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부: 2017년의 서명, 2025년의 충격
2017년 7월 20일, 베이징(北京) 국무원 청사. 이날 오후 배포된 문서의 제목은 《新一代人工智能发展规划》이었다. 한국어로 옮기면 차세대 AI 발전 계획. 32페이지. 표지에는 붉은 국장이 찍혔고, 국무원 총리의 서명이 들어갔다.
문서의 핵심 숫자는 하나였다. 2030년까지 AI 관련 산업 규모 10조 위안(元/CNY), 달러로 환산하면 약 1조 4,000억 달러. 같은 시기 실리콘밸리에서는 알파고(AlphaGo)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관심은 자율주행과 아이폰 X에 쏠려 있었다. 워싱턴에서 그 문서를 꼼꼼히 읽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베이징 바깥에서 그 문서가 무엇을 뜻하는지 진지하게 묻는 사람도 드물었다.
8년 뒤인 2025년 1월, 답이 왔다.
DeepSeek(深度求索)라는 이름의 중국 AI 회사가 자사의 신형 모델 V3와 R1의 사양을 공개했다. 숫자가 이상했다. 미국 빅테크 AI 연구소들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는 유사 모델의 훈련 비용이 수억 달러인 것과 달리, DeepSeek V3의 GPU 컴퓨트 비용은 약 600만 달러였다. API 이용료는 OpenAI o1 대비 27분의 1이었다. 성능 벤치마크에서는 GPT-4와 동등하거나 일부 항목에서 초과했다. 그리고 모델 가중치를 전 세계에 무료로 공개했다.
NVIDIA(엔비디아) 주가는 공개 직후 17% 폭락했다. 시가총액으로 약 6,000억 달러가 증발했다. "이미 수천억 달러를 GPU 인프라에 투자한 것이 맞는가?"라는 의구심이 실리콘밸리에 퍼졌다.
이 충격의 진원지를 추적하면 다시 그 32페이지 문서로 돌아오게 된다.
질문이 생긴다. 중국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단순히 "국가가 돈을 쏟아부었다"는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소련도 군사 기술에 국가 자원을 집중했지만, 그 체계는 결국 경쟁에서 밀렸다. 중국의 AI 전략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이 따라온다. 국가가 혁신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는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미국식 혁신과, 국가가 청사진을 그리고 기업이 실행하는 중국식 혁신 사이에 어떤 구조적 차이가 있는가? 그리고 그 차이는 누구에게 유리하고, 어떤 조건에서 뒤바뀌는가?
이 챕터에서 독자는 2006년부터 2025년까지 중국 기술 전략의 진화를 따라간다. 자주 혁신(自主创新)이라는 구호가 어떻게 구체적인 산업 정책으로, 다시 AI 특화 국가 전략으로 발전했는지 살펴본다. 국가-국유기업-민간 테크기업이 형성하는 삼각 구도의 작동 방식, 그리고 이 시스템이 DeepSeek 같은 혁신을 어떻게 가능하게 했는지—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했는지—분석한다.
섹션 A: 20년의 설계 — 자주 혁신에서 AI 설계 국가로
1.4%에서 출발한 여정
2006년 봄, 중국 국무원은 《国家中长期科学和技术发展规划纲要》(국가 중장기 과학기술발전 계획 강요)를 발표했다.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년의 기술 발전 방향을 담은 문서였다. 그 해 중국의 연구개발 집약도(R&D/GDP)는 1.4%였다. 미국은 2.7%, 일본은 3.2%였다. 격차는 수치보다 컸다. 중국의 기술 기업들은 외국 기술을 라이선스해서 쓰고, 외국 기계를 수입해서 돌리고, 외국 소프트웨어를 복제해서 사용하는 구조에 갇혀 있었다.
그 문서가 내건 핵심 용어가 자주 혁신(自主创新, indigenous innovation)이었다. 외국 기술을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자체의 기술을 창출한다는 선언. 단순한 구호처럼 보였지만, 이 개념은 이후 20년간 중국 기술 정책의 기저 문법이 된다.
당시 이 선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외국 기업은 거의 없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공장"이었다. 아이폰을 설계하는 곳은 쿠퍼티노(Cupertino)였고, 조립하는 곳은 선전(深圳)이었다. 설계와 실행의 분업은 자연스럽고 지속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베이징의 계획가들은 이 분업을 영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메이드 인 차이나 2025의 진짜 유산
2015년, 중국 국무원은 《中国制造2025》(메이드 인 차이나 2025)를 발표했다. 제조업 고도화 전략이었다. 10대 핵심 산업에 AI·반도체·로봇이 포함되었고, 목표는 구체적이었다. 2025년까지 핵심 부품 및 소재의 70%를 국내 조달한다.
