로직 반도체에서는 자급률이 높아졌다. 스마트폰 부품, 가전 제품 반도체, 자동차 반도체 일부. 이 분야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치고 올라왔다. 세계 레거시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서방 반도체 기업들이 오히려 압박을 받는 역설도 나타났다.

그러나 첨단 로직 반도체 — AI 가속기, 고성능 CPU, 최신 세대 통신 칩 — 에서는 다르다. 그리고 반도체를 만드는 장비의 자급률은 훨씬 더 낮다. 2024년 기준 13.6%다.

이것이 진정한 병목이다.

반도체 칩을 만들려면 수십 종류의 장비가 필요하다. 리소그래피 장비(ASML), 화학기상증착(CVD) 장비, 에칭 장비, 이온 주입 장비, 연마(CMP) 장비. 이 장비들을 만드는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램 리서치, KLA), 네덜란드(ASML), 일본(도쿄엘렉트론, Screen) 등이다. 이 장비들을 수입할 수 없게 되면, 기존 장비의 수명이 다했을 때 반도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비축한 DUV 장비들도 언젠가는 수명이 다한다.

이것이 중국이 장비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는 이유다. 칩 설계를 자급하는 것과 장비를 자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난이도의 과제다. 설계는 인재와 소프트웨어로 가능하다. 장비는 수십 년의 제조 노하우와 정밀 가공 기술의 집적이다.

선전 연구동의 40%

화웨이(华为) 선전(深圳) 본사 연구동에서, Ascend 910C가 생산되고 있다.

Ascend 910C는 화웨이가 SMIC(中芯国际, 중심국제)와 협력하여 생산하는 AI 가속기다. SMIC는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다. 그러나 SMIC는 EUV 없이 DUV 멀티 패터닝 기법으로 7nm에 가까운 공정을 구현한다. 이것이 Ascend 910C의 생산 공정이다.

이 공정의 수율(Yield)은 40%다.

수율이 40%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웨이퍼 하나에서 100개의 칩 다이(Die)를 찍어낼 수 있다면, 그 중 40개만 정상 작동한다는 뜻이다. 60개는 버려진다. TSMC의 첨단 공정에서 수율은 80~90% 수준이다. 같은 면적의 웨이퍼에서 TSMC는 80~90개를 쓸 수 있고, SMIC는 40개를 쓴다. 생산 효율의 차이가 2배 이상이다.

버려지는 60개의 다이. 이것이 제재의 비용이 물리적으로 체현되는 방식이다. 실리콘 웨이퍼는 고가다. 리소그래피 공정은 에너지 집약적이다. 버려진 60개의 다이에 투입된 소재, 에너지, 시간 모두가 손실이다. 이 비용이 최종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Ascend 910C는 NVIDIA A100의 70~80% 성능을 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단위 생산 비용은 훨씬 높다.

SMIC는 이 한계를 규모로 극복하려 한다. 첨단 노드 웨이퍼 월 생산량이 2025년 4만 5,000장에서 2026년 6만 장, 2027년 8만 장으로 늘어날 계획이다. Ascend 910C 생산 목표도 2025년 약 60만 개에서 2026년 160만 다이로 상승한다. 규모를 키워 단위 비용을 낮추는 전략이다.

이 숫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중국이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칩으로 AI 경쟁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완전하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DeepSeek이 보여주듯, 알고리즘 효율성으로 하드웨어 격차를 어느 정도 보상할 수 있다. Ascend 910C의 70~80% 성능을 소프트웨어 최적화로 보완하면, 중국 AI 기업들은 계속 훈련하고 추론할 수 있다.

한편 CUDA라는 벽이 있다.

NVIDIA는 2007년 CUDA(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를 공개했다. GPU를 AI 연산에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이후 18년 동안 전 세계 AI 연구자와 엔지니어들이 CUDA 기반으로 코드를 짰다. 라이브러리가 쌓였고, 최적화 기법이 축적됐고, 개발자 생태계가 형성됐다. 이 생태계는 어떤 의미에서 ASML의 EUV보다 더 깊은 해자다. 하드웨어는 복제하기 어렵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소프트웨어 생태계는 18년간의 개발자 습관과 지식이 응축되어 있어서, 복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

화웨이의 MindSpore(昇思), 바이두의 PaddlePaddle(飞桨). 중국 AI 프레임워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글로벌 AI 개발자 생태계에서 이것들의 점유율은 극히 낮다. 이것이 Ascend 910C의 하드웨어를 넘어서는 진짜 한계다. 칩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그 칩을 쓰는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함께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에너지라는 숨겨진 변수

반도체 자급 이야기를 완성하려면 하나의 변수를 더 봐야 한다. 에너지다.

AI 모델 훈련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데이터센터 전기료는 AI 연산 비용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중국의 데이터센터 전기료는 미국의 절반 이하다. 2024년 중국이 순 추가한 전력 용량은 약 430GW로, 같은 해 미국 순 추가량(약 30GW)의 14배가 넘는다. 미국의 총 설비 용량(약 1,250GW)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전력이 한 해에 추가된 것이다.