이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2025년 반도체 자급률은 중국 내 생산 전체 기준 약 50%로 보이지만, 중국 기업 자체 설계·제조분만 따지면 19~23%에 불과하다(IC Insights/TechInsights). 장비 자급률은 13.6%에 그쳤다. 미국과 서방 언론은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는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리곤 했다.
이 결론은 틀렸다. 정확히는, 중요한 것을 놓쳤다.
메이드 인 차이나 2025의 진짜 유산은 목표 달성이 아니라 방향 설정이었다. 이 정책이 발표된 순간부터, 중국의 수백 개 기업은 "국산화"를 전략적 우선순위로 삼기 시작했다. 외국 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리스크라는 인식이 기업 경영진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리고 그 인식은 미국의 수출 규제가 현실화되기 전에 이미 공급망 내재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역설이 있다면, 메이드 인 차이나 2025가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한 것은 "미국이 중국 기술에 대한 경계심을 갖도록 만든 것"이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화웨이(华为, Huawei)와 무역 전쟁을 시작한 직접적 계기 중 하나가 이 정책이었다. 경계심은 제재로 이어졌고, 제재는 중국 기업들이 국산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계획이 그 반작용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은 셈이다.
AIDP: 국가가 AI의 방향을 선언하다
2017년의 차세대 AI 발전 계획(新一代人工智能发展规划, 이하 AIDP)은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었다. 중국 국무원이 AI를 "국가 전략 기술"로 명시적으로 선언한 역사적 문건이었다.
목표는 3단계로 설정되었다. 2020년까지 주요 AI 기술에서 세계 선두 수준. 2025년까지 AI 이론·기술·응용 전반 세계 최고 수준. 그리고 2030년까지 AI 산업 규모와 기술력에서 세계 1위, "AI 혁신의 글로벌 허브" 달성. 2030년 목표치가 바로 그 10조 위안이었다.
이 목표들을 읽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 방식: 수치를 액면 그대로 읽는다. 그러면 "과연 달성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2020년 목표를 달성했는가? 2025년 목표는? 이 방식으로 읽으면 AIDP는 달성 가능성을 따져야 할 계획표다.
두 번째 방식: 선언으로 읽는다. 국가가 "우리는 이 방향으로 간다"고 선언했을 때, 그것이 기업·투자자·연구자·학생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방식으로 읽으면 AIDP는 자원 배분을 유도하는 신호다.
첫 번째 방식의 답도 기록해두자. 2020년 목표("주요 AI 기술에서 세계 선두 수준")는 부분적으로 달성되었다. 피인용 상위 AI 논문에서 중국 점유율은 23.2%로 세계 1위(Stanford HAI), AI 특허 출원 건수도 세계 1위다. 반면 기초 모델과 첨단 칩 설계에서는 미국에 뒤졌다. 2025년 목표에 대해서는 DeepSeek가 기술적 도약을 보여줬지만, "응용 전반 세계 최고"라는 목표의 달성 여부는 아직 논쟁 중이다.
그러나 두 번째 방식이 AIDP의 실질적 영향을 더 정확히 포착한다. AIDP가 발표된 2017년부터, 중국의 대학·기업·지방 정부는 AI를 우선순위로 삼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이징대학(北京大学)과 칭화대학(清华大学)의 AI 관련 입학 정원이 늘었다. 지방 정부는 AI 산업 단지 조성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창업가들은 AI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결과는 인력 수치에 담겨 있다. 칭화대 《중국 AI 발전 보고서 2025》에 따르면 중국의 AI 핵심 인력은 2015년 1만 명 미만에서 2024년 약 5만 2,000명으로 불어났다. AIDP 발표 전후로 증가 속도가 꺾인 것이 아니라, 가팔라졌다. 국가의 방향 설정이 민간의 자원 배분을 끌어들이는 구조가 작동했다.
이것이 미국의 VC 주도 혁신과 다른 점이다. 미국에서는 어떤 기술이 "다음 큰 것"이 될지 시장이 결정한다. 중국에서는 국가가 먼저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에 자원이 몰린다. 두 방식 모두 작동할 수 있다. 어떤 조건에서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가 진짜 질문이다.
AI+: 전략의 최신판
2025년 8월, 중국 국무원은 《关于加快推进人工智能+行动的意见》(AI+ 행동 가속 추진에 관한 의견, 国发〔2025〕11号)을 발표했다. 2015년의 "인터넷+"(互联网+) 전략의 직계 계승자였다. 인터넷+가 전통 산업에 인터넷을 접목하는 전략이었다면, AI+는 전통 산업에 AI를 심층 통합하는 전략이다. 제조, 농업, 교육, 의료, 에너지, 교통 모든 분야에 AI를 내재화하겠다는 선언이었다.
2006년부터 2025년까지의 정책 진화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추격에서 선도로, 수입에서 자급으로, 실행에서 설계로. 그리고 매 단계마다 국가가 방향을 정했다.
이 진화가 즉흥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DeepSeek 쇼크는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었다. 20년에 걸친 정책 설계의 누적된 결과가 특정 시점에 표출된 것이었다.
섹션 B: 삼각 구도 — 국가, 국유기업, 민간 테크기업
세 행위자의 구조
중국 AI 혁신의 구조를 "국가 주도"라고 부르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더 정확한 표현은 삼각 구도다.
국가와 당(党)이 꼭짓점 하나를 차지한다. 방향을 설정하고, 자원을 배분하고, 규제를 설계하고, 데이터 접근을 허용한다. 국유기업(国有企业)이 두 번째 꼭짓점이다. 안정적인 수주처이자, 공공 데이터의 수집 창구이며, 국가 자본이 투입되는 채널이다. 민간 테크기업이 세 번째 꼭짓점이다. 실제 혁신을 실행하고, 상업적으로 경쟁하며, 해외 시장을 개척한다.
이 삼각 구도는 미국의 순수 민간 VC 모델과도, 구소련의 중앙계획 모델과도 다르다. 각 꼭짓점이 다른 두 꼭짓점을 필요로 한다.
미국에서는 어떤가. OpenAI가 5,000억 달러 기업가치에 도달한 것은 순수 민간 자본의 힘이었다. Anthropic(앤트로픽)은 3,800억 달러 기업가치를 기록했다. 국가 지정 플랫폼도, 정부 보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2026년 기준 빅테크 4사(아마존·알파벳·마이크로소프트·메타)의 AI 자본지출 합산이 6,350억~6,650억 달러에 달하는 것은, 민간 자본도 국가 수준의 규모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국가와 민간의 경계가 자원 규모에서는 흐릿해지고 있다.
그러나 구조는 여전히 다르다. 미국 빅테크는 주주 가치에 책임진다. 중국 국유기업은 국가 전략에 책임진다. 이 차이가 자원 배분의 방향을 결정한다.
중국 삼각 구도의 재무적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데이터로 보자. 화웨이는 2024년 매출 8,621억 위안 중 1,797억 위안(20.8%)을 R&D에 투입했다(화웨이 연간보고서). 10년 누적 R&D 투자는 1조 2,490억 위안을 넘었다. 알리바바는 2025년 2월, 향후 3년간 AI·클라우드 인프라에 3,800억 위안(약 530억 달러)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두의 AI 클라우드 매출은 2025년 300억 위안에 도달했고, AI 관련 매출은 9분기 연속 세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바이두 FY2025 실적). 미국 빅테크 CapEx와 비교하면 절대 규모에서 차이가 있지만, 삼각 구도는 국가 자본+민간 투자를 합산하는 구조이므로 개별 기업 비교만으로는 전체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 자본의 규모를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중국 정부 유도기금(政府引导基金)은 2025년 기준 2,100개 이상이 설립되어 있으며, 목표 총액은 약 13조 5,000억 위안(약 1조 8,600억 달러)에 달한다(Zero2IPO/清科). 민간 자본을 유인하기 위한 정부 자금이 마중물 역할을 하는 구조다. 금융 부문도 합류했다. 중국은행(中国银行, Bank of China)은 2025년 3월 향후 5년간 AI·과학기술 분야에 1조 위안 규모의 대출을 실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유 은행이 국가 전략에 연동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VC와 자본시장이 이 역할을 하고, 중국에서는 정부 유도기금과 국유 은행이 한다. 자본의 출처와 흐름이 다를 뿐, 규모는 비교 가능해지고 있다.
국가 AI 개방 혁신 플랫폼의 작동 방식
중국 정부가 선택한 핵심 도구 중 하나가 국가 인공지능 개방 혁신 플랫폼(国家人工智能开放创新平台) 지정 제도다. 각 분야에서 선도 기업을 지정하고, 그 기업에게 집중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정 기업의 명단이 중국 AI 생태계의 지형도를 보여준다. 바이두(百度, Baidu)가 자율주행 AI 분야 선정을 받았다. 알리바바(阿里巴巴, Alibaba)가 스마트 시티 분야. 텐센트(腾讯, Tencent)가 의료 이미지 AI. 아이플라이텍(科大讯飞, iFlytek)이 음성 AI. 화웨이(华为, Huawei)가 AI 컴퓨팅 기반.
지정을 받은 기업들은 무엇을 얻는가. 공공 데이터 접근권, 정부 조달 우선권, 규제 샌드박스 혜택이다.
바이두의 경험이 이 구조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2025년 바이두의 AI 클라우드 인프라 매출은 약 200억 위안(전년 대비 +34%), AI 응용 매출은 100억 위안을 돌파했다. 전체 매출(1,291억 위안)은 레거시 광고 사업 축소로 3% 감소했지만, AI 클라우드가 새 성장 축으로 부상한 것이다. 자율주행 AI 플랫폼으로 지정된 후, 바이두는 우한(武汉)·충칭(重庆)·베이징·상하이·선전·광저우 등 22개 도시에서 도시 전체의 교통 데이터 접근권을 얻었다. 수십만 대의 차량, 수천 개의 교통 신호, 수백만 명의 이동 패턴이 바이두의 자율주행 AI 훈련 데이터로 흘러들어갔다.