2030년까지 중국은 약 400GW의 여유 전력을 확보할 전망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먹는다. 중국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증가량은 2030년까지 175TWh로 예상된다. 비용 측면에서 단위당 가격이 미국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실질 부담이 작다.

칩의 성능이 부족한 부분을 에너지 비용 우위가 일정 부분 보완할 수 있다. NVIDIA H100이 없더라도, Ascend 910C를 더 많이 묶어서 더 오랫동안 저렴하게 돌릴 수 있다. 이것이 미국이 반도체 우위를 가지고 있을 때 중국이 에너지 우위로 일정 정도 균형을 잡는 비대칭 전략이다.

이 비대칭은 칩 전쟁이 단순히 "누가 더 좋은 칩을 만드는가"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AI 연산 능력을 결정하는 변수는 칩 성능, 칩 수량, 에너지 비용, 소프트웨어 최적화, 그리고 인재 모두를 포함한다. 미국이 칩에서 앞서고 중국이 에너지에서 앞서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수렴할지 아직 열려 있다.

1권의 구도로 보면, 미국은 설계 레이어(칩 아키텍처,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 중국은 실행 레이어(응용, 규모, 비용)에서 우위를 가진다. 이 비대칭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양국의 제도가 각자의 약점을 얼마나 빠르게 보완하느냐에 달려 있다.


1권 연결점: 철강에서 반도체로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 이동에는 결정적 신호가 있었다. 철강이었다. 1880년대 미국의 철강 생산량이 영국을 추월했을 때, 이것은 단순한 산업 지표의 변화가 아니었다. 생산성 기반의 이동이었고, 경제적 중력의 전환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반도체에서 같은 신호를 읽고 있는가.

두 가지 구조적 차이가 있다.

첫째, 철강은 생산량으로 우위를 측정할 수 있었다. 더 많이, 더 싸게, 더 빠르게. 이 세 지표가 일치하는 곳이 패권이 이동하는 곳이었다. 반도체는 생산량이 아니라 공정 세대로 측정된다. 중국이 반도체를 더 많이 생산한다고 해서 우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5nm 이하의 첨단 공정에서 자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준에서 중국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EUV 차단이 유지되는 한 단기간 내 도달이 어렵다.

둘째, 철강은 한 국가가 혼자 생산할 수 있는 재화였다. 철광석과 석탄과 노동력이 있으면 됐다. 반도체는 다르다. 전 세계에 분산된 공급망이 없으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 설계는 미국에서, 장비는 네덜란드와 일본에서, 소재는 한국과 일본에서, 제조는 대만에서. 이 네트워크는 한 나라가 단독으로 내재화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CHIPS Act가 보여주듯, 미국조차 이 네트워크의 일부를 자국 영토로 옮기는 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도체는 철강처럼 단일한 지표로 패권을 판단할 수 없는 재화다. 이것이 칩 전쟁을 더 복잡하고 더 오래 지속되게 만드는 구조적 이유다. 영국이 철강 생산량에서 독일에 추월당했을 때 패권이 이동했다면, 반도체에서의 패권 이동은 단일한 임계점이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의 동시적 전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전환이 어떤 형태를 취할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애리조나 사막의 공장과 선전의 연구동에서 동시에 쓰이고 있는 중이다.


전환부: 거대한 충돌 뒤의 개인들

칩 전쟁은 숫자들의 전쟁처럼 보인다. 78억 6,000만 달러, 36%, 13.6%, 40%. ASML의 실적표이고, 반도체 자급률의 현실이며, 수출 규제의 타임라인이다. 국가 대 국가의 회계 장부.

그러나 이 숫자들이 실재하는 것은 회계 장부 안이 아니다.

TSMC 피닉스 공장에서 야근하는 대만 엔지니어가 있다. 신주의 아이들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애리조나 사막에서 웨이퍼를 다루고 있다. 화웨이 연구동에서 Ascend 910C의 수율을 높이려고 밤을 지새우는 중국 엔지니어가 있다. 40%에서 50%로 올리는 것이, 그의 나라의 기술 자립에 한 발이다.

그리고 이 전쟁이 만든 세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파라리걸은 12년 쌓아온 법률 리서치 전문성을 AI에 잃었다. 반도체 우위가 만든 칩이, 그 칩이 구동하는 모델이 그녀의 일을 대신한다. 중국의 CS 매니저는 AI 고객응대 시스템에 팀 30명이 6명으로 줄고 자신의 직책까지 사라졌다. 제재를 우회해 만들어낸 국산 칩 위의 AI가 그의 일을 대신한다.

칩 전쟁은 거시적 구도다. 그 구도가 개인의 삶에 도달하는 경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도달한다.

거대한 제국의 충돌 뒤에, 두 사람의 아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