미국이라면 이 과정이 어땠을까. 시 정부와 개별 협약을 맺어야 하고, 사유지 통행 허가를 얻어야 하며,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약을 넘어야 한다. 연방·주·시 세 층위의 규제가 중첩된다. 테슬라(Tesla)가 미국 전역에서 자율주행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걸린 시간과, 바이두가 중국 22개 도시에서 같은 작업을 완료하는 데 걸린 시간을 비교하면, 삼각 구도의 장점이 명확해진다.
국유 고객의 역설
삼각 구도에도 약점이 있다. 가장 심각한 약점은 국유기업이 고객일 때 작동하는 구조에서 나온다.
중국 AI 기업들에게 국유기업은 핵심 고객이다. 전력·통신·금융·교통 분야의 대형 국유기업들이 AI 시스템을 발주할 때, 중국 AI 기업들은 사실상 경쟁 없는 수주 기회를 얻는다. 외국 기업은 입찰에서 불리하고, 중국 민간 기업 간의 경쟁도 제한적이다.
이 구조는 단기적으로 수익을 보장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혁신을 억제하는 힘이 된다.
국유 고객은 성능보다 관계를 중시한다. "이 AI가 경쟁사 제품보다 10% 더 정확한가?"보다 "이 기업이 우리와 신뢰 관계를 구축했는가?"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지 않은 국유기업 조달 담당자에게 성능 차이는 추상적이다. AI가 충분히 작동하면 충분하다.
이 환경에서 AI 기업들은 성능을 극한으로 높이기보다, 기존 시스템에 호환되고 유지보수가 편한 제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인센티브가 기울어진다. 혁신의 속도가 경쟁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다.
실패 비용도 다르게 작동한다. 미국 VC 모델에서 실패는 포트폴리오의 일부다. 열 개 중 하나가 성공하면 충분하다. 중국 국가 자금에서 실패는 정치적 부담이다. 국무원이 지정한 플랫폼이 실패하면, 그것은 담당 관료의 경력에 직접적 타격을 준다. 따라서 담당자들은 안전한 실패보다 조금 덜 성공적인 성공을 선호한다. 이것이 혁신의 반경을 좁힌다.
이 구조적 취약성이 숫자로 드러난 사례가 있다. 중국 정부가 2025년 AI 자본지출로 투입한 자금은 약 4,000억 위안으로 추산된다. 총 6,000~7,000억 위안 규모 AI 관련 공공 지출 중 상당 부분이다.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국유 클라우드 인프라와 국유기업 AI 도입 프로젝트로 흘러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세계를 놀라게 한 DeepSeek는 이 자금과 무관하게 민간 헤지펀드의 자체 자본으로 만들어졌다. 국가 자금이 가장 혁신적인 결과물을 낳은 것이 아니라, 국가 자금이 닿지 않은 곳에서 혁신이 터져 나왔다는 역설이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 정부 AI 자본지출 4,000억 위안과, 2017년 《신세대 AI 발전 계획》이 2025년 목표로 제시한 "핵심 AI 산업 규모 4,000억 위안"은 다른 수치다. 전자는 정부가 직접 투입한 자금이고, 후자는 민간을 포함한 산업 전체의 규모 목표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2026년 1월 국무원 기자회견에 따르면 2025년 중국의 핵심 AI 산업 규모는 1조 2,000억 위안(1.2万亿元)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国务院新闻办, 2026.01.21). AI 기업 수는 6,000개를 넘어 글로벌 16%를 차지했고, 스마트 컴퓨팅 파워는 1,590 EFLOPS에 달했다. 목표의 3배를 초과 달성한 셈이다. 국가 설계가 방향을 잡고, 민간이 실행에서 목표를 뛰어넘은 구조의 산물이다.
스탠퍼드 HAI(Stanford HAI)의 《AI Index Report 2025》 역시 이 구조의 산출물을 보여준다. 2023년 기준 중국은 AI 관련 학술 논문에서 세계 1위(전체의 23.2%)를 차지했고, 인용 비중도 22.6%로 선두였다. AI 특허에서도 글로벌 점유율 60% 이상을 기록했다. 다만 2024년 주목할 만한 AI 모델(notable AI models)에서는 미국 40개 대비 중국 15개로 격차가 존재했다. 양과 질의 비대칭이다.
이 비대칭은 인프라에서도 나타난다. 같은 국무원 기자회견에 따르면 2025년 중국의 스마트 컴퓨팅 파워(智能算力)는 1,590 EFLOPS에 도달했고, CAICT(中国信通院)와 IDC는 이 수치가 2028년 2,781.9 EFLOPS로 연평균 40% 가까이 팽창할 것으로 전망한다. 양적 팽창의 속도는 빠르지만, 프론티어 모델을 직접 설계하는 질적 역량과의 간극은 아직 좁혀지지 않았다.
국가 주도 시스템은 특정 조건에서 강력하다. 장기 투자가 필요하고, 방향이 명확하며, 규모의 경제가 결정적인 분야에서. AI 인프라, 자율주행 데이터 수집, 스마트 시티 건설이 그 조건에 부합한다.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는 2025년 11월 ICPC 참가자들과의 대화에서 이 구분을 명시적으로 짚었다. "AI 발명은 기껏해야 IT 기업 하나를 만들지만, 응용은 국가를 강하게 만든다(AI发明顶多成就一家IT公司,应用却能强大一个国家)." 그의 진단은 이어졌다. "미국은 범용 인공지능(AGI)과 초지능을 추구하고, 중국은 실제 산업 문제를 해결하면서 가치를 만든다." 그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었다. "석탄 세척 정밀도를 0.1% 올리면, 중국의 연간 석탄 생산량 40억 톤에 곱해지는 가치는 놀랍다. 고로 제철 효율을 1% 끌어올리면 10억 톤 철강 생산에서 절약되는 연료는 헤아릴 수 없다." — 런정페이, ICPC 참가자 간담회, 2025년 11월(Caixin Global, 2025.12.06 보도) IT 기업 하나의 시가총액으로 측정되는 혁신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효율에 녹아드는 혁신. 그것이 런정페이가 말한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응용이었다.
그러나 방향이 불확실하고, 빠른 실험과 실패가 필수적이며, 글로벌 경쟁에 노출될수록 더 강해지는 분야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온다. AI 기초 연구, 창의적 응용, 새로운 시장 발견이 그 조건에 해당한다. 미국 VC 모델의 핵심 강점은 이 조건에서 드러난다. 실패가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허용되는 구조 속에서, OpenAI·Anthropic·Mistral 같은 기업들이 경쟁하며 서로를 밀어붙인다. 세 회사 중 하나가 획기적 돌파구를 찾으면 나머지 둘이 즉각 그 방향으로 달려든다. 이 속도를 국가 계획의 속도와 맞추는 것은 어렵다.
섹션 C: 규제의 역설 — 세계 최초 AI 규제가 혁신을 보호하다
9개월
2023년 4월,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国家互联网信息办公室, CAC)은 생성형 AI 서비스에 관한 규제 초안을 발표했다. ChatGPT 등장(2022년 11월)으로부터 채 9개월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초안 발표 4개월 뒤인 2023년 8월 15일, 《生成式人工智能服务管理暂行办法》(생성형 AI 서비스 관리 잠정 조치)가 시행되었다. 세계 최초로 생성형 AI에 구속력 있는 규제를 시행한 나라가 된 날이었다.
같은 시기 미국은 어땠는가. 2025년까지 연방 차원의 포괄적 AI 법안은 단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았다. 딥페이크 관련 특정 법안인 TAKE IT DOWN Act만이 통과된 유일한 AI 관련 연방 법안이었다. 의회에는 100개 이상의 AI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계류 중이었고, 국민의 79%가 AI 규제를 지지하는 상황이었다. 공화당 지지자 84%, 민주당 지지자 81%가 규제에 찬성했다. 그런데도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빅테크 로비가 한 해 9,200만 달러를 AI 관련 의회 설득에 지출하는 구조에서, 국민 여론과 입법 결과 사이의 괴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서방 관찰자들은 이 대비에서 즉각적인 결론을 뽑아냈다. "중국은 빠르고, 미국은 느리다. 중국은 혁신을 통제하고, 미국은 혁신을 보호한다." 이 결론은 두 가지를 놓친다.
보호막과 검열의 양면
중국의 생성형 AI 규제 핵심 조항들을 읽으면, 이 규제가 단순한 "혁신 억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서비스 출시 전 사전 보안 심사(安全评估) 의무, 훈련 데이터의 적법성 평가 의무, 허위 정보 생성 방지 의무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조항이 더 있다. 생성 콘텐츠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社会主义核心价值观)"을 반영해야 한다.
2023년 8월 15일 규제 시행일, 바이두(百度)의 ERNIE Bot(文心一言, 원신이옌)과 알리바바의 통이치엔원(通义千问, Qwen)이 이미 사전 보안 심사를 통과하고 서비스를 출시했다. 텐센트의 훈위엔(混元), 바이트댄스(字节跳动, ByteDance)의 Doubao(豆包)도 줄을 이었다. 2025년 9월 기준 CAC에 비안(备案)을 등록한 생성형 AI 서비스는 538개에 달한다. CNNIC(中国互联网络信息中心) 제56차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중국 생성형 AI 사용자는 5억 1,500만 명으로, 전체 인터넷 사용자의 47.4%가 생성형 AI를 써본 셈이다.
같은 날 ChatGPT는 중국 본토에서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에 의해 차단된 상태였다. 규제 시행일이 곧 국내 기업 보호막이 완성되는 날이었다.
이 구조의 논리는 명쾌하다. 외국 AI 서비스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조항을 충족할 수 없거나, 충족하려 하지 않는다. 중국 기업들은 이 조항을 충족하는 것이 곧 중국 시장에서 영업할 수 있는 자격이자, 정부 신뢰를 얻는 경로임을 안다. 규제는 동시에 진입 장벽이다.
현장에서 이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2023년 8월 15일 새벽, 베이징 바이두 본사 엔지니어링 팀은 전날 밤부터 대기하고 있었다. ERNIE Bot 서비스의 공개 사전 심사 승인이 나온 것은 며칠 전이었다. 규제 시행 당일 오전 서비스를 공식 출시한다는 계획이 잡혀 있었다. 같은 날 ChatGPT는 중국 접속 차단 상태 그대로였다. 바이두가 수개월에 걸쳐 당국과 긴밀히 조율하며 준비한 것이 이 타이밍이었다. 규제 시행일이 곧 시장 독점 개시일이 되는 구조였다.
미국의 느린 규제가 혁신 공간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스타트업이 규제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다. GPT-4가 나왔을 때 미국 스타트업들은 이틀 만에 API를 연동한 제품을 만들었다. 중국에서라면 먼저 보안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 AI 기업들이 규제에도 불구하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규제와 함께 성장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규제 요건을 충족하는 과정 자체가 중국 정부의 신뢰를 확보하는 방법이었고, 그 신뢰가 국유기업 계약, 데이터 접근권, 정부 조달로 이어졌다.
규제의 진화: 세계 표준 설정 게임
중국의 AI 규제는 2023년으로 끝나지 않았다. 2025년 4월에는 생성형 AI 보안 국가표준 3종이 발표되었고, 7월에는 AI 글로벌 거버넌스 행동계획이 나왔다. 8월에는 10개 부처 합동으로 AI 기술 윤리 관리 조치 초안이 발표되었으며, 9월에는 AI 생성 콘텐츠 라벨링 규칙이 시행되었다.
이 규제들의 공통점은 "중국 표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려는 방향성이다. AI 글로벌 거버넌스 행동계획은 중국의 AI 거버넌스 원칙을 국제 포럼에서 주도적으로 제안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세계 75개국 이상에 중국산 AI 감시 기술이 수출된 상황에서, 중국은 그 기술의 운용 기준을 국제 무대에서 직접 제안하고 있다.
규제를 "혁신의 장벽"으로만 보면, 이 게임의 진짜 의미를 놓친다. 국제 표준을 먼저 제안하는 자가 시장의 규칙을 만든다. 유럽이 GDPR(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로 글로벌 데이터 거버넌스의 기준을 높인 것처럼, 중국은 AI 거버넌스에서 같은 게임을 시도하고 있다.
섹션 D: BAT에서 BATH+D로 — 세대 교체의 의미
플랫폼 경제에서 AI 네이티브로
2010년대 중국 테크 생태계를 지배한 것은 BAT였다. 바이두(百度, Baidu), 알리바바(阿里巴巴, Alibaba), 텐센트(腾讯, Tencent)의 머리글자를 딴 이 세 기업은 검색, 이커머스, 소셜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중국 인터넷을 분점했다.
그러나 2025년의 중국 테크 지형은 달랐다. BAT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지배력의 성격이 변했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BATH+D라는 약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화웨이(华为, Huawei)가 하드웨어·5G·AI 칩을 장악했고, 바이트댄스(字节跳动, ByteDance)가 알고리즘 추천의 새 기준을 세웠다. 핀둬둬(拼多多, Pinduoduo)—그리고 그 글로벌 브랜드인 테무(Temu)—가 소비자 행동 데이터의 새로운 축이 되었다. 그리고 DeepSeek가 오픈소스 AI 모델 생태계에 충격을 던졌다.
이 세대 교체는 단순한 기업 변화가 아니다. 1세대 BAT가 "플랫폼 경제"의 주역이었다면, 2세대는 AI 네이티브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플랫폼은 거래의 장을 만들었다. AI 네이티브 기업은 개인의 행동을 예측하고, 최적화하며, 대체한다.
량원펑의 선택
DeepSeek의 이야기는 2021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량원펑(梁文锋)은 2008년 저장대학교(浙江大学)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AI 기반 퀀트 헤지펀드 환팡(幻方, High-Flyer)을 공동 창업했다. 환팡은 중국 퀀트 투자 세계의 선두 기업이 되었다. 금융 알고리즘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GPU 클러스터와 AI 모델 훈련 경험이 자연스럽게 쌓였다.
2021년, 량원펑은 결정적 전환점에 섰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가 가시화되자, 그는 제재 전에 대규모로 NVIDIA GPU를 매입했다. 최종적으로 확보한 GPU는 H100과 H800을 포함해 약 2만 개로 추산됐다(SemiAnalysis). 그리고 2023년 5월, 항저우에 DeepSeek를 설립했다.
구조가 처음부터 달랐다. VC 자금을 받지 않았다. 투자자에게 분기 실적을 보고할 의무가 없었다. 상장 일정에 맞춰 제품을 서둘러 출시할 압박도 없었다. 환팡의 자체 자본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팀은 오직 기술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 구조가 역설적으로 DeepSeek의 강점이 되었다. OpenAI의 Sam Altman(샘 올트먼)은 DeepSeek R1을 보고 "인상적인 모델, 특히 이 가격으로는"이라고 인정했다. R1의 API 비용은 OpenAI o1 대비 입력 27배, 출력 27배 저렴했다.
DeepSeek의 효율성은 세 가지 기술 혁신에서 나왔다. 혼합 전문가 아키텍처(Mixture of Experts, MoE)는 전체 6,710억 파라미터 중 각 토큰 처리 시 370억만 활성화해 연산량을 극적으로 줄였다. 멀티헤드 레이턴트 어텐션(Multi-head Latent Attention, MLA)은 GPU 메모리 사용량을 압축했다. FP8 혼합 정밀도 훈련은 기존 BF16 대비 약 2배 효율을 냈다.
이 기술들의 공통점이 있다. 제약 속에서 나왔다. 충분한 H100을 살 수 없는 환경이, 역설적으로 효율성 극대화를 향한 혁신을 강제했다. 제재가 혁신을 죽인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혁신을 낳았다.
여기서 주의가 필요하다. 흔히 언급되는 "600만 달러 훈련 비용"은 GPU 사전 훈련 비용만을 의미한다. SemiAnalysis 분석에 따르면 DeepSeek의 총 서버 인프라 자본지출은 약 16억 달러였다. 그 중 9억 4,400만 달러가 클러스터 운영 관련 비용이었다. "600만 달러 = 전체 비용"이라는 단순화는 오해다. 그럼에도 동등한 성능의 미국 모델 대비 훈련 효율이 월등히 높다는 것은 반박하기 어렵다.
오픈소스의 전략적 논리
DeepSeek가 모델 가중치를 공개한 결정은 중국 AI 전략의 전술적 전환을 보여준다.
서방 관찰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미국이 수출 규제로 기술 유출을 막으려는 와중에, 왜 중국 AI 기업들은 모델을 무료로 공개하는가?
이유는 여러 층위에 있다.
생태계 지배가 첫 번째 이유다. 안드로이드(Android)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iOS를 양적으로 압도한 것은 오픈소스 전략 덕분이었다. DeepSeek 가중치가 전 세계 개발자의 기본 도구가 된다면, 중국 기업은 AI 인프라 레이어를 사실상 지배하게 된다.
미국 모델에 대한 비용 압박이 두 번째다. DeepSeek R1이 OpenAI o1과 동등한 성능을 27분의 1 가격에 제공하면, 전 세계 기업들이 비용을 이유로 DeepSeek를 선택하게 된다. OpenAI의 수익 모델을 공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규제 우회가 세 번째다. 오픈 가중치 모델은 미국의 AI 수출 규제 대상이 아니다. 가중치 파일은 데이터이고, 코드는 소프트웨어다. 이를 막는 규제는 2026년 초 기준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전략의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2026년 초 기준, 글로벌 오픈 가중치 모델 상위 10개 중 9개가 중국산이었다. DeepSeek 외에도 알리바바의 통이치엔원(通义千问, Qwen), 바이트댄스의 Doubao 시리즈가 허깅페이스(HuggingFace)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중국 오픈소스 AI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024년 말 1.2%에서 2025년 8월 30%로 치솟았다.
AI 특허: 60%의 빛과 그림자
중국의 AI 특허 보유량도 인상적인 숫자를 자랑한다. 글로벌 생성형 AI 특허 중 중국 비중은 60% 이상이다. 등록 건수는 3만 8,210건. 미국의 6,276건과 비교하면 6배를 넘는다.
그러나 이 숫자를 그대로 읽으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3만 8,210건 중 실제로 국제출원된 건수는 7.3%에 불과하다. 나머지 92.7%는 중국 국내 특허다. 중국 국내 특허는 등록 기준이 낮고, 중국 시장 밖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미국 특허 1건이 미국·유럽·일본 동시 출원인 반면, 중국 특허 대부분은 중국에서만 유효하다.
더 중요한 지표는 피인용 횟수다. 중국 AI 특허의 평균 피인용 횟수는 미국 AI 특허 대비 약 7분의 1이다. 이는 중국 특허들이 기존 기술의 응용과 개선에 집중되어 있고, 트랜스포머(Transformer) 아키텍처 같은 새로운 원리를 발명하는 기초 연구형 특허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그림에 DeepSeek가 균열을 냈다. DeepSeek의 MoE 개선, MLA, FP8 훈련 기법은 단순 응용이 아닌 기반 아키텍처 수준의 혁신이었다. 중국이 기초 혁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 없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1권 연결점: 설계 레이어의 국가 버전
1권에서 독자는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를 만났다. 그는 방직기를 발명하지 않았다. 하그리브스(James Hargreaves)의 제니 방적기(Spinning Jenny), 와이어(Lewis Paul)와 와이어트(John Wyatt)의 롤러 방적 기술이 이미 존재했다. 아크라이트의 진짜 혁신은 기계가 아니었다. 공장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생산 아키텍처를 설계한 것이었다. 노동자를 시간에 맞춰 조직하고, 원료 투입부터 완제품 출하까지 과정을 표준화하며, 자본과 노동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시스템.
1권의 핵심 이분법인 실행 레이어(execution layer)와 설계 레이어(architecture layer)를 국가 단위로 확장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미국은 현재 AI의 설계 레이어 국가다. GPT, Claude, Gemini라는 AI 모델 아키텍처. NVIDIA의 GPU 설계. 쿠다(CUDA) 소프트웨어 생태계. 파이토치(PyTorch)와 텐서플로우(TensorFlow)라는 AI 훈련 프레임워크. 전 세계가 미국이 설계한 도구를 사용한다.
중국은 현재 상당 부분 AI의 실행 레이어 국가다. 미국이 설계한 도구를 가장 빠르게, 가장 싸게, 가장 넓게 응용하고 배포한다. AI 고객 응대, 스마트 시티, 전자상거래 추천 알고리즘, 안면인식 시스템.
그러나 이 이분법에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아크라이트 자신도 처음에는 기존 기술의 더 효율적인 실행자였다. 그의 진짜 혁신은 실행에서 출발해 설계로 이동했을 때 나왔다. DeepSeek는 중국이 같은 이동을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 아크라이트는 시장 경쟁에 노출되었다. 더 효율적인 경쟁자가 나타나면 대체될 수 있었다. 실제로 19세기 방직 산업에서 더 효율적인 기업들이 등장하며 초기 선도자들을 밀어냈다. 중국 국가의 설계 레이어 통제는 시장 경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것이 강점인 동시에 취약점이다.
그러나 국가 설계와 민간 실행 사이의 긴장은 기업인들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CATL(宁德时代) 창업자 쩡위취안(曾毓群)은 2024년 다보스에서 "우리는 기후변화와 싸우고 있다. 지정학적 문제가 무엇이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025년 APEC을 앞두고는 다른 톤도 보여주었다. 중국 기업의 기술 혁신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AI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실질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세계 무대를 향한 낙관론과, 국내를 향한 냉정한 현실 진단이 공존한다. 삼각 구도의 실행 주체들은 국가의 청사진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한계를 내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강점부터 보자. 장기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10년, 20년 단위의 전략을 시장 변동성 없이 실행할 수 있다. AIDP가 2017년에 발표되고 2025년까지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안정성 덕분이다.
취약점은 그 이면에 있다. 경쟁 없는 보호가 혁신의 기준을 낮출 수 있다. 국가가 방향을 정하면 그 방향 밖의 혁신은 자원을 받기 어렵다. 방향이 틀렸을 때 수정 비용이 크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국가가 항상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1권의 언어로 말하면, 중국 국가는 아크라이트의 역할을 공장 수준이 아니라 국가 수준에서 시도하고 있다. 기술 자체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작동할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 문제는 아크라이트는 시장이 자신의 설계를 검증해 주었다는 것이다. 국가의 설계를 검증하는 메커니즘은 다르고, 더 느리며, 때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전환부: 다음 질문
중국 AI 전략의 본질은 한 문장이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작동할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
국가-국유기업-민간 테크기업의 삼각 구도, 규제가 동시에 진입 장벽이 되는 구조, 오픈소스로 생태계를 장악하는 전략 — 이 모든 요소가 20년에 걸쳐 쌓인 결과가 DeepSeek 쇼크였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연료가 필요하다. 데이터.
위챗페이의 결제 흐름, 디디추싱의 이동 패턴, 도우인의 시청 기록, 약 7억 대의 감시 카메라가 수집하는 얼굴 데이터. 이것이 중국 AI 시스템의 연료다.
핵심 질문이 남는다. 이 데이터의 규모와 밀도가 실제로 AI 성능의 우위로 전환되는가? 그 경로에는 어떤 함정이 있는가? 그 연료의 실체를 보는 것이 다음 단계다.
다음 챕터: Ch.9 — 14억의 데이터: 중국이 AI 응용에서 강한 이유